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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성리학의 성립과 사단칠정론
 
 작 성 자  관리자  전자우편  amdin@toegye.ne.kr  등록일

 2004-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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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성리학의 성립과 사단칠정론


최영진


1. 사화와 성리학의 토착화

조선조는 고려말에 성장한 신진사대부들이 성리학을 지도이념으로 하여 건국한 왕조이다. 그러나 성리학의 내용은 조선 전기와 후기에 있어서 현격한 차별상을 보이고 있다. 전기 사회를 주도해 나간 관료들이 학문적인 탐구보다 전장제도(典章制度) 및 중국과의 외교에 필요한 사장학(詞章學) 등 보다 실무적인 측면에 기울어져 있었다면, 후기에 사림파들이 집권하면서 이기 심성론에 관하여 치밀하고도 철학적인 탐구가 심화된다. 그리하여 성리학은 조선중화주의를 표방하면서 찬란하게 꽃피운 영정조시대 문예부흥의 이론적 뿌리를 이루게 된다.
조선후기 성리학의 심화와 발전은 전시대인 16세기 이른바 '퇴율성리학'으로 대표되는 학문적 성과에 토대를 둔 것이다. 사상사적으로 볼 때에 16세기는 여말에 수입된 성리학에 대한 연구가 본 궤도에 오르면서 조선의 성리학으로 토착화되는 기틀을 마련하는 시기이다. 16세기 초에 해당하는 중종초기에 기묘사림(己卯士林)으로 불리우는 趙光祖 金安國 金正國등이 중앙정계에 진출하여 성리학적 이념을 현실사회에 정치적으로 구현하고자 진력하였으나 중종14년(1519년) 기묘사화로 좌절되었다. 중종후기에는 권습(權習) 조식(曺植) 서경덕(徐敬德)등이 등장하며, 명종 대에는 이언적(李彦迪) 이황 기대승(奇大升)등 100여명에 이르는 학자들이 학문 활동을 통하여 연구 업적을 남기고 있다. 이 시기에 {주자대전}이 수입되어 성리학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이루어지게 된다. 이황의 {朱子書節要}와 기대승의 {朱子文錄}은 주자학에 대한 학습이 얼마나 정밀한 것이었는가를 잘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그리고 이황보다 한 세대 후인 선조대에 율곡 李珥가 출현한다. 이렇게 본다면 현상윤이 조선성리학의 육대가(六大家)로 거론한 서경덕 이황 이이 기정진 이진상 임성주 가운데 그 절반이 이 시기에 몰려 있는 셈이 된다. 16세기는 이른바 四大士禍로 불리우는 戊午士禍(연산군 4년, 1498년) 甲子士禍(연산군 10년, 1504년) 己卯士禍(중종14년, 1519년) 乙巳士禍(명종 즉위년, 1545년) 가운데 3회의 사화가 일어난 시기이다. 사림들이 혹독한 시련을 겪은 이 시기에 사단칠정론으로 대표되는 정밀한 이기심성론이 발달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퇴계의 다음과 같은 글에서 한 단서를 발견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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