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학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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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 태극도


○이것은 이른바 ‘무극(無極)이면서 태극(太極)이다.[無極而太極]’는 것이니, 음양(陰陽)에 나아가서 그 본체(本體)가 음양과 썪이지 않음을 가리켜서 말한 것일 뿐이다.

■이것은 ○이 동(動)하여 양(陽)이 되고 정(靜)하여 음(陰)이 된 것이다. 그림 가운데의 ○은 그 본체(本體)이고, ■은 ■의 뿌리이고, ■은 ■의 뿌리이다.

■이것은 양(陽)이 변(變)하고 음(陰)이 합(合)하여 수(水)․화(火)․목(木)․금(金)․토(土)를 낳은 것이다.

■이것은 무극(無極)과 음양(陰陽)․오행(五行)이 묘하게 합하여 간격이 없는 것이다.

‘○乾男坤女’는 기화(氣化)로써 말한 것이니, 각각 그 성(性)을 하나씩 갖추게 됨에 남녀(男女)가 하나의 태극(太極)인 것이다.

‘○萬物化生’은 형화(形化)로써 말한 것이니, 각각 그 성(性)을 하나씩 갖추게 됨에 만물이 하나의 태극인 것이다.

〈태극도설〉



무극(無極)이면서 태극(太極)이다. 태극이 동(動)하여 양(陽)을 낳는데, 동(動)이 극에 달하면 정(靜)해지고, 정(靜)하여 음(陰)을 낳는데, 정(靜)이 극에 달하면 다시 동(動)한다. 한 번 동(動)하고 한 번 정(靜)한 것이 서로 그 뿌리가 되어 음(陰)으로 나뉘고 양(陽)으로 나뉨에 양의(兩儀)가 성립되었다. 양(陽)이 변(變)하고 음(陰)이 합(合)하여 수(水)․화(火)․목(木)․금(金)․토(土)를 낳으니, 이 오행(五行)의 기운이 순조롭게 퍼져서 사시(四時)가 운행되는 것이다. 오행(五行)은 하나의 음양(陰陽)이고, 음양은 하나의 태극(太極)이고, 태극은 본래 무극(無極)이니, 오행이 생겨남에 각각 그 성(性)을 하나씩 갖추게 되었다. 무극(無極)의 진리(眞理)와 음양(陰陽)․오행(五行)의 정기(精氣)가 묘(妙)하게 합하여 엉기어서 건도(乾道)는 남기(男氣)을 이루고 곤도(坤道)는 여기(女氣)를 이룬다. 이 두 기운이 교합(交合)하고 감응(感應)하여 만물을 화생(化生)하니, 만물이 생(生)하고 생(生)하여 변화가 끝이 없는 것이다.

오직 사람만이 그 빼어난 기운을 얻어 가장 신령스러우니, 형체가 생기면 정신(精神)이 지각을 발하게 되고, 오성(五性: 仁義禮智信)이 외물(外物)에 감동(感動)하여 선(善)과 악(惡)이 나뉘며 만사(萬事)가 나오는 것이다. 성인(聖人)은 중(中)․정(正)․인(仁)․의(義)로써 이를 안정시키되 정(靜)을 주로 하여 사람의 준칙(準則)을 세우셨다. 그러므로 성인은 천지와 더불어 그 덕이 합치하며, 일월(日月)과 더불어 밝음이 합치하며, 사시(四時)와 더불어 질서가 합치하며, 귀신과 더불어 길흉이 합치한다. 군자는 이를 닦기 때문에 길(吉)하고, 소인은 이를 어기기 때문에 흉(凶)하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하늘의 도를 음(陰)과 양(陽)이라 하고, 땅의 도를 유(柔)와 강(剛)이라 하고, 사람의 도를 인(仁)과 의(義)라 한다.”1) 하였고, 또 말하기를, “처음을 근원하여 끝을 돌이켜본다. 그러므로 사생(死生)의 설(說)을 아는 것이다.”2) 하였으니, 위대하도다. 주역이여! 이렇게도 지극하구나.


주자(朱子)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태극도설(太極圖說)》은 먼저 음양(陰陽) 변화(變化)의 근원을 말하였고, 그 뒤는 곧 사람이 품수(稟受)한 것으로 이를 밝혔다. ‘오직 사람만이 그 빼어난 기운을 얻어 가장 신령스럽다[惟人也得其秀而最靈]’는 것은 순수(純粹)하고 지선(至善)한 성품이니, 이는 이른바 태극(太極)이라는 것이고, ‘형체가 생기면 정신(精神)이 지각을 발한다[形生神發]’는 것은 곧 ‘양(陽)이 동(動)하고 음(陰)이 정(靜)함[陽動陰靜]’의 작용이고, ‘오성(五性)이 외물(外物)에 감동(感動)한다[五性感動]’는 것은 ‘양(陽)이 변(變)하고 음(陰)이 합(合)하여 수(水)․화(火)․목(木)․금(金)․토(土)를 낳음’[陽變陰合而生水火木金土]의 성질(性質)이고, ‘선(善)과 악(惡)이 나뉨[善惡分]’은 곧 ‘남기(男氣)을 이루고 여기(女氣)를 이룬다’는 것의 현상이고, ‘만사(萬事)가 나옴[萬事出]’은 ‘만물이 화생(化生)한다’는 것의 현상이다. ‘성인(聖人)은 중(中)․정(正)․인(仁)․의(義)로써 이를 안정시키되 정(靜)을 주로 하여 사람의 준칙(準則)을 세우셨다’는 것은 성인이 또 태극의 전체(全體)을 얻었기 때문에 천지(天地)와 더불어 혼합(混合)하여 간격(間隔)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래의 글에서 천지(天地)․일월(日月)․사시(四時)․귀신(鬼神) 네 가지와 합치하지 않음이 없다고 말한 것이다.

또 말하였다.

성인(聖人)은 수양하지 않더라도 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이르지 못하여 수양하는 것이 군자(君子)가 길(吉)하게 되는 까닭이고, 이를 알지 못하여 어기는 것이 소인(小人)이 흉(凶)하게 되는 까닭이니, 수양하고 어기는 것은 또한 경(敬)과 사(肆)의 사이에 달렸을 뿐이다. 경(敬)하면 욕심이 적어져서 이치가 밝아지니, 적게 하고 또 적게 하여 욕심이 없는 데에 이르면 정시(靜時)에는 허명(虛明)하고 동시(動時)에는 정직하게 되므로, 성인(聖人)을 배움을 통해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위는 염계(濂溪) 주자(周子)가 스스로 태극도(太極圖)를 그리고 도설(圖說)을 아울러 지은 것이다. 평암(平巖) 섭씨(葉氏)가 이르기를, “이 태극도는 《주역》 〈계사전(繫辭傳)〉의 ‘역(易)에 태극(太極)이 있으니, 이것이 양의(兩儀)를 낳고, 양의가 사상(四象)을 낳는다.’는 뜻에 나아가 이를 미루어 밝힌 것이다. 다만 역(易)은 괘효(卦爻)로써 말하였고, 도설은 조화(造化)로써 말한 것이다.” 하였다. 주자(朱子)가 이르기를, “이것은 도리(道理)의 대두뇌처(大頭腦處)이다.” 하였고, 또 “백세(百世)의 도술(道術) 연원(淵源)이다.” 하였다. 지금 《성학십도(聖學十圖)》에서 이 〈태극도〉를 첫머리에 게재(揭載)한 것은 또한 《근사록(近思錄)》에서 이 〈태극도설〉을 첫머리로 삼은 뜻과 같은 것이다. 대개 성인(聖人)을 배우려는 사람은 단서(端緖)를 여기로부터 시작해야 하고, 《소학(小學)》․《대학(大學)》의 유(類)에서 힘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공을 거두는 날에 미쳐서 한 근원을 소극(遡極)해보면 이른바 “천하의 이치를 궁구하고 인물(人物)의 성품을 극진히 하여 천도에 합한다.3)”는 것이고, 이른바 “신명을 궁구하여 조화를 아는 것이 덕의 성대함이다.4)”는 것이다.


부록


(주자도해)


○이것은 이른바 ‘무극(無極)이면서 태극(太極)이다.’는 것이니, 동(動)하여 양(陽)이 되고 정(靜)하여 음(陰)이 되게 하는 본체(本體)이다. 그러나 음양에서 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음양(陰陽)에 나아가 그 본체(本體)가 음양과 썪이지 않음을 가리켜서 말한 것일 뿐이다.

■이것은 ○이 동(動)하여 양(陽)이 되고 정(靜)하여 음(陰)이 된 것이다. 그림 가운데의 ○은 그 본체(本體)이고, ■은 양의 동(動)이니, ○의 용(用)이 시행되는 까닭이고, ■은 음의 정(靜)이니, ○의 체(體)가 성립되는 까닭이다. ■은 ■의 뿌리이고, ■은 ■의 뿌리이다.

■이것은 양(陽)이 변(變)하고 음(陰)이 합(合)하여 수(水)․화(火)․목(木)․금(金)․토(土)를 낳은 것이다. ■은 양(陽)의 변함이고, ■은 음(陰)의 합함이다. ■은 음(陰)이 성(盛)하기 때문에 오른쪽에 거(居)하고, ■는 양(陽)이 성하기 때문에 왼쪽에 거하고, ■는 양이 어리기 때문에 화(火)의 다음에 차례하였고, ■은 음이 어리기 때문에 수(水)의 다음에 차례하였고, ■는 충기(冲氣)이기 때문에 중앙에 거한다. 수(水)와 화(火)의 ■가 위에 교차로 연결된 것은, 음은 양을 뿌리로 삼고 양은 음을 뿌리로 삼기 때문이다. 수(水)에서 목(木), 목(木)에서 화(火), 화(火)에서 토(土), 토(土)에서 금(金), 금(金)에서 다시 수(水)가 되는 것이 마치 둥근 옥처럼 끝없이 이루어져서, 오기(五氣)가 펼쳐지고 사시(四時)가 운행되는 것이다.

○■■ ‘오행(五行)은 하나의 음양(陰陽)이다’는 것은 ‘다섯 가지 다름’과 ‘두 가지 실상’은 서로 남거나 모자람이 없다는 것이고, ‘음양은 하나의 태극이다’는 것은 정추(精粗)와 본말(本末)에 피차간의 차이가 없다는 것이고, ‘태극은 본래 무극이다’는 것은 ‘하늘의 일은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다’는 것이고, ‘오행이 생겨남에 각각 그 성(性)을 하나씩 갖추게 되었다’는 것은 기(氣)가 틀리고 질(質)이 다르지만 각각 그 ○[太極]을 갖추고 있어 다른 데에서 빌려옴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무극(無極)과 음양(陰陽)․오행(五行)이 묘하게 합하여 간격이 없는 것이다. ‘○乾男坤女’는 기화(氣化)로써 말한 것이니, 각각 그 성(性)을 하나씩 갖추게 됨에 남녀(男女)가 하나의 태극(太極)인 것이다. ‘○萬物化生’은 형화(形化)로써 말한 것이니, 각각 그 성(性)을 하나씩 갖추게 됨에 만물이 하나의 태극인 것이다. 이상은 〈태극도설〉을 인용하여 〈태극도〉의 체(體)를 분석하였고, 이하는 〈태극도〉를 근거하여 〈태극도설〉의 뜻을 미루어 극진히 하였다.

‘오직 사람만이 그 빼어난 기운을 얻어 가장 신령스럽다’고 하였은  즉, 이른바 ‘人○[人極]’이라는 것이 이에 비로소 갖추어졌다. 그러나 형체는 ■의 작위(作爲)이고, 정신은 ■의 발현이고, 오성(五性)은 ■의 덕(德)이고, 선악(善惡)은 남녀의 구분이고, 만사(萬事)는 만물의 현상이니, 이것이 천하의 움직임이 분륜(紛綸)하고 교착(交錯)하게 되는 까닭이고, 길흉(吉凶)과 회린(悔吝)이 생기게 되는 연유이다.

오직 성인은 또 빼어난 정기(精氣)를 얻어서 ○[太極]의 체용(體用)을 온전하게 할 수 있는 분이다. 이런 까닭으로 한 번 동(動)하고 한 번 정(靜)함이 각각 그 지극한 데에 이르러서 천하의 고상(故常)이 항상 적연부동(寂然不動)한 가운데에서 감통(感通)하는 것이다. 대개 중(中)․인(仁)․감(感)은 이른바 ■인 것이니, ○의 용(用)이 시행되는 것이고, 정(正)․의(義)․적(寂)은 이른바 ■인 것이니, ○의 체(體)가 성립되는 것이다. 중(中)․정(正)․인(仁)․의(義)가 혼연(渾然)히 전체(全體)를 이루되 고요함이 항상 주장이 된 즉, ‘人○[人極]’이 이에 성립되어 ○■■․천지(天地)․일월(日月)․사시(四時)․귀신(鬼神)도 어길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군자(君子)의 계신공구(戒愼恐懼)는 이를 닦아서 길하게 되는 까닭이고, 소인(小人)의 방벽사치(放辟邪侈)는 이를 어겨서 흉하게 되는 까닭이다.

천지인(天地人)의 도는 각각 ○[太極]을 하나씩 갖추고 있는 것이니, 양(陽)․강(剛)․인(仁)은 이른바 ■로서, 물(物)의 처음이고, 음(陰)․유(柔)․의(義)는 이른바 ■로서, 물(物)의 끝이다. 이것이 이른바 역(易)이라는 것이고, 삼극(三極)의 도가 성립되는 것이니, 실상은 곧 하나의 ○(太極)이다. 그러므로 ‘역(易)에 태극(太極)이 있다’는 것은 ■을 이르는 것이다.

선사(先師) 한주(寒洲)5) 이씨(李氏)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제일권(第一圈)의 ○은 그 체(體)가 밖은 둥글고 가운데는 비었으니, 둥근 것은 이 이(理)의 방소(方所)가 없음을 형상한 것이고, 빈 것은 이 이(理)의 형체가 없음을 형상한 것이다. 제이권(第二圈)은 양동(陽動)과 음정(陰靜)으로 나누어 적었는데, 도설(圖說)에서는 ‘태극이 동(動)하여 양을 낳고 정(靜)하여 음을 낳는다’ 하였고, 권해(圈解)에서는, ■을 합하여 설명하기를, ‘태극(太極)이 동(動)하여 양(陽)이 되고 정(靜)하여 음(陰)이 된 것이다.’ 하였고, ■■을 나누어 설명하기를, ‘양(陽)의 동(動)이고, 음(陰)의 정(靜)이다.’ 하였으니, 나누고 합하여 설명하는 사이에 주장한 뜻이 절로 각별하다. 음양(陰陽)은 ‘極○’이 가운데 있고, 오행(五行)은 ‘極○’이 밖에 드러난 것이니, 이는 대개 음양이 상(象)을 이룸에 그 이(理)의 본체가 가운데에 충막(冲漠)하기 때문에 ‘極○’이 가운데 있는 것이고, 오행(五行)이 질(質)을 이룸에 그 이(理)의 작용이 밖으로 발현하기 때문에 ‘極○’이 밖에 드러나는 것이다.

또 말하였다.

‘다섯 가지 다름과 두 가지 실상은 서로 남거나 모자람이 없다’는 것은 기(氣이)와 질(質)이 서로 운행되는 것이고, ‘정추(精粗)와 본말(本末)에 피차간의 차이가 없다’는 것은 이(理)와 기(氣)가 간격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섯 가지 다름과 두 가지 실상’은 질(質)을 위주로 말한 것이고, 정추본말(精粗本末)은 기(氣)를 위주로 말한 것이다.


주자해설(朱子說解)


무극(無極)이면서 태극(太極)이다 하늘의 일은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으나 실로 조화(造化)의 추뉴(樞紐)이고 품휘(品彙)의 근저(根柢)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무극이면서 태극이다.”한 것이니, 태극의 밖에 다시 무극이 있는 것은 아니다.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극(極)이 그 이름을 얻게 된 까닭을 규명해보면 대개 추뉴(樞紐)의 뜻을 취한 것이다. 성인(聖人)이 이를 태극이라 한 것은 저 천지 만물의 근원을 가리킨 것이다. 주자(周子)가 이를 인하여 또 무극(無極)이라고 한 것은 저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는 묘(妙)를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하였다.

‘무극이면서 태극이다’는 것은 바로 ‘형상은 없고 도리만 있음’을 이른다.

황극(皇極)․민극(民極)․옥극(屋極) 등이 방소(方所)와 형상(形象)이 있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니고, 다만 이 이(理)의 지극함만 있을 뿐이다.

면재(勉齋) 황씨(黃氏)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극(極)의 뜻은 비록 지(至)로 훈석하지만 실상은 방소(方所)와 형상(形象)이 있음으로써 이름을 얻게 된 것이니, 예컨대 북극(北極)․황극(皇極)․이극(爾極)․민극(民極) 등의 뜻은 모두 여기에서 취한 것이다. 주자(周子)가 이러한 점을 알았으나 사람들이 방소와 형상에 막혀서 성인(聖人)이 비유를 취한 뜻을 잃게 될까 염려하였기 때문에 말하기를, ‘무극이면서 태극이다’고 한 것이다. 이는 대개 말로 표현하는 방법에 있어, ‘형체가 없으면서 지극한 형체이다.’‘방소(方所)가 없으면서 큰 방소이다.’고 말하는 것과 같으니, 사람들로 하여금 이 극(極)이 있기 때문에 이를 태극(太極)이라 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하려는 것이고, 또한 특별히 극(極)에 의탁하여 이치를 밝힌 것일 뿐이다.

또 말하였다.

‘태극은 본래 무극이다’는 것은 대개 이를 극(極)이라 하면 방소(方所)와 형상(形象)이 있게 되기 때문에 또 되돌려서 말하기를 무극(無極)이라 한 것인데, 뒷날의 읽는 사람들이 자의(字義)에 밝지 못하여 중(中)으로써 극(極)을 해석하여 이미 본 뜻을 잃게 되었다. 또 극자(極字)는 단지 비유만 취한 것인 줄 모르고 성급하게 이(理)로써 말하기 때문에 (이렇게 되면) 이(理)가 없게 되어 불가할 뿐 아니라, 주자(周子)의 무극(無極)이라는 말에도 통하기 어려운 바가 있는 것이다. 또한 태극이 지극한 이치라고 한다면 그 말이 이미 충분하거늘, 무극(無極)을 더 보태는 것은 참으로 군더더기 말이 되지 않겠는가. 상산(象山)이 무극을 논한 글을 보건대, 이러한 점을 살피지 못한 채 문득 거친 변론을 함부로 늘어놓았기에 가만히 탄식하고 위와 같이 그 뜻을 밝힌 것이다.

이자(李子)6)가 기명언(奇明彦)7)에게 답한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무극(無極)이면서 태극(太極)이다.’는 이 일단(一段)에 대한 해석은 근래에 또한 나의 견해가 잘못임을 알게 되었소. 이전에 제유(諸儒)의 설을 두루 참고하려 하지 않고 단지 나 자신의 견해에만 따라 극(極) 자를 바로 이(理) 자로 보고서 망령되이 ‘무극을 말할 때에는 다만 형체가 없음을 이를 뿐이지, 어찌 이(理)가 없음을 이르겠는가?’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한결같이 제군(諸君)의 해석을 그릇된다고 여겼소. 일찍이 베껴서 보내준 오초려(吳草廬)의 설을 얻고서도 또한 크게 마음을 비우고 자세히 보지 못하였더니, 그 뒤 여러 번 그대 및 다른 붕우(朋友)들의 가르침을 받고서야 비로소 선유(先儒)들의 설을 차례로 검토해보았는데, 그 중에 황면재(黃勉齋)8)의 설이 가장 상세하고 극진하였소.

또 이공호(李公浩)9)에게 답한 편지에서 말하기를, “위의 극(極)은 형체가 있는 극(極)을 가차(假借)한 것이고, 아래의 극은 형체가 없는 이(理)를 가리켜 이름한 것이다.”하였다.

선사(先師)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극(極)을 지(至)로 해석하면 무극에 장애가 생기고, 궁(窮)으로 해석하면 태극에 장애가 생긴다. 가만히 생각건대, 옛날에는 극(極) 자를 형(形)의 뜻으로 사용한 경우가 많으니, 예컨대 주자(朱子)가 인용한 옥극(屋極)․북극(北極)과 북계(北溪)가 이른바 근극(根極)․추극(樞極)과 같은 것이 이것이다. 공자는 형체가 있는 것을 빌려서 형체가 없는 것을 설명하여 이를 태극이라 하였고, 주자(周子)는 사람들이 살피지 못하여 하나의 물건으로 보게 될까 염려하였기 때문에 문득 무극(無極)이라는 두 글자를 더하였으니, 그 뜻은 ‘극(極)이 없으면서 심한 극(極)이다.’고 하는 것과 같다. 이 극(極)은 면재(勉齋)가 이른바 ‘형체가 없으면서 지극한 형체이고, 방소(方所)가 없으면서 큰 방소이다’고 한 것과 같다. 어떤 사람이 이르기를, “이와 같다면 태극이 도리어 형상(形象)과 방소(方所)에 관섭(關涉)될 것이다.” 하였다. 말하자면, 태극이 비록 형상이 없으나 형상이 있는 모든 물건이 이 태극에 근원하지 않음이 없고, 태극이 비록 방소가 없으나 방소가 있는 모든 물건이 여기에 추뉴(樞紐)되지 않음이 없으니, 지극한 형체는 원래 형체가 없는 것이고, 큰 방소는 원래 방소가 없는 것이고, 태극이라는 것은 본래 극이 없는 것이다.


