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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 숙흥야매잠(夙興夜寐箴)



    위의 잠은 남당(南塘) 진무경(陳茂卿: 栢)이 지어서 자신을 경계한 것입니다. 금화(金華) 왕노재(王魯齋)가 일찍이 태주(台州) 상채서원(上蔡書院)에서 교수(敎授)를 맡아 볼 때 오로지 이 잠(箴)을 가르침으로 삼아 학자로 하여금 사람마다 외우고 실천하도록 하였습니다. 신(臣)이 지금 삼가 노재(魯齋)의 〈경재잠도(敬齋箴圖)〉를 본떠 이 도(圖)를 지어 저 도(圖)와 상대되게 하였습니다. 대개 〈경재잠(敬齋箴)〉은 여러 가지 공부하는 상황[地頭]이 있기 때문에 그 상황에 따라 배열하여 그림을 만들었고, 이 〈숙흥야매잠〉은 여러 가지 공부하는 시점[時分]이 있기 때문에 그 시점에 따라 배열하여 그림을 만들었습니다.

    대저 도(道)가 일용(日用) 사이에 유행(流行)하여 가는 곳마다 있지 않는 바가 없기 때문에 이(理)가 없는 곳이란 한 곳도 없는 것이니, 어느 곳에선들 공부를 그만둘 수 있겠습니까? 또 잠깐 사이에도 혹 정지할 수 없기 때문에 이(理)가 없는 때란 한 순간도 없으니, 어느 때인들 공부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자사자(子思子)가 말하기를, “도(道)라는 것은 잠시도 떠날 수 없는 것이니, 떠날 수 있다면 도가 아니다. 이런 까닭에 군자는 그 보지 않는 바에도 삼가하고 그 듣지 않는 바에도 두려워하는 것이다.” 하였고, 또 이르기를 “숨은 곳보다 드러남이 없으며 은미한 곳보다 나타남이 없으니, 그러므로 군자는 홀로 있을 때를 삼가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이것이 한번 동(動)하고 한번 정(靜)하거나 어느 곳 어느 때이든 간에 존양(存養)하고 성찰(省察)하는 공부를 서로 극진하게 하는 방법인 것입니다. 과연 이렇게 할 수 있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털끝만치의 어긋남이 없을 것이고, 어떤 시점이라도 잠시의 간단(間斷)이 없을 것이니, 두 가지를 병진(並進)하면 성인이 되는 요체가 아마 여기에 있지 않겠습니까?


      이상의 다섯 그림은 심성(心性)에 근원한 것으로, 요컨대 일용(日用)에 힘쓰고 경외(敬畏)를 높이려는 것이다.


부록(附錄)


○《주역》〈복괘(復卦)〉상전(象傳)에 말하기를, “우레가 땅 가운데 있음이 복(復)이니, 선왕이 이를 보고서 동짓날에 관문(關門)을 닫아 장사꾼과 여행객이 다니지 못하게 하며 임금은 사방을 시찰하지 않는다.” 하였다.1)

《본의(本義)》안정(安靜)하여 미미한 양(陽)을 기르는 것이다. 《예기(禮記)․월령(月令)》에 “이 달에 재계하고 몸을 가려서 음양이 정해지기를 기다린다.” 하였다.


○《주역》〈임괘(臨卦)〉상전(象傳)에 말하기를, “못 위에 땅이 있음이 임(臨)이니, 군자가 이를 보고서 가르치려는 생각이 다함이 없으며 백성을 용납하여 보존함이 끝이 없다.” 하였다.

《본의》땅이 못 위에 임함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임하는 것이니, 이 두 가지는 다 아래에 임하는 일이다. 가르치기를 무궁(无窮)히 하는 것은 태(兌)이며, 용납하기를 끝없이 하는 것은 곤(坤)이다.

○《주역》〈태괘(泰卦)〉상전(象傳)에 말하기를, “천지가 사귐이 태(泰)이니, 군주가 이를 보고서 천지의 도를 재성(財成)하며 천지의 마땅함을 보상(輔相)하여 백성을 좌우(佐佑)한다.” 하였다.

《본의》재성(財成)하여 지나침을 억제하고, 보상(輔相)하여 미치지 못함을 보충하는 것이다.


○《주역》〈대장괘(大壯卦)〉상전(象傳)에 말하기를, “우레가 하늘 위에 있는 것이 대장(大壯)이니, 군자가 이를 보고서 예(禮)가 아니면 행하지 않는다.” 하였다.

  《역전(易傳)》우레가 하늘 위에서 진동하니, 크고 강성하다. 군자가 대장(大壯)의 상(象)을 관찰하여 그 장성함을 행하니, 군자가 크게 장성함은 극기복례(克己復禮)보다 더한 것이 없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스스로 이겨냄을 강하다고 한다.” 하였고, 《중용(中庸)에서 ‘화합하면서도 휩쓸리지 않음’과 ‘중도에 서서 기울어지지 않음’을 두고 모두 ‘강하도다, 굳셈이여’ 라고 하였으니, 끓는 물과 뜨거운 불에 달려들고 흰 칼날을 밟는 것은 무부(武夫)의 용기로 가능한 일이지만 극기복례에 이르러서는 군자의 대장(大壯)이 아니면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가 이를 보고서 예(禮)가 아니면 행하지 않는다.’고 한 것이다.


○《주역》〈쾌괘(夬卦)〉상전(象傳)에 말하기를, “못이 하늘에 올라감이 쾌(夬)이니, 군자가 이를 보고서 녹(祿)을 베풀어 아래에 미치며, 덕(德)에 거하여 금기(禁忌)를 법제화 한다.” 하였다.

  《역전》 군자가 못이 위에서 터져 아래로 대주는 상(象)을 보면 녹(祿)을 베풀어 아래에 미치고, 그 터지는 상(象)을 보면 덕에 거하여 금기를 법제화 한다. 거덕(居德)은 덕에 편한히 처함을 이른다. 칙(則)은 조약이고, 기(忌)는 방지함이니, 금방(禁防)을 조약으로 세움을 이르니, 방금(防禁)이 있으면 터져서 흩어짐이 없게 된다.


○《주역》〈건괘(乾卦)〉상전(象傳)에 말하기를, “하늘의 운행이 굳세니, 군자가 이를 보고서 스스로 힘써 쉬지 않는다.” 하였다.

  《역전》건도(乾道)가 만물을 덮어주고 기르는 상(象)은 지극히 크므로 성인이 아니면 체행(體行)할 수 없으니, 사람으로 하여금 모두 취하여 법을 삼게 하고자 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운행의 굳셈을 취하였을 뿐이니, 지극히 굳세어야 진실로 천도(天道)를 볼 수 있는 것이다. ‘군자가 스스로 힘써 쉬지 않음’은 하늘의 굳셈을 본받는 것이다.

  《본의》하늘의 운행은 하루에 한 번 돌고 다음날 또 한 번 도는 것이니, 지극한 굳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이다. 군자가 이를 본받아 인욕(人欲)으로써 천덕(天德)의 강함을 해치지 않으면 스스로 힘써 쉬지 않을 것이다.


○《주역》〈구괘(姤卦)〉상전(象傳)에 말하기를, “하늘 아래 바람이 있음이 구(姤)이니, 군주가 이를 보고서 명(命)을 베풀어 사방을 가르친다.” 하였다.

  《역전》바람이 하늘 아래에 다님에 두루하지 않음이 없으니, 군주가 된 이가 두루하는 상(象)을 보고서 명령을 베풀어 사방을 두루 가르치는 것이다. 바람이 땅 위를 다님과 하늘 아래에 바람이 있음은 모두 여러 물건을 두루하는 상(象)이 된다. 땅 위에 다녀 만물을 두루 접촉하면 관(觀)이 되니 두루 지나면서 보고 살피는 상(象)이고, 하늘 아래에 다녀 사방을 두루하면 구(姤)가 되니 명령을 시행하는 상(象)이 된다.


○《주역》〈돈괘(遯卦)〉상전(象傳)에 말하기를, “하늘 아래에 산이 있음이 돈(遯)이니, 군자가 이를 보고서 소인을 멀리하되 나쁜 말로 대하지 않고 위엄이 있게 한다.” 하였다.

  《역전》하늘 아래에 산이 있으니, 산은 아래에서 일어나 멈추고 하늘은 위로 나아가 서로 어긋나므로, 이는 숨거나 피할 상(象)이다. 군자가 이 상(象)을 보고서 소인을 피하고 멀리하니, 소인을 멀리하는 방도로는 만약 나쁜 말과 사나운 낯빛으로 대하면 다만 원망과 분노를 초래할 뿐이다. 오직 긍장(矜莊)과 위엄으로 대하여 소인으로 하여금 공경하고 두려워할 줄 알게 하는데 달렸으니, 이렇게 하면 자연히 멀어지게 될 것이다.

