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학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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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학십도 부록 서(聖學十圖附錄序)


내가 스승1)에게 들으니, “우리 퇴도(退陶) 이(李) 선생께서 평생 동안 공부하신 실적이 《성학십도》에 갖추어져 있어서, 도리의 핵심을 드러내고 성학(聖學) 공부의 표준을 제시하였다. 태극(太極) 즉 하나의 이치의 근원에서 단서를 구하여 상황과 시간에 맞추어 배열하였는데, 그 가운데서 심통성정(心統性情)에 관한 두 도(圖)2)는 종횡에 걸쳐 폭넓게 설명하였고 나누거나 합함에 있어서 빠짐없이 상고하였으니, 학문에 뜻을 둔 사람이 진실로 여기서 맛을 느낄 수 있다면 장차 어떤 이치라도 궁구하지 못하겠는가?” 하셨다. 또 말씀하시기를, “세상에 공자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은 실로 주자로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주자를 배움은 더욱 퇴도(退陶)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니, 퇴도를 배우지 아니하고 공자와 주자의 도를 배운다는 것은 문을 통하지 않고 방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하셨다.

  내가 일찍이 이 말을 가슴에 새겼으나 게으름에 빠져 있는 사이에 부지불식간에 노년이 닥쳤다. 금년 겨울에 병이 들어 후산(后山)의 재실3)에 머무를 때 한 두 사람의 학자들과 더불어 《심경부주(心經附註)》의 예에 따라 도설(圖說) 뒤에 몇 가지 조목의 부록을 덧붙이고 이름하여 《성학십도부록(聖學十圖附錄)》이라 하였으니, 감히 도설 외에 더 많은 것을 구하여서가 아니고 그 대의(大意)가 어떠한가를 가만히 엿보고자 했을 뿐이다.

〈태극도(太極圖)〉·〈서명도(西銘圖)〉는 다만 도해에 본래 있던 설을 그대로 썼고, 〈소학도(小學圖)〉·〈대학도(大學圖)〉는 본래의 글이 지극할 뿐만 아니라 그 의미가 극진하여 다시 췌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백록동규도(白鹿洞規圖)〉에는 본문의 출처를 기록하였고, 〈심통성정도(心統性情圖)〉에서는 심(心)·성(性)·정(情)의 본래 의미를 대략 논하였고, 아울러 중·하도의 혼륜(渾淪)과 분개(分開)의 뜻에 관해 언급하였으며 호발(互發)의 취지를 발명하였다. 〈인설도(仁說圖)〉에서는 정자와 주자가 인(仁)을 논한 대의를 취하여 덧붙였다. 〈심학도(心學圖)〉에는 본문의 출처를 차례로 기록하였고, 〈경재잠도(敬齋箴圖)〉는 선유의 경재잠집설(敬齋箴集說)에서 상세히 설명하였으므로 더 보태서 기록할 필요는 없다. 〈숙흥야매잠도(夙興夜寐箴圖)〉에서는 선천도(先天圖)4)에 나오는 12피괘(辟卦)5)의 대상(大象)6)을 가지고 배우는 사람들에게 때에 따른 공부 방법을 보여 주었으며, 그 가운데 핵심적인 부분에서는 퇴도의 설을 간략히 인용하고 또한 스승의 설을 끌어와 절충하였고 다른 주장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감히 여러 주장들 가운데서 취사선택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그저 한 가지로 통일시키고자 하는 뜻으로 동지들과 더불어 힘쓸 뿐이다.


광무(光武) 계묘년7) 겨울 11월 일

김해(金海) 허유(許愈)8)가 서문을 쓰다


1) 스승: 저자 후산(后山) 허유(許愈)의 스승인 이진상(李震相; 1818~1886)을 말한다. 이진상의 자(字)는 여뢰(汝雷)이고, 호는 한주(寒洲)이다. 한주 문하에서는 허유(許愈, 1833~1904) 외에 면우(俛宇) 곽종석(郭鍾錫; 1846~1919)과 대계(大溪) 이승희(李承熙; 1847~1916)·홍와(弘窩) 이두훈(李斗勳; 1856~1918)·자동(紫東) 이정모(李正模; 1848~1915)·교우(膠宇) 윤주하(尹冑夏; 1846~1906)·물천(勿川) 김진우(金鎭祐; 1845~?)·회당(晦堂) 장석영(張錫英; 1851~1929) 등 걸출한 학자들이 배출되었다.


