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학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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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서명도

〈서명〉


건(乾)을 아버지라 부르고, 곤(坤)을 어머니라 부른다.1) 나는 여기서 보잘 것 없이 그 가운데 뒤섞이어 처한다. 그러므로 천지를 가득 채우고 있는 기운이 나의 몸을 이루고, 천지를 주재하는 이치가2) 나의 본성을 이룬다. 만백성이 나의 형제이고, 만물이 나와 무리를 같이 한다. 위대한 임금은 나의 부모님의 장자이고, 그 대신들은 장자의 가신들이다. 나이든 사람을 존경하는 것은 자기 집안의 어른을 어른으로 모시기 때문이며,3) 외롭고 약한 사람을 자애롭게 대하는 것은 나의 어린 아이를 어린 아이로 여기기 때문이다.4) 성인은 그 덕이 천지의 덕과 합쳐지는 사람이고, 현인은 그 덕이 다른 사람들에 비하여 빼어난 사람이다. 무릇 천하의 노쇠하고 지친 사람이나 병들고 상한 사람, 형제가 없이 독신인 사람과 늙어서 자식이 없어 외로운 사람, 아내가 없는 홀아비와 남편이 없는 과부는 모두 나의 형제들이면서도 어렵고 괴로운 처지에 놓여 하소연할 곳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때때로 그들을 잘 보양하는 것은 자식된 도리로서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고, 즐기면서 근심하지 않는 것은 어버이에 대한 효성인 것이다. 도리를 어기는 것을 패덕이라 하고 인을 해치는 것을 적이라 한다. 악한 행위를 이루는 것은 못난 것이며, 신체로써 해야할 도리를 실천해 나가는5) 사람은 부모를 닮은 것이다. 변화의 도를 알면 천지의 사업을 잘 이어받을 수 있고,6) 신명을 잘 궁구하면 천지의 뜻을 잘 계승할 수 있다. 방에서 가장 깊숙하여 어두운 곳에서도 부끄러움이 없어야 욕됨이 없게 되고, 자신의 마음을 보존하고 본성을 키워야7) 게으르지 않게 된다. 맛있는 술을 싫어한 것은 숭백의8) 아들이 부모님을 돌보고 봉양하고자 함이었고, 영재를 기름은 영곡의 봉인이 효자의 덕행을 남에게 퍼뜨린 것이었다.9) 노력을 늦추지 않아 부모님을 기쁘게 하기에 이른 것은 순이 이루어 놓은 공이었고,10) 도망을 가지 않고 삶겨 죽는 형벌을 기다린 것은 신생의 공경함이다.11) 그 부모에게 받은 몸을 온전하게 하여 죽을 때 그대로 되돌린 사람은 증삼이며,12) 부모의 명을 따르는데 용감하고 명령을 따른 사람은 백기이다.13) 부와 귀, 복과 은택은 장차 하늘이 나의 삶을 두터이 해주는 것이요, 가난과 천함, 근심 걱정은 그대를 옥처럼 갈고 연마함으로 완성시키려는 것이다. 나를 잘 보존하고 일을 순리대로 해야 죽어서도 내가 편하다.


주자가 말하였다.

〈서명〉을 정자14)는 이치는 하나이면서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것이라 생각하였다. 대체로 하늘을 아버지로 생각하고 땅을 어머니로 생각하는 것은 삶이 있는 무리들이라면 그렇지 않은 사물이 없다. 이것이 이른바 이치가 하나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이나 동물 같은 생물, 혈맥이 있는 무리들은 각자 자기의 어버이를 어버이로 여기고, 각자 자기의 자식을 자식으로 여기고 있으니 그 나눔이 또한 어찌 여러 갈래가 아닐 수 있겠는가? 하나로 통일되면서도 만 가지로 달라지니 아무리 천하가 하나의 집이고 온 중국이 한 사람과 같다하더라도 겸애의 폐단으로 흐르지는 않게 되는 것이다. 만 가지로 달라지더라도 하나(의 이치)로 꿰고 있으니 아무리 친하고 멀고 한 정의(情誼)의 다름이 있고 귀하고 천하고 한 차등이 다르다 하더라도 나만을 위한 사사로움에 얽매이지는 않게 된다. 이것이 〈서명〉의 큰 뜻이다. 어버이를 어버이로 섬기는 두터운 마음을 미루어 나만을 위하지 않는 공적인 마음을 키우고, 어버이를 섬기는 정성으로 말미암아 하늘을 섬기는 도리를 밝히는 것이다. 대체로 어디를 가더라도 이른바 나누어져 있어도 미루어 보면 이치가 하나가 아닌 것이 없다.

또 말하였다.

명문의 앞의 일단은 바둑판 같고, 뒤의 일단은 사람이 바둑을 두는 것과 같다.

귀산 양씨가15) 말하였다.

〈서명〉은 이치는 하나인데 여러 갈래로 나누어지는 것을 말하였다. 그 이치가 하나임을 아는 것은 인을 행하게되는 까닭이며, 여러 갈래로 나누어짐을 안다는 것은 의를 행하게 되는 까닭이다. 이는 바로 맹자가 말한 “먼저 친척들을 친하게 대하고난 뒤에 백성들에게 인자하게 대하고, 백성들을 인자하게 대하고서 사물을 아끼게 된다.”16)라 한 것과 같다. 그 나누어짐이 같지 않으니 베푼 바가 차등이 없지 않을 수 없을 따름이다.

쌍봉 요씨17)가 말하였다.

〈서명〉의 앞의 한 절은 사람이 천지의 아들임을 밝힌 것이고, 뒤의 한 절은 사람이 하늘을 섬기는 것이 당연히 아들이 부모를 섬김과 같아야 한다는 것을 말하였다.

위의 명문은 횡거 장자18)가 지은 것으로 처음에는 〈완고함을 바로잡는다(訂頑)〉였으나 정자가 〈서명(西銘)〉으로 고쳤다. 임은 정씨19)가 이 그림을 그린 것은 대체로 성학은 인(仁)을 구하는데 있으며, 모름지기 이 뜻을 깊에 체득하여야만 바야흐로 천지만물과 함께 하나의 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아는데 있다. 진실로 이 정도의 경지가 되어야 인을 행하는 공부가 비로소 자기에게 친숙해지고 절실해져서 막연하여 건너 다닐 수 없는 걱정에서 벗어나게 된다. 또한 사물이 자기만을 위한다는 병폐도 없어지게 되어 심덕이 온전하여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정자가 말하기를 “〈서명〉은 뜻이 지극하고 완전히 갖추어져 있으므로 인의 본체가 된다.”라 하였고, 또한 말하기를 “이 인을 완전히 채울 수 있을 때라야 성인(聖人)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부록


주자의 명문 해설


하늘을 아버지라 부르고 땅을 어머니라 부른다~뒤섞이어 처하다  하늘은 양이다. 지극히 튼튼하며 위쪽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아버지의 도이다. 땅은 음이다. 지극히 순하고 아래쪽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어머니의 도이다. 하늘에서 기운을 품부받고 땅에서 형체를 받아 막연한 몸으로 마구 섞이어 사이도 없이 중간에 자리잡고 있으니 아들의 도이다. 그런데도 천지라고 말하지 않고 건곤이라 한 것은 천지는 그 형체이고, 건곤은 그 성정이기 때문이다. 건이라는 것은 튼튼하고 쉼이 없는 것을 이르며 만물이 바탕으로 삼아 비롯하는 것이다. 곤이라는 것은 순하고 떳떳함이 있는 것을 이르며 만물이 바탕으로 삼아 생겨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천지가 천지가 되면서 부모가 되는 까닭이다. 만물이라는 것은 그런 까닭으로 그것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주자가 말하였다.

〈서명〉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이치는 하나인데 여러 갈래로 나누어지는 것이다. 하늘이 아버지이고 땅은 어머니인 것은 실로 하나의 이치이며, 나누어 말하면 곧 건곤은 스스로 건곤이며 부모는 스스로 부모인 것을 볼 수 있는데 오직 “일컬을 칭”(稱)자 만이 다른 것을 보여준다.20)

그 가운데 뒤섞이어 처한다는 것은 혼합되어 사이가 없음을 말한 것인데, 대체로 이 몸은 곧 천지에서 온 것이라는 것을 말한 것이다.21)

서산 진씨가22) 말했다.

〈서명〉은 어버이를 섬기는 마음을 미루어 하늘을 섬기는데, 대체로 보모는 나를 낳아준 분이고 나를 낳게 하여준 것은 천지이다. 하늘은 기를 부여해주었고 땅은 형체를 부여해주었으니, 부모는 실로 나의 부모이며, 천지 또한 나의 부모이다. 주자가 말하기를 “부모라는 것은 한 몸의 부모이다.”23)라 하였다. 천지라는 것은 사람과 사물, 자신과 남이 모두 함께 부모로 삼는 것이다. 부모가 나를 낳았으니 사지와 백체를 하나라도 온전히 하지 않을 수 없으며 반드시 그 몸의 형체를 온전히 갖출 수 있고 난 다음에야 부모와 천지가 나를 낳음을 더럽히지 않게 된다. 오상(五常)과 백선(百善)을 하나라도 갖추지 않은 것이 없으며, 반드시 그 본성의 이치를 온전히 할 수 있은 연후라야 천지를 저버리지 않게 되므로 사람을 어질게 대하고 어버이를 섬기는 것을 하늘을 섬기는 것과 같이 해야 하며, 하늘을 섬기는 것을 어버이 섬기듯이 해야하며, 이것이 〈서명〉이 묘하게 가리킨 것인데, 이는 알아두지 않을 수 없다.

이자가 말하였다.

“나 여”(予)자 및 명문 가운데 있는 아홉 개의 “나 오”(吾)자는 실로 사람마다 자기 자신을 일컫는 말을 본떠서 쓴 것이다. 그러나 무릇 이 글을 읽는 사람은 이 (일인칭을 나타내는) 열 자에서 다만 장횡거가 자기 자신을 말한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되며 또한 어떤 다른 사람이 “나”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도 안되고, 모두가 마땅히 자신의 일이라고 자임하는 것으로 보아야만 비로소 〈서명〉이 본래 인(仁)의 체(體)를 형상한 것임을 알게될 것이다. 그런데 반드시 자기 자신을 위주로 말한 것은 어째서인가? 옛날에 부자가 자공의 널리 은혜를 베풀어 많은 사람을 구제한다는 질문에 답하여 말하기를 “인자는 자신을 세우고자 하면 남을 서게 하며, 자신을 통달하게 하고자 하면 남을 통달하게 한다.”24)고 하였는데 뜻이 이와 같다. 아마도 자공이 내 몸에서 직접 인을 찾지 않고 너무 멀고 상관도 없는 곳에서 인을 찾기 때문에 부자가 이것을 말하여 그로 하여금 자신으로 돌아와 인의 체를 가장 절실한 곳에서 알 수 있게 하고자 한 것이었다. 지금 장횡거 또한 “인이란 것이 비록 천지만물과 일체가 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반드시 자기 자신으로부터 원본(原本)이 되고 주재가 되어 모름지기 사물과 내가 하나의 이치로 이루어져 있다는 절실한 의미와 가슴 가득한 측은지심이 두루 관철되고 유통되어 막힘이 없고, 그것이 어느 곳이든 미치지 않는 데가 없음을 깨달아야만 비로소 이것이 인의 실체이다.”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만약 이 이치를 모르고 모든 천지만물 일체(一體)를 인으로 생각한다면 이른바 인의 체라는 것은 한없이 넓고 멀어서 나의 심신에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또한 여(予)와 오(吾)는 곧 나[我]이다. 자공이 이른바 “나는 남이 나에게 하지 말았으면 하는 것을 나도 또한 남에게 하지 않으려고 한다.”25)라 한 곳의 아(我)자와 오(吾)자와 같은 것으로 공적인 뜻이다. 그런데 “공자는 네 가지를 끊었으니 억측함도 없고 기필함도 없으며, 고집함도 없고 나[我]를 내세움도 없다.”26)라 한 데서 쓴 아(我)자는 사적인 뜻이다. 부자께서 이른바 “자신[己]이 서려고 하면 남을 세운다.”한 곳의 “己”자는 공적인 뜻이다. 안자에게 말한 “자기를 극복하고 예로 돌아온다.”(克己復禮)27)한 곳의 “己”자는 사적인 뜻이다. 여러 자로 일컬어지는 것이 본래 합하여 한 글자가 되지만 한 글자의 사이에도 한 자는 공적인 뜻으로 한 자는 사적인 뜻으로 갈라져 천리와 인욕, 득실의 나누어짐이 하늘과 땅의 차이처럼 동떨어질 뿐만 아니라 털끝 만한 차이가 천리를 그르치게 되는 것이니 더욱 살피지 않을 수 없다.28)

내가 생각건대 《예기》에서는 “천자는 ‘나 한 사람’이라고 한다.”29)라 하였는데, 아홉 번의 “나 오”(吾)자 위에 특별히 “나 여”(予)자 한 자를 첨가한 것은 아마도 여기에서 근거를 둔 것 같다.


그러므로 천지에 가득찬 것이 ~ 나의 본성을 이룬다 건은 양이고 곤은 음인데, 이 천지의 기운이 하늘과 땅의 두 사이를 꽉 채우고 있어서 사람과 사물이 몸체를 이루는 바탕이 된다. 그러므로 “그러므로 천지를 가득 채우고 있는 기운이 나의 몸을 이룬다.”고 하였다. 건은 튼튼하고 곤은 순종을 하는데 이것이 천지의 뜻이 기운의 주재가 되며, 사람과 사물이 본성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지를 주재하는 이치가 나의 본성을 이룬다.”고 하였다. 이곳을 깊이 살피면 건을 아버지라 부르고 곤을 어머니라 부르며 나는 그 안에 뒤섞여 있다는 것을 실로 알게된다.

〈서명〉의 뜻을 물었더니 주자가 말하였다.

긴요한 혈맥이 되는 곳은 모두 “천지의 가득한 기운이 나의 몸을 이루고 있고, 천지를 주재하는 이치가 나의 본성을 이루고 있다.”는 두 구절에 있다. 위쪽의 “건을 아버지라 부르고”에서 “그 가운데 뒤섞이어 만물 속에 존재한다.”까지는 머리이고, 아래쪽의 “백성은 나의 동포이고 만물은 나와 동류이다.”라 한 곳은 목이다. 그 아래쪽은 곧 확 펼쳐서 말한 것으로 설이 매우 많다. “위대한 임금은 나의 부모님의 장자[宗子]이고” 운운한 것은 모두 “만백성이 나의 형제이고, 만물이 나와 무리를 같이 한다.”는 설에서 나왔다. “변화의 도를 알면 천지의 사업을 잘 이어받을 수 있고, 신명을 잘 궁구하면 천지의 뜻을 잘 계승할 수 있다.”는 설에 이르면 이 뜻은 곧 다만 저 “천지를 가득 채우고 있는 기운이 나의 몸을 이루고, 천지를 주재하는 이치가 나의 본성을 이룬다.”는 뜻이다. 사림의 아들이 되면 곧 아버지의 일을 잘 이어받고 아버지의 뜻을 잘 계승할 수 있어야 하며, 이렇게 하면 바야흐로 어버이 섬기기를 하늘 섬기는 것과 같이 하는 것이다. 하늘의 일을 잘 이어받을 수 있고 하늘의 뜻을 잘 계승할 수 있어야만 바야흐로 하늘을 섬기는 것이다. 만약에 이 도리를 어긴다면 곧 하늘의 덕을 어그러지게 하는 사람이며, 만약 이 인을 해친다면 곧 하늘의 도적이다. 만약 악한 행위를 이루고도 이를 깨닫고 고치지 않는다면 바로 하늘의 재주 없는 자식이고, 만약 신체로써 해야할 도리를 실천해 나가는 사람은 하늘의 훌륭한 자식인 것이다. 이 뜻의 혈맥이 되는 곳은 모두가 “천지를 가득 채우고 있는 기운이 나의 몸을 이루고, 천지를 주재하는 이치가 나의 본성을 이룬다.”는 말에서 나왔다. 긴요한 곳은 모두 이 두 구절인데 만약 이 두 구절이 아니라면 하늘은 하늘이고 나는 나이니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누군가 묻기를 “이 두 구절은 바로 이는 하나라고 한 곳이 아닙니까?”라 하니 “그렇다.”고 하였다.30)

이자가 말하였다.

주자가 말하기를 “이 편은 모두 옛 사람들의 말씀을 모은 것이므로 지금 이것을 읽으려면 매 단락의 말씀마다 모름지기 먼저 그것이 유래한 곳을 찾아야만 옛 사람이 원래 처음 세운 말의 본뜻이 어떠한가를 알 수 있을 것이며, 나아가 여기서 장횡거의 말과 글자를 쓰는 법이 이와 같이 교묘하기가 무궁함을 알아내어야 비로소 이것과 저것이 상호 계발되어 그 귀추(歸趣)를 알 수 있게 된다. 이 절의 “塞”자와 “帥”자는 맹자에서 나왔다.31)


백성은 나의 동포이고 만물은 나와 동류이다 사람과 사물은 모두 천지 사이에서 살아간다. 그 몸체가 되는 바탕을 이루는 것은 모두가 천지의 사이에 채워져 있는 것이다. 그 성품이 될 수 있는 것은 모두가 천지를 주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몸에는 치우치는 것과 바른 것의 다름이 있기 때문에 그 성품에 있어서는 밝고 어두움의 차이가 없을 수 없다. 오로지 사람만이 그 형체와 기운의 올바른 것을 얻었으며, 이로 인하여 그 마음이 가장 신령스러운 것이며, 성명의 온전함에 통하고 함께 살아가는 가운데 몸체를 이루고 있다. 또한 같은 무리가 되어 가장 귀하게 되므로 동포에 있어서 그것을 봄이 모두 자기의 형제와 같은 것이다. 사물은 대체로 형체와 기운의 치우친 것을 얻어서 성명의 온전함에 통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나와는 같은 무리를 이루지 못하고 사람과 같이 귀하지도 않다. 그러나 그 몸체와 품성이 말미암은 곳 또한 천지에 근본을 두고 있으므로 일찍이 같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내가 함께 하면 그것을 봄이 또한 자기의 무리들과 같은 것이다. 오로지 동포이기 때문에 천하를 한 집으로 생각하고 중국을 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아래의 글에서 말한 것과 같이 오로지 내가 함께 하므로 무릇 천지의 사이에서 형체를 이루고 있는 것은 움직이는 것 같기도 하고 뿌리를 박고 있는 것 같기도 하며, 정이 있는 듯 없는 듯하여 그리되는 까닭이 없음이 없으며 그 품성이 마침내 그 마땅함을 얻는 것과 같다. 이것이 유자(儒者)의 도가 반드시 천지에 참여하고 화육을 기리는데 이르러야 할 까닭이다. 그런 뒤라야 공용이 온전해지고 바깥으로 강한 것이 있지 않게 된다.