  《본의》하늘의 체(體)는 끝이 없고 산의 높이는 한계가 있으니, 이것이 돈(遯)의 상(象)이다. 엄(嚴)은 군자가 스스로 지키는 떳떳한 도리이지만 이렇게 하면 소인이 절로 가까이 올 수 없는 것이다.


○《주역》〈비괘(否卦)〉상전(象傳)에 말하기를, “하늘과 땅이 사귀지 않음이 비(否)이니, 군자가 이를 보고서 덕을 검약(儉約)하여 난(難)을 피하고 녹(祿)으로써 영화롭게 하지 말아야 한다.” 하였다.

  《역전》 하늘과 땅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비색(否塞)함이 된다. 비색할 때에는 군자의 도가 사라지니, 마땅히 비색한 상(象)을 보고서 그 덕을 검약하고 덜어내어 환란을 피하고 면할 것이요, 영화로이 녹과 지위에 처해서는 안된다. 비(否)는 소인이 뜻을 얻을 때이니, 군자가 드러나거나 영화로운 지위에 처하면 환란이 반드시 그 몸에 미치기 때문에 마땅히 자신을 숨기고서 궁약(窮約)함에 처해야 하는 것이다.

  《본의》그 덕을 거두어 밖에 드러내지 않아서 소인의 난을 피하니, 사람들이 녹과 지위로써 영화롭게 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주역》〈관괘(觀卦)〉상전(象傳)에 말하기를, “바람이 땅 위에 행함이 관(觀)이니, 선왕이 이를 보고서 지방을 살펴 백성을 관찰하여 가르침을 베푼다.” 하였다.

  《역전》바람이 땅 위에 행하여 여러 물건에 두루 미치니, 여러 지역을 경유하여 두루 관람하는 상(象)이 된다. 그러므로 선왕이 이를 체행(體行)하여 지방을 살펴보는 예(禮)를 만들어서 민속을 관찰하여 정교(政敎)를 베푸는 것이다. 천자가 사방을 순행하여 민속을 살펴서 정교를 베푸니, 사치하면 검소함으로써 묶고 검소하면 예(禮)를 보여주는 것이 이것이다. ‘성방(省方)’은 백성을 관찰하는 것이고, ‘설교(設敎)’는 백성들의 봄[觀]이 되는 것이다.


○《주역》〈박괘(剝卦)〉상전(象傳)에 말하기를, “산이 땅에 붙어 있는 것이 박(剝)이니, 윗사람이 이를 보고서 아래를 후하게 하여 집을 편안히 한다.” 하였다.

  《역전》산은 땅에서 높이 솟아 있는데 도리어 땅에 붙어 있음은 무너지는 상(象)이다. 상(上)은 인군(人君) 또는 백성의 위에 있는 자를 이르니, 박괘(剝卦)의 상(象)을 보고서 아래를 두텁고 견고하게 하여 그 거처를 편안하게 하는 것이다. 아래는 위의 근본이니, 기본이 튼튼하고서 무너지는 경우는 있지 않다. 그러므로 위가 무너짐은 반드시 아래로부터 시작되니, 아래가 무너지면 위가 위태롭다. 백성의 위에 있는 자가 이치가 이와 같음을 알면 인민을 편안하게 길러서 그 근본을 두텁게 할 것이니, 이것이 바로 거함을 편안히 하는 것이다.《서경(書經)》에 이르기를,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니, 근본이 튼튼해야 나라가 편안하다.” 하였다.


○《주역》〈곤괘(坤卦)〉상전(象傳)에 말하기를, “지세(地勢)가 곤(坤)이니, 군자가 이를 보고서 후한 덕으로 물건을 실어준다.” 하였다.

  《역전》곤도(坤道)의 위대함이 건(乾)과 같으니, 성인이 아니면 누가 이것을 체행(體行)하겠는가. 땅이 두텁고 지형은 순히 기울어져 있다. 그러므로 순하고 두터운 상(象)을 취하여 지세(地勢)가 곤(坤)이라고 말한 것이다. 군자가 곤(坤)의 두터운 상(象)을 관찰하여 깊고 두터운 덕으로 만물을 용납하여 실어준다.


    살펴보건대, 선생께서는 이 도(圖)를 시점 공부로 삼았다. 그러므로 내가 삼가 선천도(先天圖) 12벽괘(辟卦)를 취하여 위로 태극도(太極圖)의 뜻에 응하였고, 숙매(夙寤)․신흥(晨興)․독서(讀書)․응사(應事)․일건(日乾)․석척(夕惕)․양이야기(養以夜氣) 등의 절목(節目)을 이어서 언급하였으니, 배우는 사람은 마땅히 마음을 기울어야 할 것이다.


○《시경》〈소완(小宛)〉편에 말하기를,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 자서 너를 낳아주신 분을 욕되게 하지 말지어다.” 하였다.

《집전(集傳)》첨(忝)은 욕됨이다. 응당 노력해야 할 것이고 한가하고 안일하여서는 안되며 부모를 욕되게 함이 없기를 구해야 할 뿐임을 말하였다.


  맹자가 말하기를, “닭이 울면 일어나서 부지런히 선(善)을 행하는 사람은 순(舜)의 무리이고, 닭이 울면 일어나서 부지런히 이익을 추구하는 자는 도척(盜蹠)의 무리이니, 순과 도척의 구분을 알고자 한다면 다른 것이 없다. 이(利)와 선(善)의 사이일 뿐이다.” 하였다.

  《집주(集註)》자자(孶孶)는 부지런히 힘쓴다는 뜻이다. 비록 성인에 이르지는 못해도 또한 성인의 무리임을 말한 것이다.

  정자(程子)가 말하기를, “사이라고 말한 것은 서로의 거리가 멀지 않아 다투는 바가 털끝만할 뿐임을 말한 것이다. 선(善)과 이(利)는 공(公)과 사(私)일 뿐이니, 잠시라도 선(善)에서 벗어나면 곧 이(利)라고 말할 수 있다.” 하였다.

  양씨(楊氏)가 말하기를, “순(舜)과 도척(盜蹠)의 차이가 크지만 그 구분은 바로 이(利)와 선(善)의 사이에 있을 뿐이니, 이 어찌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강론(講論)하기를 익숙히 하지 않으며, 보기를 분명히 하지 못한다면 이(利)를 의(義)라고 여기지 않을 사람이 없으니, 이는 또 배우는 사람이 마땅히 깊이 살펴야 할 바이다.” 하였다.


  어떤 이가 묻기를, “닭이 울면 일어나서 만일 사물을 아직 접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해야 선(善)이 됩니까?” 하자, 정자(程子)가 말하기를, “단지 경(敬)을 주장하는 것이 곧 선(善)을 하는 것이다.” 하였다.


○《서경》〈태갑(太甲)〉편에 말하기를, “선왕께서는 매상(昧爽)에 크게 덕을 밝히시어 앉아서 아침을 기다렸습니다.” 하였다.

  《집전》 매(昧)는 어두움이고, 상(爽)은 밝음이니, 매상(昧爽)은 날이 밝으려고 하나 아직 밝지 않았을 때이다. 비(丕)는 큼이다. 현(顯) 또한 밝음이다. 선왕이 매상(昧爽)에 몸을 깨끗이 씼고서 그 덕을 크게 밝혀 앉아서 아침을 기다렸다가 이를 시행한 것이다.


  맹자가 말하기를, “주공(周公)은 세 왕(王)을 겸하시어 네 가지 일을 시행할 것을 생각하시되, 부합하지 않는 것이 있으면 우러러 생각하여 밤으로써 날을 이었는데, 다행히 터득하시면 그대로 앉아 날이 새기를 기다렸다.” 하였다.

  《집주》 삼왕(三王)은 우왕(禹王), 탕왕(湯王), 문왕(文王)․무왕(武王)이요, 사사(四事)는 위의 네 가지 일이다. 때가 다르고 형편이 다르기 때문에 그 일에 혹 부합되지 않는 바가 있으나 생각하여 터득하면 그 이치가 애당초 다르지 않는 것이다. 앉아서 날이 새기를 기다린다는 것은 시행하기를 급히 여긴 것이다.


○ 공자가 말하기를,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기쁘지 않겠는가.” 하였다.