태극이 동(動)하여 ~ 성립되는 것이다 태극에 동정(動靜)이 있는 것은 천명(天命)이 유행(流行)하는 것이니, 이른바 ‘한 번 음(陰)하게 하고 한 번 양(陽)하게 하는 것을 도(道)라고 한다.10)’는 것이다. 성(誠)은 성인(聖人)의 근본이고 물(物)의 시종(始終)으로 천명(天命)의 도(道)이다. 그 동(動)은 성(誠)이 통한 것이니, ‘계승하는 것이 선(善)이다.’는 것으로, 만물이 여기에 힘입어 시작되고, 그 정(靜)은 성(誠)이 돌아오는 것이니, ‘갖추어 있는 것이 성(性)이다.’는 것으로, 만물이 각각 그 성명(性命)을 바르게 하는 것이다. ‘동(動)이 극에 달하면 정(靜)하고, 정(靜)이 극에 달하면 다시 동(動)한다. 한 번 동(動)하고 한 번 정(靜)한 것이 서로 그 뿌리가 된다’는 것은 명(命)이 유행(流行)하여 그치지 않는 것이고, ‘동(動)하여 양(陽)을 낳고 정(靜)하여 음(陰)을 낳는데, 음(陰)으로 나뉘고 양(陽)으로 나뉨에 양의(兩儀)가 성립된다.’는 것은 나뉘어 짐이 일정하여 옮겨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개 태극은 본연(本然)의 묘(妙)이고, 동정(動靜)은 소승(所乘)의 기(機)이니, 태극은 형이상(形而上)의 도(道)이고, 음양은 형이하(形而下)의 기(器)이다. 이러한 까닭으로 그 드러난 현상으로써 본다면 동(動)과 정(靜)은 때가 같지 않고 음(陰)과 양(陽)은 지위가 같지 않으나 태극이 그 속에 들어 있지 않음이 없고, 그 은미한 본체로써 본다면 충막무짐(冲漠無朕)하지만 동정음양(動靜陰陽)의 이(理)가 이미 그 가운데 모두 갖추어져 있는 것이다. 비록 그렇지만 이전을 미루어보아도 〈동정과 음양이〉 처음 합하던 것을 볼 수 없고, 그 뒤를 당겨보아도 끝에가서 분리됨을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자(程子)가 말하기를, “동과 정은 단서가 없고, 음과 양은 시작이 없으니, 도를 아는 사람이 아니면 누가 알 수 있겠는가.”라고 한 것이다.

주자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동(動)하여 양(陽)을 낳고 정(靜)하여 음(陰)을 낳는다’고 하였는데, 동(動)은 곧 태극의 동(動)이고 정(靜)은 곧 태극의 정(靜)이다. ‘동(動)한 뒤에 양(陽)을 낳고 정(靜)한 뒤에 음(陰)을 낳는다.’는 것은 이 음양(陰陽)의 기(氣)를 낳는 것이고, ‘동(動)하여 낳고 정(靜)하여 낳는다.’고 하였으니, 곧 점차적인 것이 있다.

문(問): 태극은 이(理)이니, 이(理)가 어떻게 동(動)하고 정(靜)할 수 있습니까? 형체가 있어야 동정(動靜)이 있는 법입니다. 태극은 형체가 없으니, 동정(動靜)을 갖고서 말할 수 없을 듯합니다.

주자(朱子)의 답(答): 이(理)에 동정(動靜)이 있기 때문에 기(氣)에 동정(動靜)이 있는 것이다. 만약 이(理)에 동정이 없다면 기(氣)가 무엇을 통하여 동정할 수 있겠는가?

정(靜)은 성(性)이 성립하는 까닭이고, 동(動)은 명(命)이 운행하는 까닭이다. 그러나 그 실상은 정(靜) 또한 동(動)의 휴식일 뿐이기 때문에 한 번 동(動)하고 한 번 정(靜)하는 것은 모두 명(命)의 운행이고, 동정을 운행시키는 것은 바로 성(性)의 진리(眞理)이다. 그러므로 《중용(中庸)》에서 “하늘이 명(命)한 것을 성(性)이라 한다.” 하였다.

무극(無極)이라는 것은 당초에 원래 일물(一物)도 없고 단지 이(理)만 있음을 말할 뿐이다. 이 도리(道理)가 곧 동(動)하여 양(陽)을 낳고 정(靜)하여 음(陰)을 낳는 것이다.

정자(程子)가 말하기를, “동정(動靜)은 음양(陰陽)의 근본이다.” 하였는데,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이것은 〈태극도설〉의 뜻을 전적으로 사용한 것이다.” 하였다.

면재(勉齋) 황씨(黃氏)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태극은 동정(動靜)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동정(動靜)하는 것은 음양이다. 태극이 동기(動機)를 타면 곧 동(動)하고, 정기(靜機)를 타면 곧 정(靜)하는 것이다. 저 태극은 스스로 동정(動靜)할 수 없는데다가 이미 음양이 되었으니, 어떻게 또 음(陰)을 낳고 양(陽)을 낳는다고 할 수 있겠는가? 말하건대, ‘음을 낳고 양을 낳는다.’는 것은 또한 ‘양이 생기고 음이 생긴다.’는 것과 같다. 태극은 음양을 따라 동정(動靜)하고, 음양은 동정에서 그 생김[生]을 볼 수 있으니, 태극이 저 곳에서 동(動)하고 양(陽)이 이 곳에서 나는 것은 아니다. 비유컨대, 개미[蟻]가 맷돌 위에 있는 것과 같다. 맷돌이 움직이면 개미는 이를 따라 움직이고, 맷돌이 그치면 개미는 이를 따라 그쳐서 개미는 맷돌을 따라 구르는 것이니, 개미의 동정(動靜)을 통하여 맷돌의 동정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자(李子)가 말하기를, “면재(勉齋)의 설은 반드시 이와 같지는 않을 것이다. 어째서인가? 이(理)는 절로 용(用)이 갖고 있기 때문에 자연히 양(陽)을 낳고 음(陰)을 낳는 것이다.” 하였다.

선사(先師)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면재(勉齋)의 이 설은 주자(周子)의 본설(本說)과는 얼음과 숯처럼 서로 어긋날 뿐만이 아니다. 주자(周子)가 ‘태극이 동(動)하여 양(陽)을 낳는다’ 하였는데, 지금 동정(動靜)을 음양(陰陽)으로 여긴다면 ‘동(動)하여 양(陽)을 낳는다’는 것이 도리어 ‘양(陽)이 되어 양(陽)이 생긴다’는 것이 되고, ‘정(靜)하여 음(陰)을 낳는다’는 것이 도리어 ‘음(陰)이 되어 음(陰)이 생긴다’는 것이 되니, 이것이 과연 무슨 이치란 말인가? 개미로써 태극에 비유하고 맷돌로써 음양에 비유한 것어서 더욱 ‘이(理)를 국한(局限)하고 기(氣)를 통하게 함[局理通氣]’의 심함을 볼 수 있고, ‘개미의 동정(動靜)을 통하여 맷돌의 동정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도리어 태극의 동정을 통하여 음양의 동정을 볼 수 있는 것과 흡사하니, 절로 서로 모순 됨이 심하다. 면재(勉齋)가 ‘동(動) 중에 정(靜)이 있고 정(靜) 중에 동(動)이 있는 체(體)’와 ‘동(動)하면서 능히 정(靜)할 수 있고 정(靜)하면서 능히 동(動)할 수 있는 용(用)’을 논한 곳은 큰 근원과 깊이 합치하였으나 도리어 이러한 설을 두게 되었으니, 아마 하나의 이치를 확정하지 못하여 이러한 것이 아니겠는가!

임천(臨川) 오씨(吳氏)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태극은 동정(動靜)이 없으니, 동정(動靜)하는 것은 기기(氣機)이다. 기기(氣機)가 한 번 동(動)하면 태극 또한 동하고, 기기(氣機)가 한 번 정(靜)하면 태극 또한 정하는 것이다.

또 말하였다.

태극은 본연(本然)의 묘(妙)이고, 동정(動靜)의 소승(所乘)의 기(機)이다. 기(機)는 노아(弩牙)와 같아서 기(機)가 동(動)하면 현(弦)이 발(發)하고, 기(機)가 정(靜)하면 현(弦)이 발(發)하지 않으며, 기(氣)가 동(動)하면 태극 또한 동하고, 기(氣) 정(靜)하면 태극 또한 정하니, 태극이 이 기(氣)를 타는 것은 노(弩)의 현(弦)이 기(機)를 타는 것과 같다.

선사(先師)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선가(禪家)에서는 이(理)를 장애로 여겨서 이(理)가 없는 경지를 구하려고 부득이 ‘공(空)하여 한 법(法)도 없는[空無一法]’ 곳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육구연(陸九淵)11)은 선가(禪家)의 면목(面目)을 바꾸어 ‘음양(陰陽)이 곧 도(道)이다.’ ‘태극과 음양은 도(道)와 기(器)로 나눌 수 없다.’ 하였고, 왕수인(王守仁)12)은 진음(眞陰)․진양(眞陽)을 천리(天理)라 하였고, 나정암(羅整菴)13)은 또 이(理)와 기(氣)를 하나의 물건으로 여겼다. 선가(禪家)의 종지(宗旨)가 본래 절로 이와 같은 것이고, 오징(吳澄)14) 또한 선가에 빠짐이 심한 자이니, 깊이 논변할 것이 못된다.

문(問): ‘한 번 음(陰)하게 하고 한 번 양(陽)하게 하는 것을 도(道)라고 한다.’고 할 때의 도(道)가 바로 태극입니까.

주자(朱子)의 답(答): 음양은 단지 음양이고, 도(道)는 태극이니, 이는 한 번 음(陰)하게 하고 한 번 양(陽)하게 하는 것이다.

성(誠)은 사물의 종시(終始)이니, 사물의 실리(實理)가 시종(始終) 끊어짐이 없는 것이다. 개벽(開闢)에서부터 인물(人物)이 다 없어질 때까지 단지 이와 같을 뿐이다. 사람의 마음에 만약 성실(誠實)하여 거짓이 없으면 머리에서 발끝까지 이 이(理)가 아님이 없으니, 만일 하나라도 끊어지는 곳이 있다면 곧 성(誠)이 아니다. 무릇 한 물건이 있으면 그것이 이루어질 때에 반드시 시작이 있고 그것이 부수어질 때에 반드시 끝이 있는 것이니, 그 시작되는 까닭은 실리(實理)가 이르러서 유(有)로 향하기 때문이고, 그 끝나게 되는 까닭은 실리(實理)가 다하여 무(無)로 향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성(誠)이 사물의 종시(終始)가 되는 까닭이다.

원형(元亨)은 성(誠)이 통하는 것이니, 동(動)에 해당하고, 이정(利貞)은 성(誠)이 회복되는 것이니, 정(靜)에 해당한다. 원(元)은 동(動)의 단서이니, 정(靜)에 근본하고, 정(貞)은 정(靜)의 바탕이니, 동(動)에 드러난다. 한 번 동(動)하고 한 번 정(靜)하는 것이 순환하여 끝이 없므로, 정(貞)이라는 것은 만물이 끝을 이루고 시작을 이루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비록 동(動)하지 않을 수 없으나 인극(人極)을 세우는 것은 반드시 정(靜)을 주로 하는 것이다. 오직 정(靜)을 주로 하면 그 동(動)에 드러난 것이 절도에 맞지 않음이 없어 그 본연의 정(靜)을 잃지 않는 것이다. ‘계승하는 것이 선(善)이다.’는 것은 동(動)한 곳이고, ‘갖추어 있는 것이 성(性)이다.’는 것은 정(靜)한 곳이다. ‘계승하는 것이 선(善)이다.’는 것은 유행(流行)하여 나온 것이고, ‘갖추어 있는 것이 성(性)이다.’는 것은 각각 스스로 사물을 이룬 것이다. ‘계승하는 것이 선(善)이다.’는 것은 곧 원형(元亨)이고, ‘갖추어 있는 것이 성(性)이다.’는 것은 곧 이정(利貞)이니, ‘갖추어 있는 것이 성(性)이다.’는 것에 이르면 각각 스스로 사물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문(問): 태극해(太極解)에서 어찌 동(動)을 먼저 하고 정(靜)을 뒤로 하였으며, 체(體)를 먼저 하고 용(用)을 뒤로 하였으며, 감(感)을 먼저 하고 적(寂)을 뒤로 하였습니까?

답(答): 음양의 측면에서 말하자면 용(用)은 양(陽)에 있고 체(體)는 음(陰)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동(動)과 정(靜)은 단서가 없고, 음(陰)과 양(陽)은 시작이 없기 때문에 먼저와 뒤[先後]로 나눌 수 없는 것이다. 지금 단지 일어난 곳으로 나아가 말한다면 필경 동(動) 이전(以前)이 또 정(靜)이고, 용(用) 이전이 또 체(體)이고, 감(感) 이전이 또 적(寂)이고, 양(陽) 이전이 또 음(陰)이고, 적(寂) 이전이 또 감(感)이고, 정(靜) 이전이 또 동(動)이니, 무엇을 가지고 먼저와 뒤를 삼겠는가? 단지 오늘의 동(動)이 곧 시작인 것만 말하고 내일의 정(靜)을 다시 말하지 않아서는 안된다. 예컨대, 코로 쉬는 숨을 호흡(呼吸)이라고 하면 말이 순하지만 흡호(吸呼)라 해서는 안되는 것과 같다. 필경 호(呼)의 앞이 흡(吸)이고 흡(吸)의 앞이 또 호(呼)이기 때문이다.

‘동(動)이 극에 달하면 다시 정(靜)해지고 정(靜)이 극에 달하면 다시 동(動)한다’는 것은 응당 그것이 나뉘어 지는 처음으로 돌아가야 비로소 알 수 있는 것이다. 지금 ‘태극이 동(動)하여 양(陽)을 낳는다.’는 것은 또한 눈앞에서 지금 동(動)하는 것을 딱 끊어서 말한 것이니, 그 실상에 있어서는 그것이 동(動)하기 이전이 또 정(靜)이고 정(靜)하기 이전이 또 동(動)이었다. 이는 마치 오늘 낮이 지나가면 곧 밤이 되고 밤이 지나가면 또 단지 내일 낮이 되니, 오늘 낮 이전은 또 밤이 있었고 어제 밤 이전에 또 낮이 있었던 것과 같다. 지금 시일(時日)이 시작됨을 말하려고 한다면 또한 단지 오늘의 건자(建子)로써 말해야 할 것이지만 그 실상에 있어서는 이 자시(子時) 이전에 어찌 이 자사(子時)가 없었겠는가?문(問): 음양은 기(氣)이거늘, 어찌 이를 형이하자(形而下者)라고 합니까?

답(答): 이미 기(氣)라고 하였다면 곧 사물이 있는 것이 되니, 그래서 형이하자라고 하는 것이다.

문(問): 명도(明道)15)가 음양(陰陽) 또한 형이하자(形而下者)인데도 도(道)라고 하였습니다. 단지 이 두 구절은 상하(上下)를 분명하게 끊은 것이니, 절(截) 자는 단(斷) 자를 잘못 쓴 것이 아니겠습니까?

답(答): 절(截) 자가 정히 옳다. 형이상(形而上)과 형이하(形而下)라는 것은 단지 형처(形處)에 나아가서 이합(離合)을 분명하게 한 것이니, 이것이 바로 경계(境界)를 이루는 곳이다. 만약 단지 재상(在上)․재하(在下)라고만 한다면 곧 양절(兩截)을 이루게 된다.

문(問): ‘동정(動靜)은 소승(所乘)의 기(機)이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답(答): 기(機)는 기(氣)의 기(機)이다. 또 말하였다. 기(機)는 관려자(關棙子)이다. 동(動)의 기(機)를 밟으면 곧 저 정(靜)을 도발(挑發)시키고, 정(靜)의 기(機)를 밟으면 곧 저 동(動)을 도발시키는 것이다.

내가 전날 태극(太極)을 체(體)로 여기고 동정(動靜)을 용(用)으로 여겼으니, 그 말이 진실로 병통이 있었다. 뒤에 이를 판단하여 말하기를,‘태극은 본연(本然)의 묘(妙)이고, 동정(動靜)은 소승(所乘)의 기(機)이다.’하였으니, 이것이 거의 이치에 가까운 말이다.

선사(先師)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도설해(圖說解)에서 먼저‘태극에 동정(動靜)이 있는 것은 바로 천명(天命)이 유행(流行)하는 것이다. 동(動)은 성(誠)이 통한 것이고, 정(靜)은 성(誠)이 돌아오는 것이다.’고 한 것은 혼합(混合)하여 말한 것이고, 다시‘태극은 본연(本然)의 묘(妙)이고, 동정(動靜)은 소승(所乘)의 기(機)이니, 태극은 형이상(形而上)의 도(道)이고, 음양은 형이하(形而下)의 기(器)이다.’고 한 것은 상대적으로 말한 것이다. 생처(生處)를 수간(竪看)하면 태극이 주가 되기 때문에 명(命)을 말하고 성(誠)을 말하였을 뿐 기(氣)의 측면은 언급하지 않은 것이고, 분처(分處)를 횡간(橫看)하면 음양이 상대(相對)되지만 태극이 있지 않음이 없기 때문에 기(氣)를 겸하여 말한 것이다. 이른바 ‘본연(本然)의 묘(妙)’라는 것은 곧 제일권(第一圈)의 해(解)에서 ‘동(動)하여 양(陽)이 되고 정(靜)하여 음(陰)이 되게 하는 본체(本體)이다.’는 것이고, 이른바 ‘소승(所乘)의 기(機)’라는 것은 곧 제이권(第二圈)의 해(解)에서 ‘이것은 극(極)이 동(動)하여 양(陽)이 되고 정(靜)하여 음(陰)이 된 것이다.’는 것이고, 이른바 ‘형이상(形而上)의 도(道)이다.’는 것은 곧 제일권(第一圈)의 해(解)에서 ‘음양과 썪이지 않음을 가리켜서 말한 것이다.’는 것이고, 이른바 ‘형이하(形而下)의 기(器)이다.’는 것은 곧 제이권(第二圈)의 해(解)에서 ‘양(陽)의 동(動)이고 음(陰)의 정(靜)이다.’는 것이다.

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양(陽)이 생길 즈음에 동(動)하므로 동(動)이 양(陽)의 기(機)가 되고, 음(陰)이 생길 즈음에 정(靜)하므로 정(靜)이 음(陰)의 기(機)가 되는 것이다. 기(機)라는 것은 그 유행(流行)하기 시작할 때 음양의 근본을 가리키는 것이다.


양(陽)이 변(變)하고 ~ 사시(四時)가 운행되는 것이다 태극(太極)이 있으면 한 번 동(動)하고 한 번 정(靜)하여 양의(兩儀)가 나뉘어지고, 음양(陰陽)이 있으면 한 번 변(變)하고 한 번 합(合)하여 오행(五行)이 갖추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오행은 질(質)이 땅에서 갖추어지고 기(氣)가 하늘에서 운행되는 것이니, 질(質)로써 그 생(生)하는 순서를 말하자면 수(水)․화(火)․목(木)․금(金)․토(土)인데, 수(水)․목(木)은 양(陽)이고 화(火)․금(金)은 음(陰)이며, 기(氣)로써 그 유행(流行)하는 순서를 말하자면 목(木)․화(火)․토(土)․금(金)․수(水)인데, 목(木)․화(火)는 양(陽)이고 금(金)․수(水)는 음이다. 또 통괄적으로 말하면 기(氣)는 양(陽)이고 질(質)은 음(陰)이며, 또 섞어서 말하면 동(動)은 양(陽)이고 정(靜)은 음(陰)이다. 대개 오행(五行)의 변화가 무궁한 데에까지 이르더라도 모두 음양의 도가 아님이 없고, 음양이 되게 하는 까닭으로 말하면 또 태극의 본연(本然)이 아님이 없으니, 어찌 휴흠(虧欠)과 간격(間隔)이 있을 수 있겠는가?

문(問): ‘질(質)로써 그 생(生)하는 순서를 말하면 수(水)․화(火)․목(木)․금(金)․토(土)이다.’고 하였으니, 이는 어찌 태극도(太極圖)에 나아가 그 생(生)하는 순서를 가리킨 것이 아니겠습니까? 수(水)․목(木)을 어찌 양(陽)이라 하고, 화(火)․금(金)을 어찌 음(陰)이라고 합니까?