서산 진씨가 말하였다.

무릇 하늘과 땅 사이에서 태어난 것은 천지의 아들이 아닌 것이 없고 나의 동기다. 이것을 일러 이치가 하나라는 것이다. 그러나 친한 것은 나와 같은 몸을 한 백성이며, 나와는 무리가 같은 것인데 사물은 무리가 다르다. 이것을 일러 갈래가 나누어짐이라고 한다. 그 이치가 하나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인과 사랑을 베풂에 두루 미치지 않음이 없고 여러 갈래로 나누어지기 때문에 인과 사랑의 베풂에 차이가 있게 되는 것이다.


위대한 임금은 ~ 하소연할 곳이 없는 사람이다 건을 아버지라 하고 곤을 어머니라 하며 사람은 그 안에서 살고 있으니 모든 천하의 사람은 모두 천지의 아들이다. 그러나 천지의 통리(統理)를 계승한 인물은 위대한 임금일 따름이므로 부모의 종자(宗子)가 되고, 위대한 임금을 보좌하고 여러 가지 일의 기강을 잡는 것은 대신일 따름이므로 종자의 가상(家相)이 되는 것이다. 천하의 노인은 한 가지이므로 무릇 천하의 나이 든 사람을 높이는 것이 곧 나의 어른을 어른으로 모시는 것이다. 천하의 어린이도 한 가지이므로 무릇 천하의 외롭고 약한 사람을 자애롭게 대하는 것이 곧 나의 어린이를 어린이로 대하는 것이다. “성인은 천지와 더불어 그 덕이 합치된다.”32)는 것은 형제가 부모에게서 덕이 합치되는 것이다. “현자(賢者)의 재덕(才德)이 보통 사람을 능가한다.”는 것은 형제가 동등한 무리들 보다 빼어나다는 것이다. 이는 모두 천지의 아들을 가지고 말한 것이니 모든 천하의 노쇠하고 지친 사람이나 병들고 상한 사람, 형제가 없는 외아들과 아내가 없는 홀아비와 남편이 없는 과부들이 내 형제이면서 하소연할 곳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면 어찌하겠는가?

주자가 말하였다.

사람은 모두 천지의 아들인데 대군은 곧 적장자이며, 이른바 종자(宗子)에 임금의 도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대군이라는 것은 곧 내 부모의 종자일 따름이라 하였지 이른바 이미 부모인데 강등되어 아들이 되었다라는 것과는 같지 않다.33) “종자가 어떻게 적장자입니까?”라고 묻자 말하였다. “이것이 바로 아버지의 사당을 이어 받은 것을 비유할 따름이다. 아버지의 사당을 계승한 종자는 형제들이 종실로 삼는 것인데 부모의 적장자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34)

이자가 말하였다.

대체로 이미 천하를 나의 형제로 삼는다면 마땅히 아버지의 사당을 계승한 종자를 가지고 말할 것이며, 만약 할아버지 이상의 종자라면 모두 나의 친형제는 아닐 것이다.

내가 생각건대 《주례》에서는 재상 한 사람이 종묘의 제사를 돕는다고 하였는데, 여기서 말한 가상은 대체로 여기에 근본한 것이다.35)


이따금 그들을 보양함은 ~ 순수한 효성인 것이다 하늘을 두려워하면서 스스로 지키는 사람은 어버이를 공경하기를 지극히 하는 것과 같다. 하늘을 즐거워하면서 근심하지 않는 것은 어버이를 사랑함이 순수한 것과 같다.

묻기를 “〈서명〉의 ‘하늘을 아버지라 부르고 땅을 어머니라 부른다’에서 ‘백성은 나의 동포이고 사물은 나와 함께 사는 같은 족속이다’라 한 곳은 인의 본체이며. ‘때때로 그들을 잘 보양하는 것은’ 이하는 공부를 하는 곳입니까?”라 하자, 주자가 말하였다. “만약 동포가 나의 동류이다라고 말한다면 널리 베풀고 무리를 구제한다고 말하는 것으로 오히려 옳지 않다. 따라서 다만 사람이 공부를 해야할 곳은 단지 공경과 두려움에 있을 뿐이라고 설교한 것이다. 그러므로 ‘때때로 보존함은 자식의 공경이다.’고 하였으며, 항상 공경하고 두려워하면 이 도리는 저절로 있게 되는 것이다.”36)

이자가 말하였다.

〈주송〉에서는 말했다. “나는 이른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하늘의 위엄을 두려워하여, 이 문왕의 유업을 보전하리라.”37) 〈대아〉에서는 무왕이 호경(鎬京)으로 천도한 일에 대하여 말하기를 “따라야할 계획 전하시어 공경하는 아들을 편안하게 하였도다.”라38) 하였는데, “날개 익”(翼)자는 공경한다는 뜻이다. “翼子”는 공경할 수 있는 아들로 성왕을 가리킨다. 《주역․계사(繫辭)》에서는 “하늘을 즐거워하고 명을 알기 때문에 근심하지 않는다.”39)고 하였다. 이것은 공자가 성인의 덕이 이와 같음을 기린 것이다. 여기에 인용한 말은 성인이 하늘을 즐긴다는 것으로 위 문장의 현자는 하늘을 두려워한다는 것에 대비시킨 것이다. 《좌전》에서는 영고숙을 순효(純孝)라 하였는데 이는 그 말을 “때때로 그들을 보존함은”에서 그 아래의 “따름에 용감하여 명령에 순종한 사람은 백기이다”하고 한데까지의 말을 차용한 것으로 모두 위의 구절은 하늘을 섬기는 도리를 말하였고, 아래 구절은 어버이를 섬기는 일을 가지고 그것을 밝힌 것이다. 주자가 이른바 매 구절마다 두 가지의 뜻이 있다고 한 것이다.


도리를 어기는 것을 패덕이라 하고 ~ 부모를 닮은 것이다 하늘의 이치를 따르지 아니하고 인욕만 따르는 자는 그의 어버이를 사랑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 그러므로 그것을 일러 패덕이라고 한다. 하늘의 이치를 없애고 멸하며 뿌리와 근본을 스스로 끊어버리는 자는 그 어버이를 죽이고 대역무도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일러 적이라고 한다. 오래도록 악한 짓을 행하여 고치지 않고 교훈을 줄 수 없는 자는 세상에서 그 흉악함을 이루고 그의 악명을 더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재주가 없다고 하였다. 대체로 사람의 본성을 다하여 사람의 형체를 다 채움이 있다면 천지는 서로 비슷하여 어김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부모를 닮았다고 하였다.

주자가 말하였다.

사람은 형체[形]와 색을 가지고 있는데 각기 자연의 이치를 가지고 있지 않음이 없으며 이것을 이른바 천성(天性)이라고 한다. “踐”자는 “한 말을 실천한다”의 “踐言”과 같은 뜻의 “踐”자이다. 대개 뭇사람들은 이 형체를 가지고 있으나 그 이치를 다할 수 없기 때문에 그 형체를 실천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성인만이 이 형체를 가지고 있고 또한 그 이치를 다할 수 있다. 그런 후라야 그 형체를 다할 수 있으며 마음에 흐뭇하지 않음이 없을 수 있다.

이자가 말하였다.

어긴다는 것은 하늘을 어기는 것이다. 곧 《논어》의 인을 어긴다는 위이며,40) 인을 어긴다는 것은 하늘을 어기는 것이다. 《효경》에서 말하기를 그 어버이를 사랑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을 일러 패덕이라고 한다 하였다.41) 《좌전》에서는 “혼돈(渾敦), 궁기(窮奇), 도올(檮杌)의 세 족속은 모두 못난 것들이라 대대로 흉악한 짓을 행하여 그 악명을 더하였다.”42)고 하였다. 《맹자》에서 말하기를 “사람의 모습은 하늘로부터 타고난 성품이니 오직 성인이라야 그 모습에 걸맞는 행위를 한다.”43)고 하였습니다. 《서경․열명(說命)》편에 “열이 부암(傅巖)의 들에서 축대를 쌓고 있었는데 얼굴이 닮았다.”고 하였다. 이곳의 닮았다(惟肖)는 두 자는 그 글자가 나온 곳을 밝힌 것이다. ‘닮을 초’(肖)자의 본뜻은 《운회》에서 말하기를 “골육지친간에 서로 비슷하게 닮은 것”이라 하였다. 사람들은 그 선조와 비슷하게 닮지 않은 것을 불초하다고 한다. 이를테면 《맹자》에서 “단주(丹朱)는 불초하고, 순의 아들 또한 불초하였다.”44)라 한 것과 같은 것이 이런 뜻이다. 또한 《한서․형법지》에서는 “사람은 천지의 모습을 닮았다.”고 하였고, 그 주석에서는 “머리가 둥근 것은 하늘을 형상한 것이고 발이 모난 것은 땅을 형상한 것이다”, “용렬하고 망령된 사람을 불초라고 하는데, 그 형상과 모습이 비슷하게 닮은 것이 없음을 말한다.”라 하였다.45) 지금 생각건대 장횡거가 이 한 글자를 본래의 “그 선대를 닮는다”는 뜻을 바꾸어 “천지를 닮는다”는 뜻으로 바꾼 것이며, 그 글은 《서경》에 나오는 부열의 유초(惟肖)라는 말을 사용하였으니, 그 교묘하기가 무궁하고 그 여운이 있는 것이 바로 이와 같다.


변화의 도를 알면 ~ 그 뜻을 잘 계승한다 효자는 사람의 뜻을 잘 잇고 사람의 일을 잘 말하는 사람이다. 성인(聖人)이 변화의 도를 알면 행하는 것이 천지의 일이 아닌 것이 없다. 신명의 덕에 통하면 존재하는 것이 천지의 마음이 아닌 것이 없다. 이 두 가지는 모두 하늘을 즐거워하고 형을 실천하는 일이다.

“변화의 도를 알면 그 일을 잘 따르고 신묘함을 궁구하면 그 뜻을 잘 계승한다하였는데 그 뜻이 어떻습니까?”라 묻자 주자가 말하였다. “성인이 천지를 대하는 것은 효자가 부모를 대하는 것과 같다.”46) 변화라는 것은 천지의 쓰임은 한번 지나가면 자취가 남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을 안다는 것은 천지의 쓰임이 나에게 있는 것이 아들이 그 아버지의 일을 잘 따르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신묘하다는 것은 천지의 마음은 항상 존재하고 있으나 재지를 못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궁구하면 천지의 마음이 내게 있는 것이 아들이 아버지의 뜻을 계승한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 마음을 얻은 후에 그 쓰임을 말할 수 있기 때문에 신묘함을 궁구하면 변화를 안다고 말하였다. 그런데 《중용》에서는 말하기를 “중과 화를 지극히 하면 천지가 제자리를 편안히 하고, 만물이 잘 생육될 것이다.”(致中和, 天地位焉, 萬物育焉)47)라 하였는데, 또한 이것을 이름이 아니겠는가?

이자가 말하였다.

《역경․계사》에서 말하기를 “신묘함을 궁구하고 변화를 아는 것은 덕의 성대함이다.”48)라 하였다. 《중용》에서는 “대저 효라고 하는 것은 사람의 뜻을 잘 계승하고 사람의 일을 잘 따라서 행하는 것이다.”49)라 하였다. 지금 생각건대 《중용》의 “사람 인”(人) 두 자는 어버이를 가리켜 말한 것이다. 이 단락에서는 “그 기”(其)자로 썼다. 비록 또한 어버이를 가리킨 말이기는 하나 뜻은 실제 하늘을 가리킨 것으로 그 뜻이 깊고 묘하다. 술(述)자는 따른다는 뜻이다. “아버지가 짓고 아들은 따른다”50)고 말한 것과 같은 경우가 이것이다. 또 닦는다[修]는 뜻과 잇는다[纘]는 뜻도 있다. 그러므로 무릇 남의 일을 끝내는 것, 남의 말을 편찬하는 것을 모두 술(述)이라 한다.


집안 구석에서도 부끄러움이 없어야 ~ 게으르지 않게 되는 것이다 《효경》에서는 《시경》을 인용하여 “낳아주신 부모님 욕되게 말아야지.”라 하였다.51) 그러므로 하늘을 섬기는 사람은 우러러 창피한 것이 없고 숙이어 부끄러움이 없으면 천지를 더럽히지 않는 것이다. 또 말하기를 “이른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52)라 하였으므로 하늘을 섬기는 사람은 그 마음을 보존하고 그 본성을 기르면 하늘을 섬기는데 게으르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두 가지는 하늘을 두려워하는 일이며 군자가 대저 천성의 자연스런 법칙에 따라서 실천하는 까닭인 것이다.

이자가 말하였다.

위(衛)나라 무공(武公)이 〈억(抑)〉이라는 시를 지어 장님으로 하여금 아침 저녁으로 외우게 하여 스스로를 경계하였으니 그 시에 이르기를 “네가 방안에 있는 것을 보니, 오히려 옥루에 있는 것이 부끄럽지 않도다.”(相在爾室, 尙不愧于屋漏)53)라 하였다. 네가 방안에 있을 때에 보니, 마땅히 경계하고 두려워하며 삼가고 조심하여 방구석 깊숙한 곳에서도 부끄러움이 없게 하라고 한 것이다. 이 일은 하늘을 섬기는 일이다. 주나라의 대부가 난리를 만나 형제가 서로를 경계한 시에서 말하기를 “이른 새벽에 일어나고 밤 늦게 잠들어 너를 낳은 분을 욕되게 하지 말라.”(夙興夜寐, 無忝爾所生)54)라 하였다. 첨(忝)은 욕되게 하다의 뜻이며, 낳은 분은 부모를 이른다. 훌륭하지 않은 일을 하여 낳아주신 부모를 욕되게 하지 말라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끌어다 비유한 것은 하늘을 욕되게 함이 없는 아들을 말한다. 《맹자》에서는 말하기를 “그 마음을 보존하고 그 성품을 기르는 것은 하늘을 섬기는 것이다.”(存其心, 養其性, 所以事天也)55)라고 하였다. 《시경》의 〈증민(烝民)〉편에서 말하기를 “이른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한 사람만 섬긴다.”(夙夜匪懈, 以事一人)라 하였는데, 시인이 본래 중산보가 충성을 다하여 임금을 섬길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효경》에서는 이것을 인용하여 말하기를 “경대부는 충성을 다하여 임금을 섬기는 것이 바로 효도하는 것이다.”라 하였다. 그러므로 장횡거는 이것을 효자가 어버이를 섬기는 일이라 하였고, 따라서 하늘을 섬기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것에 비유하였다.


맛 있는 술을 싫어하여 ~ 남에게 미치다 술 마시기를 좋아하고 부모를 봉양하는 것을 돌아보지 않는 사람은 효성스럽지 못하다. 그러므로 사람의 욕심을 막기를 우임금이 맛있는 술을 미워하듯이 하기만 하면 하늘을 봉양함을 돌아보는 것은 지극하다. 성품이라는 것은 만물의 하나의 근원으로 내가 사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영재를 기름을 영고숙이 장공에게 미치게 함과 같이 한다면 그 무리를 길이 이어가게 하는 사람은 많아지게 될 것이다.

이자가 말하였다.

의적(儀狄)56)이 술을 만들었는데 우임금이 그것을 마셔보고 달게 여겨 말하기를 “후세에 반드시 술 때문에 그 나라를 망하게 하는 자가 생기리라.”라 하고는 마침내 의적을 멀리하고 맛있는 술을 끊었다.57) 숭(崇)은 나라 이름인데 백작의 작위를 받은 나라이다. 우임금의 아버지인 곤(鯀)이 숭나라에 봉하여졌기 때문에 《국어》에서는 그를 숭백이라 하였고, 그 아들은 우라 하였다. 맹자는 노름을 하고 술 마시기를 좋아하여 부모 봉양하는 것을 돌보지 않는 것을 다섯 가지 불효 가운데 하나라고 하였다.58) 그러므로 횡거가 이 때문에 그 말을 반대로 한 것이다. 우임금이 맛있는 술을 싫어한 것은 곧 인욕을 막고 천리를 보존하는 것으로, 사람의 아들이 술 마시는 것은 좋아하면서도 부모는 봉양할 수 없다는 것과 같다. 맹자는 말하였다. “천하의 영재를 얻어 그를 교육시키는 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다.”59) 《좌전》에서는 “군자가 말했다. ‘영고숙은 큰 효자로다. 그 어미를 사랑하여 그 사랑이 장공에게까지 미쳤으니. 《시》에서 말하기를 “효자의 효심 끝이 없으니, 길이길이 그대들에게 복 내리리.”라 하였으니, 아마 이 사람을 이름이 아니겠는가!’”라 하였다.60) 장횡거는 이것을 인용하여 말하기를 “군자가 나의 천성이 착함을 미루어 천하의 영재를 가르쳐 그렇게 되도록 하는 것이 모두 영고숙이 자신의 효심을 미루어 장공에게 미치게 하여 역시 효자가 되게 한 것과 같다.”고 하였다.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아 기쁘게 하기에 이르고 ~ 신생의 공손함이다 순(舜)이 어버이를 섬기는 도리를 다하여 고수(瞽瞍)가 즐기게 되었으니 그 공이 크다. 그러므로 하늘을 섬기는 사람이 하늘을 섬기는 도리를 다하여 하늘의 마음이 그것을 즐기게 되면 또한 하늘이 내린 순이다. 신생은 달아나지를 않고 삶아 죽이는 형벌을 기다렸는데 그 공손함이 지극하다. 그러므로 하늘을 섬기는 사람은 일찍 죽는 것이나 천수를 누리는 것이나 두 가지로 여기지 않고 몸을 닦아서 기다린다면 또한 하늘이 내린 신생인 것이다.

이자가 말하였다.