  《집주》학(學)이란 말은 본받는다는 뜻이다. 사람의 본성은 모두 선(善)하나 깨닫는 데에는 먼저 하고 뒤에 함이 있으니, 뒤에 깨닫는 사람은 반드시 먼저 깨달은 사람이 행한 바를 본받아야 선(善)을 밝혀 그 본초(本初)를 회복할 수 있는 것이다. 습(習)은 새가 자주 나는 것이니, 배우기를 그치지 않기를 마치 새새끼가 자주 나는 것과 같이 하는 것이다. 열(說)은 기쁘다는 뜻이다. 이미 배우고 또 때때로 그것을 익힌다면 배운 것이 익숙해져서 마음에 희열(喜悅)을 느껴 그 진전(進前)이 절로 그만 둘 수 없는 것이다.

  정자(程子)가 말하기를, “습(習)은 거듭함이니, 때로 다시 생각하고 연역(演繹)해서 가슴 속에 두루 젖게 하면 기뻐지는 것이다.” 하였다. 또 말하기를, “배우는 것은 장차 그것을 실행하려는 것이니, 때로 익힌다면 배운 것이 내 몸에 있기 때문에 기뻐지는 것이다.” 하였다.

  사씨(謝氏)가 말하기를, “시습(時習)이란 때마다 익히지 않음이 없는 것이니, 앉았을 때에 시동(尸童)과 같이 함은 앉았을 때의 익힘이요, 섰을 때에 재계(齊戒)함과 같이 함은 섰을 때의 익힘이다.” 하였다.


○ 섭공(葉公)이 자로(子路)에게 공자의 인물됨을 물었는데, 자로가 대답하지 않았다. 공자께서 말하기를, “너는 어찌 그의 사람됨이 분발하면 먹는 것도 잊고, 즐거워서 근심을 잊기 때문에 늙음이 장차 닥쳐오는 줄도 모른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하였다.

  《집주》 터득하지 못하면 분발하여 먹는 것도 잊고, 이미 터득하였으면 즐거워서 근심을 잊는다. 이 두 가지로써 힘써서 날마다 부지런히 애써느라 나이를 먹는 줄도 모르니, 이는 다만 학문을 좋아함이 독실함을 스스로 말했을 뿐이다. 그러나 이 말을 깊이 음미해보면, 그 전체가 지극하여 순수하면서도 간단(間斷)이 없는 묘(妙)는 성인이 아니면 미칠 수 없는 것이 있음을 볼 수 있다. 무릇 부자(夫子)가 스스로 말씀하신 것은 대체로 이와 같으니, 배우는 사람은 마땅히 생각을 다해야 할 것이다.


○ 증자(曾子)가 말하기를, “나는 날마다 세 가지로 내 몸을 살피노니, 남을 위하여 일을 도모함에 충성스럽지 못한가? 붕우(朋友)와 더불어 사귐에 성실하지 못한가? 전수(傳受)받은 것을 익히지 않았는가? 라는 것이다.” 하였다.

  《집주》자기 마음을 다하는 것을 충(忠)이라 하고, 성실(誠實)히 하는 것을 신(信)이라 한다. 전(傳)은 스승에게 전수(傳受)받은 것이요, 습(習)은 자기 몸에 익숙이 함을 말한다. 증자는 이 세 가지로써 날마다 자신을 반성하여 이런 것이 있으면 고치고, 없으면 더욱 힘써서 자신을 다스림에 정성스럽고 간절함이 이와 같았으니, 학문하는 근본을 얻었다고 할 만하다. 세 가지의 순서는 또 충(忠)․신(信)을 전습(傳習)의 근본으로 삼는다.

  윤씨(尹氏)가 말하기를, “증자는 지킴이 요약(要約)되었기 때문에 행함에 반드시 자신에게서 구한 것이다.” 하였다.


○《주역》〈건괘(乾卦)〉구삼(九三)에 말하기를, “군자가 종일토록 힘쓰고 힘써 저녁까지도 두려워하면 위태로우나 허물이 없으리라.” 하였고, 문언(文言)에 말하기를, “군자는 덕을 진전시키고 덕을 닦나니, 충․신(忠信)이 덕을 진전시키는 것이고, 말함에 그 성실함을 세움이 업(業)에 거(居)하는 것이다. 이를 데를 알아서 그곳에 이르므로 더불어 기미를 알 수 있고, 마칠 데를 알아서 그곳에 마치므로 더불어 의(義)를 보존할 수 있다. 이런 까닭으로 윗자리에 있어도 교만하지 않고 아랫자리에 있어도 근심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힘쓰고 힘써 그 때를 인하여 두려워하면 비록 위태롭더라도 허물이 없는 것이다.” 하였다.

  《역전》안으로 충신(忠信)을 쌓는 것이 진덕(進德)이요, 말을 가리고 뜻을 돈독히 하는 것이 거업(居業)이다. 이를 데를 알아서 이르는 것이 치지(致知)인데, 이를 곳을 알기를 구한 뒤에 이르게 되니, 지(知)가 행(行)보다 앞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더불어 기미를 하는 것이니, 맹자가 이른바 ‘조리(條理)를 시작함은 지(智)의 일’이라는 것이다. 마칠 데를 알아서 마치는 것이 역행(力行)인데, 이미 마칠 곳을 알았으면 힘써 나아가 마쳐야 하니, 지키는 것이 지(知)보다 뒤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더불어 의(義)를 보존하는 것이니, 맹자가 이른바 ‘조리를 끝마침은 성인의 일’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학문의 시작과 끝이다. 군자의 학문은 이와 같기 때문에 위와 아래에 처하는 도리를 알아 교만하거나 근심하지 않고 게을리하지 않으며 두려워할 줄 알아 비록 위태로운 자리에 있어도 허물이 없는 것이다.

  《본의》충신(忠信)은 마음에 주장하는 것이니, 한 생각이라도 성실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요, 말을 함은 일에 나타나는 것이니, 한 마디 말이라도 성실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비록 충신(忠信)의 마음이 있더라도 말을 함에 성실함을 세우지 않으면 거(居)하지 못한다. 이를 데를 알아서 이름은 진덕(進德)의 일이요, 마칠 데를 알아서 마침은 거업(居業)의 일이니, 종일토록 힘써 저녁까지도 오히려 두려워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위로 오를 수도 있고 아래로 내려올 수도 있으며 교만하지 않고 근심하지 않으니, 이른바 ‘허물이 없다.’는 것이다.


○ 재여(宰予)가 낮잠을 자거늘 공자가 말하기를, “썩은 나무에는 조각할 수 없고, 더러운 흙으로 쌓은 담장은 흙손질 할 수 없으니, 내가 재여(宰予)에게 무엇을 꾸짖겠는가?” 하였다.

  《집주》주침(晝寢)은 낮을 당하여 잠자는 것을 말한다. 후(朽)는 썩은 것이요, 조(雕)는 조각이요, 오(杇)는 흙손질이다. 그 뜻과 기운이 흐리고 게을러 가르침을 베풀 곳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여(與)는 어조사이다. 주(誅)는 꾸짖음이니, 꾸짖을 것이 없다는 것은 바로 그를 깊이 꾸짖은 것이다. 범씨(范氏)가 말하기를, “군자가 학문함에 날로 부지런히 힘써서 죽은 뒤에야 그만두는 것이고, 오직 따라가지 못할까 두려워하는 것이다. 재여(宰予)가 낮잠을 잤으니, 스스로 포기함이 무엇이 이보다 심하겠는가? 그러므로 부자(夫子)가 그를 책망하신 것이다.” 하였다. 호씨(胡氏)가 말하기를, “재여(宰予)가 지(志)로써 기(氣)를 통솔하지 못하고, 이렇듯이 온통 게을렀으니, 이는 안락하려는 기운이 우세하고 경계하는 뜻이 태만했기 때문이다. 옛 성현은 일찍이 태만과 안락을 두렵게 여기고 부지런히 책려하여 스스로 힘쓰지 않은 적이 없었으니, 이는 바로 공자가 재여(宰予)를 깊이 꾸짖으신 까닭이다.” 하였다.


○《논어(論語)》에 말하기를, “음식을 먹으면서 말하지 않으며, 잠을 자면서 말하지 않았다.” 하였다.

  《집주》대답하는 것을 어(語)라 하고, 스스로 말하는 것을 언(言)이라 한다. 범씨(范氏)가 말하기를, “성인은 마음을 보존하여 다른 곳으로 가지 않기 때문에 먹을 때를 당하면 먹고 잘 때를 당하면 자니, 말하는 것은 그렇게 할 시기가 아니다.” 하였다. 양씨(楊氏)가 말하기를, “폐(肺)는 숨[氣]의 주(主)가 되어 소리가 나오니, 잠자고 먹을 때에는 숨이 막히어 통하지 못한다. 말을 하면 폐(肺)를 상하게 할까 두려워해서이다.” 하였으니, 또한 통한다.