답(答): 천일(天一)은 수(水)를 낳고, 지이(地二)는 화(火)를 낳고, 천삼(天三)은 목(木)을 낳고, 지사(地四)는 금(金)을 낳으니, 일(一)․삼(三)은 양(陽)이고, 이(二)․사(四)는 음(陰)이다.

문(問): ‘기(氣)로써 그 유행(流行)하는 순서를 말하면 목(木)․화(火)․토(土)․금(金)․수(水)이다’고 하였으니, 이는 어찌 그 운용처(運用處)에 나아가 말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목(木)․화(火)를 어찌 양(陽)이라 하고 금(金)․수(水)를 어찌 음(陰)이라고 합니까?

답(答): 이것은 사시(四時)로써 말한 것이니, 춘(春)․하(夏)는 양(陽)이고, 추(秋)․동(冬)은 음(陰)이다.

문(問): 질(質)로써 그 생(生)하는 순서를 말한 것은 상생(相生)하는 것이 아닙니까? 단지 양(陽)이 변하여 음(陰)을 돕기 때문에 수(水)를 낳는 것이고, 음(陰)이 합(合)하여 양(陽)이 성(盛)하기 때문에 화(火)를 낳는 것이고, 목(木)․금(金)은 각각 그 류(類)를 따르기 때문에 좌(左)․우(右)에 있는 것입니까?

답(答): 수음(水陰)은 양(陽)을 뿌리하고 화양(火陽)은 음(陰)을 뿌리하여 착종(錯綜)하여 생기는 것이니, 그 단서는 ‘천일(天一)은 수(水)를 낳고, 지이(地二)는 화(火)를 낳고, 천삼(天三)은 목(木)을 낳고, 지사(地四)는 금(金)을 낳는다’는 것이다. 운행처(運行處)에 이르러면 곧 (水)는 목(木)을 낳고, 목(木)은 화(火)를 낳고, 화(火)는 토(土)를 낳고, 토(土)는 금(金)을 낳고, 금(金)은 또 수(水)를 낳게 된다. 순환(循環)하면서 상생(相生)하는 것이 바로 갑(甲)․을(乙)․병(丙)․정(丁)․무(戊)․기(己)․경(庚)․신(辛)․임(壬)․계(癸)가 모두 이 물사(物事)인 것과 같다.

면재(勉齋) 황씨(黃氏)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태극도해(太極圖解)에 의심되는 한 곳이 있다.‘〈태극도〉에서 수(水)는 음(陰)이 성(盛)하기 때문에 오른쪽에 거(居)하고, 화(火)는 양(陽)이 성하기 때문에 왼쪽에 거하고, 금(金)은 양이 어리기 때문에 화(火)의 다음에 차례하였고, 목(木)은 양이 어리기 때문에 화(火)의 다음에 차례한 것이다.’ 하였으니, 이것은 생(生)하는 순서를 설명한 것이다. 그런데 아랫 글에서는 도리어 ‘수(水)․목(木)은 양(陽)이고, 화(火)․금(金)은 음(陰)이다.’고 하였으니, 곧 이것을 양(陽)으로 저것을 음(陰)으로 여긴 것이다.

또 말하였다.

‘오행(五行)이 생(生)하는 순서를 말하자면 곧 수(水)․화(火)․목(木)․금(金)․토(土)이고, 유행(流行)하는 순서를 말하자면 목(木)․화(火)․토(土)․금(金)․수(水)이다.’고 하였으니, 무슨 까닭으로 조화(造化)에 이러한 두 가지 관점이 있는 것인가? 단지 하나의 이(理)일 뿐이니, 생(生)하는 순서가 곧 유행(流行)하는 순서이다. 원초(原初)에는 단지 하나의 수(水)이었을 뿐이니, 수(水)가 따뜻해진 뒤에 곧 화(火)를 이루게 된다. 이 두 가지가 어미이니, 목(木)은 수(水)의 아들이고, 금(金)은 화(火)의 아들이다.

또 말하였다.

오행(五行)에 생(生)하는 수(數)가 있고 유행(流行)하는 수(數)가 있지만 이는 또한 하나의 모양인 것이다. 그 물건 됨이 둘이 아닌지라, 물건을 냄에 측량할 수 없는 것이니,16) 간이(簡易)한 뜻이 아마 이와 같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일찍이 단지 하나의 모양일 뿐이라고 의심하였다. 조화(造化)의 본원(本原)을 갖고 참고해보면, 인물(人物)이 생육(生育)함에 애당초 두 가지 모양이 없고, 단지 수(水)․목(木)․화(火)․금(金)․토(土)일 뿐이니, 이는 곧 차례인 것이다. 옛 사람이 조화(造化)의 다름을 분별하고자 했기 때문에 수(水)․화(火)․목(木)․금(金)․토(土)로 말을 삼았을 뿐이다. 일(一)에서 십(十)에 이르는 수(數)는 다만 기수(奇數)․우수(耦數)와 많고․적음을 말했을 뿐이고, 차례가 이와 같음을 이른 것은 아니다. 과연 차례로써 말한다면, 일(一)이 수(水)를 낳으나 아직 수(水)를 이루지 못해서는 반드시 오행(五行)이 모두 갖추어진 다음 제육(第六)을 기다린 뒤에 수(水)를 이룰 것이며, 이(二)가 화(火)를 낳으나 아직 화(火)를 이루지 못해서는 반드시 오행(五行)이 모두 갖추어지고, 또 수(水)를 이룬 다음 제칠(第七)를 기다린 뒤에 화(火)를 이룬다는 것인가? 이와 같다면, 전혀 조화(造化)를 이루지 못하고, 또 의리(義理)를 이루지 못하게 될 것이다.

또 말하였다.

오행(五行)의 차례는 내가 세 구절로 판단하고자 한다. 말하건대, 수(數)의 기․우(奇耦)와 다․과(多寡)로 논하면, ‘수(水)․화(火)․목(木)․금(金)․토(土)’이고, 처음 생기는 순서로 논하면, ‘수(水)․목(木)․화(火)․금(金)․토(土)’이고, 상생(相生)의 순서로 논하면, ‘목(木)․화(火)․토(土)․금(金)․수(水)’이다. 이와 같으면 거의 이치에 가까울 것이다.

이자(李子)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생출(生出)하는 것으로 말하면, 수(水)는 양(陽)이 어린 것이고, 목(木)은 양(陽)이 성(盛)한 것이고, 화(火)는 음(陰)이 어린 것이고, 금(金)은 음이 성한 것이며, 운행(運行)하는 것으로 말하면, 목(木)은 양(陽)이 어린 것이고, 화(火)는 양이 성한 것이고, 금은 음이 어린 것이고, 수는 음이 성한 것이어서 각각 하나의 이(理)를 갖추고 있다. 지금 도해(圖解)에서 말한 것은 생출(生出)의 묘(妙)를 두고서 운운한 것인 듯하다. 그렇기 때문에 면재(勉齋)가 의심할 만하다고 여긴 것이지만 만약 운행(運行)하는 차례로 돌려서 본다면 의심할 만한 것이 없다.

선사(先師)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도설해(圖說解)에서 이른바 ‘기(氣)로써 그 유행(流行)하는 순서를 말하자면 목(木)․화(火)․토(土)․금(金)․수(水)인데, 목(木)․화(火)는 양(陽)이고 금(金)․수(水)는 음이다.’는 것이 이것이다. ‘수(水)․목(木)은 양(陽이고 화(火)․금(金)은 음(陰)이다.’는 설로써 이를 미루어보면, 수(水)는 양(陽)이고, 어린 목(木)은 양이며, 성한 화(火)는 음(陰)이고, 어린 금(金)은 음이 되니, 성(盛)의 뜻이 그 속에 들어있는 것이다. ‘목(木)․화(火)는 양(陽이고 금(金)․수(水)는 음(陰)이다.’는 설로써 이를 미루어보면, 목(木)은 양(陽)이고, 어린 화(火)는 양이며, 성한 금(金)은 음(陰)이고, 어린 수(水)는 음이 되니, 성(盛)의 뜻이 그 속에 들어 있는 것이다. 면재(勉齋)는 단지 질(質)이 생기는 순서만을 고수하고 기(氣)가 유행(流行)하는 묘(妙)를  살피지 못하였으며, 단지 생출(生出)의 근본을 밝히기만 하고 변합(變合)의 기(機)를 궁구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처음에 스승의 설을 믿지 못했고, 끝내 자기 설의 잘못을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수(水)․화(火)는 체허(體虛)하고, 금(金)․목(木)은 확연(確然)하다.’는 것이 바로 주자(朱子)의 말이니, 이는 기(氣)의 어림[穉]과 성(盛)함을 갖고서 말한 것이고, 음양(陰陽)의 이면(裏面)에 형체(形體)가 있는 오행(五行)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이름이 아니다. 면재(勉齋)가 개정한 설을 지금 아래에 싣는다.

면재(勉齋)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오행(五行)의 차례를 질(質)이 생기는 바로써 말하면, 수(水)는 본래 양(陽)의 습기(濕氣)인지라, 그 처음 동(動)하는 것이 음(陰)에 의해 빠뜨려져 이루어지지 못하기 때문에 수(水)는 음(陰)이 승(勝)하고, 화(火)는 본래 음(陰)의 조기(燥氣)인지라, 그 처음 동(動)하는 것이 양(陽)에 의해 가려져서 통하지 못하기 때문에 화(火)는 양(陽)이 승(勝)한 것이다. 대개 생기는 것은 미약하고 이루어지는 것은 성하니, 생기는 것은 형체의 시작이고 이루어지는 것은 형체의 끝이다. 그러나 각각 한쪽에 치우쳐서 성하기 때문에 비록 형체는 있으나 질(質)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고, 기(氣)가 승강(升降)하기 때문에 토(土)는 제어할 수 없는 것이다. 목(木)은 곧 양(陽)의 습기(濕氣)가 침다(寢多)하므로 음(陰)에 감동하면 펼쳐지기 때문에 발하여 목(木)이 되는 것이니, 그 질(質)은 유(柔)하고 그 성(性)은 따뜻하다. 금(金)은 곧 음(陰)의 조기(燥氣)가 침다(寢多)하므로 양(陽)에 감동하면 줄어들기 때문에 맺혀서 금(金)이 되는 것이니, 그 질(質)은 강(剛)하고 그 성(性)은 차갑다. 토(土)는 음(陰)과 양(陽)의 기(氣)가 각각 성하니, 상교(相交) 상박(相搏)하다 엉겨서 질(質)을 이루는 것이다.

기(氣)가 유행(流行)하는 바로써 말하면, 일음(一陰)과 일양(一陽)이 왕래하면서 서로 교대하는 것이다. 목(木)․화(火)․금(金)․토(土)가 각각 그 가운데에 나아가 노(老)와 소(少)로 나뉠 뿐이기 때문에 그 차례는 각각 소(少)로 말미암아 노(老)가 되는 것이고, 토(土)는 사계절에 왕성(旺盛)함을 나누어주고서 가운데 자리에 거(居)하는 것이다. 이 다섯가지는 차례가 서로 어긋나는 듯하지만 그 조화(造化)가 발육(發育)시키는 도구는 실로 함께 운행되면서도 서로 어긋나지 않는 것이다. 대개 질(質)은 음양(陰陽)이 교착(交錯)하여 응기고 합하여 생기는 것이고, 기(氣)는 음양(陰陽)의 두 가지가 순환하여 그치지 않는 것이다. 질(質)로써 말하면 ‘수(水)․화(火)․목(木)․금(金)’이니, 대개 음양(陰陽)이 상간(相間)한 것으로 말한 것이다. 이는 ‘동(東)․서(西)․남(南)․북(北)은 이른바 대대(對待)라는 것이다.’는 것과 같다. 기(氣)로써 말하면 ‘목(木)․화(火)․토(土)․금(金)․수(水)’이니, 대개 음양(陰陽)이 상인(相因)한 것으로 말한 것이다. 이는 ‘동(東)․남(南)․서(西)․북(北)은 이른바 유행(流行)이라는 것이다.’는 것과 같다. 질(質)은 일정(一定)하여 바뀌지 않는 것이고, 기(氣)는 변화(變化)하여 끝이 없는 것이다.


오행(五行)은 하나의 음양(陰陽)이고 ~ 각각 그 성(性)을 하나씩 갖추게 되었다 오행(五行)이 갖추어지면 조화(造化) 발육(發育)하는 도구가 갖추어지지 않음이 없기 때문에 또 여기에 나아가 근본을 미루어 혼연(渾然)한 일체(一體)가 무극(無極)의 묘(妙)가 아님이 없고 무극의 묘 또한 일찍이 일물(一物)의 가운데에 갖추어지지 않음이 없음을 밝힌 것이다. 대개 오행(五行)은 질(質)이 다르고 사시(四時)는 기(氣)가 다르지만 모두 음양(陰陽)에서 벗어나지 않고, 음양은 지위가 다르고 동정(動靜)은 때가 다르지만 모두 태극(太極)에서 떠나지 않는 것이다. 태극(太極)이 되는 까닭으로 말하자면 또 애초에 말로 표현할 만한 소리나 냄새가 없으니, 이것은 성(性)의 본체(本體)가 그러한 것이다. 천하에 어찌 성(性) 밖의 물건이 있겠는가? 그러나 오행(五行)이 생겨남에 그 기질(氣質)을 따라 타고나는 바가 같지 않은 것이 이른바 ‘각각 그 성(性)을 하나씩 갖추게 된다.’는 것이다. 각각 그 성(性)을 하나씩 갖추게 되면 혼현(渾然)한 태극의 전체(全體)가 각각 한 물건의 가운데에 갖추어지지 않음이 없어서 성(性)이 있지 않은 곳이 없음을 또 볼 수 있는 것이다.

문(問): ‘각일기성(各一其性)’은 진실로 오행(五行)의 기질(氣質)을 가리킨 것입니다. 그러나 수(水)의 윤하(潤下)와 화(火)의 염상(炎上)과 목(木)의 곡직(曲直)과 금(金)의 종혁(從革)과 토(土)의 가색(稼穡)17)하는 성질에서는 단지 기질(氣質)의 성(性)이 타고난 바가 같지 않음만 볼 수 있거늘, 어떻게‘태극의 전체(全體)가 각각 한 물건의 가운데에 갖추어지지 않음이 없어서 성(性)이 있지 않은 곳이 없다.’는 것을 볼 수 있겠습니까?

주자(朱子)의 답(答): 기질(氣質)은 음양(陰陽)․오행(五行)이 시행한 바이고, 성(性)은 곧 태극의 전체(全體)이다. 단지 기질지성(氣質之性)만 논한다면 이 태극의 전체(全體)가 기질(氣質)의 가운데에 떨어져 있는 것이지, 별도로 하나의 성(性)이 되는 것은 아니다.

문(問): 전문(傳文)에 이르기를, ‘오행(五行)이 생김에 그 기질(氣質)을 따라 타고나는 바가 같지 않은 것이 이른바 각각 그 성(性)을 하나씩 갖추게 된다.는 것이다.’고 하였는데, 이 때의 성(性) 자는 응당 기질(氣質)을 가리켜서 말한 것이고, ‘각각 그 성(性)을 하나씩 갖추게 되면 혼현(渾然)한 태극의 전체(全體)가 각각 한 물건의 가운데에 갖추어지지 않음이 없어서 성(性)이 있지 않은 곳이 없음을 또 볼 수 있는 것이다.’고 하였는데, 이 때의 성(性) 자는 응당 이(理)를 가리켜서 말한 것입니다. 한 단락의 사이에 문의(文義)가 자못 서로 합치하지 않으니, 이를 읽는 사람이 무엇을 위주로 좇아야 할 지 모를 듯합니다.

답(答): 음양(陰陽)․오행(五行)의 성(性)됨은 각각 일기(一氣)가 품부받은 것이지만 성(性)은 마찬가지인 것이다.

선사(先師)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오행(五行)이 생겨남에 각각 그 성(性)을 하나씩 갖추게 된다.’는 구절의 성(性)에 대하여, 어떤 이는 본연지성(本然之性)이라 여기고, 어떤 이는 기질지성(氣質之性)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은 본래 두개의 성(性)이 아니니, 다만 사람이 어떻게 보는가에 달려있을 뿐이다. 지금 ‘오행(五行)이 생긴다.’는 것은‘기(氣)가 틀리고 질(質)이 다르다.’는 뜻이 현저하고, ‘각각’이라는 것은 ‘성(性)이 기(氣)로 인하여 달라진다.’는 뜻이 현저하고, ‘하나씩 갖추게 된다’는 것은 ‘성(性)이 이(理)에 나아가서는 같은 것이다.’는 뜻이 현저하고, ‘혼현(渾然)한 태극의 전체(全體)’라는 것은 동일한 것으로 말하였고, ‘각각 한 물건의 가운데에 갖추어져 있다.’는 것은 차이가 있는 것으로 말한 것이다. 이에 기(氣)를 겸(兼)하여 본다면 기지지성(氣質之性)이 되고, 이(理)의 측면으로만 본다면 본연지성(本然之性)이 되니, 대개 동일하고 차이남은 이 성(性)의 본연(本然)이 아님이 없으나 단지 입언(立言)하는 사이에 그 저 《중용(中庸)》에서 ‘하늘이 명한 것을 성(性)이라 한다.’고 운운한 성(性)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 그러므로 정자(程子)와 장자(張子)가 이로 인하여 기질지성(氣質之性)을 말하게 된 것이다.


무극(無極)의 진리(眞理) ~ 변화가 끝없이 이어지는 것이다 대저 천하(天下)에는 성(性) 밖의 물건이 없고, 성(性)은 들어 있지 않는 곳이 없다. 이것이 무극(無極)과 음양(陰陽)․오행(五行)이 혼융(混融)하여 간격이 없는 까닭이니, 이른바 ‘묘(妙)하게 합(合)한다.’는 것이다. 진(眞)은 이(理)로써 말한 것이니, 진실무망(眞實无妄)함을 이르고, 정(精)은 기(氣)로써 말한 것이니, 전일불이(專一不二)함을 이름하고, 응(凝)은 모임이니, 기(氣)가 모여서 형체를 이루는 것이다. 대개 성(性)이 성(性)이 주(主)가 되고 음양(陰陽)․오행(五行)이 이리저리 뒤섞임에 또 각각 유(類)로써 모여 형체를 이루는 것이다. 양(陽)으로서 강건(强健)한 것이 남기(男氣)를 이루니, 부(父)의 도(道)이고, 음(陰)으로서 유순(柔順)한 것이 여기(女氣)를 이루니, 모(母)의 도이다. 이것이 인물(人物)의 처음에 기화(氣化)로써 생기는 것이다. 기(氣)가 모여 형체를 이루면 형체가 교합(交合)하고 기(氣)가 감응(感應)하여 형화(形化)를 이루게 됨에 인물이 생(生)하고 생(生)하여 변화가 끝이 없는 것이다. 남녀(男女)의 관점으로 보면 남과 여가 각각 그 성(性)을 하나씩 갖추게 되므로, 남과 여가 각각 하나의 태극이고, 만물의 관점으로 보면 만물이 각각 그 성(性)을 하나씩 갖추게 되므로, 만물이 각각 하나의 태극인 것이다. 대개 통합하여 말하면 만물은 통체(統體)의 한 태극이고, 나누어 말하면 일물(一物)이 각각 하나의 태극을 갖추고 있는 것이니, 이른바 ‘천하(天下)에는 성(性) 밖의 물건이 없고, 성(性)은 들어있지 않는 곳이 없다.’는 것을 여기에서 더욱 그 전체를 볼 수 있다. 자사(子思)가 이른바, “군자(君子)가 큰 것을 말하면 천하도 실을 수 없고, 작은 것을 말하면 천하도 깨뜨릴 수 없다.18)”는 것은 이것을 이르는 것이다.

문(問): 〈주자(周子)가〉 무극의 진리[眞]를 태극이라고 하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주자가 대답하였다.

무극의 진리[眞]는 그 가운데에 이미 태극을 갖추고 있으니, ‘진(眞)’자가 곧 태극이다.

무극(無極)은 이(理)이고, 음양과 오행은 기(氣)이다. 무극의 이(理)가 곧 성(性)이니, 성이 주가 되고 두 기[음양]와 오행이 가로 세로로 그 사이에 뒤 섞인다. ‘응(凝)’은 곧 이 기가 모여서 자연스러이 사물을 낳음이다. 만약에 이와 같이 모여 엉키지 않으면, 또한 무엇으로 말미암아 만물이 나올 수 있겠는가?

선사(先師)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세상 사람들은‘묘합(妙合)’두 글자를 이(理) ․ 기(氣)가 묘합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이‘묘합’이라는 두 글자는 본디 이(理) ․ 기(氣)가 서로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요, 곧 하늘과 땅이 기화하는 처음에 성한 기운이 서로 엉키는 오묘함을 가리키는 것이다.

《주자어류》에서 말하였다.

묘합하는 처음은 문득 계속하여 함은 선(善)이다19). 이것이 마치 사람이 뱃속에 있을 때와 같다. 만약에 이기가 서로 함양하는 것을 묘합이라고 하다면, 묘합이 어찌 시작함이 있겠는가? 


