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학십도
  성학십도부록서
  진성학십도차
  제일태극도
  제이서명도
  제삼소학도
  제사대학도
  제오백록동규도
  제육심통성정도
  제칠인설도
  제팔심학도
  제구경재잠도
  제십숙흥야매잠도
  성학십도부록발

 

 

 제3 소학도

《소학》의 첫머리에 적는 글


원․형․이․정(元亨利貞)은 천도의 상(常)이고 인․의․예․지(仁義禮智)는 인성의 강(綱)이다. 무릇 그 처음에 선하지 않음이 없어서 애연(藹然)히 사단(四端)이 느낌을 따라 나타난다. 어버이를 사랑하고 형을 공경하며 임금께 충성하고 어른께 공손함을 곧 타고난 천성[秉彝]이라고 하니 순함이 있고 억지로 함이 없다. 오직 성인은 타고난 본성대로 하는 사람이라 광대(廣大)하게 그 천리(天理)이니 털끝만큼을 더하지 않더라도 만 가지 선이 충족하다. 보통의 많은 사람들은 어리석어 물욕이 서로 가리게 되니 이에 그 인․의․예․지의 강(綱)을 무너뜨려 포기하기를 편안하게 여긴다. 오직 성인이 이를 측은히 여겨서 학교를 세우고 스승을 세워서 그 뿌리를 배양하며 그 가지에 이르게 하였다.

《소학》의 방도는 물뿌리고 쓸며 응하고 대하며 들어가서는 효도하고 나가서는 효도하여 행동에 혹이라도 어긋남이 없게 한다. 행하고 남은 힘이 있거든 시를 외우고 글을 읽으며 영가(詠歌)와 무도(舞蹈)를 일삼아 생각이 혹이라도 넘침이 없게 한다. 이치를 연구하고 몸을 닦는 것은 이 학문의 큰 것이니 밝은 명(命)이 빛나서 안과 밖이 없다. 도덕(道德)이 높고 공업(功業)이 넓어야 그 처음을 회복할 수 있으니, 전에도 결코 부족하지 지금인들 어찌 남음이 있겠는가?

세대가 멀고 성인이 돌아가시어 경적(經籍)이 쇠잔하고 가르침이 해이하여 어려서 기름이 바르지 못하니 자라서 더욱 경박하게 되었다. 고을에 선한 풍속이 없고 세상에 훌륭한 재능이 부족하여 이욕(利欲)이 어지럽게 당기고 이단이 말이 시끄럽게 공격하게 되었다.

다행히 타고난 천성이 하늘이 다하도록 실추하지 않아, 이에 옛적에 들은 것을 편집하여 후예들을 깨닫게 하기를 바란다. 아아! 어린 사람들이여, 경건히 이 책을 받아라, 나의 말이 늙어서 혼미함이 아니라 곧 성인이 법도인 것이다.


혹자가 묻기를, “그대가 장차 사람에게 ‘《대학》의 도’를 말하려 하면서 또 《소학》에서 살피게 하고자 하는 것은 어찌된 것인가?”라고 하였다.

주자(朱子)가 말하였다.

“학문의 대소(大小)는 실로 같지 않음이 있으나, 그러나 그 도는 한 가지 일 따름이다. 이러한 까닭으로 어린 시절에 《소학》에서 익히지 않으면 그 달아난 마음[放心]을 수렵하고 그 덕성을 함양하여 《대학》의 기본을 마련할 수 없고, 자라기에 이르러 《대학》에 나아가지 않으면 의리를 살펴서 사업에 적용하여 《소학》의 성공을 거둘 수 없다. 지금 어려서 배우는 선비로 하여금 반드시 먼저 물뿌리고 쓸며․응하고 대하며․나아가고 물러나는 사이와 예․악․사․어․서․수(禮樂射御書數)를 익힘에서 스스로 힘을 다하게 하여 자라기를 기다린 뒤에 덕을 밝히고 백성을 새롭게 하는 데 나아가 지극한 선에 그치게 한다면, 이것이 곧 차례의 당연함이니 또 어찌 불가하겠는가?

혹자가 말하기를 “만약 그 나이가 이미 장성한데도 이에 미치지 못하는 자는 어찌할 것인가?”라고 하였다. 

주자가 말하였다.