○《논어》에 말하기를, “잠잘 때는 죽은 사람처럼 하지 않으며, 집에 거처할 때에는 위엄을 갖추지 않았다.” 하였다.

  《집주》시(尸)는 뻗어 누워 죽은 사람과 같이 하는 것이다. 거(居)는 집에 거처하는 것이고, 용(容)은 용모에 위의를 갖춤이다. 범씨(范氏)가 말하기를, “침불시(寢不尸)는 죽은 사람과 유사함을 싫어해서가 아니라, 타만(惰慢)한 기운을 몸에 베풀지 않아, 비록 사체(四體)를 펴더라도 일찍이 방자하게 하지 않는 것일 뿐이다. 거불용(居不容)은 태만한 것이 아니라, 다만 제사를 받들고 손님을 볼 때와 같게 하지 않을 뿐이니, 신신(申申)․요요(夭夭)가 이것이다.” 하였다.


○ 맹자가 말하기를, “우산(牛山)의 나무가 일찍이 아름다웠는데, ……” 위의〈심학도(心學圖)〉에 보인다.

  《집주》내가 스승에게 들었는데,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사람은 의리(義理)의 마음이 일찍이 없지 않았으니, 오직 이것을 잡아 잘 지키면 바로 여기에 있게 되는 것이다. 만일 낮 사이에 곡망(梏亡)시키는 데에 이르지 않는다면 야기(夜氣)가 더욱 맑아질 것이요, 야기(夜氣)가 맑아지면 이른 새벽에 사물과 접하지 않았을 때의 담연(湛然) 허명(虛明)한 기상(氣象)을 스스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맹자가 이 야기(夜氣)의 설을 발명(發明)하여 배우는 자들에게 지극히 힘이 있으니, 마땅히 익숙히 보고 깊이 살펴야 할 것이다.” 하였다.


  ○ 정자(程子)가 말하기를, “사람의 마음이 주장을 정하지 못함은 마치 하나의 수차(水車)와 같다고 할 것이다. 유전(流轉)하고 동요(動搖)하여 잠시도 멈춤이 없기 때문에 느끼는 바가 만 가지가 되는 것이니, 만일 하나의 주장을 갖지 못한다면 어떻게 할 방도가 없을 것이다. 장천기(張天祺)가 일찍이 말하기를, ‘약 수년 동안 평상(平床)에 있으면서 사량(思量)하지 않게 되었다.’고 했는데, 사량(思量)하지 않으려면 모름지기 억지로 이 마음을 붙잡아 매어야 하고, 또 모름지기 하나의 형상(形象)에다 붙들어 두어야 할 것이다. 이는 모두 다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하였다. 또 말하기를, “사마군실(司馬君實)이 일찍이 사려(思慮)의 분란(紛亂)함을 근심하여 간혹 한 밤중에 일어나 새벽까지 잠자지 않았다고 하니, 참으로 스스로 고뇌하였다고 할 만하다. 사람이 도대체 얼마 만큼의 혈기를 가졌단 말인가. 만약 이와 같이 한다면 얼마 못 가서 꺾이고 쇠잔해지지 않겠는가? 그 뒤에 사람에게 이르기를, ‘근래에 한 방법을 얻었으니, 항상 중(中)을 생각으로 삼는다.’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다시 중(中)에 의해 마음이 어지럽게 될 것이니, 중(中)은 또 어떤 형상(形象)이기에 어찌 생각할 수 있겠는가? 단지 명언(名言) 가운데에 하나의 좋은 글자를 가려낸 것일 뿐이다. 차라리 중(中)에 의해 어지럽혀지기보다는 차라리 한 꿰미의 염주(念珠)를 주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밤에는 몸을 편안히 하고 잠이 오면 눈을 붙이는 것이니, 무엇을 괴롭게 생각하는 것은 단지 마음을 주장으로 삼지 않았기 때문임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하였다.


    또 말하기를, “사람은 몽매(夢寐) 간에도 또한 자기 학문의 깊고 얕음을 헤아릴 수 있으니, 꿈 속에서 넘어지고 자빠진다면 이는 심지(心志)가 안정되지 못하고 조존(操存)함이 견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였다.


  ○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혼(魂)과 백(魄)이 만나서 잠을 이루는데, 마음은 그 사이에 있으면서 여전히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꿈이 생기는 것이니, 만약 심신(心神)이 안정되면 몽매(夢寐) 간에도 또한 넘어지거나 자빠지지 않을 것이다.” 하였다.


  ○ 서산진씨(西山眞氏)의 야기잠(夜氣箴)

    그대는 어찌 저 겨울의 기(氣)됨을 보지 않는가? 나무가 그 뿌리로 돌아가 흙 속에 겨울잠잘 때에는 응결되고 고요하여 조짐을 볼 수 없지만 조화(造化)와 발육(發育)의 묘(妙)함이 실로 그 가운데에 배태(胚胎)되고 있다. 대개 합(闔)은 벽(闢)의 기틀이고 정(貞)은 원(元)의 근본인데, ‘그치는 것[艮]’이 사물의 시종(始終)이 되는 것이다. 대저 (일년의) 일주(一晝)와 일야(一夜)는 3백 6십 일이 쌓인 것이기 때문에 겨울이 사시(四時)의 밤이고, 밤은 바로 하루의 겨울이니, 천지 사이에 여러 동물이 모두 고요하고 잠잠함이 마치 천지가 생기기 이전의 홍몽(鴻濛)함과 같은 것이다. 사람의 몸도 어두워지면 편안히 쉬나니, 또한 마땅히 조물(造物)의 이치로써 으뜸을 삼아 반드시 그 마음을 가지런히 하고 반드시 그 몸을 엄숙히 하여, 감히 침상 위에 태만하게 자신을 방치하여 홀만하고 비벽(非僻)된 마음으로 하여금 나의 충심(衷心)을 해칠 수 있게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비록 종일토록 부지런히 힘써 한순간의 간단(間斷)이 없을지라도 혼명(昏冥)하고 소홀하기 쉬울 때에 경계하고 삼가는 공부를 더욱 극진히 해야 한다. 대개 밤에 몸을 편안하게 하는 것은 아침에 정사를 듣고 낮아 방문하는 터전을 삼으려는 것이니, 야기(夜氣)가 심후(深厚)하면 인의(仁義)의 마음 또한 그 끝없는 데에 이를 것이다. 근본이 이미 확립되고, 또 사물을 처리할 때에 살피기를 극진히 하여, 경(敬)과 의(義)를 함께 가지고 동(動)과 정(靜)을 서로 길러준다면 인욕(人欲)이 들어 올 틈이 없어서 천리(天理)가 정녕 소융(昭融)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를 알기만 하고 행동으로 지킬 수 없다면 또한 빈 말일 뿐이니,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에 잠(箴)을 지어 스스로를 경계하나니, 어긋나게 될까 항상 두려워하노라. 맹자(孟子)의 야기설(夜氣說)에서 말하지 않은 뜻을 담고 있다.


  ○ 이자(李子)의 병잠(屛箴)2)

     요임금은 공경하였고3) 순임금은 전일하였으며4)

     우임금는 경건하였고5) 탕임금은 두려워하였네6)

     공경하고 삼가한 것은 문왕(文王)의 마음이고7)

     탕탕(蕩蕩)함은 무왕(武王)의 표준이었네8)

    주공(周公)은 애써 두려워하였고9)

    공자(孔子)는 분발하고 즐거워하였네10)

    증자(曾子)는 날마다 반성하고 조심하였으며11)

    안자(顔子)는 극기복례(克己復禮)를 일삼았네12)

    경계하고 두려워하며 홀로를 삼가하고13)

    성(誠)을 밝혀 지극한 도(道)를 이루었네14)

    마음을 잡아 보존함은 하늘을 섬기는 바이고15)

    곧음과 도의로써 호연지기를 길렀네16)

    고요함을 주로하여 욕심이 없었으니17)

    광풍제월(光風霽月)의 기상이었네18)

    풍월(風月)을 읊조리며 돌아왔었고19)

    따뜻한 햇빛과 우뚝한 산 같았네20)

    몸가짐이 가지런하고 엄숙하였으며

    마음을 하나에 집중하여 흩어지지 않았네21)

    박문(博文)과 약례(約禮)가 모두 지극하였으니

    도학 연원(道學淵源)의 정맥(正脈)을 이으셨네22)