《맹자》에서는 말하기를 “순이 어버이 섬기는 도리를 다하여 고수가 즐기게 되었다.”61)라 하였다. 대체로 순의 아버지 고수는 늘 순을 죽이고자 하여 순으로 하여금 창고를 고치게 하고 우물을 치게 하였으나 순은 노고로 인하여 그 효도하고 공경하는 마음을 늦추는 일이 없이 지극하고 정성과 독실함을 다하니 고수도 그것을 깨닫고는 또한 기쁨에 이르렀다. 군자가 하늘 섬기기를 이와 같이 한다면 지성이 감천하는 공은 순이 어버이를 기쁘게 한 공과 같다는 것을 말하였다. “하늘과 땅 사이에 도망할 곳이 없다”는 말은 《장자》에서 나왔다.62) 진(晉)나라 헌공(獻公)이 여희(驪姬)의 참소를 듣고 그 태자 신생(申生)을 죽이고자 하니 어떤 사람이 그에게 자기는 죄가 없음을 밝히라고 권하였으나 옳지 않다고 하였으며, 다른 나라로 달아나라고 하였으나 또한 듣지를 않고 마침내 스스로 목숨을 끊으니 시호를 공(恭)이라 하였다. 지금 삶아 죽이는 형벌을 기다렸다고 한 것은 끓는 솥에 삶아 죽이는 형벌 또한 피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이는 군자는 환란에 처하여서도 그 마음을 두 가지로 갖지 않음을 이와 같이 할 수 있다면 그 하늘을 공경하는 마음이 신생의 공경함과 같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그 받은 몸을 온전히 하여 돌려보낸 것은 ~ 백기이다 부모가 몸을 온전히 하여 자식을 낳았는데 자식이 그 몸을 온전히 하여 돌려보내는 것을 증자가 죽을 무렵에 손을 보고 발을 보는 것처럼 한다면 부모에게서 받은 몸을 온전히 하여 돌려보내는 것이다. 하물며 하늘이 나에게 준 것은 하나의 훌륭함도 갖추지 않은 것이 없으니 또한 온전히 하여 낳아준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을 섬기는 사람이 하늘에서 받은 몸을 온전히 하여 돌려보낼 수만 있다면 또한 하늘이 내린 증자인 것이다. 자식은 부모에 대하여 동서남북 어디서든 명령을 따라야하는데, 백기가 들판에서 서리를 밟는 것과 같이 한다면 따르는데 용감하고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다. 하물며 하늘이 내게 명한 것은 길흉화복이 인욕의 사사로움을 가진 것이 아니니 하늘을 섬기는 사람이 명령을 따라 순종하는데 용감하여 그 올바름을 받아들일 수만 있으면 또한 하늘이 내린 백기인 것이다.

묻기를 “‘맛있는 술을 싫어한 것’에서 ‘용감하여 명령에 순종한 것’까지의 이 여섯 성현의 일로 이치는 하나인데 여러 갈래로 나누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까?”라 하자 주자가 말하였다. “맛있는 술을 싫어하고 영재를 기름은 하늘을 섬기는 것이다. 어버이를 돌본 것 및 그 무리를 길이 잇게 한 것은 어버이를 섬기는 것이다. 매 하나의 구절마다 모두 두 개의 뜻이 존재하는데 유추해보면 알 수 있다.”63)

묻기를 “영고숙이 그 무리를 길게 이어나감과 신생의 공손함은 두 사람이 모두 잃을 곳이 없을 수 없는데 어찌 효도를 다 얻을 수 있겠습니까?”라 하자 말하였다. “〈서명〉은 본래 효도를 말한 것이 아니고 다만 하늘을 섬기는 것을 말하였지만 어버이를 섬기는 마음을 미루어 하늘을 섬길 따름이다. 두 사람이 이곳으로 나아가 그것을 논한 것이 실로 이와 같다. 대체로 어버이를 섬기면 도리어 바른 것이 있고 바르지 않은 것이 있는 곳을 면하지 못한다. 만약 하늘의 도가 순수하면 바르고 바르지 않은 곳이 없고 다만 이 마음을 미루어 그것을 받들어 섬길 따름이다.”64)

묻기를 “〈서명〉의 도망을 가지 않고 삶겨죽기를 기다린 것은 신생이 자식의 도를 다하지 못한 것인데 무슨 까닭으로 취하였습니까?”라 하자 “하늘은 헌공(獻公)과 비슷한 것을 얻는데 이르지 못했다. 사람에게 망령됨이 있다면 하늘에는 망령됨이 없다. 만약 자기를 죽게 한다면 곧 이치가 이와 같이 합치되는데 다만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 따름이다.”65)

이자가 말하였다.

부모는 온전히 하여 그를 낳고 아들은 온전히 하여 돌아간다는 것은 악정자춘이 일컬은 부자의 말이다. 《효경》에서는 공자가 증자에게 이르기를 “신체에 난 털이며 살갗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감히 헐고 상해를 내지 아니함이 효도의 시작이다.”66)라 하였는데, 증자가 죽을 때까지 이 가르침에 복종하였으므로 죽음에 임하여 문하의 제자들을 불러놓고 말하기를 “내 발을 보고 내 손을 보라. 《시경》에서 이르기를 ‘두려워하고 조심조심하여 깊은 못에 다다른 듯이 하고, 얇은 얼음을 밟듯이 하라.’ 하였으니 이제야 내가 (몸을 헐고 상해를 내지 않을까 하는 근심에서) 벗어난 것을 알겠구나.”라 하였다.67) 이것이 증자가 몸을 받아 온전히 하여 돌아간 일이다. 이는 사람 가운데 하늘에서 몸에 받은 것을 온전히 하여 돌아갈 수 있었던 사람은 곧 하늘의 증삼이며, 사람 가운데 하늘에서 동서남북을 돌아봐도 오로지 명령에 따른 사람은 곧 하늘의 백기라는 것을 말한다.


부귀와 복택은 ~ 너를 옥으로 써서 완성해줄 것이다 부귀와 복택은 나를 크게 받들고 나로 하여금 훌륭한 일을 쉽게하도록 하여주는 것이다. 가난함과 천함, 근심과 슬픔은 나를 어지럽히고 내가 뜻을 행함을 독실하게 하여주는 것이다. 천지가 사람들에게 하여주는 것이나 부모가 자식들에게 하여주는 것이나 그 마음을 베푸는 것이 어찌 다르겠는가? 그러므로 군자가 천하를 섬기는 것은 주공의 부유함으로도 교만함에 이르지 않고 안자의 가난함으로도 그 즐거움을 바꾸지 않는다. 그 어버이를 섬김은 사랑하면 기뻐하여 잊지 않고, 미워하면 두려워하며 원망하지 않으니 그 마음 또한 마찬가지일 따름이다.


주자가 말하였다.

하늘을 공경하는 것은 마땅히 어버이를 공경하듯이 하여 두려워하고 조심조심하여 이르지 않는 곳이 없게 하여야 한다. 하늘을 사랑하는 것은 마땅히 어버이를 사랑하듯이 하여 따르지 않는 곳이 없게 하여야 한다. 하늘이 나를 낳음에 편안하게 하여 나로 하여금 가난하고 천하며 슬퍼하고 근심스럽게 하였으니 부모님께서 나를 성취하게 하려는 것처럼 마땅히 수고하고 원망을 하지 않아야 한다.68)

서산 진씨가 말하였다.

화와 복 길사와 흉사가 오는 것은 마땅히 순리대로 행하여 그 정명(正命)을 받아야 한다.69) 하늘이 나에게 복록과 은택을 내린 것은 나에게 사사로운 감정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내가 착한 것의 바탕으로 생각하는 것은 곧 그 책임을 두터이 하는 것이다. 비유컨대 어버이를 섬기면, 부모가 그를 사랑하면 기뻐하고 잊지 않는 곳과 같다. 하늘이 나에게 근심과 걱정을 내린 것은 나를 곤경에 빠뜨리려고 그런 것이 아니다. 장차 그 심지를 흔들어 어지럽게 함으로써 그가 잘하지 못하는 것을 더해주려는  것이다. 비유컨대 어버이를 섬기면, 부모가 그를 미워하면 두려워하면서도 원망하지 않는 것과 같다. 곧 이것으로 그것을 미루어보면 어버이가 곧 하늘이요, 하늘은 곧 어버이이다. 그 섬기는 것에 어찌 두 가지를 용납하겠는가?

이자가 말하였다.

“왕께서는 당신들을 옥 같은 보배로 여기시니, 그래서 크게 간하는 것이라네.”(王庸玉汝, 是用大諫)70)라 한 것은 주나라 여왕(厲王) 때 대부가 동료들에게 서로 경계하던 말이다. 지금 이것을 인용하여 “하늘이 실로 너를 보배처럼 사랑하여 그를 성취시키고자 한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너[汝]는 하늘에 의탁하여 나[我]를 가리킨 것이다. 주석의 “나로 하여금 착한 일을 하게끔 하는 것은 쉽다”(使吾之爲善也輕)의 “가벼울 경”(輕)자의 뜻은 “쉬울 이”(易)자와 같은 뜻이다. 《맹자》에 “백성이 따르기가 쉽다.”(民之從也輕)71)라는 말이 있다.


나를 잘 보존하고 일을 순리대로 해야 죽어서도 내가 편하다 효자의 몸이 살아 있으면 그 어버이를 섬기는 것이 그 뜻을 어기지 않을 따름이다. 죽으면 편안해져서 어버이에게 부끄러운 것이 없게 된다. 어진 사람의 몸이 살아 있으면 그 하늘을 섬기는 것이 그 이치를 거스르지 않을 따름이고, 죽으면 편안해져서 하늘에 부끄러움이 없게 된다. 대체로 이른바 아침에 도를 듣고 저녁에 죽는다는 것은 내가 바른 것을 얻은 후에 그 상태로 죽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장자의 명문은 이것으로 끝이 난다.

이자가 말하였다.

나는 바른 것을 얻은 후에 죽겠다는 말은 《예기․단궁》편에 보인다.72) 주자가 말하였다. “옛사람들은 예법을 삼가서 죽고 사는 변이 있다고 하여도 그 지키는 것을 바꾸지 아니함을 이와 같이 하였다. 곧 사람으로 하여금 한 가지 불의를 행하고 한 죄 없는 사람을 죽여서 천하를 얻을 수 있다고 하더라고 그렇게 하지 않는 마음, 이것이 요긴한 것이다.”73)


논(論)하여 이르기를74),

하늘과 땅 사이에 이치(理)는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건도(乾道)가 남자를 이루고 곤도(坤道)가 여자를 이루어, 두 가지 기운이 교감하여 만물이 생겨나니, 그 크고 작음의 구분과 친밀하고 소원한 정도가 열, 백, 천, 만 가지에 이르러 같을 수가 없다. 성현이 출현하지 않으면, 누가 그 다른 것들을 모아서 같게 할 수 있겠는가? 〈서명(西銘)〉을 지은 뜻은 대개 이와 같은데, 정자(程子)는 그것을 밝혀 이일분수(理一分殊)라 하였으니, 가히 한 마디 말로 전체를 포괄하였다고 할 수 있다.

대개 건(乾)을 아버지로 하고 곤(坤)을 어머니로 하는 것은 생명이 있는 것으로 그러하지 않은 것이 없으니, 이른바 이치는 한 가지(理一)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과 사물이 생겨나면서 핏줄이 통하여, 각기 자기 부모를 부모로 하고 자기 자식을 자식으로 하니, 그 분수가 또한 어찌 다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한 가지로 통일되면서도 만 가지로 달라지니, 비록 천하가 한 집안이고 중국이 한 사람이라도 겸애(兼愛)의 폐단으로 흐르지 아니하고, 만 가지로 다르면서도 하나로 관통하니, 비록 친한 사람과 소원한 사람에게 정(情)을 베푸는 것이 다르고 귀한 사람과 천한 사람간에 등급이 다르다 해도 위아(爲我)의 사사로움에 얽매이지 않게 되니75), 이것이 〈서명〉의 큰 가르침이다.

자기 부모에게 부모로 대하는 후덕함을 미루어 무아(無我)의 공공성을 확대해 가고 부모를 섬기는 정성으로 인하여 하늘을 섬기는 도(道)를 밝히는 것을 보면, 대개 어느 곳을 가나 이른바 ‘나누어져 있지만 미루어 가면 이치는 하나’인 것이 아닌 경우가 없다. 어찌 오로지 나의 동포만을 백성으로 여겨 어른은 어른으로 여기고 아이는 아이로 여기는 것으로 이치는 하나(理一)라고 할 것이며, 반드시 말이나 뜻으로 표현된 것을 속으로 깨달은 연후에야 그 나누어져서 다름(分殊)을 알겠는가? 그리고 이른바 물건을 저울로 달 듯이 공평하게 베푼다는 것은 바로 물건을 다는 공정함으로써 나의 베풂을 공평하게 함을 이른다. 만약 물건을 저울에 다는 것과 같은 의리가 없다면, 어떻게 베푼 것이 공평하다는 것을 알겠는가? 귀산(龜山)76)이 보낸 두 번째 편지에서, 대개 이러한 뜻을 발명하고자 하였지만 말이 미진하였고 이치는 (밝혀지지 않은 채로) 남아 있었다. 그래서 내가 그 설로 인하여 이렇게 말하였으니, 뜻을 같이 하는 선비들이 더불어 절충하였으면 다행이겠다.

내(주희)가 이렇게 해석한 후 윤씨(尹氏)77)의 편지를 얻었는데, 거기에 이르기를 “양중립(楊中立)78)이 이천(伊川) 선생에게 답하면서 〈서명〉에 관해 논하였는데, 편지에 ‘확 풀리어 의혹이 없습니다.’는 말이 있었다. 선생께서 그 말을 읽으시고는 ‘양시 또한 석연치 않다.’ 하였다.” 라고 되어 있었다. 이로써 여기서 논한 바 두 번째 편지의 설에 대해서는 이천 선생께서도 또한 인정하지 않았음을 알겠다. 그러나 귀산(龜山)의 어록(語錄)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서명〉은 이치는 한 가지이지만 나누어져서 달라진다는 것이니, 이치가 하나임을 아는 까닭에 인(仁)을 행하게 되고, 나누어져서 달라짐을 아는 까닭에 의(義)를 행하게 된다. 이른바 나누어져서 달라진다(分殊)는 것은 맹자(孟子)가 말한 ‘부모에게 친하게 대하고 나서 백성에게 어질게 하며, 백성에게 어질게 하고 나서 사물을 사랑한다.’79) 함과 같으니, 그 나누어짐이 같지 아니한 까닭에 베풂에 있어서 차등이 없을 수 없다.”라 하였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체(體)와 용(用)은 결국 분리되어 두 가지가 될 것입니다.” 하기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용은 일찍이 체와 분리된 적이 없습니다. 사람을 가지고 보면, 사지와 온갖 골격은 하나의 몸뚱이에 갖추어져 있다는 것이 체이고, 그 용처에 있어서 머리에 신을 신을 수 없고 발에다 관을 쓸 수 없으니, 대개 체로 말하면 분수는 이미 그 가운데 있습니다.” 이 논의를 통해 분별하는 것이 다르기도 하고 같기도 하지만 각기 주장하는 바가 있으니, 결코 (양귀산이 이천 선생에게) 답한 편지에 비교할 바가 아니다. 그가 나이가 많고 덕이 대단하였으며 소견이 처음에는 더욱 정밀하였으니, 함께 반복하여 드러냄으로 인하여 답서(答書)의 설에 진실로 석연치 못한 점이 있다는 것을 밝혔지만, 양귀산의 소견이 대개 여기에 그치지는 않을 것이다.

귀산(龜山) 양씨(楊氏)는 정자에게 글을 올려 말하였다.

“감히 말씀드리지만, 도(道)는 밝지 않는데 아는 자는 뛰어넘어 버리니, 〈서명〉이라는 글은 뛰어넘었다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옛날 공자에게 인(仁)에 관해 질문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비록 안자(顔子)와 중궁(仲弓)의 무리들이라 해도 그들에게 알려준 것은 인을 구하는 방법에 불과하였지 인의 본체(體)에 대해서는 말한 적이 없었습니다. 맹자(孟子)가 말하기를, ‘인(仁)은 사람의 마음이고, 의(義)는 사람이 걸어가는 길이다.’ 하였으니, 인에 관해 가장 친절하게 말한 것으로 이만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역시 체(體)․용(用) 두 가지 말을 들어보지 못한 것은 〈서명〉의 설과 마찬가지입니다. 공자와 맹자가 어찌 숨김이 있었겠습니까? 대개 ‘뛰어넘음으로써 후학을 흥기시키는’ 폐단을 범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묵씨(墨氏)의 겸애(兼愛)는 진실로 인자(仁者)가 하는 일이지만, 그것이 흘러 결국 무부(無父)에 이른다면 어찌 묵씨의 죄이겠습니까?

맹자가 힘껏 공격하여 기필코 죄를 묵씨에게 돌아기게 한 것은 근본을 바로잡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군자는 말을 함에 있어서는 반드시 그 끝날 때를 염려하고 행동함에 있어서는 반드시 그 폐단을 헤아리는 것은 바로 이를 말합니다. 〈서명〉이 성인(聖人)의 은미한 뜻을 발명함이 지극히 깊은데도, 그러나 체(體)를 말하면서 용(用)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것은 그것이 흘러 결국 겸애(兼愛)에 이를 것을 걱정한 것인 즉, 후세에 성현이 출현하여 근본을 미루어 논한다면 어쩔 수 없이 죄를 횡거(橫渠)80)에게 돌릴 것입니다. 가끔 제가 망령되게 생각하기를, 이 글은 대개 낙양 사람(西人)81)들이 일반적으로 지키고 실천하던 것으로서, 선생의 한 마디 말씀을 얻어 그 용(用)을 미루어 밝히고 〈서명〉과 병행하면, 아마 체(體)․용(用)이 함께 분명해질 것이고 배우는 사람들로 하여금 방탕한 데로 흘러가지 않게 할 것입니다. 횡거(橫渠)의 학문은 하늘과 사람의 도리를 다할 정도의 온축을 쌓아 후학으로서 헤아릴 수 있는 바가 아닙니다. 그러나 의심이 되는 바가 이와 같은 까닭에 그대로 말하였으니, 선생께서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정자가 말하였다.

“횡거의 말에는 진실로 뛰어넘는 부분이 있습니다. 〈정몽(正蒙)〉이나 〈서명〉과 같은 글에서는 이치를 미루어 의리를 지켰고 전대의 성현들이 발명하지 못했던 부분을 확충하였으니, 맹자의 성선론(性善論)이나 양기론(養氣論)과 동등한 공을 세웠습니다. 어찌 묵씨에 비유하겠습니까? 〈서명〉은 이치는 하나이지만 분리됨으로써 차별이 생긴다는 것을 밝혔고, 묵씨는 근본을 두 가지로 보고 차별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자기 집 노인을 노인으로 모시고 자기 집 어린아이를 어린아이로 보살펴서 남에게까지 미친다는 것은 ‘이치가 한 가지’라는 것이고, 사랑에는 차등이 없어야 한다고 함은 근본을 두 가지로 보는 것입니다.