“이는 그 세월이 이미 가버린 것이니 실로 돌이킬 수 없으나, 그 공부의 차례와 조목은 어찌 드디어 다시 보충함이 불가하겠는가? 내가 듣건대, ‘경(敬)’ 한 글자는 성학(聖學)의 시작을 이루고 마침을 이루는 것이다. 《소학》을 배우는 이가 이를 말미암지 않으면 참으로 본원을 함양하여 물 뿌리고 쓸며 응하고 대하며 나아가고 물러나는 예절과 육예(六藝)1)의 가르침을 삼가히 할 수 없고, 《대학》을 배우는 이가 이를 말미암지 않으면 또한 총명을 개발하고 도덕을 증진하고 공업을 닦아서 덕을 밝히고 백성을 새롭게 하는 공을 이룰 수 없다. 불행하게 시기가 지난 뒤에 배우는 사람은 참으로 능히 이에 힘을 써서 《대학》에 나아가 《소학》을 겸하여 보충하기에 해롭게 하지 않는다면, 그 나아감이 장차 기본이 없어서 스스로 도달하지 못함을 근심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상 《소학》에 대해서는 옛적에 그림이 없었는데, 신이 삼가 본서의 목록에 의거하여 이 그림을 만들어 〈대학도(大學圖)〉와 대조되게 하고, 또 주자(朱子)의 《대학혹문(大學或問)》에서 《대학》 《소학》을 통론(通論)한 설을 인용하여 《소학》과 《대학》의 용공(用功)의 대강을 보였습니다. 대개 《소학》과 《대학》은 서로 기다려 이루어지는 것이니,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인 까닭입니다. 그러므로 《혹문》에서 통론할 수 있었고, 이 두 그림에서 겸수(兼收)하여 상비(相備)할 수 있습니다.


부록


(《소학》 편목) 내편(內篇) 〈입교(立敎)〉 제1 모두 13장. 자사(子思)2)가 말하기를 “하늘이 명한 것을 성(性)이라 하고, 성(性)을 따르는 것을 도(道)라 하고, 도를 닦는 것을 교(敎)라고 한다.”고 하셨으니, 하늘의 밝은 명을 본받으며 성인의 법을 준수하여 이 편을 기술하여, 스승이 된 이로 하여금 가르칠 바를 알게 하고 제자로 하여금 배울 바를 알게 한다.


〈명륜(明倫)〉 제2 모두 108장. 맹자(孟子)가 말하기를 “상․서․학․교(庠序學校)를 베풀어 만들어서 가르치는 것은 모두 인륜을 밝히려는 이유이다.”라고 하셨으니, 성인의 경(經)을 고찰하고 현인의 전(傳)을 의논하여 이 편을 기술하여 어리석은 선비를 가르친다.

부모 자식의 친함을 밝힘 39장, 임금과 신하의 의를 밝힘 20장, 부부의 분별을 밝힘 9장, 어른과 어린 사람의 순서를 밝힘 20장, 붕우의 사귐을 밝힘 11장, 통론(通論) 9장.

〈경신(〈敬身)〉 제3 모두 46장.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군자는 경건히 하지 않음이 없으나 몸을 경건히 함이 크다. 몸이란 어버이의 가지이니 감히 경건히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능히 그 몸을 경건히 하지 못하면 이는 그 어버이를 손상함이고, 그 어버이를 손상하면 이는 그 근본을 손상함이니, 그 근본을 손상하면 가지는 따라서 망한다.”라고 하셨으니, 성인이 법을 우러르며 현인의 법을 공경하여 이 편을 기술하여 어리석은 선비를 가르친다.

심술(心術)의 요체를 밝힘 12장, 위의(威儀)의 법칙을 밝힘 21장, 의복의 제도를 밝힘 7장, 음식의 절도를 밝힘 6장.

〈계고(稽古)〉 제4 모두 47장. 맹자(孟子)가 사람의 성(性)이 선한 것을 말씀하시되, 말다마 반드시 요순(堯舜)을 일컬으시니, 그 말씀에 이르기를 “순임금은 천하에 법이 되어 후세에 전하거늘 나는 오히려 향인(鄕人)이 되기를 면하지 못하니 이것이 곧 근심스럽다. 근심할진대 어떻게 할 것인가? 순임금과 같이 되려 할 따름이다.”라고 하셨으니, 지난 행적을 모으고 지난 말씀으로 실증하여 독자로 하여금 흥기할 바가 있게 한다.