  어떤 판본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요임금은 공경하고 순임금은 공손하였으며

    우임금는 부지런하고 탕임금은 두려워하였네

    공경하고 삼가한 것은 문왕(文王)의 마음이고

    탕탕(蕩蕩)함은 무왕(武王)의 표준이었네

    안을 곧게 하고 밖을 방정하게 했으며23)

    종일토록 힘쓰고 저녁까지 두려워했네

    하늘이 내린 덕을 지니고 네 가지가 없었으며24)

    성인(聖人)의 도는 하나로 관통되었네25)

    세 가지로 반성하면서 두려워하고 조심했으며

    사물(四勿)로써 극기복례(克己復禮)하였네

    계신공구(戒愼恐懼)하고 홀로를 삼가며

    성(誠)을 밝혀 지극한 도(道)를 이루었네

    마음을 잡아 보존함은 하늘을 섬기는 바이며

    사단(四端)을 확충시키고 호연지기를 길렀네

    산을 좋아하고 뜰의 풀을 완상했으며

    맑은 바람을 쐬고 밝은 달을 즐거워했네

    몸가짐이 가지런하고 엄숙하였으며

    마음을 하나에 집중하여 흩어지지 않았네

    박문(博文)과 약례(約禮)가 모두 지극하였으니

    도학 연원(道學淵源)의 정맥(正脈)을 이으셨네


    ○ 위는 퇴계선생이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에게 준 병명(屛銘)이다.



1) 이하로 등재된《주역》․《논어》․《맹자》등의 원문 해석은 전통문화연구회(傳統文化硏究會)에서 간행한 국역서의 국역문을 참고한 것임을 밝힌다.


2) 이자(李子)의 병명(屛銘) : 퇴계 선생이 29세의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에게 병풍으로 써서 준 명(銘). 요(堯)․순(舜)․우(禹)․탕(湯)․문왕(文王)․무왕(武王)․주공(周公)․공자(孔子)․증자(曾子)․안자(顔子)․자사(子思)․맹자(孟子)․주렴계(周濂溪)․정명도(程明道)․정이천(程伊川)․주자(朱子) 등 열 여섯 분의 성현을 4언 20구로 찬미한 글이다. 《퇴계선생문집》 권44에 〈제김사순병명(題金士純屛銘)〉이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고,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이 《병명발휘(屛銘發揮)》를 지어 병명의 뜻을 소상히 밝혔다.


3) 요임금은 공경하였고 :《서경(書經)》〈요전(堯典)〉에 사신(史臣)이 요임금의 덕을 칭송하여 ‘欽明文思, 安安, 允恭克讓.’이라 하였는데, 채침(蔡沈)의《서집전(書集傳)》에 ‘흠은 공경(恭敬)함이고 명은 통명(通明)함이니, 경(敬)이 체(體)이고 명(明)이 용(用)이다. 문(文)은 문장(文章)이고 사(思)는 의사(意思)이니, 문장이 드러나고 생각이 심원(深遠)한 것이다. 안안(安安)은 억지로 힘쓰는 바가 없는 것이니, 그 덕성의 아름다움이 다 자연함에서 나오고 억지로 힘쓴 것이 아님을 말한 것이다.”고 하였다. 요임금의 덕을 칭송한 말로써 이보다 더 갖추어진 것이 없기 때문에  ’흠(欽)’ 한 글자로 말한 것이다.


4) 순임금은 전일하였으며 :《서경》〈대우모(大禹謨)〉에 “인심은 위태롭고 도심은 은미하니, 정밀하게 살피고 한결같이 지켜야 그 중도를 잡으리라.(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고 했는데, 이는 순임금이 우(禹)에게 제위(帝位)를 물려주면서 경계한 말이다.


5) 우임금은 경건하였고 :《서경》〈우공(禹貢)〉에 “나의 덕을 경건히 하여 천하를 거느리면 천하 사람들이 절로 나의 행하는 바를 어기지 않을 것이다.(祗台德先, 不距朕行)”고 한 우임금의 말이 있다.


6) 탕임금은 두려워하였네 :《서경》〈탕고(湯誥)〉에 “이에 짐(朕)이 천지에 죄를 지을 지 알지 못하여 근심하고 두려워하여 장차 깊은 못에 빠질 것처럼 여기노라.(玆朕, 未知獲戾于上下, 慄慄危懼, 若將隕于深淵)”고 한 탕임금의 말이 있다.


7) 공경하고 삼가한 것은 문왕(文王)의 마음이고 :《시경(詩經》〈대아(大雅)〉대명(大明) 편에 “오직 우리 문왕이, 공경하고 삼가하여, 상제를 밝게 섬기시어, 많은 복을 오게 하시니, 그 덕이 부정하지 않아서, 사방의 나라를 받으시니라.(維此文王, 小心翼翼, 昭事上帝, 聿懷多福, 厥德不回, 以受方國)”는 구절이 있다.


8) 탕탕(蕩蕩)함은 무왕(武王)의 표준이었네 :《서경》〈홍범(洪範)〉에 “편벽됨이 없고 편당(偏黨)함이 없으면 왕도가 광원(廣遠)할 것이고 …… 그 지극한 표준으로 돌아가리라.(無偏無黨, 王道蕩蕩 …… 歸其有極)”고 한 말이 있다. 기자(箕子)가 무왕(武王)에게 고한 말이다.


9) 주공(周公)은 애써 두려워하였고 :《주역》〈건괘(乾卦)〉효사(爻辭)에 “군자가 종일토록 힘쓰고 저녁까지도 두려워하면 비록 위태함에 처하더라도 허물이 없으리라.(君子, 終日乾乾, 夕惕若, 厲無咎)”는 말이 있다. 주공(周公)이《주역》의 효사를 지었다고 한다.


10) 공자는 분발하고 즐거워하였네 :《논어》〈술이(述而)〉편에 “섭공(葉公)이 자로(子路)에게 공자에 대하여 묻거늘 자로가 대답하지 않았다. 공자가 말하기를, ‘자네는 어찌 그 사람됨이 이치를 터득하지 못하면 발분하여 먹는 것을 잊으며 이미 터득하였으며 즐거워하여 근심을 잊기 때문에 늙음이 다가오는 것도 알지 못한다고 말하지 않았는가?(葉公, 問孔子於子路, 子路不對, 子曰女奚不曰其爲人也, 發憤忘食, 樂而忘憂, 不知老之將至云爾)”라는 말이 있다.


11) 증자는 날마다 반성하고 조심하였으며 :《논어》〈학이(學而)〉편에 증자(曾子)가 말하기를, “나는 날마다 세 가지로 내 몸을 살피나니, ‘남을 위하여 도모함에 내 마음을 다하지 못하였는가? 벗과 함께 사귀는데 미덥지 못하였는가? 스승에게 배운 것을 익히지 못하였는가?’라는 것이다.(曾子, 曰吾日三省吾身, 爲人謀而不忠乎, 與朋友交而不信乎, 傳不習乎)”라는 말이 있고,《논어》〈태백(泰伯)〉편에 증자가 병이 들자 문하 제자를 불러서 말하기를, “이불을 걷고 내 발을 살펴보고 내 손을 살펴보아라.《시경(詩經)》에 이르기를, ‘두려워하고 삼가하여 깊은 못에 임한 듯하며 엷은 얼음을 밟는 듯이 한다’고 했으니, 이제서야 내가 여기에서 벗어나게 될 줄 알겠구나. 제자들아!(曾子有疾, 召門弟子, 曰啓予足, 啓予手, 詩云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氷, 而今而後, 吾知免夫 小子)”라는 증자의 말이 있다.


12) 안자(顔子)는 극기복례(克己復禮)를 일삼았네 :《논어》〈안연(顔淵)〉편에 안연(顔淵)이 인(仁)에 대해 묻자 공자가 말하기를, “자신의 사욕을 이겨 예(禮)로 돌아가는 것이 인을 행하는 것이니, 하루라도 자신의 사욕을 이겨 예(禮)로 돌아간다면 천하 사람이 모두 어질다고 허여(許與)할 것이다. 인을 행함은 자신으로 말미암는 것이지 남으로 말미암는 것이겠는가?” 하였다. 안연이 말하기를, “그 조목(條目)을 묻습니다.” 하자, 공자가 말하기를, “예(禮)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아야 하느니라.” 하였다. 안연이 말하기를, “제가 비록 민첩하지는 못하나 청컨대 이 말씀을 일삼겠습니다.” 하였다.(顔淵問仁, 子曰克己復禮, 爲仁, 一日克己復禮, 天下歸仁焉, 爲仁由己, 而由人乎哉. 顔淵, 曰請問其目. 子曰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 顔淵, 曰回雖不敏, 請事斯語矣)”는 말이 있다.