오직 사람이다 ~ 만사가 나온다 이것은 여러 사람들이 동정(動靜)의 이(理)를 갖추고 있지만, 항상 움직임[動]에서 실수함을 말하였다. 대개 인물이 태어남에 태극의 도를 갖추지 않음이 없다. 그러나 음양오행(陰陽五行)의 기질(氣質)이 서로 운행함에 사람이 타고 난 것이 유독 그 빼어남을 얻었다. 따라서 그 마음이 가장 영명하다. 그리고 그 본성의 온전함을 잃지 않음이 있는 것을 가리켜 천지의 마음이요, 사람의 지극함이라 한다. 그러나 형체는 음(陰)에서 생기고, 정신은 양(陽)에서 발한다. 오상(五常)의 성품이 사물에 감응하여 움직여서, 양은 선이 되고 음은 악이 되며, 또 같은 무리로 나누어진다. 그래서 오성(五性)의 다름이 흩어져 만사가 된다. 대개 두 기[음양]와 오행이 만물을 낳으니, 그것이 사람에 있는 것이 또 이와 같다. 스스로 성인이 온 몸에 태극이 정함이 있지 않다면, 탐욕이 동(動)하고 감정이 승(勝)하고, 이해(利害)가 서로 공격하여 사람의 법이 서지 않아 어긋남이 짐승과 다름없을 것이다.

문(問): 사람은 모두 하늘과 땅의 이(理)를 타고나서 본성이 되고, 모두 하늘과 땅의 기(氣)를 타고나서 형체가 된다. 만약에 인품이 같지 않은 것으로 말하면, 참으로 이 기질이 어둡고 밝고, 두텁고 엷은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사물을 두고 말한다면, 이 부여 받은 이치가 문득 온전하지 않음이 있습니까? 또한 타고난 기질이 어둡기 때문에 이와 같습니까?

주자가 대답하였다.

오직 그 타고난 기질이 다만 많다. 따라서 그 이(理) 또한 많이 있을 따름이다. 예를 든다면, 개와 말이 형기(形氣)가 이와 같기 때문에 다만 이와 같이 이해할 따름이다.

다만 하나의 음양오행의 기운이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차서 정영(精英)한 것이 사람이 되며, 찌꺼기는 사물이 된다. 정영한 것 가운데 또 정영한 것이 성인이 되고 현인이 되며, 정영한 것 가운데 찌꺼기는 어리석고 모자라는 사람이 된다.

혈기가 있고 지각이 있는 것은 사람과 짐승이다. 혈기와 지각은 없으면서 다만 생기가 있는 것은 초목이다. 생기가 이미 끊어지고 다만 형질과 취미(臭味)만 있는 것은 마른 나무이다. 이는 비록 그 분수가 다르지만 그 이치는 같지 않음이 없다. 다만 그 분수가 다르면, 그 이치가 여기에 있는 것이 다르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가장 영명하여 오상의 본성을 갖춤이 있다. 짐승은 혼미해서 갖추지 못하고, 풀과 나무, 말라 죽은 나무는 그 모두 지각하는 것조차도 없다. 그러나 이 사물의 이치가 되는 것은 갖추지 않음이 없다.

기(氣)로 말하면, 지각 운동은 사람과 사물이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이(理)로 말하면, 인(仁)․의(義)․예(禮)․지(智)를 타고남이 어찌 사물이 얻어서 온전하겠는가? 이것이 사람의 본성은 착하지 않음이 없어서 만물 가운데 빼어나게 되는 까닭이다.

문(問): 오성(五性)이 감동해서 선악이 나뉩니까?

주자(朱子)가 대답하였다.

천지의 성(性)은 이(理)이다. 비로소 음양오행이 있는 곳에 이르러 곧 ‘기질지성(氣質之性)’이 있다. 여기서 어둡고 밝고 두텁고 엷은 차이가 있다. 그 빼어난 것을 얻어 가장 영명함은 곧 기질 이후의 일이다.

문(問): 외물에 감응해서 동할 때에, 어떤 것은 의리의 공평함에서 발하고, 어떤 것은 혈기의 사사로움에서 생깁니다. 이 가운데 문득 선과 악이 나뉩니까?

북계 진씨가 말하였다.

혈기의 사사로움에 발해서 악(惡)이 되는 것이 아니라, 곧 발한 뒤에 유전(流轉)되어 악하게 될 따름이다.

선사(先師)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오직 사람이 그 빼어난 것을 얻어 가장 영명하다고 한 말 가운데 이 ‘영(靈)’자를 주자의「태극도해」에는‘마음[心]’으로 말했다. 순수지선(純粹至善)한 성(性)으러 해당시키는 것이 어떠하겠는가? 내가 생각해 보건대, 마음[心]과 성(性)이 도달하는 것은 두 가지가 아니다. 마음이 태극이 되는 것으로부터 말한다면, 가장 신령스러운 것은 마음이다. 그러나 마음이 가장 신령스러운 까닭은 그 성(性)이 본체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또 순수지선한 성(性)이라고도 한다. 이로 말미암아 살펴보면, 이를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처음에는 기를 겸하여 말한 것이 아니지만, 영명하다고 한 것은 실제로 기의 빼어남을 두고 한 말이다. 《통서》의 “영명함이 아니면 밝혀지지 않는다20).”는 말의 주(註)에, “또한 영명함[靈]을 태극에 해당 시켰다.


성인은 중(中)․정(正)․인(仁)․의(義)21)로써 정하되 성인의 도는 중․정․인․의 뿐이다 정(靜)을 주장하시어 욕심이 없기 때문에 정(靜)이다 사람의 극[법]을 세우셨다. 그래서 성인은 ~ 그 길흉이 합한다. 이 것은 성인이 동(動)․정(靜)의 덕을 다 갖추고 있으면서 항상 정(靜)을 바탕으로 한 것을 말하였다. 대개 사람은 음양오행의 빼어난 기운을 받아서 태어난다. 성이 태어남은 또 그 빼어난 것 가운데 빼어난 것을 얻은 것이다. 이 때문에 그 행함이 중도(中道)를 지키며, 그 처함이 바르며, 그 발함이 어질고, 그 다스림이 의로우니, 대개 한번 동하고 한 번 정함에 항상 태극의 도를 온전히 하여 이지러짐이 없다. 지난번에 욕심이 동하고 감정이 승(勝)하여 이해가 서로 공격하던 것이 여기에서 안정된다. 그러나 정(靜)은 성(誠)이 회복하고 성(性)이 정(貞)함이다. 만약에 이 마음이 고요해서 욕심이 없으면서 정하지 않는다면, 또 무엇으로써 사물의 변화에 수작해서 이 세상의 동을 한결같이 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성인은 중(中)․정(正)․인(仁)․의(義)가 동(動)․정(靜)에 두루 유행해서, 그 동함에 반드시 정을 주장하니, 이것이 중에서 자리를 이루어 천지(天地)․일월(日月)․사시(四時)․귀신(鬼神)이 거스르지 못함이 있게 되는 까닭이다. 대개 반드시 체가 선 뒤에 용이 행함이 있으니, 예컨대 정자(程子)가‘건곤(乾坤)․동정(動靜)’같은 것을 논하면서, 오로지 한결같지 않으면 곧바로 이룰 수 없으며, 합하여 모이지 않으면 발하여 흩을 수 없다.’고 한 말은 또한 이러한 뜻일 따름이다.


문(問): 성인은 중(中) ․ 정(正) ․ 인(仁) ․ 의(義)로써 정하되 정(靜)을 주장한다.

주자가 말하였다.

이것은 성인이 도를 닦는 것을 가리켜 교(敎)라고 하는 곳이다.

성의 나뉨이 비록 정에 속하지만, 그것이 쌓이면 동(動) ․ 정(靜)을 다 갖추되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다. 그래서 정(靜)으로 성을 말한다면 옳다.‘정(靜)’자를 천지의 오묘함을 형용한 것으로 하면 옳지 않다.

문(問): (주렴계가) 예와 지는 말하지 않으면서 중정을 말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답(答): 예라고 하면 간혹 절도에 맞지 않음이 있고, 중이라고 하면 지남침이나 모자람이 없어 예가 아닌 예가 없으니, 곧 절문(節文)이 좋은 것이다. 지(智)라고 하면 간혹 바르고 바르지 않음이 있다. 만약에 정(正)이라고 하면, 옳고 그름이 바로 분명하니 곧 지(智)의 실체이다.

‘정을 주장한다.’는 말은 〈야기(夜氣)22)〉한 장을 보면 알 수 있다.

어떤 사람이 말하였다.

강서가 말한 정을 주장한다는 것은 반드시 이 정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이 가운에 동하면서 정하고, 정하면서 또 정하는 것이다.

대답하였다.

그의 말대로라면, 천리는 스스로 봄이 끝나면 여름이 되고, 여름이 다하면 가을이 되며, 가을이 끝나면 겨울이 되어 자연스러이 이와 같으니, 또한 성취해 도와서 비로소 깨달을 필요는 없다.

문(問): 지혜로운 사람은 동하고, 어진 사람은 정하다고 했는데, 〈태극도설〉대로 하면 지(智)가 정이 되고, 인(仁)이 동이 됩니다.

주자가 말하였다.

이것은 사물을 바로 보면 한 모습이고, 비스듬히 보면 한 모습이다. 자공(子貢)이 말하기를‘배우기를 싫어하지 않음이 지(智)가 되고, 가르치기를 게을리 하지 않음이 인(仁)이 된다23).’고 했는데, 자사(子思)는 도리어 말하기를,‘자기 자신을 이룸이 인(仁)이요, 외물을 이룸이 지(智)이다24).’라고 했다. 인(仁)은 참으로 ‘안정(安定)’한다는 뜻이지만, 그러나 시행함에 도리어‘운용(運用)’한다는 뜻이 있다.

선사께서 말씀하셨다.

중(中)․정(正)․인(仁)․의(義)는 모두 동하는 곳에서 말한 것이다. 인을 행함은 예와 통하기 때문에 중(中)․인(仁)은 동하는 가운데 움직임이 된다. 의는 지를 거두어 간직하기 때문에 정(正)․의(義)는 동하는 가운데 정함이 된다. 성인이 성(性)을 정한 도는 정하면서도 또 정하고, 동하면서도 또 동한다. 따라서 정(靜)을 주장한다는 말의 뜻이 있는 것이지, 동(動)․정(靜)이 상대하는 곳에서 동(動)을 싫어해서 정(靜)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후대 사람들은 도리어 미발(未發)의 정(靜)으로써 이 말을 이해했기 때문에 주정(主靜)의 공부가 한쪽에 치우친 것이라고 도리어 의심을 받게 되었으니 (이것은) 주자(周子)의 본 뜻이 아니다. 성인(聖人)의 마음은 항상 안정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을 안정시킬 수 있는 것이니, 사람의 표준을 세우는 것이 사람을 ‘안정 시키는’방법이다.     

군자는 이것을 닦기 때문에 길하고, 소인은 이것을 어기기 때문에 흉하다 성인은 태극의 전체이다. 한 번 동(動)하고, 한 번 정(靜)함에 가서 중(中)․정(正)․인(仁)․의(義)의 법에 맞지 않음이 없다. (이것은) 대개 닦음을 빌려서 된 것이 아니라 저절로 그러한 것이다. 여기에 이르지 않고도 닦이니, 군자가 길(吉)한 까닭이다. 이것을 모르고 어그러지는 것이 소인이 흉한 까닭이다. 수양하고 어그러짐은 또한 공경하고 방자한 사이에 있을 따름이다. 공경하면 욕심이 적어지고 이치가 밝으며, 욕심이 적어지고 또 적어져서 없는 데에 이르면 정(靜)하면 마음이 비었고, 동(動)하면 행동이 곧아 성인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주자가 말하였다.

일로 말하면 동(動)이 있고 정(靜)이 있으며, 마음으로 말하면 주류(主流)관철(貫徹)하는 것이다. 그 공부가 처음부터 간단(間斷)이 없는 것이지만, 단지 정(靜)으로 근본을 삼을 뿐이니 때문이다. 주자(周子)가 정을 주장한다는 것도 또한 이러한 뜻이다. 단지 정(靜)만 말하면 한쪽에 치우치기 때문에 정자(程子)는 경(敬)만을 말했다.

남헌 장씨가 말하였다.

군자가 이것을 닦기 때문에 길하다고 한 것은 이치에 따르기 때문에 길하다는 것이고, 소인이 이것을 어기기 때문에 흉하다는 것은 이치를 거스르기 때문에 흉하다고 한 것이다. 이치에 따르면 공평하고 정직하며 평탄하고 쉬워서 후회가 없으니 길하지 않은가? 이치를 거스르면 어렵고 막혀서 장애가 있으니 흉하지 않겠는가?

서산 진씨25)가 말하였다.

주자께서 일찍이 말씀하시기를 성인(聖人)은 중(中)․정(正)․인(仁)․의(義)로써 정하되 정(靜)을 주장한다고 한 것은, 사람들에게 그 마음을 조용히 안정시켜 스스로 주재하기를 바란 것이다. 정자(程子)는 또 다만 정(靜)만을 관장해가서 사물과 서로 교섭하지 않을 것을 염려하시어 도리어 경(敬)을 말하셨다.

그래서 말씀하시기를 하늘의 도를 세움 ~ 죽음과 삶의 말[이론] 음(陰)․양(陽)이 상(象)을 이룸은 하늘의 도가 서게 되는 것이오, 강(剛)․유(柔)가 질(質)을 이룸은 땅의 도가 서게 되는 것이오, 인(仁)․의(義)가 덕을 이룸은 인도(人道)가 서게 되는 것이다. 도는 하나일 따름이다. 일에 따라서 드러나기 때문에 삼재(三才)의 분별이 있으며, 그 가운데에 또 각각 체와 용의 구분이 있으나, 그 실체는 하나의 태극이다. 양(陽)․강(剛) ․ 인(仁)은 사물의 처음이요, 음(陰)․유(柔)․의(義)는 사물의 마침이다. 시작을 근원하여 태어난 바를 알면, 마침에 돌이켜 죽음을 알 것이다26). 이것이 하늘과 땅 사이 기강이 조화하여 고금에 유행하여 말하지 않는 묘리이니, 성인이 역을 지으심에 그 대의는 대개 이를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이것을 인용해서 그 말을 증험한다.

주자가 말하였다.

음양(陰陽)은 기(氣)로 말한 것이고, 강유는 곧 말할 만한 형질이 있는 것이고, 인(仁)과 의(義)에 이르면 또 기(氣)와 형(形)을 합하고 이치가 갖추어진 것이지만, 또한 하나일 따름이다. 대개 음(陰)․양(陽)은 양 가운데 음․양이요, 강(剛)․유(柔)는 음 가운데 음․양이다. 인(仁)․의(義)는 음․양이 기를 합하고 강(剛)․유(柔)가 바탕을 이루니, 이 이치가 비로소 인도의 지극함이 된다. 그러나 인(仁)은 양강(陽剛)이 되고, 의(義)는 음유(陰柔)가 된다.

어떤 사람이 물었다[或問].

양자운(揚子雲)27)이 말하기를, 군자는 인에서는 부드럽고, 의에서는 강하다고 했는데, 대개 서로 다스려서 서로 용이 되는 뜻을 취한 것입니까?

답(答): 인은 강(剛)을 바탕으로 하고 유(柔)를 활용하며, 의는 유를 바탕으로 하고 강을 활용한다고 하였다.

인(仁)이 마음에 있으니, 성(性)의 체가 되는 것이오, 의가 일을 다스리니 성(性)의 용이 된다. 체용에 또 주장이 있으니, 성으로 말하면 모두 체이고, 정으로 말하면 모두 용이다. 음양으로 말하면 의가 체이고 인이 용이다. 마음에 간직하고 일을 다스리는 것으로 말하면 인이 체이고 의는 용이다. 서로 뒤섞어서 오직 그 마땅하게 되니, 조리가 있지 않음이 없다.

문(問): 시작을 근원하여 마침을 돌이키기 때문에 죽고 사는 이론을 안다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답(答):, 다만 그 시작의 이치를 근원해 보는 것이다. 뒤를 돌이켜 보면 문득 알 수 있으니, 이것의 있음을 알고서 저것의 없음을 안다.

 

위대하다. 《주역》이여! 이 그 지극하도다. 《주역》은 넓고도 크게 다 갖추었다. 그러나 그 지극함을 말하면 이 ‘태극도’가 다했으니, 그 가리킴이 어찌 깊지 않은가? 또 일찍이 듣건대, 정자 형제가 주자(周子)에게서 배울 때 주자(朱子)는 이 그림을 손수 그려서 전수하였다. 정자(程子)가 성(性)과 천도(天道)를 말함이 여기에서 나옴이 많다. 그러나 끝내 이 그림을 분명하게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준 적이 없다. 이는 곧 반드시 은미한 뜻이 있을 것이니, 배우는 사람은 또한 (이 뜻을) 알아두지 않을 수 없다.     

주자가 말한, ‘위대하다. 《주역》이여!’는 다만 음․양, 강․유, 인․의를 쉽게 말하고, ‘시작을 근원하여 마침에 돌이켜 연구한다. 그러므로 죽음과 삶의 이론을 안다는 것을 말하고 그쳤다. 사람이 살고 죽음은 다만 음양의 기운이 굽혔다 펴고, 가고 오는 것일 따름이 라고 하였다.

논(論): 내가 이미 이 태극설을 지었는데, 읽는 사람들이 그 분열됨이 너무 심한 것을 병통으로 여겨 변론과 힐난이 분분하였으나, 그에 대한 충분한 응답을 하지 못한 것이 괴로웠다. 그래서 총괄하여 논한다.

대개 힐난하는 사람 가운데, 어떤 이는 선(善)을 잇고 성(性)을 이루는 것으로써 음양을 나누는 것은 부당하다고 하고, 어떤 이는, 태극과 음양으로써 도(道)와 기(器)를 구분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하며, 어떤 이는 인(仁)․의(義)․중(中)․정(正)으로써 체(體)와 용(用)을 나누는 것은 부당하다 하고,  어떤 이는 한 사물이 각각 한 태극을 갖추고 있다고 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한다. 또 체와 용은 한 근원이니 체가 선 뒤에 용이 행해진다고 할 수 없다고 하는 이가 있다. 또 어떤 이는 인은 통체(統體)가 되니 한족만 가리켜 양이 동하는 것이라고는 할 수없다고 한다. 또 어떤 이는 인의중정의 구분은 그 무리(類)를 돌이키는 것은 부당하다고 한다. 이 몇 가지 주장은 또한 모두 일리가 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성현의 뜻에 모두 하나는 얻고 둘을 잃은 것이다. 대저 도와 체의 온전함은 혼연히 일치하여 가지런하고 거칢[精粗], 근본과 말단[本末], 안과 밖[內外], 손과 주인[賓主]의 구분이 그 가운데서 분명하여 털 끝 만큼의 차이가 있어서도 안 된다. 이것이 성현의 말씀은 떨어지기도 하고 합하기도 하며, 다르기도 하고 같기도 하여 곧 도체(道體)의 온전함이 되는 것이다. 지금 다만 ‘혼연’이라는 말을  위대하게 여기고 그것을 즐겨 말하면서 ‘찬연’하다는 것이 비로소 서로 떨어지지 않는 것을 알지 못한다. 이 때문에 같은 것은 믿고 다른 것은 의심하며, 합하면 기뻐하고 떨어지면 싫어한다. 그 논의가 언제나 한쪽에 빠져버려 마침내 눈금자가 없는 저울이며, 마디가 없는 자일 따름이니 어찌 잘못되지 아니 하였는가?.

대저 선이 성과 함께 두 가지 사물이 될 수 없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잇는 것이 선이라 한 것은 스스로 음양 변화에 따라 말한 것이고, 이루는 것이 성이라는 것은 대저 사람들이 타고난 것에 따라 말한 것이다. 음양 변화가 유행하여 다함이 있지 않음은 양이 동함이요, 인물이 타고남이 일정하여 다시 바꿀 수 없는 것은 음이 정함이다. 이로써 변별한다면 또한 어찌 두 가지의 구분이 없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성선은 형이상자이고, 음양은 형이하자이다. 주자(周子)의 뜻이 또한 어찌 곧바로 선은 양이고 성은 음을 가리키겠는가? 다만 그 구분을 말하면 마땅히 여기에 귀속시켜야 할 것이다. 음양과 태극이 두 가지 이치가 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태극은 형상이 없으나 음양은 기운이 있으니,  또한 어찌 상하의 다름이 없겠는가? 이것이 도와 기가 구별되는 까닭이다.