〈입교〉 4장, 〈명륜〉 31장, 〈경신〉 9장, 통론 3장.

외편(外篇) 《시경》에 말하기를 “하늘이 뭇 사람을 낳음에, 사물이 있으면 법칙이 있다. 사람이 가진 떳떳함인지라, 이 아름다운 덕을 좋아한다.”라고 했는데,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이 시를 지은 사람이여, 도를 아는구나! 사물이 있으면 반드시 법칙이 있으니, 사람이 가진 떳떳함인지라 까닭에 이 아름다운 덕을 좋아한다.”고 하시니, 전기(傳記)를 두루 살피고 견문(見聞)을 접하여 〈가언(嘉言)〉을 기술하고 〈선행(善行)〉을 기록하여 《소학》 외편(外篇)을 만든다.

〈가언(嘉言)〉 제5 모두 91장. 〈입교〉〉 넓힘 14장, 〈명륜〉을 넓힘 41장, 〈경신〉을 넓힘 36장.

〈선행(善行)〉 제6 모두 81장. 〈입교〉를 실증함 8장, 〈명륜〉을 실증함 45장, 〈경신〉을 실증함 28장. 


과재 이씨(果齋李氏)3)가 말했다.

“선생[주자]의 연세 58세에 《소학》을 엮으시고, 책이 이루어지자 이로써 어리석은 선비를 가르쳐 그 근본을 배양하고 그 가지에 이르게 하였다. 내편(內篇)은 〈입교(立敎)〉, 〈명륜(明倫)〉, 〈경신(敬身)〉, 〈계고(稽古)〉이다. 외편(外篇)은 둘인데 고금의 가언(嘉言)을 취하여 넓히고 선행(善行)을 취하여 실증하였다. 비록 이미 《대학》에 나아간 사람일지라도 또한 후에 겸하여 보충한다면 몸을 닦는 큰 법이 이에 대략 갖추어질 것이다.”

노재 허씨(魯齋許氏)4)가 말하였다.

“진 시황(秦始皇)이 당시의 많은 서적을 불태운 이후로 성인의 경적(經籍)이 온전하지 못하여 고인이 학문하던 차례를 살필 수 없게 되었다. 반맹견(班孟堅)5)이 지은 한(漢)나라 역사책인 《한서(漢書)》에 비록 《소학》과 《대학》의 규모의 대략을 말했으나, 그러나 또한 그 사이 절목(節目)의 상세함을 볼 수는 없다. 천 여 년이 지난 후 배우는 사람들이 각자 자기 나름대로의 뜻으로 학문을 하여 높은 사람은 공허(空虛)에 들어가고 낮은 사람은 공리(功利)에 흘러드니, 비록 마음을 수고롭게 하고 힘을 다하여 식견이 넓고 견문이 많더라도 요컨대 고인(古人)에게서 어긋나지 않음이 드물었다. 근세에 신안(新安) 주 문공(朱文公)이 공자 문하의 성현이 가르치고 배운 유의(遺意)를 바탕으로 〈곡례(曲禮)〉 〈소의(少儀)〉 〈제자직(弟子職)〉 등 여러 편을 참조하여 《소학》을 엮었다. 그 강목(綱目)이 셋 있는데 〈입교(立敎)〉 〈명륜(明倫)〉 〈경신(敬身)〉이고, 다음이 〈계고(稽古)〉인데 하․은․주(夏殷周) 삼대(三代)의 성현이 이미 행했던 자취를 실어서 전편의 〈입교〉 〈명륜〉 〈경신〉의 말을 실증했다. 그 외편(外篇)은 〈가언(嘉言)〉 〈선행(善行)〉인데, 한(漢)나라 이래 현자가 말한 아름다운 말씀과 행한 선한 행실을 실었으니 그 강목은 또한 〈입교〉 〈명륜〉 〈경신〉에 지나지 않는다. 내편의 말을 부연하여 외편에 합한다면 외편은 《소학》의 지류(枝流)임을 알 것이고, 外篇의 말을 요액하여 내편에 합한다면 내편은 《소학》의 본원(本源)임을 알 것이다. 내편 외편을 합하여 둘 다 본다면 《소학》 규모와 절목이 갖추어지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라고 했다.