13) 경계하고 두려워하며 홀로를 삼가하고 :《중용(中庸)》제1장에 “도(道)는 잠시도 떠날 수 없는 것이니, 떠난다면 도가 아니다. 이런 까닭으로 군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경계하고 들리지 않는 곳에서도 두려워하느니라. 숨은 것보다 드러나는 것이 없고 작은 것보다 나타나는 것이 없으니, 이런 까닭으로 군자는 그 홀로를 삼가하느니라.(道也者, 不可須臾離也, 可離, 非道也. 是故, 君子, 戒愼乎其所不睹, 恐懼乎其所不聞. 莫見乎隱, 莫顯乎微, 故君子, 愼其獨也)”라는 말이 있다. 이는 계신공구(戒愼恐懼)로써 미발시(未發時)에 존양(存養)하고 신독(愼獨)으로써 이발시(已發時)의 성찰(省察)해야 한다는《중용》 저자 자사(子思)의 수양론이다.


14) 성(誠)을 밝혀서 지극한 도를 이루게 하였네 :《중용》제21장에 “성(誠)함으로 말미암아 밝은 것을 ‘성(性)’이라 하고, 밝힘으로 말미암아 성(誠)한 것을 ‘교(敎)’라 하니, 성(誠)하면 밝고 밝히면 성(誠)하게 된다.”는 말과《중용》제27장에 진실로 지극한 덕을 지닌 사람이 아니면 지극한 도가 엉기지 않는다.(苟不至德, 至道不凝焉)는 말이 있다. 병명(屛銘)의 ‘명성(明誠)’은 ‘본성을 밝히면 진실무망(眞實無妄)하게 됨’을 말하는 것이나 표현의 어려움이 있어 ‘성(誠)을 밝혀’ 라고 번역하였다. 윗 구절과 함께 자사(子思)의 학문을 말한 것이다.


15) 마음을 잡아 보존함은 하늘을 섬기는 바이고 :《맹자》〈고자장구(告子章句) 상〉에 “공자가 말하기를, ‘잡으면 보존되고 놓으면 잃어버리며, 나가고 들어옴에 일정한 때가 없어서 그 향하는 곳을 알지 못함은 오직 마음을 이르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셨다.(孔子, 曰操則存, 舍則亡, 出入無時, 莫知其鄕, 惟心之謂與)”는 말이 있고,《맹자》〈진심장구(盡心章句) 상〉에 “마음을 보존하여 그 성품을 기르는 것은 하늘을 섬기는 방법이다.(存其心, 養其性, 所以事天也)”는 말이 있다.


16) 곧음과 도의로써 호연지기를 길렀네 :《맹자》〈공손추장구(公孫丑章句) 상〉에서 맹자가 말하기를, “나는 나의 호연한 기운을 잘 길렀다.(我, 善養吾浩然之氣)”라 하였고, 이어서 “그 기운은 지극히 크고 지극히 굳세니, 곧음으로 길러 해침이 없으면 천지의 사이에 가득찬다. 그 기운은 도의(道義)와 짝을 하니, 이것이 없으면 시들게 된다.(其爲氣也, 至大至剛, 以直養而無害, 則塞于天地之間. 其爲氣也, 配義與道, 無是, 餒矣)”라고 하였다.


17) 고요함을 주로하여 욕심이 없었으니 : 주렴계(周濂溪)는《태극도설(太極圖說)》에서 “성인(聖人)은 중(中)․정(正)․인(仁)․의(義)로써 이를 안정시키되 정(靜)을 주로 하여 사람의 준칙(準則)을 세우셨다.(聖人, 定之以仁義中正而主靜, 立人極焉)”고 하였고, 또《통서(通書)》에 “어떤 사람이 묻기를, ‘성인은 배움을 통하여 가능합니까?’ 답하기를, ‘가능하다.’ 말하기를, ‘요체가 있습니까?’ 답하기를, ‘있다.’ 하였다. 그 방법을 청하여 묻자, 말하기를, ‘한결같음이 요체가 되니, 한결같음이란 욕심이 없는 것이다. 욕심이 없으면 고요할 때에는 텅 비고 움직일 때에는 곧게 된다. 고요할 때에 텅 비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천하의 이치에) 통하게 된다. 움직일 때에 곧으면 공평하게 되고 공평하면 (천하의 서무(庶務)를) 널리 처리할 수 있다. 밝아서 통하고 공평하여 넓게 되면 (성인의 도에) 거의 가까워지지 않겠는가?(或, 問聖可學乎, 曰可. 有要乎, 曰有. 請問焉, 曰一爲要, 一者, 無欲也, 無欲, 則靜虛動直, 靜虛則明, 明則通, 動直則公, 公則溥, 明通公溥, 庶矣乎)”는 말이 있다.


18) 광풍제월(光風霽月)의 기상이었네 : ‘광풍제월’은 비가 갠 뒤의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이니, 도량이 넓고 시원하여 거리낌이 없음을 비유하는 말이다.《송사(宋史)》 427권 〈주돈이전(周敦頤傳)〉에 “인품이 심히 높아 가슴 속이 시원함이 마치 광풍제월 같다.(人品甚高, 胸懷洒落, 如光風霽月)”고 하였다. 이는 송나라 황정견(黃庭堅)이 염계(濂溪) 주돈이(周敦頤)의 인품을 평한 말이다.


19) 풍월(風月)을 읊조리며 돌아왔었고 : 명도(明道) 정호(程顥)가 말하기를, “두 번 째로 주렴계(周濂溪)를 뵙고 난 뒤 풍월(風月)을 읊조리며 돌아왔는데, ‘나도 증점(曾點)과 함께 하리라’는 기상을 갖게 되었다.(自再見周茂叔後, 吟風弄月以歸, 有吾與點也之意)”고 하였다.《송사(宋史)》427권〈주돈이전(周敦頤傳)〉


20) 따뜻한 햇빛과 우뚝한 산 같았네 : 주자의〈육선생화상찬(六先生畵像贊)〉에 나오는 구절로 정명도를 이르는 말이다.《예기》〈옥조(玉藻)〉편에 “우뚝한 산처럼 움직이지 않고, 행해야 할 때에는 행하여야 한다. 성대한 기운을 몸에 가득 길러서 봄기운이 사물을 따뜻하게 하는 것처럼 하고, 옥처럼 낯빛에 변동이 없어야 한다.(山立, 時行, 盛氣顚實, 揚休, 玉色)”는 말이 있다.


21) 몸가짐이 ~ 않았네 : 정이천(程伊川)이 성학(聖學)의 요체인 ‘경(敬)’을 설명한 말이다. 이천(伊川)이 말하기를, “몸가짐을 가지런히 하고 엄숙하게 하면 마음은 절로 한결같게 되니, 한결같게 되면 그릇되고 치우친 것이 그 뜻을 간섭하지 못할 것이다.(整齊嚴肅, 則心自一, 一則無非僻之干矣)라 하였고, 또 “하나를 주장함을 경(敬)이라 하고,〈마음이〉다른 곳으로 감이 없는 것을 ‘하나’라고 한다.(主一之謂敬 無適之謂一)”고 하였다. 이천(伊川)의 학문을 말한 것이다.


22) 박문(博文)과 ~ 이으셨네 : 이 구절은 주자(朱子)의 학문을 말한 것이다.《논어》〈옹야(雍也)》편에 “공자가 말하기를, ‘군자가 글을 널리 배우고 예로서 요약한다면, 또한 도에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子曰君子博學於文, 約之以禮, 亦可以不畔矣夫)”는 말이 있다. 주자는 요순(堯舜) 이래로 전해진 성인의 학문을 박학(博學)을 통해 밝히고 약례(約禮)를 통해 실천하였으니, 곧 도학 연원의 정맥을 이었다고 할 수 있다.


23) 경(敬)으로써~했으며 :《주역》〈곤괘(坤卦)〉문언(文言)에 “군자는 경(敬)으로써 내면을 곧게 하고 의로써 외면을 바르게 한다.(君子, 敬以直內, 義以方外)” 라는 말이 있다.


24) 네 가지가~없었으며 :《논어》〈자한(子罕)〉편에 “공자에게는 네 가지 마음이 끊은 듯이 없었으니, 사사로운 뜻이 없으며, 기필하는 마음이 없으며, 고집하는 마음이 없으며, 나[我]라는 마음이 없었다.(子絶四, 毋意, 毋必, 毋固, 毋我)” 하였다.