따라서 정자가 말하기를,‘형이상(形而上)은 도(道)이고, 형이하(形而下)는 기(氣)이다. 모름지기 이와 같이 말해야만 기(氣) 또한 도(道)이며, 도(道) 역시 기(氣)이다.’라고 하였다. 이 뜻을 미루어 갈 수 있다면 거의 치우치지 않을 것이다. 인․의․중․정은 한 이치에 같은 것인데, 그것을 쪼개어 체와 용으로 했으니, 참으로 타당하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인은 선의 으뜸이요, 중은 아름다움의 모임이요, 의는 이(利)의 마땅함이요, 바름[正]은 곧음[貞]의 체요, 원형[元亨]은 정성이 통함이요, 이정[利貞]은 정성이 회복함이다28). 이렇다면 곧 어찌 체용의 구분이 없게 되겠는가? 만물이 생김은 같은 태극이지만, 각각 그 갖춤을 말하면 또한 의심할 만한 것이 있다. 그러나 한 사물 가운데 천리가 다 갖추어져 서로 빌릴 수 없고, 서로 빼앗을 수 없으니, 이것은 통합함에 종(宗)이 있고, 모음에 원(元)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다면 어찌 각각 한 이치를 갖추고 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체용이 하나의 근원이라고 한 것은 정자의 말씀에 이미 정밀하다. 그가 말한, ‘체와 용은 한 근원이다[體用一源]’이라는 것을 지극히 미세한 이치로 말하면 충막(冲漠)하여 조짐이 없으면서 만상이 밝게 이미 갖춰 있다는 것이다. 그가 말한 ‘드러나고 미세한 것은 사이가 없다[顯微無間]’는 것은 지극히 드러난 형상으로 말하면 사물에 나아가 이 이치가 있지 않은 곳이 없다. 이(理)를 말하면, 체를 먼저하고 용을 뒤로 했다. 대개 체를 들어서 용의 이치가 이미 갖추어졌으니, 이것이 일원이 되는 것이다. 사(事)를 말하면, 드러남[ 顯]을 먼저하고 은미함[微]을 뒤로 했다. 대개 일에 나아가 이(理)의 체를 볼 수 있으니, 이것이 틈이 없음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원이라는 것은 어찌 정밀하고 거칠며[精粗] 앞뒤가 없다고 할 수 있겠는가? 하물며 이미 체가 선 뒤에 용이 행한다고 했다면, 또한 앞서 이것이 있고 뒤에 저것이 있는 것을 혐의하지 않을 것이다.

이른바 인의 통체(統體)가 된다는 것은 정자가 말한,‘전적으로 이것을 말할 경우 네 가지를 포괄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은 대개,‘네 가지 덕29)에서의 원(元)은 오상에서의 인과 같다. 한쪽에 치우쳐 말하면 한 일이요, 전적으로 말하면 네 가지를 포함하니, 이는 곧 인이 네 가지를 포함해서 전적으로 한쪽에 치우쳐 말한 한 일을 진실로 벗어나지 않고, 또한 한쪽에 치우쳐 말한 한 일을 알지 못하면서 전적으로 말한 통체(統體)를 갑자기 말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하물며 이 〈태극도〉는 인으로 의를 짝지우고, 다시 중․정을 참여시켰다. 또 음(陰) ․ 양(陽)과 강(剛) ․ 유(柔)를 분류한다면 또한 전언(專言)이 될 수 없을 것이니, 어찌 급하게 통체자를 말하여 음(陰) ․ 양(陽), 동(動) ․ 정(靜)의 구별을 어둡게 할 수 있겠는가?

중(中)이 활용이 됨에 이르러서는 지나침과 모자람이 없는 것으로 말하였으니, 이것은‘미발(未發)의 중(中)’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인(仁)이 체(體)가 되지 못하면, 또한 한쪽에 치우쳐 한 가지 일로 말하니 전적으로 말하는 인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이에 대해서 말하면 정(正)은 중(中)의 줄기가 되고, 의(義)는 인(仁)의 바탕이 됨을 또 알 수가 있다. 그 체(體)와 용(用)이 됨에 어찌 말이 없겠는가?

대개 주자(周子)가 이 글을 지으심에 말뜻이 준결(峻潔)하면서도 혼성(混成)하고, 조리가 정밀(精密)하면서도 소창(踈暢)하여 독자들이 마음을 비우고 한결같은 뜻으로 반복해서 그 뜻을 푹 음미해서 먼저 받아들인 학설 때문에 어지러워지지 않는다면, 아마도 주자(周子)의 마음을 깨달음이 있어 분분한 학설에 의심이 없을 것이다.

주자가 말하였다.

체용 일원이라는 것은 이(理)로부터 보면, 이가 체가 되고 상(象)이 용이 되어, 이(理) 가운데 상(象)이 있는 것이니, 하나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드러나고 드러나지 않는 것이 사이가 없다[顯微無間]는 것은 . 상(象)으로부터 보면, 상은 드러나고 이(理)는 은미(隱微)하여, 상 가운데 이(理)가 있는 것이니, 이것이 간격(間隔)이 없다는 것이다. 또 이미 말하기를, 이가 있은 뒤에 상이 있다고 하였다면, 이와 상은 곧 하나 물질이 아니다. 그래서 이천 선생은 다만 그 근원이 하나인 것[一源]과 간격이 없는 것만을 말씀했을 따름이나, 사실 체․용(體用)과 현․미(顯微)의 구분은 없을 수가 없다.

내가 이미 이 말을 지어서 일찍이 광한 장경부에게 부친 적이 있었는데, 경부가 편지를 보내기를,“두 선생이 문인들과 강론하고 문답한 말이 글에 나타난 것은 상세했습니다. 그 〈서명〉에 있어서는 대개 여러 차례 언급하셨지만, 이 〈태극도〉에 이르러서는 한 마디도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 반드시 은밀한 뜻이 있다고 하신 말씀은 참으로 그러합니다. 그러나 은미한 뜻이라는 것은 과연 무엇을 가리키는 것입니까.”했다.

내가 생각하건대, 이 〈태극도〉는 상을 세우고 뜻을 다하여 그윽하고 은미한 뜻은 쪼개어 분석한 것이니, 주자(周子)가 마지못해서 지은 것이라 생각한다. 그 손으로 전수한 뜻을 살펴보면, 대개 오직 정자가 능히 그것을 감당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정자에 이르러 말하지 않은 것은 능히 전수 받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의심했음이다. 대개 이미 말뜻의 이면을 묵묵히 알아듣지 못한다면, 마음이 공허하고 오묘한 곳으로 달려 귀로 듣고는 입으로 나와 버릴 것이니, 그 폐단은 반드시 말로써는 다 하지 못함이 있을 것이다.

장굉중에게 답하면서, “〈역전〉이 이루어진 것을 깊이 전수할 사람이 없는 것을 근심했고, 〈동견록〉 가운데서는 횡거의 ‘청허일대’의 설은 사람으로 하여금 다른 곳을 향하여 가게 하니 다만 경을 말하는 것만 못하다. 곧 그 뜻을 알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서명〉같은 것은 사람을 미루어서 하늘에 나아가며, 가까운 곳에 나아가서 먼 곳을 밝혔으니, 배우는 사람들이 일상생활을 함에 가장 친절한 것이다. 그래서 이 〈태극도설〉이 책에서 성명(性命)의 근원을 상세히 하면서 나아가 해야 할 조목을 간략히 함으로써 성급하게 말해주어서는 안되는 점이 있다는  것보다 나은 것이다.

공자께서도 시․서․집례를 평소에 늘 말씀을 하셨지만30), 《주역》에 있어서 드물게 말씀하신 것은 그 뜻이 또한 이와 같은 것이다. 한퇴지가 말하기를, “요(堯)․순(舜) 임금은 백성들을 이롭게 함이 컸고, 우 임금은 백성을 염려함이 깊었다.”고 했는데, 내가 주자(周子)와 정자에 대하여 또한 이미 장경부(張敬夫)에게 답하였고, 이어서 그 말을 여기에 기록한다. 건도(송 효종 9년) 계사(1173) 사월 열 엿새 날 주희 삼가 씀.

 

(총론) 주자가 말하였다.

복희(伏羲)씨가 《주역》을 지으심에 한 획 이하부터 하였고, 문왕(文王)이 《주역》을 부연하심에‘건원(乾元)’이하부터 하셨으나, 〈이 두분은〉 모두 태극을 말한 적이 없다. 그러나 공자는 이것을 말씀하셨다. 공자가 찬역(贊易)하기를 태극 이하부터 하였으나 무극을 말씀하신 적이 없다. 그러나 주자가 이것을 언급하셨으니, 먼저 성인과 뒤의 성인이 어찌 조목들 같이하여 함께 관통한 것이 아니겠는가?

무극(無極) 두 글자는 곧 주자(周子)가 도(道) ․ 체(體)를 명백하게 드러냈으니, 상정을 뛰어넘어 용감하게 말씀하신 이치이다. 뒷날 배우는 사람들이 분명히 태극의 오묘한 뜻을 깨닫게 했으니, 유무(有無)에도 속하지 않고 방체(方體)에도 떨어지지 않아 참으로 여러 성인들 이래 전하지 않는 비결을 얻었다.

선생의 정밀하심을 이 태극도로 보이셨고, 선생의 쌓인 뜻을 이 〈태극도〉로써 드러냈다. 그가 말한 ‘무극이 곧 태극’이라는 것은 이 〈태극도〉의 핵심이니, 도가 처음에는 사물이 없지만, 실제는 만물의 근원이 된다는 것을 밝히셨다. 대저 어찌 태극 위에 다시 또 무극이 있다고 하겠는가?

남헌 장씨31)가 말하였다.

선생께서는 미루어 태극을 바탕으로 해서 음양오행이 유포하여, 인물이 태어나는 것까지 이르셨다. 이에 사람이 지극히 영명하고 성이 지선(至善)이 되며, 만물이 그 종주가 있고, 만사가 그 법칙을 따름을 아는 것이다. 그것을 들어 놓으면 가히 선왕의 다스림을 알 수 있으니, 이것은 사사로운 앎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볼 수 있으니, 공자와 맹자의 뜻이 여기에서 더욱 밝아진다.

사방숙이 말하였다.

도의 큰 근원은 하늘에서 나와서 사람의 마음에 갖추어진다. 그 큼은 밖이 없으며, 그 작음은 안이 없으니, 대개 두루 섞이어 하나의 태극이다. 복희씨가 천리를 이어 극[法]을 세우고 , 하도(河圖)로 인하여 팔괘를 그으니, 천지가 위치를 정하여 건(乾) ․ 곤(坤)괘가 나열하고, 산과 못이 기를 통함에 간(艮) ․ 태(兌)괘가 나열한다. 우레와 바람이 서로 엷어져 진(震) ․ 손(巽)괘가 나열한다. 물과 불이 서로 방사하지 않아 감(坎) ․ 이(離)괘가 나열한다. 진괘부터 건괘는 감[往]을 알 수 있고, 손괘부터 곤괘까지는 옴을 알게 된다. 8의 배는 16이오, 16의 배는 32이며, 32의 배는 64이다. 천지 귀신의 오묘함이나 만사만물의 이치가 빽빽이 다 갖추어 졌으니, 이것이 복희씨의 선천 역으로 만고에 사문(斯文)의 비조(鼻祖)가 된다.

신농씨(神農氏)가 익(益)괘와 서합(噬嗑) 괘를 취한 것도 이 〈복희 팔괘〉로써 하였고, 황제(黃帝)와 요(堯) ․ 순(舜)임금이 건괘(乾卦)와 곤괘(坤卦)를 취해서 쾌(夬)괘에 이른 것도 이로써 하였으며, 하(夏)나라의 ‘연산역(連山易), 상(商)나라의 귀장역(歸臟易)도 또한 이로써 하였다. 비록 그 작용이 같지 않지만 그 실체는 동일한 태극이다. 중고(中古)에 문왕(文王)이 괘사(卦辭)를 엮었고, 주공(周公)이 효사(爻辭)를 지었으니 역이 여기에서 사(辭)가 있게 되었다. 공자는 주나라 말에 태어나시어 만년에 십익(十翼)을 지으셔서 선천과 후천이 서로 밝혀졌다. 그 기록이 《시경》과 《서경》에 실려 있으며, 《예기》와 《악기》에서 드러났고, 《춘추》에서 필삭(筆削)하였으니, 큰 바탕과 큰 근원이 이를 벗어나지 않는다.

주렴계 선생이 홀로 천년 동안 전하지 않는 비결을 얻으셔 위로는 선천의 역을 바탕으로 태극도 하나를 지으셨다. 태극이라 하는 것은 대개 주역에 있는 ‘역(易)에 태극이 있다.’는 말을 바탕으로 했는데, 음양오행과 인물이 이로부터 태어난다. 곧 태극이 양의[음양]를 낳고, 양의가 사상(四象)을 낳고, 사상이 팔괘를 낳는 것을 가리킨다. 태극으로부터 음양이 나뉘고, 음양이 오행으로 나뉘며, 오행이 사시로 나뉘니, 모두 태극이 그 가운데에 내재(內在)함을 가리킨다. 무극(無極) 이오(二五)의 묘합(妙合)으로부터 만물(萬物)의 화생(化生)을 유추하였고, 인물(人物)의 병생(竝生)으로부터 인심(人心)의 허령(虛靈)함을 구분하였고, 오성(五性)의 감동으로부터 성인(聖人)의 입극(立極)을 밝혔으니, 이것은 모두 태극이 품휘(品彙) 속에 내재한 것이다.

그것이 조화 속에 내재한 것으로부터 말하면, 곧 천지는 태극 동정의 오묘함을 미룰 수 있다. 그래서 말하기를 하늘의 도를 세운 것을 가리켜 음과 양이라 하고 땅의 도를 세운 것을 가리켜 유과 강이라 한다. 그것이 품휘(品彙) 속에 내재한 것으로부터 말하면, 오직 성인이 태극이 동정하는 전체를 모았다. 그래서 인도(人道)를 세운 것을 가리켜 인과 의라 하니, 처음부터 끝까지 다함이 없고 예나 지금이나 유행하고 있다. 이것을 가리켜 육효의 동(動)과  삼극(三極)의 도(道)라는 것이다. 육효 가운데 5효 이상은 하늘[天]이 되고, 3․4효는 사람[人]이 되며, 초효와 2효는 땅[地]이 된다. 이것을 통틀어서 말하면 삼극[천․지․인]은 동일한 하나의 태극이고, 이것을 쪼개어서 말하면 삼극(三極)은 각각 하나의 태극이다. 그래서 주자(周子) 태극도설 끝에 단정하기를 “위대하다. 《주역》이여! 이 그 지극하도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주자(周子)가 태극도(太極圖)를 지은 본 뜻이다.

선사께서 말씀하셨다.

천고에 이기의 논의는 ‘역에는 태극이 있다.’는 한 마디에 바탕을 두고 있으니, ‘역(易)’은 두 기운이 서로 변화하는 이름이다. ‘극(極)’은 한 이치가 참으로 지극함을 일컫는 것이다. 이는 음양이 교역(交易)하고 변역(變易)하는 가운데, 실제로 태극 본연의 오묘함이 있음을 이르니, 이미 기(氣)에 따라서 이(理)를 말함이다. 계(繫)하기를, ‘이 양의(兩儀)를 낳았다.’는 것은 양이 스스로 생기지 않고 태극의 동함에서 생기고, 음이 스스로 생기지 않고 태극의 정함에서 생기니, 이 또한 이(理)로부터 기를 말했다.

대개 기(器)는 보기 쉽지만, 도(道)는 보기 어렵다. 그래서 기(器)로써 도를 밝혔으니 도가 그 바탕이 되고 기(器)가 그 도구가 된다. 따라서 도를 먼저하고 기를 뒤로 했다. 이미 ‘태극이 양의(兩儀)를 낳았다고 하면, 곧 한 사물로써 저 두 사물을 낳는 것과 같아서 태극이 형체가 있는 것과 같으므로 주자(周子)가 〈태극도〉를 짓고, 다시 무극(無極) 두 글자를 더 보탰다. 그가 말한, ‘무극(無極)은 곧 태극(太極)이다.’는 것은 근극(根極) ․ 추극(樞極)의 형체가 없으나, 실제로는 큰 근극과 큰 추극이 되니, 태극의 앞에 별도로 무극이 있지는 않다.

이어서 말하였다.

동(動)하여 양(陽)을 낳고, 정(靜)하여 음(陰)을 낳는다는 것은 곧 동(動)도 또한 태극의 동이요, 정(靜)도 또한 태극의 정이다. 음양이 이미 생김에 태극이 문득 그 가운데 갖추어져서 한번 동하고 한번 정하여 천명이 유행하니, 그 유행함에 따라 거꾸로 추구해 보면, 음양은 처음이 없고, 동정은 단서가 없는 것이다. 그 본원으로부터 차례로 추구해 보면 태극이 음양에 앞서 존재하여 동하기도 하고 정하기도 하여 체용이 다 갖추어져, 동(動)하지 않는 때에는 혼연하지만, 네 덕이 각각 있으며 조리(調理)를 갖추고 있고, 이미 나뉜 뒤에는 찬연하지만 만물이 이로 말미암아 시작된다.

기(氣)는 그 타는 말이니, 태극이 양을 타는 것은 그 덕을 이름 하여‘건(健)’이라 하고, 태극이 음을 타는 것은 그 덕을 이름 하여 ‘순(順)’이라 하니, 건(健) 밖에 별도로 태극이 있지는 않다.

양(陽)이 변하여 음(陰)이 되고, 음이 합하여 양이 되어 오행(五行)이 생긴다. 수(水)․화(火)․목(木)․금(金)․토(土)가 두루 하지 않음이 없고, 원(元)․형(亨)․이(利)․정(貞)에 성(性)이 진실로 있지 않음이 없다. 오행은 그 다섯 가지 덕의 여위(輿衛)32)이니, 목(木)․화(火)가 건(健)이 되고, 금(金)․수(水)가 순(順)이 된다. 오행이 두루 유행하여 사시가 순조롭게 펼쳐지고  만물이 생명을 받으니, 형형색색(形形色色)과 분분합합(分分合合)이 태극의 전체가 아님이 없다. 인인(人人), 물물(物物)의 태극이다. 사람과 사물이 형체를 이룸은 통하고 막히는 구별이 있다. 따라서 사람과 사물이 성(性)을 부여받음은 치우침과 온전함의 차이가 있다. 치우침도 또한 한 태극이요, 온전함도 또한 한 태극이다.

사람은 건(健)․순(順), 오상(五常)이 있고, 사물도 건․순 오상이 있다. 그러나 사람은 미루어 갈 수 있지만, 사물은 미루어 갈 수 없다. 따라서 태극도설에서는 다만 인극(人極)으로 이론을 세웠다. 대저 성(性)이 사람에게 있으니, 그 혼연한 것으로부터 말하면 한 이치가 나뉨이 없고, 그 찬연한 것으로부터 말하면 오상이 서로 섞이지 않으니, 하나이면서 다섯 가지가 있음을 해치지 않고, 다섯 가지이면서 하나가 됨을 해치지 않는다.

하나는 태극이 일원이 됨이요, 다섯은 육극(六極)33)이 오덕이 있음이다. 오덕이 아니면 태극이라 이름 붙일 수 없고, 오덕이 아니면 성이라 이름 붙일 수 없다.

하늘이 성을 부여함에 본디 저것은 두텁고 이것은 엷음이 없고, 저것은 많고 이것은 모자람이 없으니, 성인도 또한 이 성이요, 범인(凡人)도 또한 이 성이다.

다만 기가 천성(天性)에 있음으로 인해 이미 순리(淳醨)․승침(升沈)하는 변화가 있기 때문에 사람이 기를 받음에 또한 맑고 흐리고 순수하고 뒤섞인 차이가 있다. 기가 맑고도 순수하면 이 성이 쉽게 나타나서 항상 주인이 되고, 기가 흐리고 뒤섞이면 이 성이 쉽게 가려 도리어 부림을 당하게 된다. 선기(善氣) 상에 있으면 선의 이(理)가 되고, 악기(惡氣) 상에 있으면 악의 이(理)가 된다. 그러나 성은 순선(純善)하면서 악이 없는 것이오, 주인이 되면서 손님이 되지 않는 것이다.

성(性)이 마음에 있을 때에는 동(動)․정(靜)을 다 갖추지만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다. 동(動)도 또한 성의 동이요, 정(靜)도 또한 성(性)의 정이다. 정하면서 온갖 이치가 갖추어지고, 동하면서 온갖 이치가 실행된다. 처음부터 정(靜)함이 있고 동(動)함이 없음이 아니요, 또한 이(理)로부터 비롯하여 기(氣)에서 끝맺음이 아니다.

간혹 성으로부터 말하기를,‘사단(四端) ․ 칠정(七情)’이라 한다. 사단은 이(理)가 경기(經氣)를 타서 곧 바로 쫓아가는 것이요, 칠정은 이(理)가 위기(緯氣)를 타서 가로로 나가는 것이다. 간혹 마음으로부터 말하기를,‘인심(人心) ․ 도심(道心)’이라 하니, 인심은 지각이 형기의 사사로움으로부터 발하는 것이요, 도심은 지각이 의리의 바름으로부터 발하는 것이다. 사단(四端) ․ 칠정(七情)과 인심(人心) ․ 도심(道心)은 모두 성(性)으로부터 발하여 두 갈래가 있는 것이 아니니,‘성(性)이 곧 이(理)’요, 기(氣)가 발한다고 해서는 안 된다.