분수(分殊)의 폐단은 사사로움이 승하여 인(仁)을 상실하는 것이고, 무분(無分)의 죄는 사랑을 똑같이 하여 의리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나누어져 있되 이치가 하나라는 것을 미루어 사사로움이 승하는 경향을 막는 것이 인(仁)을 행하는 방법이요, 차별을 없애고 겸애에 미혹되어 무부(無父)의 극단에 이르는 것은 의(義)를 해치는 적입니다. 그대가 그것을 비교하여 같다고 한다면 잘못입니다. 또 이르기를, ‘체(體)를 말하면서 용(用)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은 것은, 그가 사람들로 하여금 미루어 행하게 하고자 한 것이다.’ 하였는데, 본래 용(用)을 행하고자 하면서 오히려 언급하지 않았다면 또한 이상하지 않습니까?”

귀산(龜山)이 두 번째의 편지에서 말하였다.

“보내 주신 편지에서 〈서명〉의 은미한 뜻을 밝혀 주셨으므로, 엎드려 읽기를 종일토록 하였더니 훤하게 납득이 되어 마치 선생을 모시고 친히 가르침을 받는 것 같았습니다. 옛날 명도(明道)82)를 따라 다니며 배웠는데, 곧 〈서명〉을 주시면서 읽게 하셨습니다. 의미를 찾고 풀기를 여러 날 거듭하였더니 마침내 여기서 깨달은 부분이 있는 것 같았고 비로소 학문하는 대체적 방법을 알게 되어 진실로 종신토록 마음에 담았습니다. 어찌 감히 망령되게 그것을 잘못된 것이라 의심하고 묵씨와 비유하여 똑 같다고 하겠습니까? 앞서 보낸 편지에서 논한 바, 〈서명〉이라는 글에서 백성들을 동포로 여기고 자기 어른을 어른으로 대우하고 자기 아이를 아이로 보살피며, 홀아비․과부․고아․혼자된 늙은이를 의지할 데 없는 형제로 여기는 것이, 이른바 이치는 하나라는 말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말에는 친한 사람을 친하게 대우함에 있어 차등을 둠이 없으니, 명철하지 못한 사람은 그 말로 표현된 것만을 인식하는데, 어떻게 이치는 한 가지(理一)이면서 동시에 나누어져서 구별된다(分殊)는 것을 알겠습니까? 그러므로 제가 걱정하는 것은 그 말이 흘러 결국 겸애(兼愛)에 도달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점이지, 〈서명〉이라는 글이 겸애에 찬동하여 발표되어 묵씨와 같다는 말이 아닙니다. 옛사람들이 남들보다 크게 앞선 것은 다름이 아니라 그 행한 바를 잘 미루어 적용하는 것입니다. 나의 어른을 어른으로 모시어 그것이 남의 어른에까지 미치게 하고, 나의 아이를 아이로 보살펴서 그것이 남의 아이에까지 미치게 하는 것이 이른바 미루어 적용한다는 것입니다. 공자께서 ‘늙은이는 편안케 하고, 어린아이는 보살핀다.’83) 하였으니, (그렇게만 한다면) 미루어 적용함에 있어서 어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미루어 적용함에 있어서 어려움이 없다는 것은 이치가 하나인 까닭입니다. 이치가 하나이되 나누어지면서 구별되는 까닭에, 성인(聖人)들은 저울을 달 듯이 공평하게 베풀었으니, 이로써 인(仁)을 지극히 하고 의(義)를 다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저울로 달듯이 한다고 합니까? 멀리 있는 사람이나 가까이 있는 사람이나, 친한 사람이나 소원한 사람이나, 각기 그 분수에 마땅하게 하는 것을 이른바 저울로 달듯이 한다고 합니다. 무엇을 공평하게 베푼다고 합니까? 베풂에 있어서 그 마음을 한결같이 하는 것을 이른바 공평하게 한다고 합니다.

과거에 저는 〈서명〉이라는 글에 공평하게 베푸는 마음은 있지만 저울로 달 듯이 하는 이치는 없다고 생각했던 까닭에 체(體)에 관해서는 말하였지만 용(用)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고 하였는데, 대개 인(仁)과 의(義)를 가리켜 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인(仁)이 지나치면 그 폐단은 분별이 없는 것이고, 분별이 없으면 의(義)를 막습니다. 의(義)가 지나치면 그것의 폐단은 스스로 사사로워지는 것이고, 스스로 사사로워지면 인(仁)을 해칩니다. 인을 해치는 것은 양씨(楊氏)가 말하는 위아(爲我)의 주장이고, 의를 막는 것은 묵씨(墨氏)가 말하는 겸애(兼愛)의 주장입니다. 두 가지가 그 잘못은 비록 다르지만, 그것이 성인에게 죄가 되는 것은 동일합니다.

〈서명〉의 의미는 은미하고 깊어 알기 어려우니, 참으로 전대의 성인(聖人)들이 발명하지 못한 바입니다. 앞서 보낸 편지에서 논한 바 뛰어넘는 바가 있다고 말씀드린 것은, 그 말에 철저치 못한 것이 있지 않나 의심하였기 때문입니다. 지금 받은 선생의 깨우침을 배우는 사람에게 진실하게 전한다면, 저절로 확 풀리어 의혹이 없어질 것입니다.”

연평(延平) 이씨(李氏)84)가 주자에게 답하는 편지에서 말하였다.

“보내온 편지에 ‘인(仁)은 마음의 올바른 이치(正理)로서, 능히 발동(發動)하고 능히 용사(用事)할 수 있는 하나의 단서이다. 태교(胎敎)에 포함하고 있는 바와 같이, 그 속에는 생명의 기운이 순수하게 갖추어져 있지 않음이 없고, 흘러 움직이다가 일어나는 자연의 기틀은 또한 잠시라도 정지됨이 없이 넘치고 새어나와 닿는 곳마다 관통하며 체(體)와 용(用)이 함께 하여 처음부터 끊어짐이 없다.’ 하였으니, 이 말이 미루어 넓혀 가는 것이 매우 좋습니다. 다만 또 말하기를, ‘사람이 사람으로 되고 금수와 다른 까닭은 이뿐이다. 개의 성(性)이나 소의 성(性)과 같은 것은 (여기에) 끼일 수 없다.’ 하였으니, 만약 이와 같이 말한다면 문제가 있을 것 같습니다.

대개 천지 가운데 생겨난 사물들의 본원(本源)은 한 가지이니, 비록 금수나 초목이라 해도 생리(生理)는 또한 잠시라도 쉬거나 끊어지는 바가 없습니다. 다만 사람은 그 빼어난 부분을 얻었으므로 가장 신령스럽고 오상(五常)과 중화(中和)의 기운이 모여 있는데, 금수는 그 편벽된 부분을 얻었을 뿐이니, 이것이 차이가 나는 까닭입니다. 만약 흘러 움직이다가 발생하는 자연의 기틀과 잠시도 쉬거나 끊어짐이 없는 것으로 말한다면, 금수의 체(體)도 또한 저절로 이와 같을 것입니다. 만약 이것을 이치라고 한다면, 오직 사람만이 그것을 얻었다는 것은 아마 추측하고 체인하는 바가 정밀하지 못한 것 같고 다른 곳에서 곧 차질이 생길 것입니다. 또 ‘모름지기 이 순일하고 잡되지 않은 바를 체인해야만 바야흐로 혼연하여 사물과 체(體)가 하나인 기상을 알게 될 것이다.’ 라고 한 일단의 말은 문제점이 없습니다. 또 ‘이로부터 미루어 나가 구분되어 합당한 바에 이르면 그것이 곧 의(義)’라고 한 이하의 몇 구절은 모두 여기에서 말미암았으며, 인(仁) 한 가지로 꿰뚫었습니다. 대개 오상(五常)과 백행(百行)이 모두 인(仁) 아닌 것이 없다고 하였으니, 이 설은 대체로 옳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추리해 보면, 오히려 이천(伊川) 선생이 말한 바 이치는 한 가지이지만 나누어짐으로써 달라진다(理一而分殊)고 한 것을 체인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귀산(龜山)이 이르기를, ‘그 이치가 하나임을 아는 까닭에 인(仁)을 실천하고, 그 나누어져서 달라짐을 아는 까닭에 의(義)를 실천한다는 말의 의미는 전적으로 지(知)자에 힘쓰는데 달려 있다.’ 하였습니다. 사상채(謝上蔡)85)의 어록에 이르기를, ‘인(仁)하지 않으면 곧 죽은 사람이니, 아프거나 근지러운 것도 모른다. 인(仁)이라는 것은 지각과 깨달음을 갖춘 체계이니, 만약 여기에 대해 공부하여 투철하게 하지 않으면, 무엇으로 본원(本源)의 털끝만큼 차이가 나누어져서 달라짐을 알 수 있겠는가? 만약 여기에서 깨닫지 못하면, 곧 체(體)와 용(用)을 함께 거론할 수 없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이것은 바로 본원의 체와 용을 함께 거론하는 곳이니, 인도(人道)의 확립이 바로 여기에 달려 있습니다. 인(仁)이라고 하는 한 글자는 바로 사덕(四德) 가운데 으뜸이지만, 인(仁)․의(義) 두 글자는 바로 하늘의 도(道)인 음(陰)․양(陽)을 세우는 것과 같고, 땅의 도인 유(柔)․강(剛)을 세우는 것과 같으니, 모두가 이 두 글자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자가 물었다.

“지난번에 ‘인(仁) 한 글자는 바로 사람이 사람으로 되고 금수와 다른 까닭’이라고 하였더니, 선생께서는 그렇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선생의 말씀을 가지고 생각한 끝에 그 말을 깨달았습니다. 삼가 말씀드리건대, 천지간의 생물들은 한 가지 근원에 뿌리를 두고 있어서, 사람과 금수․초목이 생겨남에 각기 이 이치(理)를 갖추고 있지 않는 경우가 없으며, 한 가지 체(體) 속에는 털끝 만큼도 모자라거나 남음이 없고 한 가지 기(氣)의 움직임에는 잠깐 동안이라도 정지됨이 없으니, 이른바 인(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연평(延平) 이씨(李氏)가 이르기를, “혈기(血氣)가 있는 것도 있고 혈기가 없는 것도 있으니, 이점에서 더욱 체득하고 탐구하여야 합니다.” 하였다.

또 물었다.

“기질에 맑고 탁함이 있는 까닭에 품부받은 것에도 편벽됨과 올바름이 있습니다. 오직 사람만이 그 올바른 것을 받은 까닭에 그것에 본래 이 이치(理)를 갖추고 있음을 알고 지킬 뿐 아니라 그것이 인(仁)인줄 압니다. 사물은 그 편벽된 것을 받은 까닭에 비록 이 이치를 갖추었다 해도 그렇게 할줄 모를 뿐 아니라 그것이 인(仁)인줄도 알지 못합니다. 그런 즉, 인(仁)이 인(仁)으로 되는 것은 사람과 사물이 같을 수밖에 없지만, 인(仁)이 인(仁)으로 됨을 알고 그것을 지킬 줄 아는 것은 사람과 사물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천(伊川) 부자께서는 이일분수(理一分殊)를 말하였고, 귀산(龜山)은 다시 ‘그 이치가 하나임을 알고 (그런 까닭에 인(仁)을 실천하고), 그 나누어져서 달라짐을 안다.’는 (그런 까닭에 의(義)를 실천한다.) 설을 갖고 있었는데, 선생께서는 그것을 전적으로 지(知)자에 힘쓰는 데 달렸다고 하시니, 또한 같은 뜻입니까?” 말하기를, “대개 옳다.” 하였다.

다시 물었다.

“이천(伊川)의 말을 상고하고 추측해 보니, 저의 생각으로는, 이일분수(理一分殊)라는 이 한 마디는 이치의 본연을 말하였습니다. 따라서 성(性)의 범위 내에서 본체가 아직 발하지 아니한 때라야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대답하였다. “모름지기 본체가 아직 발하지 않거나 발하고 난 이후를 함께 보아서, 내․외를 합하는 것이 옳습니다.”

다시 물었다.

“합해서 말하자면, 이 이치(理)가 아닌 것이 없지만 그 속에는 모든 사물이 다 해당되므로 저절로 수많은 차별이 생기게 됩니다. 비록 흩어져 뒤섞여 있어서 이름을 대거나 형용할 수 없지만 미세한 가운데서도 공통점과 차이점이 모두 드러나니, 그런 까닭에 이일분수(理一分殊)인 것입니다. ‘그 이치가 하나임을 아는 까닭에 인(仁)을 실천하고’, ‘그 나누어져서 달라짐을 아는 까닭에 의(義)를 실천한다.’는 이 두 구절은 발용(發用)하는 곳에서 본체(本體)를 가지고 말한 것이며, 이것을 단서로 하여 공부함으로써 미루어 가는 것입니다. 대저 인(仁)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천리(天理)가 흘러 움직이는 기틀이니, 그것이 조화․순수함(和粹)을 포용하고 융회․광대함(融漾)을 키우는 것을 가지고 어떻게 이름하거나 형용할 수 없어서 다만 인(仁)이라고 부릅니다. 그 속에서 자연히 문리(文理)를 엄밀하게 살펴 각각 체(體)를 정하는 바가 있게 되니 곧 이것이 의(義)입니다. 단지 이 두 글자가 인도(人道)를 완전히 포괄합니다. 의(義)는 결코 인(仁)의 밖으로 나갈 수 없고, 인 또한 의 안에서 떨어질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일분수(理一分殊)는 본연한 상태의 인과 의입니다. 전에는 여기서부터 미루어 나가서 나누어져서 달라짐이 타당한 것을 의(義)라고 하였으니, 잘못된 것이 심하였습니다.” 이르기를, “미루어 헤아린다(推測)고 한 한 단락은 매우 엄밀하여 옳게 되었는데, 함양(涵養)만 보탠다면 문제없이 도(道)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하였다.

어떤 사람이, 〈서명〉의 ‘이치는 하나이지만 나누어져서 달라진다.’에서 그 이치가 하나임을 알기 때문에 인(仁)을 실천하고 그 나누어져서 달라짐을 알기 때문에 의(義)를 실천한다고 한 것에 대해 물었다.

주자가 대답하였다.

“인(仁)은 단지 유출되어 나오는 것이 곧 인이고, 각기 하나의 형식을 이룬 것은 의(義)입니다. 인은 단지 저 유행하는 것이고, 의는 합당하게 행하는 바입니다. 인은 단지 발출하여 나오는 것이고, 발출하여 나옴에 이르러 분명하여 거역할 수 없는 바의 것은 곧 의(義)입니다. 또한 그 부모를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고, 친척을 사랑하고, 고향을 사랑하고, 종족을 사랑하고, 미루어 확대해 나감으로써 천하 국가에 이르는 것과 같은 것은 단지 하나의 사랑이 유출하여 나오는 것이지만, 사랑에는 곧 수많은 차등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또 공경(敬)은 단지 하나의 공경이지만, 곧 합당하게 공경해야 할 경우가 허다하게 있으니, 예컨대 어른을 공경하고 현인을 공경하는 것과 같이 수많은 분별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86)

이자(李子)가 말하였다.

“정자(程子)가 귀산(龜山)에게 답하는 편지와 주자(朱子)가 연평(延平)과 문답한 여러 설들은, 〈서명〉의 취지와 인(仁)․의(義)의 이치를 발명하여 지극히 정밀하게 하였으니, 침잠하여 완미하고 사색하면 틀림없이 넓고 크게 얻는 바가 있을 것이다.”


처음 내가 〈태극도설〉과 〈서명〉 두 가지에 대해서 해설을 썼으나 감히 사람들에게 내 보이지 않았다. 근자에 유자들이 두 가지 글의 잘못을 논하는 경우가 많은데, 간혹 그 글의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망령되게 함부로 비난하므로, 내가 속으로 안타깝게 여겼다. 이 때문에 이 해설을 출간하여 배우는 사람들에게 보여주어 널리 전하게 하였다. 아무쪼록 독자들은 해설을 통하여 의미를 깨달아 그것이 가볍게 논의할 것이 아님을 알기 바란다.

순희(淳熙) 무신(戊申)년87) 2월 기사일에 회옹(晦翁)88)이 쓰다.


(총론) 횡거(橫渠)의 학당에는 두 개의 창문이 있었는데, 왼쪽에는 〈폄우(砭愚)〉라고 쓰고 오른쪽에는 〈정완(訂頑)〉이라고 썼다. 이천(伊川)선생은, “이것이 논쟁의 단서가 될 수 있다.” 하고, 〈정완〉을 고쳐 〈서명(西銘)〉이라 하고 〈폄우(砭愚)〉를 고쳐 〈동명(東銘)〉이라 하였다.


〈동명(東銘)〉 즉 〈폄우(砭愚)〉 에서 말하였다.“실없는 말은 생각하는 데서 나오고 실없는 짓은 도모하는 데에서 나온다. 목소리에서 나타나고 사지에서 드러나니, 나의 본심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똑똑하지 못한 것이요, 남이 나를 의심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지나친 말은 본심이 아니고 지나친 행동은 정성이 아니다. 말에서 실수하고 사체(四體)를 잘못 놀리고서, 나에게는 당연하다고 하면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요, 타인들로 하여금 나를 따르게 하고자 함은 남을 속이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마음으로부터 나온 것에 대해서는 허물을 돌려 자기가 실없는 말을 했다고 하고 생각함에 실수를 한 것에 대해서는 스스로를 속여서 자기가 정성을 다했다고 하여 경계할 줄 모른다. 그것이 너 자신으로부터 나온 것은 허물을 미루고, 그것이 너 자신으로부터 나오지 않은 것은 줄곧 오만하게 하다가 결국 잘못되니, 지혜롭지 못함이 누가 더 심한가?”

주자가 말하였다.

“두 가지의 명(銘)은 비록 같은 시기에 저작되었지만, 그 말 내용이 가리키는 것과 기상이 미치는 범위가 깊고 얕으며 넓고 좁은 것이 판연히 다르다. 이런 까닭에 정자(程子)의 문하에서는 오로지 〈서명〉을 가지고 배우는 사람들을 가르치고, 〈동명〉에 대해서는 말하지 아니 하였다. 배우는 사람들은 진실로 〈서명〉에 나오는 말을 반복 완미(玩味)하여 스스로 얻는 바가 있으면, 마음은 넓어지고 이치는 밝아져서 의미가 자별(自別)할 것이다. 〈동명〉이 비록 줄곧 오만하게 하다가 결국 잘못되는 실수를 분별하였지만 털끝 만한 차이에서 후학들에게 경계하는 바도 또한 절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의미에 있어서 궁색함이 있고 몸으로 실천하는 공부에 있어서도 대개 미진한 바가 있으니, 또한 어찌 〈서명〉의 철두철미하게 하나로 관통하는 뜻과 한 가지로 말할 수 있겠는가?”

이자(李子)께서 말하였다.