또 말하였다.

“《소학》을 내가 믿기를 신명과 같이 하고 공경하기를 부모와 같이 한다.”


(총론) 정자(程子)가 말하기를 “옛적의 사람은 능히 밥을 먹고 말할 수 있을 때부터 가르쳤다. 이러한 까닭으로 《소학》의 법은 미리 함을 우선으로 한다. 대개 사람이 어릴 때 지각과 생각이 주장하는 바가 있지 않은 즉, 마땅히 바른 말 지극한 의논으로 날마다 앞에 베풀어 귀에 가득하고 배에 차게 해야 한다. 이렇게 하기를 오래 하면 절로 습관에 편안하여 마치 본디부터 있는 것처럼 되니 후에 비록 어긋난 말이 흔들고 미혹하게 하더라도 능히 침입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미리 하지 못하고 제법 자라기에 미쳐서 뜻과 생각의 편벽됨이 안에서 생기고 뭇 사람들의 말이 밖에서 녹이게 되면 스스로 순전(純全)하고자 하나 그렇게 될 수 없을 것이다.”라고 했다.

주자(朱子)가 말하였다.

“후생 초학이 짐짓 《소학》을 보아야 할 것이니, 이것은 곧 인간을 만드는 틀이다.”

또 말하였다.

“고인이 《소학》에 대하여 마음에 두고 함양함이 이미 익숙하여 뿌리와 바탕이 절로 깊고 두터우니, 《대학》에 도달하는 것은 다만 나아가 더욱 새롭게 하여서 약간의 정채(精采)를 내는 것일 따름이다.”

또 말하였다.

“고인이 《소학》에 대하여 능히 말할 수 있을 때부터 문득 가르쳤으니, 한 살 때는 한 살 때의 공부가 있다. 20세에 이르게 되면 성현의 자질이 이미 절로 삼분(三分)이 갖추어지고 《대학》은 다만 광채를 다듬어 내는 것일 따름인데, 지금 모두 그 때가 지나가 능히 돌이켜 행하지 못한다면 다만 지금의 처지에서 뜻을 세워 행해 가야만 할 것이다. 만일 30세에 깨달았다면 문득 30세부터 뜻을 세워 행해 가야만 할 것이고, 문득 80~90세에 깨달았더라도 또한 마땅히 현재에 의거하여 행해 가야만 할 것이다.”

북계 진씨(北溪陳氏)6)가 말하였다.

“정자(程子)가 말하기를 ‘주경(主敬) 공부는 《소학》에서 익히지 못한 것을 채울 수 있다.’고 하니, 대개 ‘주경’은 방심(放心)을 수습하고 대본(大本)을 세울 수 있다. 대본이 이미 선 후에 《대학》 공부가 차례에 따라 나아갈 수 있으니 가서 통하지 않음이 없다. 대저 ‘주경’의 공효는 시종(始終)을 관통하고 동정(動靜)을 일관하고 내외(內外)를 합하니, 《소학》 《대학》에 모두 없어서는 불가하다.”

《안씨가훈(顔氏家訓)》7)에 말하기를 “부인을 가르치는 것은 처음 시집왔을때 하고 아이를 가르치는 것은 어릴 때 한다. 그러므로 그 처음을 삼가는 데 있다.”고 하니, 이것은 그 이치이다. 만약 자식이 처음 태어났을 때 그로 하여금 존비(尊卑) 장유(長幼)의 예를 알지 못하게 하여 드디어 부모를 업신여겨 꾸짖고 형과 누나를 치고 때리기에 이르러도 부모가 꾸짖어 금할 줄 알지 못하고 도리어 웃고 장려하면 저가 이미 좋고 나쁜 것을 분별하지 못하고 예에 마땅히 그러한 줄 알게 된다. 이미 장성하기에 이르러 습관이 이미 성품을 이루게 되어서는 곧 노하여 금하게 하더라도 다시 통제할 수 없다. 이에 부모는 그 자식을 질시하고 자식은 그 부모를 원망하여 잔인 패역(悖逆)함이 이르지 않는 곳이 없게 된다. 이것은 대개 부모가 깊은 생각과 먼 사려가 없어서 능히 미연에 방지하지 못하고 작은 자애에 빠져서 그 악을 양성했기 때문이다.

사마온공(司馬溫公)8)이 말하였다.