25) 성인(聖人)의~관통되었네 :《논어》〈이인(里仁)〉편에 “공자가 말하기를, ‘삼(參)아! 나의 도는 하나로 꿰뚫고 있느니라.’ 하니, 증자(曾子)가 ‘예’ 하고 대답하였다. 공자가 나가자, 문인들이 ‘무슨 말씀입니까?’ 하고 물으니, 증자가 ‘부자(夫子)의 도는 충(忠)과 서(恕)일 뿐이다.’(子曰參乎, 吾道, 一以貫之, 曾子, 曰唯. 子出, 門人, 問曰何謂也, 曾子, 曰夫子之道, 忠恕而已矣)”고 한 말이 있다.


夙興夜寐箴

鷄鳴而寤, 思慮漸馳, 盍於其間, 澹以整之, 或省舊愆, 或紬新得, 次第條理, 瞭然黙識, 本旣立矣, 昧爽乃興, 盥櫛衣冠, 端坐斂形, 提撥此心, 皦如出日, 嚴肅整齊, 虛明靜一, 乃啓方冊, 對越聖賢, 夫子在坐, 顔曾後先, 聖師所言, 親切敬聽, 弟子問辨, 反覆參訂, 事至斯應, 則驗于爲, 明命赫然, 常目在之, 事應旣已, 我則如故, 方寸湛然, 凝神息慮, 動靜循環, 惟心是監, 靜存動察, 勿貳勿參, 讀書之餘, 間以游泳, 發舒精神, 休養情性, 日暮人倦, 昏氣易乘, 齋莊整齊, 振拔精明, 夜久斯寢, 齊手斂足, 不作思惟, 心神歸宿, 養以夜氣, 貞則復元, 念玆在玆, 日夕乾乾.

○ 右箴, 南塘陳茂卿所作以自警者. 金華王魯齋, 嘗主敎台州上蔡書院, 專以是箴爲敎, 使學者人人誦習服行. 臣今謹倣魯齋敬齋箴圖, 作此圖以與彼圖相對, 蓋敬齋箴有許多用工地頭, 故隨其地頭, 而排列爲圖, 此箴有許多用工時分, 故隨其時分, 而排列爲圖. 夫道之流行於日用之間, 無所適而不在, 故無一席無理之地, 何地而可輟工夫, 無頃刻之或停, 故無一息無理之時, 何時而不用工夫. 故子思子, 曰道也者, 不可須臾離也, 可離, 非道也, 是故, 君子, 戒愼乎其所不睹, 恐懼乎其所不聞. 又, 曰莫見乎隱, 莫顯乎微, 故君子, 愼其獨也. 此一靜一動, 隨處隨時, 存養省察, 交致其功之法也. 果能如是, 則不遺地頭, 而無毫釐之差, 不失時分, 而無須臾之間, 二者並進, 作聖之要, 其在斯乎.

○ 以上五圖, 原於心性, 而要在勉日用崇敬畏.


附 錄


易復之象, 曰雷在地中, 復, 先王, 以, 至日閉關, 商旅不行, 后不省方.

(本義) 安靜以養微陽也. 月令, 是月齊戒掩身, 以待陰陽之所定.

臨之象, 曰澤上有地, 臨, 君子, 以, 敎思无窮, 容保民, 无疆. (本義) 地臨於澤上臨下也. 二者皆臨下之事. 敎之无窮者, 兌也. 容之无疆者, 坤也.

泰之象, 曰天地交, 泰, 后, 以, 財成天地之道, 輔相天地之宜, 以左右民.

(本義) 財成以制其過, 輔相以補其不及.

大壯之象, 曰雷在天上, 大壯, 君子, 以, 非禮弗履. (傳) 雷震於天上, 大而壯也. 君子, 觀大壯之象, 以行其壯, 君子之大壯者, 莫若克己復禮. 古人, 云自勝之謂强, 中庸, 於和而不流, 中立而不倚, 皆曰强哉矯, 赴湯火, 蹈自刃, 武夫之勇, 可能也, 至於克己復禮, 則非君子之大壯, 不可能也, 故, 云君子以非禮弗履.

夬之象, 曰澤上于天, 夬, 君子, 以, 施祿及下, 居德, 則忌. (傳) 君子, 觀澤決於上而注漑於下之象, 則以施祿及下, 觀其潰決之象則以居德則忌, 居德, 謂安處其德, 則, 約也, 忌, 防也, 謂約立禁防, 有防禁則無潰散也.

乾之象, 曰天行, 健, 君子, 以, 自疆不息. (傳) 乾道覆育之象, 至大, 非聖人, 莫能體, 欲人皆可取法也. 故取其行健而己, 至健, 固足以見天道也.

君子以自疆不息, 法天行之健也. (本義) 天行, 一日一周, 而明日, 又一周, 非至健, 不能也. 君子法之, 不以人欲害其天德之剛, 則自疆而不息矣.

姤之象, 曰天下有風, 女后, 后, 以, 施命誥四方. (傳) 風行天下, 无所不周, 爲君后者, 觀其周徧之象, 以施其命令, 周誥四方也. 風行地上, 與天下有風, 皆爲周徧庶物之象, 而行於地上, 徧觸萬物則爲觀, 經歷觀省之象也, 行於天下, 周徧四方則爲姤, 施發命令之象也.

遯之象, 曰天下有山, 遯, 君子, 以, 遠小人, 不惡而嚴. (傳) 天下有山, 山下, 一作上起而乃止, 天上進而相違, 是遯避之象也. 君子, 觀其象, 以避遠乎小人, 遠小人之道, 若以惡聲厲色, 適足以致其怨忿, 惟在乎矜莊威嚴, 使知敬畏, 則自然遠矣. (本義) 天體無窮, 山高有限, 遯之象也. 嚴者, 君子自守之常, 而小人自不能近.

否之象, 曰天地不交, 否, 君子, 以, 儉德辟難, 不可榮以祿. (傳) 天地不相交通, 故爲否. 否塞之時, 君子道消, 當觀否塞之象, 而以儉損其德, 避免禍難, 不可榮居祿位也. 否者, 小人得志之時, 君子居顯榮之地, 禍患必及其身, 故宜晦處窮約也. (本義) 收斂其德, 不形於外, 以避小人之難, 人不得以祿位榮之.

觀之象, 曰風行地上, 觀, 先王, 以, 省方觀民, 設敎. (傳) 風行地上, 周及庶物, 爲由歷周覽之象. 故先王體之, 爲省方之禮, 以觀民俗, 而設政敎也. 天子巡省四方, 觀視民俗, 設爲政敎, 如奢則約之以儉, 儉則示之以禮, 是也. 省方, 觀民也, 設敎, 爲民觀也.

剝之象, 曰山附於地剝, 上, 以, 厚下, 安宅. (傳) 山高起於地而反附著於地, 圯剝之象也. 上, 謂人君與居人上者, 觀剝之象, 而厚固其下, 以安其居也, 下者, 上之本, 未有基本固而能剝者也. 故上, 一作山之剝, 必自下, 下剝則上危矣. 爲人上者, 知理之如是, 則安養人民, 以厚其本, 乃所以安其居也. 書, 曰民惟邦本, 本固邦寧.

坤之象, 曰地勢坤, 君子, 以, 厚德載物. (傳) 坤道之大, 猶乾也, 非聖人, 孰能體之. 地厚而其勢順, 故取其順厚之象, 而云地勢坤也. 君子觀坤厚之象, 以深厚之德, 容載庶物.

按, 先生, 以此圖爲時分工夫, 故謹取先天圖十二辟卦, 上應太極圖之意, 以終之, 而繼之以夙寤, 晨興, 讀書, 應事, 日乾, 夕惕, 養以夜氣等節目, 學者宜潛心焉.

小宛詩, 曰夙興夜寐, 無忝爾所生. (集傳) 忝, 辱也. 言當努力, 不可暇逸, 求無辱於父母而已.

孟子, 曰鷄鳴而起, 孶孶爲善者, 舜之徒也, 鷄鳴而起, 孶孶爲利者, 蹠之徒也, 欲知舜與蹠之分, 無他, 利與善之間也. (集註) 孶孶, 勤勉之意. 言雖未至於聖人, 亦是聖人之徒也. ○ 程子, 曰言間者, 謂相去不遠, 所爭毫末耳. 善與利, 公私而已矣, 才出於善, 便以利言也. ○ 楊氏, 曰舜蹠之相去, 遠矣, 而其分乃在利善之間而已, 是豈可以不謹, 然講之不孰, 見之不明, 未有不以利爲義者, 又學者所當深察也. ○ 或問鷄鳴而起, 若未接物, 如何爲善. 程子, 曰只主於敬, 便是爲善.