“정(訂)은 평이하게 논의하는 것인데, 또한 잘못된 것을 증명하여 바로잡는다는 의미도 있다. 완(頑)이라고 하는 것은 어질지 못함을 이름하는 것인데, 어질지 못한 사람은 사사롭게 은폐하고자 할 뿐 물(物)․아(我)를 관통하여 측은지심을 확대할 줄 모른다. 마음이 완악하기가 돌과 같은 까닭에 완(頑)이라고 하였다. 대개 횡거(橫渠)의 이 명(銘)은 나와 천지만물이 그 이치가 본래가 하나인 까닭을 반복하여 미루어 밝히고 인(仁)의 본체를 그려내어, 이로 인하여 유아(有我)의 사사로움을 깨트리고 무아(無我)의 공공성을 넓혀서, 그 완악하기가 돌과 같은 마음으로 하여금 화합하고 훤하게 밝으며 물(物)과 아(我) 사이에 틈이 없어 털끝만한 사사로운 생각도 그 사이에 용납되지 않도록 함으로써 천지가 한 집안이고 중국이 한 사람임을 알게 한다. 질병과 고통이 내 몸에 절실하게 느껴져야 인(仁)의 도를 얻게 되니, 그런 까닭에 정완(訂頑)이라고 이름하였다. 사람의 어리석은 병은 줄곧 오만하게 하다가 결국 잘못되는 것보다 심한 것이 없으니, 횡거(橫渠)의 명(銘)은 그 털끝 만한 차이에서 실수하는 것에 대해 극진하게 말함으로써 그것을 통렬히 고쳐 바로잡게 하니, 마치 침을 써서 그 병을 다스려 제거하는 것과 같으므로, 그런 까닭에 〈폄우(砭愚)〉이라 하였다. 폄(砭)이란 돌침을 가지고 병을 다스리는 것이다. 그러나 두 가지 말은 모두 잘 알려져 있는 표현이 아니므로 장차 배우는 사람들로 하여금 따지고 분란케 하는 폐단을 초래할 것이므로, 정자(程子)는 논쟁의 단서가 된다 하여 고쳐서 〈동명〉과 〈서명〉으로 하였다.”


정자가 말하였다. “〈정완(訂頑)〉 한 편은 의미가 지극히 완비되어 있으니, 이것은 인(仁)의 본체이다. 배우는 사람은 이러한 의미를 체득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면 그 수준이 높아질 것이다. 이러한 수준에 도달하여 자기만의 견해를 가지게 되면, 요원한 것을 궁구하여 끝까지 추구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아마 도(道)를 이룸에 도움됨이 없을 것이다.”


묻기를, “〈정완〉은 의미가 극히 완비되어 있고 이것은 인(仁)의 본체라 하였지만, 이 글은 단지 만물이 하나라는 의미만을 발명하였는데, 어떻게 인(仁)의 본체를 알 수 있겠습니까?” 하니, 북계(北溪) 진씨(陳氏)89)가 말하였다. “모두 만물과 더불어 하나되는 바를 가지고 인(仁)의 체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천리(天理)가 유행하여 간단이 없는 것을 말하여 인의 체라고 한 것입니다.” 또 물었다. “그 아래에 이르기를, ‘실로 내 것으로 만들면 그 수준이 높아지고, 이러한 수준에 도달하여 스스로 견해를 갖게 되면 요원한 것을 궁구하여 끝까지 추구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하였습니다.”라 하니,

대답하기를, “이 이치를 깨달아서 혼연하게 하나가 되면 진실하게 내것이 되어, 후일 일상 생활에서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어느 것 하나 이 이치에 해당되지 않는 것이 없는데, 다시 무슨 일이 있으며 다시 무슨 요원한 것을 궁구하여 끝까지 추구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라고 하였다.


정자(程子)가 이르기를, “〈정완〉의 말은 지극히 순수하여 잡됨이 없으니, 진․한 이래로 배우는 사람들이 도달하지 못한 바이다.” 하였다.

“맹자 이후 단지 〈원도(原道)〉90) 한 편이 있었을 뿐인데, 그 내용에 진실로 병통이 많았지만 대체적인 요지는 모두 이치에 가까웠다. 〈서명〉을 말하자면 〈원도〉의 할아버지에 해당한다. 〈원도〉는 단지 도의 근원에 대해 말하였지만, 〈서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에 이르지는 못하였다. 자후(子厚)91)의 글이 순일하여 이런 글을 내놓은 적이 없었음에 근거할 때, 맹자 이후로 대개 이만한 글을 보지 못하였다.”


묻기를, “이천(伊川)이 〈서명〉은 〈원도〉의 할아버지라고 하였는데, 어떻습니까?” 하니, 주자가 말하였다. “〈서명〉은 위에서부터 말하였다. 〈원도〉는 성(性)을 따르는 것을 일러 도(道)라고 한다는 것을 말하였지만, 〈서명〉은 천(天)이 명한 것을 일러 성(性)이라 한다는 것과 연관시켜 말하였다.”


유초(游酢)92)가 〈서명〉에 대해서, 읽기를 이미 능숙하게 하였고 마음속으로 거스러지 아니하며, 말뿐만이 아니라 하나의 뜻을 세우니, 곧 중용을 말할 수 있었다.


묻기를, “유씨(游氏)가 〈서명〉을 읽고, ‘이것은 중용(中庸)의 이치이다.’ 라고 하니, 이 말은 사람과 사물의 본성이 생겨난 근원을 말한 것입니까?” 하였다. 북계(北溪) 진씨(陳氏)가 대답하였다. “본성이 생겨난 유래를 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아울러 하늘을 섬기는 절목(節目)을 말했습니다. 모두가 일상에 있어서 나에게 절실한 것이니, 지나친 것도 없고 미치지 못하는 것도 없는 까닭에 중용의 이치라고 한 것입니다.”


정자(程子)가 이르기를, “〈서명〉은 이일분수(理一分殊, 이치는 하나이지만 나누어져서 달라짐)를 밝혔다.” 하였다.


주자가 말하였다. “〈서명〉은 구절마다 이일분수(理一分殊)를 드러내려고 하였습니다.”

묻기를, “〈서명〉을 보면, 구절 구절이 이일분수임을 깨닫겠습니다.” 하니, (주자가) 말하였다. “본래 하나의 이일분수가 있으면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이일분수가 있으니, 이는 구절을 이어가기를 이렇게 한 것입니다.” 또 말하였다. “본래 하나의 이일분수를 나누어서 두 부분으로 하면, 이것이 바로 천(天)과 인(人)입니다.” 또 묻기를, “그가 ‘하늘을 아버지라 일컫고, 땅을 어머니라 일컬으며, 나는 여기에 미소한 존재로 혼연히 그 가운데 처한다.’ 하였으니, 이렇게 보면 세 가지가 됩니다.” 하니, (주자가) 말하였다. “혼연히 그 가운데 처한 즉, 이것은 수많은 사물이 모두 나의 몸 가운데 있는 것이어서, 다시 거기에서 하늘과 땅을 찾습니다.”

〈서명〉의 이일분수(理一分殊)에 관해 물었더니, (주자가) 말하였다.

“지금 사람들은 단지 중간에 있는 대여섯 구절만 가지고 이일분수라고 하는데, 내가 보는 바에 의하면, ‘하늘을 아버지라 칭하고, 땅을 어머니라 칭하며……’에서부터 ‘살아 계실 때는 내가 순종하며 섬기고, 돌아가시면 내가 편안히 모시리라.’에 이르기까지 구절 구절이 모두 이일분수입니다. ‘하늘을 칭한다,’ ‘땅을 칭한다’ 하는 것이 곧 분수(分殊)와 같은 것입니다. ‘조화를 알면 그 일을 잘 좇는다.’는 것은 내가 그 일을 좇는 것이고, ‘신묘함을 궁구하면 그 뜻을 잘 계승한다.’는 것은 내가 그 뜻을 잘 계승하는 것입니다. 또 ‘살아 계실 때는 내가 순종하며 섬기고 돌아가시면 내가 편안하게 모신다.’는 것은, 자기 부모(父母)를 가지고 말하면 생존해 있을 때는 마땅히 순종하여 섬기고 돌아가시면 마땅히 편안하게 모셔야 한다는 것이고, 천지(天地)를 가지고 말하면 살아서 능히 순종하고 섬겨서 어김이 없으면 죽어서 편안하리라는 것이니, 이 모든 것이 분수(分殊)의 경우입니다. 구절을 따라가면서 합쳐서 보면 곧 이일(理一)임을 알게 될 것이고, 가운데를 횡으로 잘라서 보면 곧 분수(分殊)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인하여 묻기를, “선생께서 후론(後論)에서 말한 것처럼, ‘자기 부모에게 부모로 대하는 후덕함을 미루어 무아(無我)의 공공성을 확대해 가고,’ ‘부모를 섬기는 정성으로 인하여 하늘을 섬기는 도(道)를 밝힌다.’고 하는 이 두 구절을 보면, 족히 〈서명〉의 전체 체계를 포괄할 수 있고, 가히 이일분수(理一分殊)의 내용을 분명히 파악할 수 있습니다.” 하니, 말하기를 “그렇습니다.” 하였다.

선사(先師)93)께서 말하였다. “이(理)라는 것은 분(分)이 하나로 섞인 것이요, 분(分)이라는 것은 이(理)가 밝게 빛나는 것이다. 그것이 조리(條理)가 있는 것으로 말하자면 이(理)라고 하고, 그것이 등분(等分)이 있는 것으로 말하자면 분(分)이라고 하니, 처음부터 이(理)와 별도로 분(分)이 있어서 판연히 두 가지가 되는 것이 아니다.”


 

 

1) 건칭부곤칭모(乾稱父坤稱母): 《주역․설괘전(說卦傳)》 “건은 하늘이다. 그러므로 아버지라 부른다. 곤은 땅이다. 그러므로 어머니라 부른다.”(乾天也, 故稱乎父. 坤地也, 故稱乎母)

2) 천지지수(天地之帥): 수는 여기서 주재(主宰)한다는 뜻으로 쓰였으며, 곧 “이”(理)를 가리킴.


3) 장기장(長其長): 《맹자․이루(離婁) 상》 “도가 가까운 곳에 있는데도 먼 곳에서 구하며, 일이 쉬운데 있는데도 어려운 곳에서 찾는다. 사람마다 각기 그 어버이를 친히 하고 그 어른을 어른으로 섬기면 천하가 평안해질 것이다.”(道在邇而求諸遠, 事在易而求諸難, 人人親其親 長其長而天下平)


4) 유오유(幼吾幼): 《맹자․양혜왕(梁惠王) 상》 “내 노인을 노인으로 섬기어 남의 노인에게까지 미치며, 내 어린이를 어린이로 사랑하여 남의 어린이에게까지 미친다면 천하를 손바닥에 놓고 움직일 수 있습니다. 《시경》(〈大雅․思齊〉편)에서 이르기를 ‘덕이 부족한 처에게서 모범이 되어 형제에 이르러 집과 나라를 다스린다.’라 하였으니 이 마음을 들어 저기에 가할 뿐임을 말한 것입니다.”(老吾老, 以及人之老, 幼吾幼, 以及人之幼. 天下可運於掌. 詩云, ‘刑于寡妻, 至于兄弟, 以御于家邦.’ 言擧斯心加諸彼而已)


5) 천형(踐形): 《맹자․진심(盡心) 상》 “신체와 얼굴의 모습은 천성이다. 오직 성인이 된 후에야 신체의 바른 도를 실천할 수 있게되는 것이다.”(形色, 天性也, 惟聖人然後可以踐形)


6) 선술기사(善述其事): 《중용(中庸)》 「효도라는 것은 부모의 뜻을 잘 계승하고, 부모의 뜻을 잘 이어 발전시키는 것이다.」(夫孝者善繼人之志, 善述人之事者也)


7) 존심양성(存心養性): 《맹자․진심(盡心) 상》 “그 마음을 다 하는 사람은 그 본성을 아는 것이다. 그 본성을 아는 것은 하늘을 아는 것이다. (하늘에서 부여받은) 그 자신의 마음을 보존하고 천성을 기르는 것이 하늘을 섬기는 방법이다.”(盡其心者, 知其性也. 知其性, 則知天矣. 存其心, 養其性, 所以事天也)


8) 숭백(崇伯): 하나라 우임금의 아버지인 곤(鯀)을 말함. 숭(崇)나라의 백작(伯爵)에 봉하여졌으므로 이렇게 부름.


9) 영봉인지석류(穎封人之錫類): 영봉인은 영고숙(穎考叔)을 말함. 봉인은 국경을 지키는 관리를 말하는데, 이때 영고숙이 봉인을 지내고 있었으므로 이렇게 말함. 정나라 무공(武公)의 부인인 무강(武姜)이 오생(寤生)과 공숙단(公叔段)을 낳는데, 오생은 난산을 하여 미워하고 공숙단을 사랑하였다. 이에 무공에게 여러 차례 공숙단으로 하여금 왕위를 잇게 하고자 하였으나 결국 오생이 즉위하여 장공(莊公)이 되며, 무강은 공숙단과 공모하여 반역을 일으키게 된다. 이에 장공이 공숙단을 치고 무강을 유폐시킨다. 이에 영고숙이 이들 모자를 화해시킨 일을 말함. 《좌전․은공(隱公) 원년》조에 나오는 고사임. 그 논평에서 “군자가 말했다. ‘영고숙은 큰 효자로다. 그 어미를 사랑하여 그 사랑이 장공에게까지 미쳤으니. 《시》에서 말하기를 《효자의 효심 끝이 없으니, 길이길이 그대들에게 복 내리리.’라 하였으니, 아마 이 사람을 이름이 아니겠는가!”(君子曰: 潁考叔, 純孝也, 愛其母, 施及莊公. 詩曰, 孝子不匱, 永錫爾類. 其是之謂乎)라 하였으며, 인용된 시구는 《시경․대아․취함(旣醉)》에 나오는 구절.


10) 불이~순기공야(不弛~舜其功也): 순임금의 아들 고수가 후처의 꾐에 빠져 몇 번이나 순임금을 죽이려 하였으나 순임금이 끝내 효도를 마침내 다하자 고수도 기뻐하였던 일을 말함. 《맹자․이루 상》 “부모의 사랑을 얻지 못한 사람은 사람 노릇을 할 수가 없고, 부모를 기쁘게 하지 못한 자식은 자식 노릇을 할 수가 없다. 순임금이 부모를 섬기는 도리를 다하자 그의 아버지 고수가 기뻐하기에 이르렀다. 고수가 기뻐하게 되자 온 천하가 이에 감화되었고, 고수가 기뻐하게 되자 온 천하의 부모 사이의 도덕이 정해지게 되었다. 이를 일러 큰 효도라 일컫는다.”(不得乎親, 不可以爲人, 不順乎親, 不可以爲子. 舜盡事親之道而瞽瞍厎豫, 瞽瞍厎豫而天下化, 瞽瞍厎豫而天下之爲父子者定, 此之謂大孝)


11) 무소도~기공야(無所逃~其恭也): 《좌전․희공(僖公) 4년》에 실려 있는 고사. 진(晉)나라 헌공(獻公)이 애첩인 여희(驪姬)에게 빠져 그의 사이에서 난 해제(奚齊)를 태자로 세우자 적희(狄姬) 자매에게서 난 이오(夷吾; 나중에 惠帝가 됨)와 중이(重耳; 나중에 文公이 됨)는 모두 망명하였으나, 당시 태자였던 제강(齊姜; 원래 헌공의 아버지 武公의 妃였음)과의 사이에서 난 신생(申生)은 끝내 도망가지 않고 있다가 여희의 계교에 빠져 팽살(烹殺)의 형을 받아 죽은 것을 말함. 사람들이 이를 듣고 신생을 공세자(恭世子)라 불렀다 한다.


12) 체기수~삼호(體其受~參乎): 증자(曾子)는 《효경》에서 “신체에 난 털이며 살갗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감히 헐고 상해를 내지 아니함이 효도의 시작이다.”(身體髮膚受之父母不敢毁傷孝之始也)“라 하였는데, 죽을 때 제자들을 불러놓고 말하기를 “내 발을 보고 내 손을 보라. 《시경》에서 이르기를 ‘두려워하고 조심조심하여 깊은 못에 다다른 듯이 하고, 얇은 얼음을 밟듯이 하라.’ 하였으니 이제야 내가 벗어난 것을 알겠구나.”(啓予足, 啓予手. 詩云, 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氷. 而今而後, 吾知免夫)하며 죽을 때까지 부모에게서 받은 몸을 헐고 상해를 내지 않았음을 알고 편안히 죽은 것을 말함.


13) 용어~백기야(勇於~伯奇也): 백기는 주나라 선왕(宣王)의 신하인 윤길보(尹吉甫)의 신하였는데, 윤길보가 후처에게 빠져서 전처 소생인 백기를 미워하게 되었다. 이에 백기에게는 옷이며 신발도 주지 않고 수레를 끌도록 하였는데, 백기는 연잎으로 몸을 감싸고 나무 열매를 따먹으며 새벽에 서리를 맞으면서 열심히 수레를 끌면서 부모의 명령에 따랐다는 것을 말함.


14) 정자(程子): 이정자 가운데 아우인 정이(程頤: 1033~1107)를 말함. 북송 낙양 사람으로 자는 정숙(正叔)이며, 이천선생(伊川先生)이라 불림. 시호는 정(正). 주자는 그의 사전제자가 됨.


15) 귀산 양씨(龜山楊氏): 북송의 양시(楊時: 1054~1135)를 말함. 남검주(南劍州) 장락(將樂) 사람으로 자는 중립(中立). 만년에 귀산에 은거하였으므로 귀산선생이라 부름. 희령(熙寧) 연간에 진사가 되었으며, 관직이 주어져도 나아가지 않고 정호(程顥)를 사사하였음. 수학을 마치고 정호의 문하에서 떠날 때 정호가 “나의 도가 남쪽으로 가는구나!”(吾道南矣)하고 탄식하였다 한다. 유초(游酢), 사량좌(謝良佐), 여대림(呂大臨) 등과 함께 정문사대제자로 꼽힘. 두문불사(杜門不仕)하다가 나중에는 비서랑, 저작랑까지 지냈음. 《귀산집》이 있으며 주자는 그의 삼전제자가 됨.


16) 《맹자․진심(盡心) 상》에 나오는 말.


17) 쌍봉 요씨(雙峯饒氏): 남송 요로(饒魯)를 말함. 여간(餘干) 사람으로, 자는 백여(伯輿) 또는 중원(仲元), 사로(師魯)라고도 함. 어려서부터 주희의 제자이자 사위인 황간(黃榦)을 종유하였음. 과거에 응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여 성학(聖學)에만 힘썼으며 치지(致知)와 역행(力行)을 근본으로 삼았음. 나중에 조정에서 벼슬을 내려 누차 불렀으나 나아가지 않고 붕래관(朋來館)을 지어 학자들을 유숙하게 하였으며, 또 석동서원(石洞書院)을 지었는데 앞에 두 개의 봉우리가 있었으므로 호를 쌍봉이라 하였다. 죽은 후에 문인들이 사시를 문원(文元)이라 하였다. 《오경강의(五經講義)》, 《어맹기문(語孟紀聞)》, 《춘추절전(春秋節傳)》, 《근사록주(近思錄注)》 등의 저서가 있었는데 모두 산일되었다.