그 선(善)한 것은 이(理)가 발하여 기(氣)가 이것을 따름이요, 그 악(惡)한 것은 이가 발하나 기가 이것을 가림이다. 이것이 수간(竪看) 설이다. 그 간혹 이(理)가 발했다고 하고, 기(氣)가 발했다고 하는 것은 그 묘맥(苗脈)의 같지 않음을 보고 그 명의(名義)의 서로 주인 됨을 가리키는 것이니, 이것이 곧 횡간(橫看) 설이다. 그 간혹 오로지 기발(氣發)이라고 하는 사람은 그 작용함이 힘이 있는 것을 보고 그 형적의 근거할 만한 것을 가리키는 것이니, 이것이 곧 도간(倒看) 설이다.

수간(竪看)하면 이(理)가 기(氣)에 앞서 있는 것이니 이(理)가 기(氣)의 주인이 되고, 정(靜)이 곧 이(理)의 체(體)이며, 동(動)이 곧 이(理)의 용(用)이다. 횡간(橫看)하면 이(理)․기(氣)가 서로 선후(先後)가 되고 서로 빈주(賓主)가 되어, 어떤 때는 이가 동하고 기가 그 가운데 끼이며, 어떤 때는 기가 동하고 이가 따른다. 도간(倒看)하면 이(理) ․ 기(氣)가 하나가 되어 나뉠 수 없으니, 발출할 때에는 기가 앞서고 이가 뒤서며, 기가 주인이 되고 이가 손님이 되어, 동(動)함도 기요 정(靜)함도 기(氣)여서, 이(理)가 빌려 타는 사물이 된다.

주자(周子)가 도표를 그리고 이론을 세우면서, 오로지 태극의 체용으로써 반복해서 미루어 밝혀 성인이 입극(立極)한 도에 이르렀다. 오성(五性)의 진리(眞理)가 진실로 주인이 되지만 자약(自若)하여 전체(全體)의 대용(大用)이 하나도 모자라거나 빠뜨림이 없으니, 고인이 말한 ‘성인은 한 태극이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주자(朱子)가 이 도표를 해석한 것은 한결 같이 주자(周子)의 뜻을 바탕으로 하여 이것을 미루어 넓힌 것이고, 또한 별도로 한 이론을 세우지 않았다. 그리고 말하기를, ‘조화(調和)의 추유(樞紐)요, 품휘(品彙)의 근저(根柢)’라고 한 것은 이 이(理)가 기(氣)에 앞서 항상 주인이 되는 것을 밝힌 것이다.

‘동(動)은 정성이 통함이요, 정(靜)은 정성이 회복함’이라고 한 것은 사덕(四德)으로 태극의 체용(體用)을 말해서 한결같이 정성으로 일관시킨 것이고, ‘명(命)이 유행하여 그치지 않는다.’는 것은 이 이(理)가 정(情)에 치우치지 않고 동(動)에 체류하지 않은 것을 밝힌 것이다. 스스로 나타나서 있지 않음이 없고, 스스로 은미해서 이미 다 갖춘 것은 이 이(理)가 시종(始終)과 유무(有無)를 관통하는 것을 밝힌 것이다. ‘이전을 유추해 봐도 앞서 그 합함을 보지 못하고, 뒤를 당겨 봐도 그 분리됨을 보지 못한다.’는 것은 깊이 이(理)․기(氣) 두 가지가 서로 뒤섞이지도 않고 서로 떨어지지도 않는 것을 말한 것이다.

제3절은 태극은 본디 가서 존재하지 않음이 없고, 빠지거나 틈이 없는 것을 말했다. 제 4절은 이 세상에는 성(性) 밖의 사물은 없기에 혼연한 태극의 전체가 한 사물 가운데에 각각 갖추어지지 않음이 없음을 말했다. 제5절은 통체(統體)의 한 태극과 각구(各具)의 한 태극의 묘(妙)함을 말했다.

제6절은 사람이 태극의 온전함을 얻고 오성(五性)의 다름이 흩어져 만사가 됨을 말했다. 제 7절은 정(靜)이 성(性)의 정(貞)이 되어 사물에 수작해서 세상의 동(動)함을 한결같이 함을 말했다. 제 8절은 군자가 경(敬)을 주로하고 이치를 밝혀서, 정허(靜虛) 동직(動直)함에 이름을 말했다. 제 9절은 삼재(三才)는 한 태극의 오묘함이요, 인(仁)은 양(陽), 의(義)는 음(陰)으로 도(道)는 한결같음을 밝혔다.

그 마지막 단락에서는 정자(程子)가 성(性)과 천도(天道)를 말한 것이 이 〈태극도설〉에서 유래한 것이 많았으나, 어찌 일찍이 일언반구(一言半句)라도 이(理)․기(氣)는 일물(一物)이어서 이(理)에는 동(動)․정(靜)이 없고 기(氣)만이 홀로 발용(發用) 한다는 뜻을 언급한 적이 있었는가 하였다.

나는[先師] 따라서 이(理)․기(氣)를 논하면서 태극도(太極圖)에 부합하지 않는 것은 모두 도학(倒學)이라고 한다.



 

1) 하늘의 도(道) ~ 한다: 《주역》 〈설괘전(說卦傳)〉 제2장에 나오는 말이다.


2) 처음을 ~ 것이다.: 《주역》 〈계사상전(繫辭上傳)〉 제4장에 나오는 말이다.


3) 천하의 ~ 합한다:  《주역》 〈설괘전(說卦傳)〉 제1장에 나오는 말이다.


4) 신명을 ~ 성대함이다.:  《주역》 〈계사하전(繫辭下傳)〉 제4장에 나오는 말이다.


5) 한주(寒洲): 이진상(李震相: 1818~1866)의 호. 고종(高宗) 때의 학자. 자(字)는 여뢰(汝雷), 본관은 성산(星山). 본 《성학십도부록(聖學十圖附錄)》의 저자 후산(后山) 허유(許愈)의 스승이다.


6) 이자(李子): 퇴계(退溪) 이황(李滉) 선생을 가리킨다.


7) 기명언(奇明彦): 퇴계의 문인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을 말한다. 명언(明彦)의 그의 자(字)이다.


8) 면재 황씨: 송나라 영종(寧宗) 대의 학자 황간(黃幹: 1152~1221)을 가리킨다. 자는 직경(直卿)이며, 면재는 그의 호이다.


9) 이공호(李公浩): 이양중(李養中: 1525~?)을 가리킨다.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 자는 공호(公浩). 퇴계의 문인이다.


10) 한 번 ~ 한다: 아래의 ‘계승하는 것이 선(善)이다.’ ‘갖추어 있는 것이 성(性)이다.’는 말과 함께 모두 《주역》 〈계사상전(繫辭上傳)〉 제5장에 나오는 구절이다.


11) 육구연(陸九淵: 1139~1193): 송(宋) 나라 무주(撫州) 금계(金谿) 사람. 자가 자정(子靜)이고, 호가 상산(象山)이다. 그의 학문은 오로지 일상 생활의 실천에 힘쓰서 학문을 논하는 것을 모두 폐하였고, 돈오(頓悟)를 종지로 삼았다. 주자(朱子)가 “육씨(陸氏)의 종지(宗旨)는 선학(禪學)에서 왔다.”고 비판하였다.


12) 왕수인(王守仁: 1472~1528): 명(明) 나라 유학자. 호가 양명(陽明), 자가 백안(伯安), 절강인(浙江人)이다. 육상상(陸象山)의 학문을 계승하였다.


13) 나정암(羅整菴: 1465~1547): 명(明) 나라 유학자 나흠순(羅欽順). 자가 윤승(允升), 호가 정암(整菴), 강서(江西) 태화인(太和人)이다. 주자(朱子)의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을 반대하고 정명도(程明道)의 훈륜일체설(渾淪一體說)에 따라 기(氣)의 취산(聚散)이 곧 이(理)의 취산이라고 함으로써 기가 본체라고 역설한 기철학자이다. 저서에 《곤지기(困知記)》가 있다.


14) 오징(吳澄: 1249~1333): 원(元) 나라의 유학자. 자가 유청(幼淸), 호가 초려(草廬), 무주(撫州) 숭인(崇仁) 사람이다. 주자(朱子)와 육상상(陸象山)의 학문을 조화시켜려는 주륙절충론(朱陸折衷論)을 주장하였다.


15) 명도(明道):  송(宋) 나라 때의 유학자 정호(程顥)의 호이다.


16) 그 물건 ~ 것이니: 《중용(中庸)》 26장에 나오는 말이다. “천지의 도는 한 마디 말로써 다할 수 있으니, 그 물건 됨이 둘이 아닌지라, 물건을 냄에 측량할 수 없는 것이다.[天地之道, 可一言而盡也, 其爲物不貳, 則其生物不測]”고 하였다.


17) 수(水)의 윤하(潤下) ------ 토(土)의 가색(稼穡): 《서경(書經)》 〈홍범(洪範)〉 오행조(五行條)에 실린 말로, 오행의 성질(性質)을 설명하고 있다. ‘수(水)의 윤하(潤下)’는 물의 적셔주고 또 아래도 내려가는 성질을 말하고, ‘화(火)의 염상(炎上)’은 불의 불타고 또 위로 올라가는 성질을 말하고, ‘목(木)의 곡직(曲直)’은 나무의 굽고 또 곧은 성질을 말하고, ‘금(金)의 종혁(從革)’은 쇠의 그대로 따르고 또 변하는 성질을 말하고, ‘토(土)의 가색(稼穡)’은 흙의 심고 또 거두는 성질을 말한다.


18) 군자(君子)가 ~ 없다.: 《중용(中庸)》 12장에 나오는 말이다.


19) 《주역․계사(상)전》 제5장에, “한 번 양하고 한번 음함을 도라 이르니, 계속하여 함은 선(善)이요, 갖추어 있음은 성(性)이다.”(一陰一陽謂之道, 繼之者善也, 成之者性也)라는 말이 있다.


20) “그 밝음과 그 미묘함은 영명함이 아니면 밝혀지지 않는다(厥彰厥微, 匪靈不瑩)”은 주돈이(周敦頤)가 짓고, 주희(朱熹)가 주석한 《통서해(通書解)》 제22 〈이성명(理性命)〉장 첫 구절에 보인다.


21) 중(中)은 중용(中庸), 정(正)은 올바름, 인(仁)은 어짊, 의(義)는 분별을 옳게함. 성인(聖人)은 태극의 도 곧 동정(動靜)의 덕을 온전히 하여 도를 행하는 것은 중용에 맞게, 처신은 바르게, 마음을 씀은 어질게, 분별은 옳게 함.


22) 《맹자》권11, 〈고자(告子)〉(상)을 보면, “곡망(梏亡)하기를 반복하면 야기(夜氣)가 족히 보존돨 수 없고, 야기가 보존될 수 있으면 금수(禽獸)와 거리가 멀지 않게 된다. 사람들은 금수와 같은 행실만 보고는 일찍이 훌륭한 재질이 있지 않았다고 여기니, 이것이 사람의 정이겠는가?”(梏之反覆, 則其夜氣不足以存. 夜氣不足以存, 則其違禽獸不遠矣. 人見其禽獸也, 而以爲未嘗有才焉者, 是豈人之情也哉)라는 말이 있다.


23) 《맹자》권3, 〈공손추(公孫丑) 상〉에, “자공이 말하기를, 배우기를 싫어하지 않음은 지(智)요, 가르치기를 게을리 하지 않음은 인(仁)이니, 인(仁)하고 또 지(智)하시니, 부자(夫子)는 성인이십니다.”(子貢曰, 學不厭, 智也, 敎不倦, 仁也. 仁且智, 夫子旣聖矣乎)라는 말이 있다.


24) 《중용》 25장에, “성(誠)은 스스로 자기만을 이룰뿐이 아니요, 남을 이루어 주니, 자기를 이룸은 인(仁)이요, 남을 이루어 줌은 지(智)이다. 이는 성(性)의 덕(德)이니, 내외를 합한 도이다. 그러므로 때로 둠에 마땅한 것이다.”(誠者, 非自成己而已也, 所以成物也, 成己, 仁也, 成物, 知也, 性之德也, 合內外之道也, 故時措之宜也)라는 말이 있다.


25) 진덕수(眞德秀: 1178~1235) 자는 경원(景元)․경희(景希),  송나라 효종(孝宗) 연간의 학자, 《서산집(西山集)》 56권이 있다. 


26) ‘원시반종’이라는 말은 《주역》〈계사전(繫辭傳) 상〉 제4장에 보인다. “시작을 근원하여 마침에 돌이켜 연구한다. 그러므로 죽음과 삶의 이론을 알며, 정과 기가 물건이 되고, 혼이 돌아다녀 변(變)이 된다. 이 때문에 귀신의 정상을 아는 것이다.”(原始反終, 故知死生之說, 精氣爲物, 游魂爲變, 是故知鬼神之情狀)라는 말이 있다.


27) 이름은 웅(雄: 기원전 53 ~ 기원 후 18), 후한 때의 학자. 촉군(蜀郡), 성도(成都) 사람이다.


28) 《주역․ 건괘》  〈문언〉에서는, “원은 선의 으뜸이요, 형은 아름다움의 모임이요, 이는 의의 화함이요, 정은 일의 근간이다.”(元者善之長也, 亨者嘉之會也, 利者義之和也, 貞者事之幹也)라는 말이 있다.


29) 네 가지 덕은 《주역․건괘》에 나오는 ‘元․亨․利․貞’을 가리킨다.


30) 《논어․술이(述而)》 “공자께서 평소 늘 말씀하시는 것은 《시》와 《서》와 예를 지키는 것이었으니, 이것이 평소에 늘 하사는 말씀이었다.”(子所雅言, 詩 書 執禮, 皆雅言也)


31) 송나라의 성리학자 장식(張栻: 1133~1180)을 가리킨다. 자는 경부(敬夫), 세칭 남헌(南軒) 선생이라 한다.


32) 주 빠짐.


33) 《서경》 〈홍범(洪範)〉에서는 육극(六極)을, 흉함과 단절(凶短折), 질병(疾), 우환(憂), 가난(貧), 악함(惡),나약함(弱)이라고 했으나, 여기서는 상하와 동․서․남․북 사방을 가리킨다.


 

聖學十圖附錄卷之一

第一太極圖


太極圖說


無極而太極. 太極, 動而生陽, 動極而靜, 靜而生陰, 靜極復動, 一動一靜, 互爲其根, 分陰分陽, 兩儀立焉. 陽變陰合, 而生水火木金土, 五氣順布, 四時行焉. 五行, 一陰陽也, 陰陽, 一太極也, 太極, 本無極也, 五行之生也, 各一其性. 無極之眞, 二五之精, 妙合而凝, 乾道成男, 坤道成女, 二氣交感, 化生萬物, 萬物生生, 而變化無窮焉. 惟人也, 得其秀而最靈, 形旣生矣, 神發知矣, 五性感動而善惡分, 萬事出矣. 聖人, 定之以中正仁義而主靜, 立人極焉, 故聖人, 與天地合其德, 日月合其明, 四時合其序, 鬼神合其吉凶. 君子, 修之, 吉, 小人, 悖之, 凶. 故曰 立天道, 曰陰與陽, 立地之道, 曰柔與剛, 立人之道, 曰仁與羲. 又曰原始反終, 故知死生之說, 大哉易也, 斯其至矣.


朱子曰, 圖說, 首言陰陽變化之原, 其後卽以人所稟受明之. 自惟人也得其秀而最靈, 純粹至善之性也, 是所謂太極也, 形生神發, 則陽動陰靜之爲也, 五性感動, 則陽變陰合而生水火木金土之性也, 善惡分, 則成男成女之象也, 萬物出, 則萬物化生之象也. 至聖人定之以中正仁義而主靜立人極焉, 則又有得乎太極之全體而與天地混合無間矣, 故下文言天地日月四時鬼神四者無不合也. 又曰, 聖人不暇修爲而自然也, 未至此而修之, 君子之所以吉也, 不知此而悖之, 小人之所以凶也. 修之悖之, 亦在乎敬肆之間而已矣, 敬則欲寡而理明, 寡之又寡, 以至於無, 則靜虛動直, 而聖可學矣.

○右濂溪周子自作圖幷說. 平巖葉氏謂此圖卽繫辭易有太極, 是生兩儀, 兩儀生四象之義而推明之. 但易以卦爻言, 圖以造化言. 朱子謂此是道理大頭腦處. 又以爲百世道術淵源. 今玆首揭此圖, 亦猶近思錄以此說爲首之意, 蓋學聖人者, 求端自此, 而用力於小大學之類, 及其收功之日, 而遡極一源, 則所謂窮理盡性而至於命, 所謂窮神知化德之盛者也.


附錄


(朱子圖解)

○此所謂無極而太極也, 所以動而陽靜而陰之本體也. 然非有以離乎陰陽也, 卽陰陽而指其本軆不雜乎陰陽而爲言爾. ■此○之動而陽靜而陰也. 中○者, 其本體也, ■者, 陽之動也, ○之用所以行也, ■者, 陰之靜也, ○之軆所以立也, ■者, ■之根也, ■者, ■之根也. ■此陽變陰合而生水火木金土也. ■者, 陽之變也, ■者, 陰之合也. ■, 陰盛, 故居右, ■, 陽盛, 故居左, ■, 陽穉, 故次火, ■, 陰穉, 故次水, ■, 冲氣, 故居中, 而水火之■, 交系于上, 陰根陽, 陽根陰也. 水而木, 木而火, 火而土, 土而金, 金而復水, 如環無端, 五氣布, 四時行也. ○■, 五行一陰陽, 五殊二實, 無餘欠也, 陰陽一太極, 精粗本末, 無彼此也, 太極本無極, 上天之載, 無聲臭也, 五行之生各一其性, 氣殊質異, 各一其○, 無假借也. ■此無極二五, 所以妙合而無間也. ○乾男坤女, 以氣化者言也, 各一其性, 而男女一太極也. ○萬物化生, 以形化者言也, 各一其性, 而萬物一太極也.此以上, 引說解剝圖體, 此以下, 據圖推盡說意. 惟人也得其秀而最靈, 則所謂人○者, 於是乎在矣. 然, 形, ■之爲也, 神, ■之發也, 五性, ■之德也, 善惡, 男女之分也, 萬事, 萬物之象也, 此, 天下之動, 所以紛綸交錯, 而吉凶悔吝, 所由以生也. 惟聖人者, 又得夫秀之精一, 而有以全乎○之體用者也. 是以, 一動一靜, 各臻其極, 而天下之故常, 感通乎寂然不動之中, 盖中也仁也感也, 所謂■也, ○之用所以行也, 正也義也寂也, 所謂■也, ○之體所以立也. 中正仁義, 渾然全體, 而靜者, 常爲主焉, 則人○, 於是乎立, 而○■■, 天地日月四時鬼神, 有所不能違矣. 君子之戒愼恐懼, 所以修此而吉也, 小人之放辟邪侈, 所以悖此而凶也. 天地人之道, 各一○也, 陽也剛也仁也, 所謂■也, 物之始也,陰也柔也義也, 所謂■也, 物之終也, 此所謂易也, 而三極之道立焉, 實則一○也, 故曰易有太極, ■之謂也.

先師寒洲李氏, 曰第一圈○, 其體外圓而中虛, 圓, 所以狀此理之無方也, 虛, 所以狀此理之無形也. 第二圈, 分書陽動陰靜, 圖說, 則曰太極, 動而生陽, 靜而生陰, 圈解, 合說■, 而太極之動而陽靜而陰, 分說■■, 而曰陽之動陰之靜. 分合之間, 主意自別, 陰陽, 則極■在中, 五行, 則極■著外者, 蓋以陰陽成象, 其理之體, 冲漠於中, 故極■在中, 五行成質, 其理之用, 發見於外, 故極○著外. 又曰五殊二實無餘欠, 氣質之交運也, 精粗本末無彼此, 理氣之無間也. 然, 五殊二實, 主乎質而言也, 精粗本末, 主乎氣而言也.


(朱子說解)

無極而太極 上天之載, 無聲無臭, 而實造化之樞紐, 品彙之根柢也. 故曰無極而太極, 非太極之外, 復有無極也.