商書, 曰先王, 昧爽丕顯, 坐以待旦. (集傳) 昧, 晦, 爽, 明. 昧爽云者, 欲明未明之時也. 丕, 大也. 顯, 亦明也. 先王於昧爽之時, 洗濯澡雪, 大明其德, 坐以待旦而行之也.

孟子, 曰周公, 思兼三王, 以施四事, 其有不合者, 仰而思之, 夜以繼日, 幸而得之, 坐以待旦. (集註) 三王, 禹也, 湯也, 文武也. 四事, 禹湯文武之事也. 時異勢殊, 故其事或有所不合, 思而得之, 則其理初不異矣. 坐以待旦, 急於行也.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說悅同. (集註) 學之爲言, 效也. 人性皆善, 而覺有先後, 後覺者, 必效先覺之所爲, 乃可以明善而復其初也. 習, 鳥數飛也. 學之不已, 如鳥數飛也. 說, 喜意也. 旣學而又時時習之, 則所學者熟, 而中心喜悅, 其進自不能已矣. ○ 程子曰, 習, 重習也. 時復思繹, 浹洽於中, 則說也. 又曰, 學者, 將以行之也. 時習之, 則所學者在我, 故悅. 謝氏曰, 時習者, 無時而不習, 坐如尸, 坐時習也, 立如齊, 立時習也.

葉公, 問孔子於子路, 子路不對. 子曰, 女奚不曰, 其爲人也, 發憤忘食, 樂以忘憂, 不知老之將至云爾. (集註) 未得, 則發憤而忘食, 已得, 則樂之而忘憂, 以是二者俛焉, 日有孶孶, 而不知年數之不足, 但自言其好學之篤爾. 然深味之, 則見其全體至極, 純亦不已之妙, 有非聖人不能及者. 蓋凡夫子之自言, 類如此, 學者宜致思焉.

曾子曰, 吾日三省吾身, 爲人謀而不忠乎, 與朋友交而不信乎, 傳不習乎. (集註) 盡己之謂忠, 以實之謂信. 傳, 謂受之於師, 習, 謂熟之於己. 曾子以此三者, 日省其身, 有則改之, 無則加勉, 其自治誠切, 如此, 可謂得爲學之本矣, 而三者之序, 則又以忠信爲傳習之本也. ○ 尹氏, 曰曾子守約, 故動必求諸身.

易乾之九三, 曰君子, 終日乾乾, 夕惕若, 厲, 无咎. 文言, 曰君子, 進德修業, 忠信, 所以進德也, 修辭立其誠, 所以居業也. 知至至之, 可與幾也, 知終終之, 可與存義也, 是故, 居上位而不驕, 在下位而不憂, 故乾乾, 因其時而惕, 雖危, 无咎矣. (傳) 內積忠信, 所以進德也, 擇言篤志, 所以居業也. 知至至之, 致知也, 求知所至而後一无後字至之, 知之在先, 故可與幾, 所謂始條理者知之事也. 知終終之, 力行也, 旣知所終, 則力進而終之, 守之在後, 故可與存義, 所謂終條理者聖之事也, 此, 學之始終也. 君子之學, 如是, 故知處上下之道而无驕憂, 不懈而知懼, 雖在危地, 而无咎也. (本義) 忠信, 主於心者, 无一念之不誠也, 修辭, 見於事者, 无一言之不實也. 雖有忠信之心, 然非修辭立誠, 則无以居之. 知至至之, 進德之事, 知終終之, 居業之事, 所以終日乾乾而夕惕若者, 以此故也, 可上可下, 不驕不憂, 所謂无咎也.

宰予晝寢. 子曰, 朽木不可雕也, 糞土之牆不可杇也, 於予與何誅. (集註) 晝寢, 謂當晝而寐. 朽, 腐也, 雕, 刻畫也, 杇, 鏝也. 言其志氣昏惰, 敎無所施也. 與, 語辭, 誅, 責也. 言不足責, 乃所以深責之. 范氏, 曰君子之於學, 惟日孜孜, 斃而後已, 惟恐其不及也, 宰予晝寢, 自棄孰甚焉, 故夫子責之. 胡氏, 曰宰予不能以志帥氣, 居然而倦, 是宴安之氣勝, 儆戒之志惰也. 古之聖賢, 未嘗不以懈惰荒寧爲懼, 勤勵不息自强, 此孔子所以深責宰予也.

論語曰, 食不語, 寢不言. (集註) 答述曰語. 自言曰言. 范氏曰, 聖人存心不他, 當食而食, 當寢而寢, 言語非其時也. 楊氏曰, 肺爲氣主而聲出焉, 寢食則氣窒而不通, 語言恐傷之也. 亦通.

論語, 曰寢不尸, 居不容. (集註) 尸, 謂偃臥似死人也. 居, 居家, 容, 容儀. 范氏, 曰寢不尸, 非惡其類於死也, 惰慢之氣, 不設於身體, 雖舒布其四體, 而亦未嘗肆爾. 居不容, 非惰也, 但不若奉祭祀,見賓客而已, 申申夭夭, 是也.

孟子, 曰牛山之木, 嘗美矣云云. 見上心學圖. (集註) 愚聞之師, 曰人理義之心, 未嘗無, 惟持守之, 卽在爾. 若於朝晝之間, 不至梏亡, 則夜氣愈淸, 夜氣淸, 則平旦未與物接之時湛然虛明氣象, 自可見矣. 孟子發此夜氣之說, 於學者, 極有力, 宜熟玩而深省之也.

程子曰, 人心作主不定, 正如一箇翻車, 流轉動搖, 無須臾停, 所感萬端, 若不做一箇主, 怎生奈何. 張天祺, 嘗言自約數年, 自上著牀, 便不得思量, 才不思量後, 須强把這心來制縛, 亦須寄寓在一箇形象, 皆非自然. 君實, 嘗患慮紛亂, 有時中夜而作, 達朝不寐, 可謂良自苦, 人都來多少血氣, 若此則幾何而不摧殘以盡也. 其後, 告人, 曰近得一術, 常以中爲念, 則又是爲中所亂, 中又何形, 如何念得也. 只是於名言之中, 揀得一箇好字, 與其爲中所亂, 却不如與一串數珠之愈也. 夜以安身, 睡則合眼, 不知若苦思量箇甚, 只是不以心爲主. ○ 又, 曰人於夢寐間, 亦可以卜自家所學之淺深, 如夢寐顚倒, 卽是心志不定, 操存不固. ○ 朱子, 曰魂與魄交而成寐, 心在其間, 依舊能思慮, 所以做出夢, 若心神安定, 夢寐亦不至顚倒. ○ 西山眞氏夜氣箴, 曰子盍觀夫冬之爲氣乎. 木歸其根, 蟄坏其封, 凝然寂然, 不見兆朕, 而造化發育之妙, 實胚胎乎其中. 蓋闔者闢之基, 貞者元之本, 而艮所以爲物之始終. 夫一晝一夜者, 三百六旬之積, 故冬爲四時之夜, 而夜乃一日之冬, 天壤之間, 群動俱闃窈乎如未判之鴻濛, 維人之身, 嚮晦宴息, 亦當以造物而爲宗, 必齊其心, 必肅其躬, 不敢弛然自放於牀第之上, 使慢易非僻, 得以賊吾之衷, 雖終日乾乾, 靡容一息之間斷, 而昏冥易忽之際, 尤當致戒謹之功, 蓋安其身所以爲朝聽晝訪之地, 而夜氣深厚, 則仁義之心, 亦造乎其不窮, 本旣立矣, 而又致察於事物周旋之頃, 敬義夾持, 動靜交養, 則人欲無隙之可入, 天理曒乎其昭融, 然知及之而仁不能守之, 亦空言, 其奚庸, 爰作箴以自砭, 常凜凜乎癏痌.孟子之言外旨也.

李子屛銘曰, 堯欽舜一, 禹祗湯慄, 翼翼文心, 蕩蕩武極, 周稱乾惕, 孔云憤樂, 曾省戰兢, 顔事克復, 戒懼愼獨, 明誠凝道, 操存事天, 直義養浩, 主靜無欲, 光風霽月, 吟弄歸來, 揚休山立, 整齊嚴肅, 主一無適, 博約兩至, 淵源正脈. 一本, 堯欽舜恭, 禹孜湯慄, 翼翼文心, 蕩蕩武極, 直內方外, 日乾夕惕, 天德絶四, 聖道貫一, 三省戰兢, 四勿克復, 戒懼謹獨, 明誠凝道, 操存事天, 擴充養浩, 樂山玩草, 吟風弄月, 整齊嚴肅, 主一無適, 博約兩至, 淵源正脈. ○ 又先生書與金鶴峰屛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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