18) 횡거 장자(橫渠張子): 북송의 도학자인 장재(張載; 1020~1077)를 말함. 자는 자후(子厚)이며, 봉상(鳳翔) 미현(郿縣)의 횡거진(橫渠鎭) 사람이므로 횡거선생이라 불림. 가우(嘉祐) 연간에 진사가 되었으며, 희령(熙寧) 초에 숭문원교서(崇文院校書)에 올랐으나 왕안석(王安石)의 변법(變法)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사퇴하고 귀향하였음. 나중에 미백(郿伯)에 봉해졌고, 공자 사당에 종사되었음. 저서로는 《정몽(正蒙)》과 《역설(易說)》, 《경학이굴(經學理窟)》 등이 있으며, 문집으로는 《장자전서(張子全書)》가 있음.


19) 임은 정씨(林隱程氏): 원나라의 정복심(程復心)을 말함. 자는 자견(子見)이며, 무원(婺源) 사람. 오로지 주자학에만 전념하였으며, 그 요지를 그림으로 그려 나열하여 완성하고 이를 《사서장도총요(四書章圖總要)》라 하였다. 60세가 되어서 겨우 군의 박사로 발탁되었지만 양친이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벼슬을 그만 두었다.


20) 《주자어류》 권98 〈장자지서(張子之書) 1〉에 나오는 말임. 우(宇)의 기록.


21) 위와 같음. 단몽(端蒙)의 기록.


22) 서산 진씨(西山眞氏): 진덕수(眞德秀: 1178~1235)를 말함. 남송 건녕(建寧) 포성(浦城: 지금의 복건성) 사람으로 자는 경원(景元)이었으며, 나중에 희원(希元)으로 고쳤다. 호는 서산이며 학자들이 서산선생으로 불렀다. 경원(慶元) 연간에 진사가 되어 벼슬은 한림학사, 참지정사에 이르렀다. 학문은 주자를 따랐으며,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주요저작으로는 《서산진문충공집》과 《대학연의(大學演義)》가 있다.


23) 이 부분의 주자가 한 말은 《주문공집》 권37 〈여곽중회(與郭仲晦)〉에 나오는 말이다.


24) 《논어․옹야(雍也)》편에 나오는 말.


25) 《논어․공야장(公冶長)》편에 나오는 말.


26) 《논어․자한(子罕)》편에 나오는 말.


27) 《논어․안연(顔淵)》편에 나오는 말.


28) 《퇴계선생문집》 권7 〈경연강의․서명고증강의(經筵講義․西銘考證講義)〉. 이하 “이자가 ……”라 말한 부분은 모두 같음.


29) 《예기․옥조(玉藻)》에 나오는 말. “무릇 사람이 자기 자신을 일컬을 때 천자는 ‘나 한 사람’이라 하고, 백은 ‘천자의 역신’이라고 한다.”(凡自稱, 天子曰予一人, 伯曰天子之力臣)


30) 《주자어류》 권98 〈장자의 책(張子之書) 1〉에 나오는 말. 간(僩)의 기록.


31) 색(塞)자는 《맹자․공손추(公孫丑) 상》의 “其爲氣也, 至大至剛, 以直養而無害, 則塞於天地之間.”에서 나왔으며, 수(帥)자 역시 같은 책 같은 편의 “夫志, 氣之帥也, 氣, 體之充也.”라 한 데서 나왔음.


32) 《주역》 건괘(乾卦)의 〈문언전(文言傳)〉에 나오는 말.


33) 이른바~같지 않다: 원문은 “非如所謂”로 되어 있는데 《주문공집》에는 “非如侍郞所說”로 되어 있다.


34) 이상 주자의 말은 《주문공집》 권71 〈임황중의 역과 서명을 변별한 글에 적음(記林黃中辨易西銘)〉에 나오는 말임. 임황중은 송나라 임률(林栗)의 자임.


35) 미상(未詳).

36) 《주자어류》 권98 〈장자의 책(張子之書) 1〉의 자몽(子蒙)이 기록한 말.


37) 〈주송․받들어 올림(我將)〉편에 나오는 구절임.


38) 〈대아․문왕을 기리는 소리(文王有聲)〉에 나오는 구절.


39) 〈계사전․상〉에 나오는 말.


40) 《논어․이인(里仁)》 “君子無終食之間違仁, 造次必於是, 顚沛必於是.” 〈옹야(雍也)〉 “回也, 其心三月不違仁, 其餘則日月至焉而已矣.”


41) 《효경․성치장(聖治章)》에 나오는 말.


42) 《좌전․문공(文公) 18》년 조에 나오는 말임. 원문은 다음과 같다. “世濟其凶, 增其惡名, 以至于堯, 堯不能去. 縉雲氏有不才子, 貪于飮食, 冒于貨賄, 侵欲崇侈, 不可盈厭, 聚歛積實, 不知紀極, 不分孤寡, 不恤窮匱, 天下之民以比三凶, 謂之饕餮. 舜臣堯, 賓于四門, 流四凶族, 渾敦、窮奇、檮杌、饕餮, 投諸四裔, 以禦螭魅.”


43) 《맹자․진심(盡心) 상》에 나오는 말.


44) 《맹자․만장(萬章) 상》에 나오는 말.


45) 《한서․형법지》에는 “人宵天地之貌”라 되어 있는데, “宵”는 “肖”와 같은 뜻이다. 인용된 주석 중 앞부분은 후한 응소(應劭)의 것이고, 뒷부분은 당나라 안사고(顔師古)의 것이다.


46) 《주자어류》 권98 〈장자지서(張子之書) 1〉에 나오는 말로, 승경(升卿)의 기록임.


47) 《중용》 제1장에 나오는 말임.

48) 《주역․계사전 하》에 나오는 말임.


49) 《중용》 제19장에 나오는 말임.


50) 《중용》 제18장에 나오는 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근심이 없으신 분은 오직 문왕 뿐이실 것이다. 왕계를 아버지로 삼고 무왕을 아들로 삼으셨으니, 아버지가 일으키시고 아들이 계술(繼述)하였다.”(子曰, 無憂者, 其唯文王乎! 以王季爲父, 以武王爲子, 父作之, 子述之) 《찬도호주예기(纂圖互註禮記)》와 《군서치요(羣書治要)》에도 같은 말이 나온다.

51) 《효경․사장(士章)》에 나오는 말이며, 인용된 《시경》의 시구는 〈소아․소완(小宛)〉편에 있는 것임.


52) 《효경》의 〈경대부장(卿大夫章)〉에 나오는 말이며, 인용된 시구는 《시경․대아․증민(烝民)》편에 나오는 말이다. 같은 구절이 〈대아․한혁(韓奕)〉편에도 나오나 《효경》에서는 “임금님 한 분만을 섬기네.”(以事一人)라는 구절까지 함께 인용되어 있으므로 〈증민〉편에서 인용한 것임을 알 수 있다.


53) 〈억(抑)〉 시는 《시경․대아(大雅)》의 편명임.


54) 《시경․소아․소완(小宛)》의 구절임.


55) 《맹자․진심(盡心) 상》에 나오는 말.


56) 의적(儀狄): 전설상의 인물로 하우(夏禹) 때의 사람이며, 술을 잘 만들었다고 한다. 《전국책․위책(魏策)》 에 나옴.


57) 송나라 유서(劉恕)의 《자치통감외기(外紀)》(권1)와 원나라 오사도(吳師道)의 《전국책교주․위(魏)》(권7)에 나오는 말.


58) 송나라 장구성(張九成)의 《맹자전(孟子傳)》 권21 “맹자가 말했다. ‘세속에서 이른바 효성스럽지 못한 것이 다섯 사지가 있는데 …… 노름이나 하고 술 마시기를 좋아하여 부모를 봉양하는 것을 돌아보지 않는 것이 두 번째 불효이다.’”(孟子曰, 世俗所謂不孝者五……博奕好飮酒, 不顧父母之養, 二不孝也)


59) 《맹자․진심(盡心) 상》 “부모가 모두 살아 계시고 형제에게 아무 일이 없는 것이 첫 번째 즐거움이고,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고 땅을 굽어 부끄럽지 않은 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며, 천하의 영재를 얻어 그를 가르치는 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다.”(父母俱存, 兄弟無故, 一樂也. 仰不愧於天, 俯不怍於人, 二樂也, 得天下英才, 而敎育之, 三樂也)


60) 《좌전》 노은공(魯隱公) 원년(기원전 732) 조에 있는 기사임. 인용된 《시경》의 원문은 “孝子不匱, 永錫爾類”인데, 〈대아․기취(旣醉)〉편에 나오는 구절임.


61) 《맹자․이루(離婁) 상》에 나오는 말.


62) 《장자․인간세(人間世)》에 나오는 말. “子之愛親,命也,不可解於心; 臣之事君,義也,無適而非君也,無所逃於天地之間.”


63) 《주자어류》 권98 〈장자지서(張子之書) 1〉의 우(寓)의 기록.


64) 위와 같음.


65) 위와 같음.


66) 〈개종명의장(開宗明義章)〉에 나오는 말.


67) 《논어․태백(泰伯)》. 인용한 《시경》의 시는 〈소아․소민(小旻)〉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소아․소완(小宛)〉편에도 이 구절이 나오는데 중간의 “如臨深淵”이라는 구절은 없다.


68) 《주자어류》 권98 〈장자지서(張子之書) 1〉의 문울(文蔚)의 기록. 《주자어류》의 원문은 「敬天當如敬親, 戰戰兢兢, 無所不至, 愛天當如愛親, 無所不順. 天之生我, 安頓得好, 令我當貴崇高, 便如父母愛我, 當喜而不忘; 安頓得不好, 令我貧賤憂戚, 便如父母欲成就我, 當勞而不怨」로 중간에 「令我當貴崇高~安頓得不好」의 부분이 빠져 있음.


69) 《맹자․진심(盡心) 상》 “운명이 아닌 것이 없으나 순리대로 행하여 그 정명을 받아야 한다.”(莫非命也, 順受其正)


70) 《시경․대아․백성들의 수고로움(民勞)》에 나오는 구절. 원문에는 “王欲玉女, 是用大諫)으로 되어 있다.


71) 《맹자․양혜왕(梁惠王) 상》 “是故明君制民之産, 必使仰足以事父母, 俯足以畜妻子, 樂歲終身飽, 凶年免於死亡, 然後驅而之善, 故民之從之也輕.”


72) 〈단궁․상〉편에 나오는 말로, 증자가 죽을 때 계손씨가 보내준 대자리를 바꾸라고[易簀] 하며 한 말로 앞뒤의 구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네가 나를 사랑함이 저 애만 못하구나. 군자는 남을 사랑할 때 덕으로 하고, 세인이 남을 사랑할 때는 고식적인 것을 가지고 한다. 내가 어느 것을 구하겠느냐? 나는 바른 것을 얻은 후 죽겠다. 이것을 원할 따름이니라.”(爾之愛我也不如彼. 君子之愛人也以德, 細人之愛人也以姑息. 吾何求哉? 吾得正而斃焉, 斯已矣)

 

73) 《주문공문집》 권41 〈답연숭경(答連嵩卿)〉에 나오는 말. “易簀結纓, 未須論優劣, 但看古人謹於禮法, 不以死生之變易其所守如此, 便使人有行一不義, 殺一不辜而得天下不爲之心, 此是緊要處.”


74) “논(論)하여 이르기를”로 시작되는 부분은 주희(朱熹)의 말이다.


75) 겸애(兼愛)의 폐단과 위아(爲我)의 사사로움: 《맹자(孟子)》 〈등문공(滕文公)하〉의 “양주(楊朱)의 위아(爲我)라는 주장은 임금을 무시하는 것이오, 묵적(墨翟)의 겸애(兼愛)라는 주장은 아비를 무시하는 것이니, 임금을 무시하고 아비를 무시하는 것은 금수(禽獸)와 같다.(楊氏爲我, 是無君也, 墨氏兼愛, 是無父也, 無父無君, 是禽獸也.)”에서 나온 말이다.


76) 귀산(龜山): 중국 송(宋)나라 사람으로 이름은 시(時)이고 자는 중립(中立)이다. 남검주(南劍州) 장락현(將樂縣) 출신이며 이정(二程)의 고제(高弟)이다. 용도각(龍圖閣) 직학사(直學士) 주사(主祠)로 치사(致仕)하였다. 졸년은 83세이고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77) 윤씨(尹氏): 화정(和靖) 윤씨(尹氏)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윤화정의 이름은 돈(焞), 자는 언명(彦明) 또는 덕충(德充)이고, 화정(和靖)은 호이다. 정이천(程伊川)의 고제(高弟)였다.


78) 양중립(楊中立): 양시(楊時)를 말한다. 중립(中立)은 양시의 자(字)이다.


79) 부모에게 친하게……사물을 사랑한다: 《맹자》 〈진심장(盡心章)상〉의 “군자는 사물에 대해서는 사랑하되 어질게 대하지 아니하고, 백성에 대해서는 어질게 대하되 친하게 대하지는 않는다. 친한 사람에게 친하게 대하고 나서 백성에게 어질게 대하고, 백성에게 어질게 대하고 나서 사물을 사랑한다.(君子之於物也, 愛之而弗仁, 於民也, 仁之而弗親, 親親而仁民, 仁民而愛物.)”에서 나온 말이다.


80) 횡거(橫渠): 〈서명〉의 저자인 장재(張載, 1020~1077)의 호. 자는 자후(子厚)이다.


81) 낙양 사람(西人): 춘추시대 주(周)나라의 수도 사람들을 서인(西人)으로 부른데 기인하여, 수도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서인이라고 칭하였다.


82) 명도(明道): 정호(程顥)의 호이며, 자는 백순(伯淳)이다. 양귀산(楊龜山)은 명도의 제자이기도 했다.


83) 《논어》 〈공야장(公冶長)〉의 “자로가 말하기를, ‘선생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하였더니, 공자가 말하였다. ‘늙은이는 편안케 모시고, 벗은 신뢰하며, 어린아이는 보살핀다.’(子路曰, 願聞子之志. 子曰, 老者安之, 朋友信之, 少者懷之.)”에서 나온 말이다.


84) 연평(延平) 이씨(李氏): 이름은 동(侗)이고 자는 원중(愿仲)으로 주자의 스승이다. 나종언(羅從彦)에게 배웠다. 모옥을 짓고 산전을 일구면서 세상과 절연하기를 40여 년이나 하였다. 먹는 것이 부실해도 기꺼이 받아들였다. 등적(鄧迪)이란 사람이 일찍이 그를 칭송하여 “얼음으로 만든 병 같고 가을 달 같이 맑고 밝아서(氷壺秋月) 흠이 없다” 하였다.(주자의 〈祭延平李先生文〉) 세인들은 연평(延平) 선생이라 칭하였다. 그는 강론을 하다가 시간이 남으면 똑바로 앉아서 미발(未發)시의 기상이 어떤지를 체험하여 이른바 중(中)을 구하였다. 그리고 이같은 것을 오래 하여 천하의 대본(大本)과 진유(眞有)가 이에 있음을 알았다고 한다. 시호는 문정(文靖)이었으며 졸년은 71세였다.


85) 사상채(謝上蔡): 사량좌(謝良佐, ?~1120)이다. 상채(上蔡)는 호이고, 자는 현도(顯道)이다. 중국 송(宋)나라의 학자로 정자(程子) 문하의 고제(高弟)였다. 외적 추구보다는 경(敬)을 통한 의식 주체의 개혁에 치중하여, 정자로부터 절문근사(切問近思)의 학을 이루었다는 평을 들었다.


86) 《주자어류(朱子語類)》, 권116, 〈훈문인(訓門人)四〉의 “진중위(陳仲蔚)가 인하여 물었다. ‘귀산(龜山)이 말하기를 그 이치가 하나임을 아는 까닭에 인(仁)을 실천하고, 그 나누어져서 달라짐을 아는 까닭에 의(義)를 실천한다. 하였으니, 인(仁)은 곧 체(體)이고 의(義)는 곧 용(用)입니까?’ (주자가) 대답하였다. ‘인(仁)은 유행하는 것이고 의(義)는 합당하게 행하는 것입니다. 물이 흘러 움직이는 것은 인(仁)이고, 흘러서 크고 작은 강이 되고 휘돌아서 못이나 늪이 되는 것은 의(義)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측은지심은 곧 인(仁)이고, 부모를 사랑하거나 형제를 사랑하거나 고향 사람을 사랑하거나 벗이나 옛친구를 사랑하여 허다한 차이가 생기는 것은 곧 의(義)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공경하는 것은 한 가지의 공경하는 것이지만, 임금을 공경하거나 어른을 공경하거나 어진이를 공경함에 있어 여러 가지 경우가 생겨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陳仲蔚因問, 龜山說, 知其理一, 所以爲仁, 知其分殊, 所以爲義. 仁便是體, 義便是用否. 曰, 仁只是流出來底, 義是合當做底. 如水, 流動處是仁, 流爲江河, 匯爲池沼, 便是義. 如惻隱之心便是仁, 愛父母, 愛兄弟, 愛鄕黨, 愛朋友故舊, 有許多等差, 便是義. 且如敬, 只是一箇敬, 到敬君, 敬長, 敬賢, 便有許多般樣.)”에서 나온 말이다.


87) 순희(淳熙) 무신(戊申)년: 남송(南宋) 효종(孝宗) 15년으로 서력으로 1188년이다.


88) 회옹(晦翁): 주희(朱熹)의 자호.


89) 북계(北溪) 진씨(陳氏): 이름은 순(淳)이고 자는 안경(安卿)이다. 주자가 옛날 호서(湖西)지방 장(漳) 땅의 군수로 있을 때 군의 향교에서 종유하였다. 주자가 “내가 남쪽지방으로 와서 안경(安卿)이라는 사람을 얻었는데, 그는 읽지 않은 책이 없고 깨치지 않은 일이 없으며 생각이 일관되어 있으며 견해에 조리가 있다.”고 하였다. (一統志)


90) 〈원도(原道)〉: 중국 당(唐)대 중기의 사상가인 한유(韓愈, 768~824)의 대표적인 저술이다. 한유의 자는 퇴지(退之)이고, 스스로 창려(昌黎)라 호하였다. 시문(詩文)에 뛰어난 재능을 지녀 수많은 명작을 남겼으며, 철학사에서 주목받는 저술로는 〈원도〉외에 〈원성(原性)〉이 있다.