朱子, 曰原極之所以得名, 蓋取樞紐之義, 聖人, 謂之太極者, 所以指夫天地萬物之根也. 周子, 因之, 而又謂之無極者, 所以著夫無聲無臭之妙也. ○ 無極而太極, 正謂無此形象而有此道理耳. ○非如皇極民極屋極之有方所形象, 而但有此理至極耳. ○ 勉齋黃氏, 曰極之義, 雖訓爲至, 而實則以有方所形象而得名也, 如北極皇極爾極民極之義, 皆取諸此. 周子有見於此, 恐人未免滯於方所形象, 而失聖人取喩之義, 故爲之言, 曰無極而太極, 蓋其措辭之法, 猶曰無形而至形, 無方而大方, 欲人知夫非有是極, 而謂之太極, 亦特託於極, 而明理耳. 又, 曰太極本無極也, 蓋謂之極, 則有方所形象矣, 故又反而言之, 謂無極, 後之讀者, 字義不明, 以中訓極, 己失之, 而又不知極字但爲取喩, 而遽以理言, 故不惟理不可無, 於周子無極之語, 有所難通, 且太極之爲至理, 其辭己足, 加以無極, 誠似贅矣. 因見象山論無極書, 不能察此, 而輒肆麤辯, 爲之竊歎, 著其說如此. ○ 李子答奇明彦書, 曰無極而太極, 此一段釋語, 近亦方知愚見之誤. 蓋前來, 不屑徧考諸儒說, 只循己見, 以極字直作理字看, 妄謂當其說無極時, 但謂無是形耳, 豈無是理之謂乎. 故一向以諸君之釋爲非, 曾得寫寄吳草廬說, 亦不甚虛心細看, 其後, 屢蒙左右及他朋友警發之敎, 乃始歷檢諸先儒說, 其中如黃勉齋說, 最爲詳盡. 又答李公浩書, 曰上極, 是假借有形之極, 下極, 是指名無形之理. ○ 先師, 曰訓極爲至, 則礙於無極, 訓極爲窮, 則礙於太極. 竊意古時, 極字多作形用, 如朱子所引屋極北極, 北溪所謂根極樞極, 是也. 孔子, 則借有形而說無形, 謂之太極, 周子, 則恐人之不察, 看作一物也, 故輒加無極二字, 其意, 若曰無其極而甚是極, 勉齋所謂無形而至形, 無方而大方. 或謂如是, 則太極, 反涉於形象方所, 然太極, 雖無形象, 而凡物之有形象者, 莫不根柢於此, 太極, 雖無方所, 而凡物之有方所者, 莫不樞紐於此, 則至形者, 元無形也, 大方者, 元無方也, 太極者, 本無極也.


太極動而生陽止兩儀立焉 太極之有動靜, 是天命之流行也, 所謂一陰一陽之謂道, 誠者, 聖人之本, 物之終始, 而命之道也. 其動也, 誠之通也, 繼之者善, 萬物之所資以始也, 其靜也, 誠之復也, 成之者性, 萬物各正其性命也, 動極而靜, 靜極復動, 一動一靜, 互爲其根, 命之所以流行而不已也, 動而生陽, 靜而生陰, 分陰分陽, 兩儀立焉, 分之所以一定而不移也. 蓋太極者, 本然之妙也, 動靜者, 所乘之機也, 太極, 形而上之道也, 陰陽, 形而下之器也. 是以, 自其著者而觀之, 則動靜不同時, 陰陽不同位, 而太極, 無不在焉, 自其微者而觀之, 則沖漠無朕, 而動靜陰陽之理, 已悉具於其中矣. 雖然, 推之於前, 而不見其始之合, 引之於後, 而不見其終之離也, 故, 程子, 曰動靜無端, 陰陽無始, 非知道者, 孰能識之. 朱子, 曰動而生陽, 靜而生陰, 動卽太極之動, 靜卽太極之靜, 動而後生陽, 靜而後生陰, 生此陰陽之氣, 謂之動而生靜而生, 則有漸次也. ○ 問, 太極, 理也, 理, 如何動靜. 有形則有動靜, 太極無形, 恐不可以動靜言. 朱子, 曰理有動靜, 故氣有動靜, 若理無動靜, 則氣何自而有動靜乎. ○ 靜者, 性之所以立也, 動者, 命之所以行也. 然其實, 則靜亦動之息爾, 故一動一靜, 蓋命之行, 而行乎動靜者, 乃性之眞也, 故, 曰天命之性. ○ 無極者, 只是說當初元無一物, 只是有此理而已. 這箇道理, 便會動而生陽, 靜而生陰. ○ 程子, 曰動靜者, 陰陽之本. 朱子, 曰此全用圖意. ○ 勉齋黃氏, 曰太極, 不是會動靜底物. 動靜, 陰陽也, 太極, 乘著動機, 便動, 乘著靜機, 便靜. 那太極, 却不自會動靜, 旣是陰陽, 如何又說生陰生陽. 曰生陰生陽, 亦猶陽生陰生, 太極, 隨陰陽而爲動靜, 陰陽, 則於動靜而見其生, 不是太極在這邊動, 陽在那邊生, 譬如蟻在磨盤上一般, 磨動, 則蟻隨他動, 磨止, 則蟻隨他止, 蟻隨磨轉, 而因蟻之動靜, 可以見磨之動靜. ○ 李子, 曰勉齋說, 不必如此也, 何者. 理自有用, 故自然而生陽生陰也. ○ 先師, 曰勉齋此說, 於周子本說, 不啻氷炭. 周子, 曰太極動而生陽, 今以動靜爲陰陽, 則動而生陽, 反爲陽而陽生, 靜而生陰, 反爲陰而陰生, 此果何理. 以蟻比太極, 以磨盤比陰陽, 尤見局理通氣之甚, 而因蟻動靜可見磨盤動靜者, 反似因太極之動靜, 見陰陽之動靜, 自相矛盾, 甚矣. 勉齋之論動中有靜靜中有動之體, 動而能靜靜而能動之用處, 深契於大原, 而反有此說, 抑其未定于一者歟.

臨川吳氏, 曰太極無動靜, 動靜者, 氣機也. 氣機一動, 則太極亦動, 氣機一靜, 則太極亦靜. 又曰太極者, 本然之妙也, 動靜者, 所乘之機也, 機猶弩牙, 機動, 則弦發, 機靜, 則弦不發, 氣動, 則太極亦動, 氣靜, 則太極亦靜, 太極之乘此氣, 猶弩弦之乘機. ○ 先師, 曰禪家, 以理爲障, 而欲求無理之地, 不得已歸之於空無一法, 而陸九淵, 改頭換面, 謂陰陽便是道, 謂太極陰陽, 不可分道器, 王守仁, 以眞陰眞陽爲天理, 羅整庵, 又以理氣爲一物, 禪家宗旨, 本自如此, 而吳澄, 則陷禪之尤者也, 不足深辨.

問一陰一陽之謂道, 是太極否. 朱子, 曰陰陽只是陰陽, 道是太極, 蓋所以一陰一陽者也. ○ 誠者, 物之始終, 却是事物之實理, 始終無有間斷, 自開闢以來, 以至人物消盡, 只是如此, 在人之心, 苟誠實無僞, 則徹頭徹尾, 無非此理, 一有間斷處, 卽非誠矣. 凡有一物, 則其成也, 必有所始, 其壞也, 必有所終, 而其所以始者, 實理之至, 而向於有也, 其所以終者, 實理之盡, 而向於無也, 此誠所以爲物之終始. ○ 元亨, 誠之通也, 動也, 利貞, 誠之復, 靜也. 元者, 動之端也, 本乎靜, 貞者, 靜之質也, 著乎動. 一動一靜, 循環無窮, 而貞也者, 萬物之所以成終而成始者也, 故人雖不能不動, 而立人極者, 必主乎靜. 惟主乎靜, 則其著乎動也, 無不中節, 不失其本然之靜, 繼之者善, 是動處, 成之者性, 是靜處, 繼之者善, 是流行出來, 成之者性, 則各自成箇物事, 繼善, 便是元亨, 成性, 便是利貞, 及至成之者性, 各自成箇物事. ○ 問, 太極解, 何以先動而後靜, 先體而後用, 先感而後寂. 曰, 在陰陽言, 則用在陽, 而體在陰, 然動靜無端, 陰陽無始, 不可分先後. 今此只是就起處言之, 畢竟動前, 又是靜, 用前, 又是體, 感前, 又是寂, 陽前, 又是陰, 而寂前, 又是感, 靜前, 又是動, 將何者爲先後. 不可只道今日動, 便爲始, 而昨日靜, 更不說也. 如鼻息, 言呼吸, 則辭順, 不可道呼吸, 畢竟呼前, 又是吸, 吸前, 又是呼. ○ 動極復靜, 靜極復動, 還當把那箇做劈初頭始得. 今說太極動而生陽, 是且把眼前卽今箇動斬截便說起, 其實, 那動以前, 又是靜, 靜以前, 又是動. 如今日一晝過了, 便是夜, 夜過了, 又只是明日晝, 卽今晝以前, 又有夜了, 昨夜以前, 又有晝了. 卽今要說時日起, 也只是把今日建子說起, 其實, 這箇子以前, 豈是無子. ○ 問, 陰陽, 氣也, 何以謂形而下者. 曰, 旣曰氣, 便是有箇物事, 此謂形而下者. ○ 問, 明道, 云陰陽, 亦形而下者, 而曰道. 只此兩句, 截得上下分明, 截字, 莫作斷字誤. 曰, 正是截字. 形而上形而下, 只就形處, 離合分明, 此正是界至處. 若只說作在上在下, 便成兩截矣. ○ 問, 動靜者, 所乘之機. 曰機氣機也. 又, 曰機是關棙子, 踏著動底機, 便挑發得那靜底, 踏著靜底機, 便挑發得那動底. ○ 某, 向以太極爲體, 動靜爲用, 其言, 固有病. 後已斷之, 曰太極者, 本然之妙也, 動靜者, 所乘之機也, 此則庶幾近之. ○ 先師, 曰圖說解, 先說太極之有動靜, 乃天命之流行, 動者, 誠之通, 靜者, 誠之復, 此則合說也. 更言太極者, 本然之妙, 動靜者, 所乘之機, 太極者, 形而上之道, 陰陽者, 形而下之器, 此則對說也. 竪看生處, 則太極爲主, 故言命言誠, 不說到氣邊, 橫看分處, 則陰陽相對, 而太極無不在焉, 故兼氣立說. 所謂本然之妙, 卽第一圈解所以動而陽靜而陰之本體也, 所謂所乘之機, 卽第二圈解此極之動而陽靜而陰者也, 所謂形而上之道, 卽第一圈解不雜乎陰陽而爲言者也, 所謂形而下之器, 卽第二圈解陽之動陰之靜者也. 又, 曰動於生陽之際, 而動爲陽之機, 靜於生陰之際, 而靜爲陰之機. 機者, 指其流行之始而陰陽之本也.


陽變陰合止四時行焉 有太極, 則一動一靜而兩儀分, 有陰陽, 則一變一合而五行具. 然五行者, 質具於地, 而氣行於天者也, 以質而語其生之序, 則水火木金土, 而水木, 陽也, 火金, 陰也, 以氣而語其行之序, 則曰木火土金水, 而木火, 陽也, 金水, 陰也. 又統而言之, 則氣陽而質陰也, 又錯而言之, 則動陽而靜陰也. 盖五行之變, 至於不可窮, 然無適而非陰陽之道, 至其所以爲陰陽者, 則又無適而非太極之本然也, 夫豈有所虧欠間隔哉.

問, 以質而語其生之序, 此豈就圖而指其生之序耶. 而水木, 何以謂之陽, 火金, 何以謂之陰. 曰天一生水, 地二生火, 天三生木, 地四生金, 一三, 陽, 二四, 陰也. 問, 以氣而語其行之序, 則木火土金水, 此豈卽其運用處而言之耶. 而木火, 何以謂之陽, 金水, 何以謂之陰. 曰此以四時而言, 春夏, 爲陽, 秋冬, 爲陰. ○ 問, 以質而語其生之序, 不是相生否. 只是陽變而助陰, 故生水, 陰合而陽盛, 故生火, 木金, 各從其類, 故在左右. 曰水陰, 根陽, 火陽, 根陰, 錯綜而生, 其端, 是天一生水, 地二生火, 天三生木, 地四生金, 到得運行處, 便水生木, 木生火, 火生土, 土生金, 金又生水, 水又生木, 循環相生, 又如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 都是這物事. ○ 勉齋黃氏, 曰太極圖解, 有一處可疑. 圖以水陰盛, 故居右,  火陽盛, 故居左, 金陰穉, 故次水, 水陽穉, 故次火, 此是說生之序, 下文, 却說水木陽也, 火金陰也, 却以此爲陽彼爲陰. 又, 曰五行, 生之序, 則曰水火木金土, 行之序, 則曰木火土金水, 何故, 造化, 却有此兩樣看來. 只是一理, 生之序, 便是行之序. 原初只是一箇水, 水煖後, 便成火, 此兩箇是母, 木者, 水之子, 金者, 火之子. 又, 曰五行, 有生數, 有行數, 又是一樣, 其爲物不貳, 則生物不測, 簡易之義, 恐不如此, 故嘗疑其只是一樣. 及以造化之本原參之, 人物之生育, 初無兩樣, 只是水木火金土, 便是次第, 古人欲分別造化之殊, 故以水火木金土爲言耳. 自一至十之數, 特言奇耦多寡耳, 非謂次第如此也. 果以次第而言之, 則一生水而未成水, 必至五行俱足, 猶待第六而後成水, 二生火而未成火, 必待五行俱足, 又成了水然後, 第七而後成火耶. 如此, 全不成造化, 亦不成義理矣. 又, 曰五行之序, 某欲作三句斷之, 曰論得數奇耦多寡, 則曰水火木金土, 論始生之序, 則曰水木火金土, 論相生之序, 則曰木火土金水, 如此, 則其庶幾乎. ○ 李子, 曰以生出言, 水, 陽穉, 木, 陽盛, 火, 陰穉, 金, 陽盛, 以運行言, 木, 陽穉, 火, 陽盛, 金, 陰穉, 水, 陰盛, 各有一理. 今圖解所謂, 似是生出之妙而云云, 故勉齋以爲可疑, 若轉作行之序看, 則無可疑矣. ○ 先師, 曰圖說解所謂以氣而語其行之序, 則曰木火土金水, 而木火陽, 金水陰, 是也. 以水木陽火金陰之說推之, 則水爲陽, 穉木爲陽, 盛火爲陰, 穉金爲陰, 盛之義, 在其中矣, 以木火陽金水陰之說推之, 則木爲陽, 穉 火爲陽, 盛金爲陰, 穉水爲陰, 盛之義, 在其中矣. 勉齋, 但守質生之序, 而不察氣行之妙, 但明生出之本, 而不究變合之機, 所以始不信師說, 而終悟其說之非者也. 水火軆虛, 金木確然, 乃朱子語, 以氣之穉盛而言, 非謂陰陽裏面, 包藏得有形軆之五行也. 勉齋改定說, 今見註中. 勉齋, 曰五行之序, 以質之所生而言, 則水本是陽之濕氣, 以其初動, 爲陰所陷, 而不得遂, 故水陰勝, 火本是陰之燥氣, 以其初動, 爲陽所掩, 而不得達, 故火陽勝. 盖生之者, 微, 成之者, 盛, 生之者, 形之始, 成之者, 形之終也. 然各以偏勝也, 故雖有形, 而未成質, 以氣升降, 土不得 而制焉, 木, 則陽之濕氣寢多, 以感於陰而舒, 故發而爲木, 其質柔, 其性煖, 金, 則陰之燥氣寢多, 以感於陽而縮, 故結而爲金, 其質剛, 其性寒, 土, 則陰陽之氣各盛, 相交相博, 凝而成質, 以氣之行而言, 則一陰一陽, 往來相代, 木火金水, 各就其中, 而分老少耳, 故其序, 各由少而老, 土則分旺四季, 而位居中者也. 此五者, 序若參差, 而造化所以爲發育之具, 實並行而不相悖. 盖質則陰陽交錯, 凝合而成, 氣則陰陽兩端, 循環不己. 質曰水火木金, 盖以陰陽相間言, 猶曰東西南北, 所謂對待者也, 氣曰木火金水, 盖以陰陽相因言, 猶東南西北, 所謂流行者也. 質, 一定而不易, 氣, 變化而無窮也.


五行一陰陽止各一其性 五行具, 則造化發育之具, 無不備矣, 故又卽此而推本之, 以明其渾然一軆, 莫非無極之妙, 而無極之妙, 亦未嘗不各具於一物之中也. 盖五行異質, 四時異氣, 而皆不能外乎陰陽, 陰陽異位, 動靜異時, 而不能離乎太極, 至於所以爲太極者, 又初無聲臭之可言, 是性之本軆然也. 天下, 豈有性外之物哉. 然五行之生, 隨其氣質, 而所稟不同, 所謂各一其性也. 各一其性, 則渾然太極之全體, 無不各具於一物之中, 而性之無所不在, 又可見矣.

問, 各一其性, 固是指五行之氣質. 然水之潤下, 火之炎上, 木之曲直, 金之從革, 土之稼穡, 此但見其氣質之性, 所稟不同, 却如何見得太極之全體, 無不各具於一物之中, 而性之無不在也. 朱子, 曰氣質, 是陰陽五行所爲, 性, 卽太極之全體, 但論氣質之性, 則此全體, 墮在氣質之中, 非別爲一性也. 又問傳文, 云五行之生, 隨其氣質, 而所稟不同, 所謂各一其性也. 這性字, 當指氣而言, 各一其性, 則渾然太極之全體, 無不具於一物之中, 而性之無所不在, 又可見矣. 這性字當指理而言, 一段之間, 文義頗不相合, 恐讀者莫知所適從. 曰陰陽五行之爲性, 各是一氣所稟, 而性則一也. ○ 先師, 曰五行之生也, 各一其性, 或以爲本然之性, 或以爲氣質之性, 然本然氣質, 本非兩性, 在乎人見之如何耳. 今曰五行之生, 則氣殊質異之義著矣, 曰各, 則性之因氣而異者著矣, 曰一, 則性之卽理而同者著矣. 曰渾然太極之全體, 則以同者言也, 曰各具於一物之中, 則以異者言也. 於此, 兼氣看, 則爲氣質之性, 從理看, 則爲本然之性, 蓋其同其異, 莫非此性之本然, 而但立言之際, 與夫天命之謂性云者, 微有異焉, 故程張, 因之而說出氣質之性耳.


無極之眞止變化無窮焉 夫天下無性外之物, 而性無不在, 此無極二五所以混融而無間者也, 所謂妙合者也. 眞, 以理言, 无妄之謂也, 精, 以氣言, 不二之名也, 凝者, 聚也, 氣聚而成形也. 盖性爲之主, 而陰陽五行, 爲之經緯錯綜, 又各以類凝聚而成形焉. 陽而健者, 成男, 則父之道也, 陰而順者, 成女, 則母之道也. 是人物之始, 以氣化而生者也. 氣聚成形, 則形交氣感, 遂以形化, 而人物生生, 變化無窮矣. 自男女而觀之, 則男女各一其性, 而男女一太極也, 自萬物而觀之, 則萬物各一其性, 而萬物一太極也. 蓋合而言之, 萬物, 統體一太極也, 分而言之, 一物, 各具一太極也, 所謂天下無性外之物, 而性無不在者, 於此, 尤可以見其全矣. 子思, 曰君子語大, 天下莫能載焉, 語小, 天下莫能破焉, 此之謂也.

問, 無極之眞, 不言太極, 如何. 朱子曰, 無極之眞, 已該得太極在其中, 眞字便是太極. ○ 無極是理, 二五是氣, 無極之理, 便是性, 性爲之主, 而二氣五行, 經緯錯綜於其間也. 凝, 只是此氣結聚, 自然生物, 若不如此結聚, 亦何由造化得萬物出來. ○ 先師曰, 世以妙合二字, 看作理氣妙合, 然此妙合二字, 元非理氣不相離之名, 乃指乾坤氣化之初, 氤氳交媾之妙. 語類曰, 妙合之始, 便是繼, 如人在胞胎中, 若以理氣之相涵爲妙合, 則妙合豈有始乎.


惟人也萬事出矣 此言衆人具動靜之理, 而常失之於動也. 蓋人物之生, 莫不有太極之道焉. 然陰陽五行, 氣質交運, 而人之所稟, 獨得其秀. 故其心爲最靈, 而有以不失其性之全, 所謂天地之心, 而人之極也. 然形生於陰, 神發於陽, 五常之性, 感物而動, 而陽善陰惡, 又以類分, 而五性之殊, 散爲萬事, 蓋二氣五行, 化生萬物, 其在人者, 又如此. 自非聖人全軆太極有以定之, 則欲動情勝, 利害相攻, 人極不立, 而違禽獸不遠矣.