2) 심통성정에 관한 두 도(圖): 《성학십도》 가운데 제6도인 〈심통성정도〉에 포함된 중도(中圖)·하도(下圖)를 말한다. 본래 〈심통성정도〉는 중국의 정복심(程復心)이 그렸는데, 퇴계가 이를 수용하여 상도(上圖)로 하고, 직접 중·하도를 그려 추가하였던 것이다.


3) 후산(后山)의 재실: 허유(許愈)는 만년에 자신이 살던 산 아래에 작은 집을 마련하여 편액을 후산서당(后山書堂)이라고 달았는데, 이로 인하여 배우는 사람들이 후산(后山) 선생으로 불렀다. 행장 참조.


4) 선천도(先天圖): 송(宋)의 소옹(邵雍)이 진단(陳摶)의 학설을 받아들여 작성한 괘위도(卦位圖)인 선천팔괘도(先天八卦圖)의 줄임말이다. 이 도에는 건(乾; 天)은 남(南), 곤(坤; 地)은 북(北), 리(离; 火)는 동(東), 감(坎; 水)은 서(西), 진(震; 雷)는 동복(東北), 태(兌; 澤)는 동남(東南), 손(巽; 風)은 서남(西南), 간(艮; 山)은 서북(西北)에 배당되어 있다.


5) 12피괘(辟卦): 복(復), 임(臨), 태(泰), 대장(大壯), 쾌(夬), 건(乾), 구(姤), 둔(遯), 비(否), 관(觀), 박(剝), 곤(坤)괘를 가리킨다.


6) 대상(大象): 역(易)에 있어서 한 괘(卦)의 전체 상(象)에 대해 설명한 말.


7) 광무(光武) 계묘년: 대한제국 고종(高宗) 7년으로 서기로는 1903년이다.


8) 허유(許愈) : 자(字)는 퇴이(退而), 호는 후산(后山), 본관은 김해(金海)로 성학십도부록(聖學十圖附錄)의 저자이다. 순조(純祖) 33년(1833)에 경상도 삼가(三嘉)에서 태어나서 고종(高宗) 9년(1904)에 죽었다. (행장) 38세가 되던 경오(1870)년 봄에 신안(新安)으로 한주(寒洲) 이진상(李震相)을 찾아 뵙고 그 문하에 입문하였다. 허유는 자신의 학문을 주자―퇴계―한주를 계승한다고 생각하면서, 한편으로 우리 나라 학자들이 당파심에 사로잡혀 의리를 해쳤음을 개탄하고, 남명(南冥)의 문집을 교정하는데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그는 성학십도부록을 통하여 옛 현인들이 발명하지 못하였던 심법(心法)을 발명하고자 하였으나 늙도록 완성시키지 못하고 있음을 한스럽게 여겼는데, 임종을 앞두고 스승의 아들이자 동문인 한계(韓溪) 이승희(李承熙)에게 편지를 보내 이 책을 완성하여 간행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 그러나 이승희는 국외로 망명함으로써 그 일을 완수하지 못하였고, 원고는 다시 중재(重齋) 김황(金榥)의 손으로 넘어가서 정리 완성되었다.  

 

聖學十圖附錄序 


愚聞之師, 吾退陶李先生平生用功之實, 備載於聖學十圖, 而闡道理之頭腦, 揭聖功之標準, 求端於太極理一之原, 用力於地頭時分之間, 就其中, 心統性情兩圖, 橫竪普說, 分合俱勘, 有志於學者, 苟能玩味於斯則, 將何理之不可窮乎. 又曰, 世之學孔子者, 固當自朱子始, 而學朱子, 尤當自退陶始, 不學退陶而學孔朱之道者, 不由戶而入室者也. 愚嘗佩服乎斯言, 而因循頹墮, 不知不覺而耄已及之. 今年冬, 病臥后山之室, 與一二學者, 依心經附註例, 附錄若干條於圖說之後, 名之曰聖學十圖附錄, 非敢求多於圖說之外也, 竊要窺見其大意之如何耳. 太極圖․西銘圖, 只用圖解本說, 小․大學圖, 本書至矣盡矣, 無容更贅. 白鹿洞規圖, 錄本文出處, 心統性情圖, 畧論心性情本義, 而並及於中下圖渾淪分開之意, 發明互發之旨. 仁說圖, 取程朱論仁大意, 以附之. 心學圖, 歷錄本文出處. 敬齋箴圖, 先儒敬齋箴集說詳之, 不必更加收錄. 夙興夜寐箴圖, 用先天圖十二辟卦大象, 以示學者時分工夫, 其中肯綮處, 畧用退陶說, 又引師說以折衷之, 餘無及焉. 非敢取舍於羣言, 竊自附於致一之意, 以與同志勉焉云爾. 光武癸卯冬十一月日, 金海許愈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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