91) 자후(子厚): 횡거(橫渠) 장재(張載: 1020~1077)의 자(字).


92) 유초(游酢): 송(宋)나라 사람으로 정이(程頤)의 문인이다. 순(醇)의 동생이며, 자는 정부(定夫). 여대림(呂大臨)․사량좌(謝良佐)․양시(楊時)와 더불어 정문(程門)의 사선생(四先生)으로 칭하여졌다.


93) 선사(先師): 저자 허유(許愈)의 스승인 한주(寒洲) 이진상(李震相)을 가리킨다.

 

第二西銘圖1

第二西銘圖2

西銘


乾稱父, 坤稱母. 予玆藐焉, 乃混然中處. 故天地之塞, 吾其體, 天地之帥, 吾其性, 民吾同胞, 物吾與也. 大君者吾父母宗子, 其大臣宗子之家相也. 尊高年所以長其長, 慈孤弱所以幼吾幼, 聖其合德, 賢其秀者也, 凡天下疲癃殘疾惸獨鰥寡, 皆吾兄弟之顚連而無告者也. 于時保之, 子之翼也, 樂且不憂, 純乎孝者也. 違曰悖德, 害仁曰賊, 濟惡者不才, 其踐形惟肖者也. 知化則善述其事, 窮神則善繼其志. 不愧屋漏爲無忝, 存心養性, 爲匪懈. 惡旨酒崇伯子之顧養, 育英才穎封人之錫類. 不弛勞而底豫, 舜其功也, 無所逃而待烹, 申生其恭也. 體其受而歸全者, 參乎, 勇於從而順令者, 伯奇也. 富貴福澤, 將以厚吾之生也, 貧賤憂戚, 庸玉汝於成也, 存吾順事, 沒吾寧也.


朱子曰, 西銘程子以爲明理一而分殊. 蓋以乾爲父, 以坤爲母, 有生之類, 無物不然. 所謂理一也. 而人物之生, 血脈之屬, 各親其親, 各子其子, 則其分亦安得而不殊哉? 一統而萬殊, 則雖天下一家, 中國一人, 而不流於兼愛之蔽. 萬殊而一貫, 則雖親踈異情, 貴賤異等, 而不梏於爲我之私. 此西銘之大旨也. 觀其推親親之厚以大無我之公, 因事親之誠, 以明事天之道, 蓋無適而非所謂分立, 而推理一也. 又曰, 銘前一段如棊盤, 後一段如人下棊. ○ 龜山楊氏曰, 西銘, 理一而分殊. 知其理一所以爲仁, 知其分殊所以爲義, 猶孟子言, 親親而仁民, 仁民而愛物, 其分不同, 故所施不能無差等耳. ○ 雙峰饒氏曰, 西銘前一節, 明人爲天地之子. 後一節, 言人事天地, 當如子之事父母也.

○右銘, 橫渠張子所作, 初名訂頑, 程子改之爲西銘. 林隱程氏作此圖, 蓋聖學在於求仁, 須深軆此意, 方見得與天地萬物爲一體, 眞實如此處, 爲仁之功, 始親切有味, 免於莽蕩無交涉之患. 又無認物爲己之病. 而心德全矣. 故程子曰, 西銘意極完備, 乃仁之軆也. 又曰充得眞時聖人也.


附錄

(朱子銘解)乾稱父坤稱母止混然中處  天, 陽也. 以至健而位乎上, 父道也. 地, 陰也. 以至順而位乎下, 母道也. 禀氣於天, 賦形於地, 以藐然之身, 混合無間而位乎中, 子道也. 然不曰天地而乾坤者, 天地其形體也, 乾坤其性情也. 乾者, 健而無息之謂, 萬物之所資以始也. 坤者, 順而有常之謂, 萬物之所資以生者也. 是乃天地之所以爲天地而父母乎! 萬物者, 故指而言之.

朱子曰, 西銘自首至末, 是理一分殊, 乾父坤母, 固是一理, 分而言之, 便見乾坤自乾坤, 父母自父母, 惟稱字便見異也. ○ 混然中處言混合無間蓋此身便是從天地來○西山眞氏曰, 西銘推事親之心以事天, 蓋父母生我者也. 而所以生之者, 天地也. 天賦以氣, 地賦以形, 父母固我之父母也, 天地亦我之父母也. 朱子曰, 父母者, 一身之父母也. 天地者, 人與物, 己與人, 皆共以爲父母者也. 父母之生我也, 四支百體, 無一不全, 必能全其身之形, 然後爲不忝於父母天地之生我也. 五常百善, 無一不備, 必能全其性之理, 然後爲不負於天地, 故仁人事親如事天, 事天如事親, 此西銘之妙指, 不可以不知也. ○ 李子曰, 予字及銘中九吾字, 固擬人人稱自己之辭. 然凡讀是書者, 於此十字, 勿徒認作橫渠之自我, 亦勿讓與別人之謂我, 皆當自任以爲己事看, 方得夫西銘本以狀仁之體, 而必主自己爲言者, 何也? 昔夫子答子貢博施濟衆之問而曰, 仁者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 意與此同. 蓋子貢不知就吾身親切處, 求仁而求之, 太闊遠無關涉. 故夫子言此, 使其反之於身, 而認得仁體最切實處. 今橫渠亦以爲仁者雖與天地萬物爲一體, 然必先要從自己爲原本爲主宰, 仍須見得物我一理, 相關親切意味, 與夫滿腔子惻隱之心, 貫徹流行, 無有壅閼, 無不周徧處, 方是仁之實體, 若不知此理, 而泛以天地萬物一體爲仁, 則所謂仁體者, 莽莽蕩蕩, 與吾身心有何干預哉? 且予吾卽我也, 與子貢所謂, 我不欲人之加諸我也, 吾亦欲無加諸人之我字吾字同, 皆公也, 而子絶四毋意毋必毋固毋我之我字私也. 夫子所謂己欲立而立人之己字, 公也. 與顔子克己復禮之己字,私也. 數字之稱, 本合爲一字, 一字之間, 一公一私而天理人欲得失之分, 不啻如霄壤之別差, 豪釐而謬千里, 尤不可以不審也. ○ 愚按, 禮天子曰予一人九吾上特加一予字恐本乎此.


故天地之塞止吾其性 乾陽坤陰, 此天地之氣, 塞乎兩間, 而人物之所資以爲體者. 故曰, 天地之塞吾其體, 乾健坤順, 此天地之志爲氣之帥, 而人物之所得以爲性者, 故曰天地之帥吾其性. 深察乎此, 則父乾母坤, 混然中處之, 實可見矣.

問西銘之義. 朱子曰, 緊要血脈盡在天地之塞吾其體, 天地之帥吾其性, 兩句上. 上面乾稱父, 至混然中處是頭, 下面民吾同胞, 物吾與也, 便是箇項. 下面便撒開說, 說許多. 大君吾父母宗子云云, 盡是從民吾同胞物吾與也說來. 到得知化則善述其事, 窮神則善繼其志, 這志便只是那天地之帥吾其性底志. 爲人子便要述得父之事, 而繼得父之志, 如此方是事親如事天, 便要述得天之事, 繼得天之志, 方是事天. 若是違了此道理, 便是天之悖德之子. 若害了這仁, 便是天之賊子. 若是濟惡不悛, 便是天之不才之子. 若能踐形, 便是天之克肖之子. 這意思血脈, 都是從天地之塞吾其軆, 天地之帥吾其性說. 緊要都是這兩句, 若不是此兩句, 則天自是天, 我自是我, 有何干涉! 或問, 此兩句, 便是理一處否? 曰, 然. ○ 李子曰, 朱子謂此篇, 皆古人說話集來. 故今讀此每一段說話, 須先尋所從來, 見得古人元初立說本意如何. 轉就這裏, 認出橫渠下語用字之法如此. 其巧妙無窮處, 方始彼此互發, 得其歸趣. 此一節塞字帥字, 從孟子來.


民吾同胞物吾與也 人物並生於天地之間, 其所資以爲軆者, 皆天地之塞. 其所得以爲性者, 皆天地之帥也. 然軆有偏正之殊, 故其於性也, 不無明暗之異. 惟人也, 得其形氣之正, 是以其心最靈, 而有以通乎性命之全, 軆於並生之中. 又爲同類而最貴焉, 故曰同胞則其視之也, 皆如己之兄弟矣. 物則得夫形氣之偏, 而不能通乎性命之全, 故與我不同類而不若人之貴. 然原其軆性之所自是, 亦本之天地, 而未嘗不同也. 故曰吾與則其視之也, 亦如己之儕輩矣. 惟同胞也, 故以天下爲一家, 中國爲一人, 如下文之云. 惟吾與也, 故凡有形於天地之間者, 若動若植, 有情無情, 莫不有以, 若其性遂其宜焉. 此儒者之道所以必至於參天地贊化育. 然後爲功用之全, 而非有所强於外也.

西山眞氏曰, 凡生於天壤之間者, 莫非天地之子, 而吾之同氣者也. 是之謂理一, 然親者吾之同體民者, 吾之同類而物則異類矣. 是之謂分殊以其理一, 故仁愛之施無不徧, 以其分殊, 故仁愛之施則有差.


大君者止無告者也 乾父坤母而人生其中, 則凡天下之人, 皆天地之子矣. 然繼承天地統理人物, 則大君而已. 故爲父母之宗子, 輔佐大君, 綱紀衆事, 則大臣而已. 故爲宗子之家相, 天下之老一也. 故凡尊天下之高年者, 乃所以長吾之長, 天下之幼一也. 故凡慈天下之孤弱者, 乃所以幼吾之幼. 聖人與天地合其德, 是兄弟之合德乎父母者也. 賢者才德, 過於常人, 是兄弟之秀出乎等夷者也. 是皆以天地之子言之, 則凡天下之疲癃殘疾惸獨鰥寡, 非吾兄弟之無告者而何哉?

朱子曰, 人皆天地之子, 而大君乃嫡長子, 所謂宗子有君道者也. 故曰大君者, 乃吾父母之宗子爾. 非如所謂, 旣爲父母, 又降而爲子也. 問宗子如何是嫡長子? 曰, 此正以繼禰之宗爲喩爾, 繼禰之宗兄弟, 宗之非父母之嫡長子而何. ○ 李子曰, 蓋旣以天下之爲吾兄弟, 則自當以繼禰之宗爲言. 若繼祖以上之宗, 則皆非吾親兄弟矣. ○ 愚按, 周禮相一人所以相宗廟之祭, 此言家相, 盖本乎此.


于時保之止純乎孝者也 畏天以自保者, 猶其敬親之至也. 樂天而不憂者, 猶其愛親之純也.

問, 西銘自乾稱父, 坤稱母, 至民吾同胞, 物吾與也處, 是仁之體. 於時保之以下, 是做工夫處? 朱子曰, 若言同胞吾與了, 便說著博施濟衆, 却不是. 所以只說敎人做工夫處, 只在敬與恐懼, 故曰于時保之, 子之翼也. 能常敬而恐懼, 則這箇道理自在. ○ 李子曰, 周頌曰, 我其夙夜, 畏天之威, 于時保之. 大雅言武王遷鎬之事曰, 貽厥孫謀, 以燕翼子. 翼, 敬也. 翼子, 能敬之子, 指成王也. 繫辭曰, 樂天知命, 故不憂此. 孔子贊聖人之德如此, 此引之言, 聖人之樂天以對上文賢者之畏天也. 左傳以穎考叔爲純孝, 此借用其語自于時保之以下至勇於從而順令者伯奇皆上句言事天之道下句以事親事明之朱子所謂每一句皆有兩義者然也.


違曰悖德止惟肖者也 不循天理, 而循人欲者, 不愛其親而愛他人也. 故謂之悖德. 戕滅天理, 自絶本根者, 賊殺其親, 大逆無道也. 故謂之賊. 長惡不悛, 不可敎訓者, 世濟其凶, 增其惡名也. 故謂之不才. 若夫盡人之性, 而有以充人之形, 則與天地相似, 而不違矣. 故謂之肖.

朱子曰, 人之有形有色, 無不各有自然之理, 所謂天性也. 踐, 如踐言之踐. 蓋衆人有是形, 而不能盡其理, 故無以踐其形. 惟聖人有是形, 又能盡其理, 然後可以踐其形而無慊也. ○ 李子曰, 違, 違天也. 卽論語違仁之違. 違仁, 卽違天也. 孝經曰, 不愛其親而愛他人者, 謂之悖德. 左傳, 渾敦窮奇, 檮杌三族, 皆不才子. 世濟其凶, 增其惡名. 孟子曰, 形色, 天性也. 惟聖人然後可以踐其形. 說命篇, 說築傅巖之野, 惟肖. 此惟肖二字, 所從來處若肖字本義, 則韻會云, 骨肉相似也. 人言不似其先曰不肖, 如孟子言丹朱之不肖, 舜之子亦不肖, 是也. 又前漢刑法志, 人肖天地之貌, 註頭圓象天, 足方象地. 庸妄之人, 謂之不肖, 言其狀貌無所象似也. 今按, 橫渠於此一字, 本以肖其先之義, 轉作肖天地之義, 而其文則用傅說惟肖之語, 其巧妙無窮而有餘味, 乃如此.


知化則止善繼其志 孝子, 善繼人之志, 善述人之事者也. 聖人知變化之道, 則所行者, 無非天地之事矣. 通神明之德, 則所存者, 無非天地之心矣. 此二者, 皆樂天踐形之事也.

問知化則善述其事, 窮神則善繼其志, 其旨如何? 朱子曰, 聖人之於天地, 如孝子之於父母. 化者, 天地之用一過而無迹者也. 知之則天地之用在我, 如子之述父事也. 神者, 天地之心常存而不測者也. 窮之則天地之心在我, 如子之繼父志也. 得其心而後可以語其用, 故曰窮神知化, 而中庸曰, 致中和天地位焉, 萬物育焉, 亦此之謂歟? ○ 李子曰, 易繫辭曰, 窮神知化, 德之盛也. 中庸曰, 夫孝者, 善繼人之志, 善述人之事者也. 今按, 中庸人之二字, 指親而言. 此段作其字, 雖亦指親之語, 而意實指天. 其旨深且妙矣. 述, 徇也. 如曰, 父作之, 子述之, 是也. 又修也, 纘也, 故凡終人之事, 纂人之言, 皆曰述.


不愧屋漏止爲匪懈 孝經引詩曰, 無忝爾所生. 故事天者, 仰不愧, 俯不怍, 則不忝乎天地矣. 又曰, 夙夜匪懈, 故事天者, 存其心, 養其性, 則不懈乎事天矣. 此二者, 畏天之事, 而君子所以求踐夫形者也.

李子曰, 衛武公作抑詩, 使瞽矇朝夕諷誦以自警, 其詩有曰, 相在爾室, 尙不愧于屋漏. 言視爾在室中之時, 猶當戒懼謹畏, 使無愧於屋漏深隱處也. 此事, 天事也. 周大夫遭亂, 兄弟相戒之詩曰, 夙興夜寐, 無忝爾所生. 忝, 辱也. 所生謂父母也. 言無作不善以忝辱父母. 此引喩云是爲天無忝之子矣. 孟子曰, 存其心, 養其性, 所以事天也. 詩烝民篇曰, 夙夜匪懈, 以事一人. 詩人本謂仲山甫, 能盡忠事君. 孝經引之以言卿大夫盡忠事君, 乃所以爲孝, 故橫渠以是爲孝子事親之事, 因以喩不懈於事天也.


惡旨酒止錫類 好飮酒而不顧父母之養者, 不孝也, 故遏人欲, 如禹之惡旨酒, 則所以顧天之養者, 至矣. 性者, 萬物之一源, 非有我之得私也, 故育英才, 如穎考叔之及莊公, 則所以永錫爾類者, 廣矣.

李子曰, 儀狄作酒, 禹飮而甘之曰, 後世必有以酒亡其國者, 遂䟽儀狄而絶旨酒. 崇, 國名, 伯爵也. 禹父鯀封於崇, 故國語謂之崇伯其子謂禹也. 孟子以博奕好飮酒, 不顧父母之養, 爲五不孝之一, 故橫渠因此而反其語云, 禹之惡旨酒, 乃遏人欲而存天理, 如人子不好飮酒, 而能顧父母之養也. 孟子曰, 得天下英才, 而敎育之三樂也. 左傳, 君子曰, 穎考叔純孝也. 愛其父母施及莊公, 詩曰, 孝子不匱, 永錫爾類, 其是之謂乎? 橫渠引此而言, 君子推吾天性之善, 以敎天下之英才, 使之皆如穎考叔推己孝以及莊公, 使亦爲孝子也.


不弛勞而底豫止申生其恭也 舜盡事親之道, 而瞽瞍底豫, 其功大矣. 故事天者, 盡事天之道, 而天心豫焉, 則亦天之舜也. 申生無所逃而待烹, 其恭至矣, 故事天者, 夭壽不貳而修身以俟之, 則亦天之申生也.

李子曰, 孟子曰, 舜盡事親之道, 而瞽瞍底豫. 盖舜父瞽瞍常欲殺舜, 使之完廩浚井, 舜不以勞苦弛其孝敬之心, 極盡誠篤, 故瞽瞍感悟, 亦至於悅豫. 言君子事天如此, 則格天之功, 如舜悅親之功也. 無所逃於天地之間, 語出莊子. 晋獻公用驪姬之譖, 欲殺其太子申生, 或勸之自明, 不可, 奔他國, 亦不聽, 遂自殺, 諡曰恭. 今云待烹, 猶言鼎钁且不避也. 言君子之處患難, 能守死不貳如此, 則其敬天之心, 如申生之恭也.


體其受而歸全止伯奇也 父母全而生之, 子全而歸之, 若曾子之啓手啓足, 則軆其所受乎親者, 而歸其全也. 况天之所以與我者, 無一善之不備, 亦全而生之也. 故事天者, 能軆其所受於天者, 而全歸之, 則亦天之曾子矣. 子於父母, 東西南北惟令之從, 若伯奇之履霜中野, 則勇於從而順令也. 况天之所以命我者, 吉凶禍福, 非有人欲之私, 故事天者, 能勇於從而順受其正, 則亦天之伯奇矣.