問, 人物皆稟天地之理以爲性, 皆受天地之氣以爲形, 若人稟之不同, 固是氣有昏明厚薄之異, 若在物言之, 不知是所稟之理, 便有不全耶. 亦是緣氣稟之昏蔽, 故如此耶. 朱子曰, 惟其所受之氣, 只有許多, 故其理亦只有許多, 如犬馬形氣如此, 故只會得如此事. ○ 只一箇陰陽五行之氣, 兗在天地中, 精英者爲人, 査滓者爲物, 精英之中又精英者, 爲聖爲賢, 精英之中 査滓者, 爲愚不肖. ○ 有有血氣知覺者, 人獸是也, 有無血氣知覺, 而但有生氣者, 草木是也, 有生氣已絶, 而但有形質臭味者, 枯槁是也. 是雖其分之殊, 而其理則未嘗不同. 但以其分之殊, 則其理之在是者, 不能不異, 故人爲最靈, 而備有五常之性, 禽獸則昏而不能備, 草木枯槁, 則又並與其知覺者而無焉. 但其所以爲是物之理, 則未嘗不具耳. ○ 以氣言之, 則知覺運動, 人與物若不異也, 以理言之, 則仁義禮智之稟, 豈物之所得而全哉. 此人之性, 所以無不善, 而爲萬物之靈也. ○ 問, 五性感動而善惡分, 曰天地之性, 是理也. 纔到有陰陽五行處, 便有氣質之性, 於此便有昏明厚薄之殊, 得其秀而最靈, 乃氣質以後之事. ○ 問, 感物而動, 或發於理義之公, 或發於血氣之私, 這裏便分善惡. 北溪陳氏曰, 非發於血氣之私便爲惡, 乃發後流而爲惡耳. ○ 先師曰, 惟人也, 得其秀而最靈, 這靈字, 朱子圖解, 以心言, 而又以純粹至善之性當之, 何歟. 竊意, 心性非二到, 從心爲太極處說, 則最靈固是心. 然心之所以最靈者, 以其性爲之軆也, 所以又謂之純粹至善之性, 由是觀之, 謂之心者, 初非兼氣說, 而謂之靈者, 實對乎氣之秀也. 通書匪靈不瑩註, 亦以靈字當太極.


聖人定之以中正仁義而主靜聖人之道仁義中正而己矣, 而主靜無欲故靜立人極焉. 故聖人止合其吉凶 此言聖人全動靜之德, 而常本之於靜也. 蓋人稟陰陽五行之秀氣以生, 而聖人之生, 又得其秀之秀者. 是以其行之也中, 其處之也正, 其發之也仁, 其裁之也義, 蓋一動一靜, 莫不有以全夫太極之道而無所虧焉, 則向之所爲欲動情勝利害相攻者, 於此乎定矣. 然靜者, 誠之復而性之貞也.苟非此心寂然無欲而靜, 則又何以酬酢事物之變, 而一天下之動哉. 故聖人中正仁義, 動靜周流, 而其動也必主乎靜, 此其所以成位乎中, 而天地日月四時鬼神有所不能違也. 蓋必軆立而後用有以行, 若程子論乾坤動靜, 而曰不專一則不能直遂, 不翕聚則不能發散, 亦此意爾.

問, 聖人定之以中正仁義而主靜. 朱子曰, 此是聖人修道之謂敎處. ○ 性之分, 雖屬乎靜, 而其蘊則該動靜而不偏, 故以靜言性則可. 遂以靜字形容天地之妙則不可. ○ 問, 不言禮智而言中正, 如何. 曰謂之禮, 或有不中節處. 謂之中, 則無過不及, 無非禮之禮, 乃節文恰好處. 謂之智, 或有正不正, 若謂之正, 則是非端的分明, 乃智之實也. ○ 主靜, 看夜氣一章可見. ○ 或說江西所說主靜, 不消主這靜, 只我這裏動也靜, 靜也靜, 曰, 若如其言, 天自春了夏, 夏了秋, 秋了冬, 自然如此, 也不須要裁成輔相始得. ○ 問, 智者動,仁者靜, 如圖說, 則智爲靜, 仁爲動. 曰, 這物事直看一樣, 橫看一樣, 子貢說學不厭爲智, 敎不倦爲仁, 子思却言成己爲仁, 成物爲智. 仁固有安靜意思, 然施行却有運用之意. ○ 先師曰, 中正仁義, 皆於動處言之, 而仁行禮通, 故中仁爲動中之動, 義收智藏, 故正義爲動中之靜. 聖人定性之道, 靜亦靜, 動亦靜, 故有主靜之義, 非於動靜相對之處, 厭動而求靜也. 後人, 反以未發之靜看此語, 而主靜之工, 反疑於偏, 非周子之本旨, 聖人之心常定也. 故能定人立極, 所以定人也.


君子修之吉, 小人悖之凶 聖人太極之全軆, 一動一靜, 無適而非中正仁義之極, 蓋不假修爲而自然也. 未至此而修之, 君子之所以吉也, 不知此而悖之, 小人之所以凶也. 修之悖之, 亦在乎敬肆之間而己矣. 敬則欲寡而理明, 寡之又寡以至於無, 則靜虛動直而聖可學矣.

朱子曰, 以事言, 則有動有靜, 以心言, 則周流貫徹, 其工夫初無間斷, 但以靜爲本耳. 周子所謂主靜, 亦是此意. 但言靜則偏, 故程子只說敬. ○ 南軒張氏曰, 君子修之吉者, 順理之謂吉也. 小人悖之凶者, 逆理之謂凶也. 順理則平直坦易而無悔, 非吉乎. 逆理則艱難險阻而有礙, 非凶乎. ○ 西山眞氏曰, 朱子嘗謂聖人定之以中正仁義而主靜, 要人靜定其心, 自作主宰. 程子又恐只管靜去, 與事物不相交涉, 却說箇敬.


故曰立天之道止死生之說 陰陽成象, 天道之所以立也. 剛柔成質, 地道之所以立也. 仁義成德, 人道之所以立也. 道一而己. 隨事著見, 故有三才之別, 而於其中, 又各有軆用之分焉. 其實則一太極也. 陽也, 剛也, 仁也, 物之始也. 陰也, 柔也, 義也, 物之終也. 能原其始而知所以生, 則反其終而知所以死矣. 此天地之間, 綱紀造化流行古今不言之妙, 聖人作易, 其大意蓋不出此, 故引之以證其說.

朱子曰, 陰陽以氣言, 剛柔則有形質可言, 至仁與義, 則又合氣與形, 而理具焉. 然亦一而己. 蓋陰陽者, 陽中之陰陽也, 柔剛者, 陰中之陰陽也. 仁義者, 陰陽合氣, 剛柔成質, 而是理始爲人道之極也. 然仁爲陽剛, 義爲陰柔, 或問揚子雲云, 君子於仁也柔, 於義也剛, 蓋取其相濟而相爲用之意, 曰, 仁體剛而用柔, 義體柔而用剛. ○ 仁存諸心, 性之所以爲體也. 義制乎事, 性之所以爲用也. 體用又有說焉, 以性言之則皆體也, 以情之則皆用也. 以陰陽言之, 則義體而仁用也. 以存心制事言之, 則仁體而義用也. 錯綜交羅, 惟其所當, 而莫不有條理存焉. ○ 問, 原始反終, 故知死生之說. 曰, 只是原其始之理, 將後面摺轉來看便見得, 以此之有, 知彼之無.


大哉易也, 斯其至矣 易之爲書, 廣大悉備, 然語其至極, 則此圖盡之, 其指豈不深哉. 抑嘗聞之, 程子昆弟之學於周子也, 周子手是圖以授之, 程子言性與天道多出於此, 然卒未嘗明以此圖示人, 是則必有微意焉, 學者亦不可以不知也.

朱子曰, 大哉易也, 只易言陰陽剛柔仁義, 及言原始反終, 故知死生之說而止. 人之生死, 亦只陰陽之氣屈伸往來耳.


論曰, 愚旣爲此說, 讀者病其分裂己甚, 辯詰紛然, 苦於酬應之不給也. 故總而論之. 大抵難者, 或謂不當以繼善成性分陰陽, 或謂不當以太極陰陽分道器, 或謂不當以仁義中正分軆用, 或謂不當言一物各具一太極, 又有謂軆用一源, 不可言體立以後用行者, 又有謂仁爲統體, 不可偏指爲陽動者, 又有謂仁義中正之分, 不當反其類者, 是數者之說, 亦皆有理.  然惜其於聖賢之意, 皆得其一而遺其二也. 夫道體之全, 渾然一致, 而精粗本末內外賓主之分, 粲然於其中, 有不可以亳釐差者, 此聖賢之言, 所以或離或合, 或異或同, 而乃所以爲道體之全也. 今徒知所謂渾然者之爲大而樂言之, 而不知夫所謂粲然者之未始相離也. 是以信同疑異, 喜合惡離, 其論每陷於一偏, 卒爲無星之稱, 無寸之尺而己, 豈不誤哉. 夫善之與性, 不可謂有二物明矣. 然繼之者善, 自其陰陽變化而言也, 成之者性, 自夫人物禀受而言也. 陰陽變化流行而未始有窮, 陽之動也, 人物禀受一定而不可復易, 陰之靜也, 以此辨之, 則亦安得無二者之分哉. 然性善, 形而上者也, 陰陽, 形而下者也. 周子之意, 亦豈直指善爲陽, 而性爲陰哉. 但語其分, 則以爲當屬之此耳. 陰陽太極, 不可謂有二理必矣. 然太極無象而陰陽有氣, 則亦安得而無上下之殊哉. 此其所以爲道器之別也. 故程子曰, 形而上爲道, 形而下爲器, 須著如此說, 然器亦道也, 道亦器也, 得此意而推之, 則庶乎其不偏矣. 仁義中正, 同乎一理者也, 而析爲體用, 誠若有未安者. 然仁者善之長也, 中者嘉之會也, 義者利之宜也, 正者貞之軆也, 而元亨者誠之通也, 利貞者誠之復也. 是則安得爲無體用之分哉. 萬物之生, 同一太極者也, 而謂其各具, 則亦有可疑者. 然一物之中, 天理完具, 不相假借, 不相陵奪, 此統之所以有宗, 會之所以有元也. 是則安得不曰各具一理哉. 若夫所謂體用一源者, 程子之言蓋已密矣. 其曰體用一源者, 以至微之理言之, 則冲漠無眹而萬象昭然其具也. 其曰顯微無間者, 以至著之象言之, 則卽物而此理無乎不在也, 言理則先體而後用, 蓋擧體而用之理己具, 是所以爲一源也. 言事則先顯而後微, 蓋卽事而理之體可見, 是所以爲無間也. 然則所謂一源者, 豈漫無精粗先後之可言哉. 况旣曰, 體立而後用行, 則亦不嫌於先有此而後有彼矣. 所謂仁爲統體者, 則程子所謂專言之而包四者是也. 然其言蓋曰四德之元, 猶五常之仁. 偏言則一事, 專言則包四者, 則是仁之所以包夫四者, 固未嘗離夫偏言之一事, 亦未有不識夫偏言之一事, 而可以驟語夫專言之統軆者也. 况此圖以仁配義, 而復以中正參焉, 又與陰陽剛柔爲類, 則亦不得爲專言之矣. 安得遽以夫統體者言之, 而昧夫陰陽動靜之別哉. 至於中之爲用, 則以無過不及者言之, 而非指所謂未發之中也, 仁不爲體, 則亦以偏言一事者言之, 而非指所謂專言之仁也. 對此而言, 則正者所以爲中之榦, 而義者所以爲仁之質, 又可知矣. 其爲軆用, 亦豈爲無說哉. 大抵周子之爲是書, 語意峻潔而混成, 條理精密而踈暢, 讀者誠能虛心一意, 反復潛玩, 而毋以先入之說亂焉, 則庶幾其有得乎周子之心, 而無疑於紛紛之說矣.

朱子曰軆用一源者, 自理而觀, 則理爲軆象爲用, 而理中有象, 是一源也, 顯微無間者. 自象而觀, 則象爲顯, 理爲微, 而象中有理, 是無間也. 且旣曰有理而後有象, 則理象便非一物, 故伊川但言其一源與無間耳, 其實軆用顯微之分, 則不能無也.


熹, 旣爲此說, 嘗錄以寄廣漢張敬夫, 敬夫以書來曰, 二先生所與門人講論問答之言, 見於書者詳矣. 其於西銘蓋屢言之, 至此圖則未嘗一言及也. 謂其必有微意, 是則固然, 然所謂微意者, 果何謂耶.

熹竊謂以爲此圖立象盡意, 剖析幽微, 周子蓋不得己而作也. 觀其手授之意, 蓋以爲惟程子爲能當之, 至程子而不言, 則疑其未有能受之者矣. 夫旣不能黙識於言意之表, 則馳心空妙, 入耳出口, 其弊必有不勝言者. 觀其答張閎中論易傳成書, 深患無受之者, 及東見錄中論橫渠淸虛一大之說, 使人向別處走, 不若且只道敬, 則其意亦可見矣. 若西銘, 則推人以之天, 卽近以明遠, 於學者日用最爲親切, 非若此書詳於性命之原, 而畧於進爲之目, 有不可以驟而語者也. 孔子雅言詩書執禮, 而於易則鮮及焉, 其意亦猶此耳. 韓子曰, 堯舜之利民也, 大禹至慮民也深. 熹於周子程子亦云, 旣以復於敬夫, 因記其說於此. 乾道癸巳四月旣望熹謹書


(總論)朱子曰, 伏義作易, 自一晝以下, 文王演易, 自乾元以下, 皆未嘗言太極也, 而孔子言之, 孔子贊易自太極以下, 未嘗言無極也, 而周子言之, 先聖後聖, 豈不同倏而共貫哉. ○ 無極二字, 乃周子的見道軆, 逈出常情, 勇敢說底道理, 令後之學者, 曉然見得太極之妙, 不屬有無, 不落方體, 眞得千聖以來不傳之秘. ○ 先生之精, 因圖以示, 先生之蘊, 因圖以發, 而其所謂無極而太極云者, 又一圖之綱領, 所以明夫道之未始有物, 而實爲萬物之根柢也. 夫豈以爲太極之上,  復有所謂無極哉. ○ 南軒張氏曰, 先生, 推本太極, 以及乎陰陽五行之流布, 人物之所以生化, 於是, 知人之爲至靈, 而性之爲至善, 萬物有其宗, 萬事循其則, 擧而措之, 可見先王之所爲治者, 非私知之所出, 孔孟之意, 于以復明. ○ 謝氏方叔曰, 道之大原, 出於天而具於人心, 其大無外, 其小無內, 蓋渾然一太極也. 自伏義繼天立極, 因河圖以晝八卦, 天地定位而乾坤列, 山澤通氣而艮兌列, 雷風相薄而震巽列, 水火不相射而坎離列, 自震而乾爲數往, 自巽而坤爲知來, 八倍爲十六, 十六倍爲三十二, 三十二倍爲六十四, 天地鬼神之奧, 萬事萬物之理, 森然畢備, 此伏義先天之易, 所以爲萬古斯文之鼻祖也. 神農氏之取益噬嗑者, 以是, 黃帝堯舜之取乾坤至夬者, 以是, 夏連山商歸臟, 亦以是, 雖其作用不同, 其實同一太極也. 降及中古, 文王繫卦, 周公繫爻, 易於是乎有辭. 孔子生於周末, 晩作十翼, 先天後天互相發明, 其記載於詩書, 其發揮於禮樂, 其筆削於春秋, 大本大原曾不外此. 濂溪周先生, 獨得千載不傳之秘, 上祖先天之易, 著太極一圖, 所謂太極云者, 蓋本於易有太極, 而陰陽五行人物, 由此而生, 卽太極生兩儀, 兩儀生四象, 四象生八卦之謂也. 自太極分陰陽, 陰陽分五行, 五行分四時, 皆指太極之在造化者, 自無極二五之妙合, 而推萬物之化生, 自人物之並生, 而別人心之最靈, 自五性之感動, 而明聖人之立極, 此皆太極之在品彙者. 自其在造化者言之, 則卽天地可以推太極動靜之妙, 故曰立天之道, 曰陰與陽, 立地之道曰柔與剛. 自其在品彙者言之, 則惟聖人會太極動靜之全, 故曰立人之道, 曰仁與義, 終始不窮, 流行今古, 此所謂六爻之動三極之道也. 六爻之中, 五上爲天, 三四爲人, 初二爲地, 統而言之, 三極同一太極, 析而言之, 三極各一太極. 故周子於圖說之終, 斷之, 曰大哉易也, 斯其至矣. 此周子作圖之本意也. 

先師曰, 千古理氣之論, 根於易有太極之一言, 而易者, 二氣交變之名也, 極者, 一理眞至之號也. 此謂陰陽交易變易之中, 實有太極本然之妙, 旣從氣上說理矣, 而繫之曰, 是生兩儀, 則陽非自生, 生於太極之動也, 陰非自生, 生於太極之靜也, 此又從理下說氣. 蓋器則易見, 而道則難見, 故因器而明道, 道爲其本, 而器爲其具, 故先道而後器. 旣曰極生儀, 則如以一物生彼兩物, 而太極同於有形, 故周子作太極圖, 而更加無極二字, 其曰無極而太極者, 無根極樞極之形, 而實爲大根極大樞極, 非太極之前, 別有無極也. 繼之曰, 動而生陽, 靜而生陰, 則動亦太極之動, 而靜亦太極之靜也. 陰陽旣生, 太極便具於其中, 一動一靜, 而天命流行, 自其流行, 而逆推之, 則陰陽無始, 動靜無端. 自其本原, 而順推之, 則太極在陰陽之先, 而會動會靜, 體用全具, 渾然於未動之際, 而四德各有條理, 粲然於旣分之後, 而萬化由此權輿. 氣也者, 其所乘之馬, 而太極之乘陽者, 名其德曰健, 太極之乘陰者, 名其德曰順, 非健之外別有太極也. 陽變爲陰, 陰合爲陽, 而五行生焉. 水火木金, 而土無不周, 元亭利貞而誠無不在, 五行者, 其五德之輿衛, 而木火爲健, 金水爲順, 五行周流, 四時順布, 萬物受生, 形形色色, 分分合合, 莫非太極之全體. 性者, 人人物物之太極也, 人與物之成形, 有通塞之別, 故人與物之賦性, 有偏全之異, 偏亦一太極也, 全亦一太極也. 人也有健順五常, 物也有健順五常, 然人則能推, 而物不能推, 故圖說, 只以人極立言. 夫性之在人, 自其渾然者言, 則一理無所分, 自其粲然者言, 則五常不相糅, 一而不害有五, 五而不害爲一. 一者, 太極之爲一原也, 五者, 六極之有五德也. 非五德, 則不名爲太極, 非五德, 則不名爲性, 天人一致也. 天之賦性, 元無彼厚而此薄, 彼多而此寡, 則聖亦此性也, 凡亦此性也. 只緣氣之在天, 已有涥醨升沈之變, 故人之受氣, 亦有淸濁粹駁之異, 淸粹則此性易著, 而常爲之主, 濁駁則此性易掩, 而反爲所役. 在善氣上, 則爲善之理, 在惡氣上, 則爲惡之理, 然而性則純善而無惡者也, 爲主而不爲客者也. 性之在心, 該動靜而不偏, 動亦性之動, 靜亦性之靜, 靜而萬理具, 動而萬理行, 初非有靜而無動, 亦非始理而終氣也. 或從性言而曰, 四端七情, 四端, 理之乘經氣而直逐者也, 七情, 理之乘緯氣而橫出者也. 或從心言而曰, 人心道心, 人心, 知覺從形氣之私而發, 道心, 知覺從義理之正而發, 四七人道, 皆自性發, 非有二歧, 則性卽理也, 不可謂之氣發. 其善者, 理發而氣順之也, 其惡者, 理發而氣揜之也. 此則竪看說也. 其或謂理發, 或謂氣發者, 見其苗脈之不同而指其名義之互主也, 此則橫看說也. 其或專謂之氣發者, 見其作用之有力, 而指其形迹之可據也, 此則倒看說也. 竪看則理在氣先, 理爲氣主, 而靜則理之體, 動則理之用也. 橫看則理氣迭相先後, 迭相賓主, 而或理動氣挾, 或氣動理隨, 倒看則理氣一物, 不可分開, 而發出之際, 氣在先理在後, 氣爲主理爲賓, 動亦氣靜亦氣, 而理爲借乘之死物矣. 周子, 建圖立說, 專以太極之體用, 反覆推明, 以至於聖人立極之道, 則五性之眞, 固爲之主, 而感動之際, 爲主者自若, 全體大用, 無一欠闕, 而古人所謂聖人一太極者此也. 朱子之解是圖, 一本諸周子之意, 而推廣之, 亦未嘗別立一說, 曰造化之樞紐, 品彙之根者, 明此理之先於氣而常爲主也. 曰動者誠之通, 靜者誠之復者, 以四德言太極之體用, 而貫以一誠也, 命之流行而不己者, 明此理之不偏於靜而無滯於動也. 自其著而無不在, 自其微而己悉具者, 明此理之貫始終通有無也. 推之前, 不見其合, 引之後, 不見其離者, 深言理氣二物之不相雜而不相離也. 第三節, 言太極之本然無適不在, 而無虧欠無間隔也. 第四節, 言天下無性外之物, 而渾然太極之全體, 無不各具於一物之中. 第五節, 言統體一太極, 各具一太極之妙. 第六節, 言人得太極之全, 而五性之殊, 散爲萬事. 第七節, 言靜爲性之貞, 酬酢事物, 一天下之動. 第八節, 言君子之主敬明理, 而至於靜虛動直也. 第九節, 言三才一太極之妙, 而仁陽義陰道一而己. 其末段, 則言程子之言性與天道, 多出於此. 何嘗有片言半句, 及於理氣一物, 理無動靜氣獨發用之意也. 愚, 故曰論理氣, 而不合於太極圖者, 皆倒學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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