問自惡旨酒至勇於從而順令, 此六聖賢事, 可見理一分殊乎? 朱子曰, 惡旨酒, 育英才, 是事天. 顧養及錫類則是事親. 每一句皆存兩義, 推類可見. ○ 問, 穎封人之錫類, 申生其恭. 二子皆不能無失處, 豈能盡得孝道? 曰, 西銘本不是說孝, 只是說事天, 但推事親之心以事天耳. 二子就此處論之, 誠是如此. 蓋事親却未免有正有不正處. 若天道純然, 則無正不正之處, 只是推此心以奉事之耳. ○ 問, 西銘無所逃而待烹. 申生未盡子道, 何故取之? 曰, 天不到得似獻公也. 人有妄, 天則無妄. 若敎自家死, 便是理合如此, 只得聽受之耳. ○ 李子曰, 父母全而生之, 子全而歸之, 樂正子春所稱夫子之語. 孝經, 孔子謂曾子曰, 身體髮膚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 曾子終身服此敎, 故其臨終, 召門弟子曰, 啓予足, 啓予手. 詩云, 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氷. 而今而後, 吾知免夫. 此曾子體受歸全之事也. 言人之於天, 能體所受而歸全者, 是卽爲天之曾參也. 人之於天, 東西南北惟令之從者, 是卽爲天之伯奇也.


富貴福澤止庸玉汝於成也 富貴福澤, 所以大奉於我, 而使吾之爲善也輕. 貧賤憂戚, 所以拂亂於我, 而使吾之爲志也篤. 天地之於人父母之於子其設心, 豈有異哉? 故君子之事天也, 以周公之富而不至於驕, 以顔子之貧而不改其樂. 其事親也, 愛之則喜而弗忘, 惡之則懼而無怨, 其心亦一而已矣.

朱子曰, 敬天當如敬親, 戰戰兢兢, 無所不至. 愛天當如愛親, 無所不順. 天之生我, 安頓得好, 令我貧賤憂戚, 便似父母欲成就我, 當勞而不怨. ○ 西山眞氏曰, 禍福吉凶之來當順受其正. 天之福澤我者, 非私我也. 予之以爲善之資, 乃所以厚其責, 譬之, 事親則父母愛之喜而不忘也. 天之憂戚我者, 非厄我也, 將以拂亂其心志而增其所不能. 譬之, 事親則父母惡之懼而不怨也. 卽此推之親卽天也. 天卽親也. 其所以事之者, 豈容有二哉? ○ 李子曰, 王庸玉汝, 是用大諫, 此周厲王時大夫同列相戒之辭. 今引此以言天實寶愛汝, 而欲成就之, 汝託天以指我也. 使吾之爲善也. 輕輕, 猶易也. 孟子, 民之從也輕.


存吾順事沒吾寧也 孝子之身存則, 其事親者不違其志而已. 沒則安而無所愧於親也. 仁人之身存則其事天者, 不逆其理而已. 沒則安而無所愧於天也. 蓋所謂朝聞夕死吾得正而斃焉者, 故張子之銘以是終焉.

李子曰, 吾得正而斃焉, 見禮記檀弓篇. 朱子曰, 古人謹於禮法, 不以死生之變易, 其所守如此. 便使人有行一不義殺一不辜, 而得天下不爲之心, 此是緊要處.


論曰, 天地之間, 理一而已. 然乾道成男, 坤道成女, 二氣交感, 化生萬物, 則其大小之分, 親踈之等, 至於十百千萬, 而不能齊也. 不有聖賢者出, 孰能合其異, 而反其同哉. 西銘之作意, 蓋如此, 程子以爲明理一而分殊, 可謂一言以蔽之矣. 蓋以乾爲父, 以坤爲母, 有生之類, 無物不然, 所謂理一也, 而人物之生, 血脈之屬, 各親其親, 各子其子, 則其分亦安得而不殊哉. 一統而萬殊, 則雖天下一家中國一人, 而不流於兼愛之蔽, 萬殊而一貫, 則雖親踈異情貴賤異等, 而不梏於爲我之私, 此西銘之大指也. 觀其推親親之厚, 以大無我之公, 因事親之誠, 以明事天之道, 蓋無適而非所謂分立而推理一也. 夫豈專以民吾同胞長長幼幼爲理一, 而必黙識於言意之表, 然後知其分之殊哉. 且所謂稱物平施者, 正謂稱物之宜, 以平吾之施云爾. 若無稱物之義, 則亦何以知夫所施之平哉. 龜山第二書, 蓋欲發明此意, 然言不盡而理有餘也. 故愚得因其說, 而遂言之如此, 同志之士, 幸相與折衷焉. ○ 熹旣爲此解後, 得尹氏書云, 楊中立答伊川先生論西銘, 書有釋然無惑之語, 先生讀之曰, 楊時也未釋然, 乃知此論所疑第二書之說, 先生盖亦未之許也. 然龜山語錄有曰, 西銘理一而分殊, 知其理一所以爲仁, 知其分殊所以爲義. 所謂分殊猶孟子言親親而仁民仁民而愛物, 其分不同, 故所施不能無差等耳. 或曰, 如是則體用果離而爲二矣. 曰, 用未嘗離體也, 以人觀之, 四肢百骸具於一身者, 體也. 至其用處, 則首不可以加履, 足不可以納冠, 盖卽體而言, 而分已在其中矣. 此論分別異同, 各有歸趣, 大非答書之比. 豈其年高德盛, 而所見始益精, 與因復表而出之, 以明答書之說誠有未釋然者, 而龜山所見, 盖不終於此而已也.

龜山楊氏上程子書曰, 竊謂道之不明, 知者過之, 西銘之書, 其幾於過乎. 昔之問仁於孔子者多矣. 雖顔子仲弓之徒, 所以告之者, 不過求仁之方耳, 至於仁之體, 未嘗言也. 孟子曰, 仁人心也, 義人路也, 言仁之最親, 無如此者. 然亦體用兩言之未聞, 如西銘之說也. 孔孟豈有隱哉. 蓋不敢過之以起後學之弊也. 且墨氏之兼愛, 固仁者之事也, 其流遂至於無父, 豈墨氏之罪哉. 孟子力攻之, 必歸罪於墨子者, 正其本也. 故君子言必慮其所終, 行必稽其所敝, 正謂此耳. 西銘發明聖人之微意至深, 然而言體而不及用, 恐其流遂至於兼愛, 則後世有聖賢者出, 推本而論之, 未免歸罪於橫渠也. 時竊妄意此書, 盖西人共守而謹行之者, 欲得先生一言, 推明其用, 與西銘並行, 庶乎體用兼明, 使學者免於流蕩也. 橫渠之學, 造極天人之蘊, 非後學所能窺測. 然所疑如此, 故輒言之, 先生以謂如何.

程子曰, 橫渠之言, 誠有過者, 乃在正蒙西銘之爲書, 推理以存義, 擴前聖所未發, 與孟子性善養氣之論同功, 豈墨氏之比哉. 西銘明理一而分殊, 墨氏則二本而無分, 老幼及人, 理一也, 愛無差等, 本二也. 分殊之敝, 私勝而失仁, 無分之罪, 兼愛而無義. 分立而推理一, 以止私勝之流, 仁之方也, 無別而迷兼愛, 至於無父之極, 義之賊也. 子比而同之, 過矣. 且謂言體而不及用, 彼欲使人推而行之, 本爲用也, 反謂不及, 不亦異乎.

龜山第二書曰, 辱示西銘微旨, 伏讀竟日, 曉然具悉, 如侍几席, 親訓誨也. 時昔, 從明道, 卽授以西銘, 使讀之. 尋繹屢日, 乃若有得於是, 始知爲學之大方, 固將終身佩服, 豈敢妄疑其失, 比同墨氏. 前書所論, 西銘之書, 以民爲同胞, 長其長, 幼其幼, 以鰥寡孤獨爲兄弟之無告, 盖所謂明理一也. 然其辭無親親之殺, 非明者, 黙識於言意之表, 烏知所謂理一而分殊哉. 故竊恐其流遂至兼愛, 非謂西銘之書爲兼愛而發, 與墨氏同也. 古之人所以大過人者, 無他, 善推其所爲而已. 老吾老, 以及人之老, 幼吾幼, 以及人之幼, 所謂推之也. 孔子曰, 老者安之, 少者懷之, 則無事乎推矣. 無事乎推者, 理一故也. 理一而分殊, 故聖人稱物平施, 玆所以爲仁之至義之盡也歟. 何謂稱物, 遠近親疎, 各當其分, 所謂稱也. 何謂平施, 所以施之, 其心一焉, 所謂平也. 時昔者, 竊意西銘之書, 有平施之心, 無稱物之理, 故曰言體而不及用, 盖指仁義爲說也. 故仁之過, 其敝無分, 無分則妨義, 義之過, 其流自私, 自私則害仁. 害仁則楊氏之爲我也, 妨義則墨氏之兼愛也. 二者, 其失雖殊, 其得罪於聖人則均矣. 西銘之旨, 隱奧難知, 固前聖所未發也. 前書所論, 竊謂過之者, 疑其辭有未達耳. 今得先生開諭, 丁寧傳之學者, 自當釋然無惑也. ○ 延平李氏答朱子書曰, 來喩仁是心之正理, 能發能用底一箇端緖. 如胎育包涵, 其中生氣無不純備而流動發生自然之機, 又無頃刻停息, 憤盈發洩, 觸處貫通, 體用相循, 初無間斷, 此說推廣得甚好. 但又云, 人之所以爲人而異乎禽獸者, 以是而已. 若犬之性․牛之性, 則不得而與焉. 若如此說, 恐有礙. 蓋天地中所生物本源則一, 雖禽獸草木, 生理亦無頃刻停息間斷者. 但人得其秀而最靈, 五常中和之氣所聚, 禽獸得其偏而已, 此其所以異也. 若謂流動發生自然之機與夫無頃刻停息間斷, 卽禽獸之體, 亦自如此. 若以爲此理, 惟人獨得之, 卽恐推測體認處未精, 於他處便見差也. 又云須體認到此純一不雜處, 方見渾然與物同體氣象一段語却無病. 又云從此推出分殊合宜處, 便是義以下數句, 莫不由此而仁一以貫之. 蓋五常百行無往而非仁也. 此說大槩是. 然細推之, 却似不曾體認得伊川所謂理一而分殊. 龜山云, 知其理一所以爲仁, 知其分殊所以爲義之意, 蓋全在知字上用著力. 謝上蔡語錄云, 不仁便是死漢, 不識痛癢了. 仁字只是有知覺了了之體段, 若於此不下工夫令透徹, 卽何因見得本源毫髮之分殊哉. 若於此不了了, 卽體用不能兼擧矣. 此正是本源體用兼擧處, 人道之立, 正在於此. 仁之一字, 正如四德之元, 而仁義兩字, 正如立天道之陰陽, 立地道之柔剛, 皆包攝在此二字爾. ○ 朱子問, 昨謂仁之一字, 乃人之所以爲人而異乎禽獸者, 先生不以爲然. 某因以先生之言思之而得其說, 竊謂天地生物本乎一源, 人與禽獸草木之生, 莫不各具此理, 其一體之中, 卽無絲毫欠剩, 其一氣之運, 亦無頃刻停息, 所謂仁也. 延平李氏曰, 有有血氣者, 有無血氣者, 更體究此處. 又問, 氣有淸濁, 故稟有偏正. 惟人得其正, 故能知其本具此理而存之, 而見其爲仁, 物得其偏, 故雖具此理, 而不自知而無以見其爲仁. 然則仁之爲仁, 人與物不得不同, 知仁之爲仁而存之, 人與物不得不異. 故伊川夫子旣言理一分殊, 而龜山又有知其理一知其分殊之說, 而先生以爲全在知字上用著力, 恐亦是此意否. 曰, 大槩得之. 又問, 詳伊川之語, 推測之, 竊謂, 理一而分殊此一句, 言理之本然, 故盡在性分之內本體未發時看. 曰, 須是兼本體已發未發時看, 合內外爲可. 又問, 合而言之, 則莫非此理, 然其中無一物之不該, 便自有許多差別. 雖散殊錯揉不可名狀, 而纖毫之間同異畢顯, 所以理一而分殊也. 知其理一所以爲仁, 知其分殊所以爲義, 此二句, 乃是於發用處, 該攝本體而言, 因此端緖而下工夫, 以推尋之處也. 大抵仁者, 正是天理流動之機, 以其包容和粹, 涵育融漾, 不可名貌, 故特謂之仁. 其中自然文理密察, 各有定體處, 便是義. 只此二字包括人道已盡. 義固不能出乎仁之外, 仁亦不離乎義之內也. 然則, 理一而分殊, 乃是本然之仁義, 前此乃以從此推出分殊合宜處爲義, 失之遠矣. 曰, 推測一段甚密爲得之, 加以涵養何患不見道也. ○ 或問, 西銘理一而分殊, 知其理一所以爲仁, 知其分殊所以爲義. 朱子曰, 仁只是流出來底, 便是仁, 各自成一箇物事底是義. 仁只是那流行, 義是合當做處. 仁只是發出來底, 及至發出來, 有截然不可亂處, 便是義. 且如愛其親․愛兄弟․愛親戚․愛鄕里․愛宗族, 推而大之, 以至於天下國家, 只是這一箇愛流出來, 而愛之中便有許多等差. 且如敬只是這一箇敬, 便有許多合當敬底, 如敬長․敬賢, 便有許多分別. ○ 李子曰, 程子答龜山書及朱子延平問答諸說, 發明西銘之旨․仁義之理, 至爲精密, 沈潛玩索, 當有弘益.


始予作太極․西銘二解, 未嘗敢出以示人也. 近見儒者多議兩書之失, 或乃未嘗通其文義而妄肆詆訶, 予竊悼焉. 因出此解, 以示學徒, 使廣其傳. 庶幾讀者由辭以得意, 而知其未可以輕議也. 淳熙戊申二月己巳晦翁題


(總論) 橫渠學堂雙牖, 左書砭愚, 右書訂頑. 伊川先生曰, 是啓爭端, 改訂頑曰西銘, 砭愚曰東銘.

東銘卽砭愚曰, 戱言出於思也, 戱動作於謀也. 發於聲, 見乎四支, 謂非己心, 不明也, 欲人無己疑, 不能也. 過言非心也, 過動非誠也, 失於聲繆, 迷其四體, 謂己當然, 自誣也, 欲他人己從, 誣人也. 或者, 謂出於心者, 歸咎爲己戱, 失於思者, 自誣爲己誠, 不知戒. 其出汝者, 歸咎, 其不出汝者, 長傲且遂非, 不智孰甚焉. ○ 朱子曰, 二銘, 雖同出於一時之作, 然其詞義之所指․氣象之所及, 淺深廣狹, 判然不同. 是以, 程門專以西銘開示學者, 而於東銘則未嘗言. 學者, 誠於西銘之言, 反復玩味而有以自得, 則心廣理明, 意味自別. 若東銘則雖分別, 長傲遂非之, 失於毫釐之間, 所以開警後學, 亦不爲不切. 然意味有窮, 而於下學工夫, 蓋猶有未盡者, 又安得與西銘徹上徹下一以貫之之旨, 同日語哉. ○ 李子曰, 訂, 平議也, 亦有證正訛舛之義. 頑者, 不仁之名, 不仁之人, 私欲蔽錮, 不知通物我推惻隱. 心頑如石, 故謂之頑. 蓋橫渠此銘, 反復推明吾與天地萬物其理本一之故, 狀出仁體, 因以破有我之私, 廓無我之公, 使其頑然如石之心, 融化洞徹, 物我無間, 一毫私意, 無所容於其間, 可以見天地爲一家․中國爲一人. 痒痾疾痛眞切吾身, 而仁道得矣, 故名之曰訂頑. 人之愚病, 莫甚於長傲遂非, 橫渠之銘, 極言其失於毫釐之間, 而痛改之正, 如針治其病而去之, 故曰砭愚. 砭, 以石刺病也. 然二言, 皆頗隱奧, 將致學者辯詰紛然之弊, 故程子以爲啓爭端, 而改之爲東銘西銘云.


程子曰, 訂頑一篇, 意極完備, 乃仁之體也. 學者其體此意, 令有諸己, 其地位已高. 到此地位, 自別有見處, 不可窮高極遠, 恐於道無補也.

問, 訂頑, 意極完備, 乃仁之體, 此篇只發明萬物爲一之意, 如何見得仁體. 北溪陳氏曰, 非皆與萬物爲一處爲仁之體, 乃言天理流行無間, 爲仁之體也. 又問, 此下云, 實有諸己, 其地位已高, 到此地位, 自別有見處, 不可窮高極遠. 曰, 見得此理, 渾然無間, 實有諸己, 後日用酬酢, 無往而非此理, 更有何事, 更何用窮高極遠.

程子曰, 訂頑之言, 極純無雜, 奏漢以來, 學者所未到. ○ 孟子之後, 只有原道一篇, 其間言語固多病, 然大要儘近理. 若西銘, 則是原道之宗祖也. 原道却只說道元, 未到西銘意思. 據子厚之文, 醇然無出此文也, 自孟子後, 盖未見此書.

問, 伊川謂西銘原道之宗祖, 如何. 朱子曰, 西銘更從上面說來, 原道言率性之謂道, 西銘連天命之謂性說耳.


游酢於西銘, 讀之已能, 不逆於心, 言語外, 立得箇意思, 便能道中庸矣.

問, 游氏讀西銘曰, 此中庸之理也, 是言人物體性之所自來否. 北溪陳氏曰, 不止是言體性之所自來, 須兼事天節目言之. 皆是日用切己之實, 無過無不及, 所以謂中庸之理也.


程子曰, 西銘明理一而分殊.

朱子曰, 西銘要句句見理一而分殊. ○ 問, 看西銘, 覺得句句是理一分殊. 曰, 合下便有一箇理一分殊, 從頭至尾, 又有一箇理一分殊, 是逐句恁地. 又曰, 合下一箇理一分殊, 截作兩截, 只是天人. 又問, 他說乾稱父, 坤稱母, 予玆藐焉, 乃混然中處, 如此則是三箇. 曰, 混然中處, 則便是一箇許多物事, 都在我身中, 更那裏去討一箇乾坤. ○ 問, 西銘理一而分殊. 曰, 今人只說得中間五六句, 理一而分殊, 據某看時, 乾稱父, 坤稱母, 且至存吾順事, 沒吾寧也, 句句皆是理一分殊. 喚做乾稱坤稱, 便是分殊如云. 知化則善述其事, 是我述其事, 窮神則善繼其志, 是我繼其志. 又如存吾順事, 沒吾寧也, 以自家父母言之, 生當順事之, 死當安寧之, 以天地言之, 生能順事而無所違拂, 死則安寧也, 此皆是分殊處. 逐句渾淪看, 便見理一, 當中橫截斷看, 便見分殊. 因問, 如先生後論云, 推親親之厚, 以大無我之公, 因事親之誠, 以明事天之道, 看此二句, 足以包括西銘之統體, 可見得理一分殊處分曉. 曰, 然. ○ 先師曰, 理者, 分之渾然者也, 分者, 理之粲然者也. 自其有條理而謂之理, 自其有等分而謂之分, 初非理外有分, 判爲兩物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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