“여자가 6세에는 여공(女工)의 작은 것을 익히게 할 수 있고, 7세에는 《효경(孝經)》 《논어(論語)》 《열녀전(列女傳)》의 류를 외워서 대략 대의를 깨우쳐야 한다. 대개 옛날의 어진 여인은 도서(圖書)와 사기(史記)를 보아서 스스로 귀감으로 삼아 경계하지 않음이 없었으니, 누에치고 뽕따며 길쌈하고 베 짜며 바느질하고 음식 만드는 류는 오직 그 당연한 직분일 뿐 아니라 대개 반드시 일찍 익히게 하여 의복과 음식의 유래가 어려운 것을 알게 하여 감히 사치하지 못하게 하고, 수놓은 화려한 물건과 같은 것은 반드시 익히게 할 것이 없다.”

오씨(吳氏)9) 눌(訥)이 말하였다.

“《소학》의 도는 일찍 가르치는 데 있으니, 대개 오직 남자만 그럴  뿐 아니라 여자도 또한 그렇지 않음이 없다. 그러므로 능히 말할 수 있을 때부터 곧 응대하기를 천천히 하는 것으로 가르치고, 7세에는 곧 남자와 여자가 자리를 달리 하기를 가르쳐 그 분별을 일찍 알게 하고, 8세에는 곧 출입과 음식에 있어서 양보하기를 가르친다. (여자의 경우) 10세에 이르러서는 규문(閨門)을 나가지 못하게 하고 아침 저녁으로 여스승의 가르침을 듣게 하여, 여덕(女德)과 여공(女工)을 가르치고 제사를 돕는 예를 가르쳐서, 무릇 보고 들은 바가 하나도 바른 도리에서 벗어남이 없게 하여 유순(柔順) 정정(貞靜)한 덕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비녀를 꽂는 예를 행하기에 이르러 시집간 까닭으로 능히 남편을 도와서 그 집안 사람들을 화목하게 할 수 있었으니, 풍성 주씨(豐城朱氏)10)가 이른바 ‘효가 시부모에게서 쇠하지 않고, 공경이 남편에게 어긋나지 않고, 자애가 낮고 어린 사람에게 결여되지 않고, 의가 남편의 형제에게 어긋나지 않아 가정의 도가 이루어진다’고 한 것이다. 세상의 변화가 날로 하락하고 습속이 날로 무너져 규문 안에서 심지어 혹 속악(俗樂)을 익히고 가곡(歌曲)을 전공하게 하여 그 생각을 방탕하게 하고, 수놓은 끈을 다루고 사치스러움을 일삼게 하여 그 바탕을 무너지게 하고, 교만하고 방자하며 질투하고 모진 성품을 양성하게 하여 남의 집안을 패하게 하고 남의 세대를 끊어지게 하는 자가 많다. 아아! 배필의 즈음은 생민(生民)의 시작이고 만복(萬福)의 근원이니 사람의 부모된 이가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오씨가 말하였다.

“선왕(先王)이 가르침을 세움이 자세함을 다 갖추었으니, 자제에게 똥을 치우게 하는 예를 가르친 것에서 본다면 알 수 있다. 사람이 태어나 이 때에는 어린 때부터 곧 날마다 어른을 섬기는 방도를 익혀서 물뿌리고 쓸고 심부름하는 일에 편안한 가닭으로 능히 그 방심(放心)을 수습하고 그 덕성(德性)을 함양하여 교만하고 게으름이 생겨날 곳이 없게 된다. 후세에는 이러한 예가 강구되지 않아 부모는 사랑에 빠져서 자식의 교만하고 게으름을 그냥 두어 무릇 어른을 받드는 예를 일체 하인에게 맡기니, 장자(張子)11)가 이른바 ‘능히 물 뿌리고 쓸고 응대하는 예에 편안하지 못하여 병의 근원이 거처하고 접하는 바를 따라서 자란다’고 한 말이 바로 이것이다. 근세에 노재(魯齋) 허형(許衡) 선생이 귀한 집 자제를 가르칠 때 반드시 먼저 물 뿌리고 쓸고 응대하는 예를 가르쳐서 그들의 방자하고 오만한 기습을 꺾었으니, 옛적에 사람을 가르치는 법을 깊이 얻었다. 아! 사람의 부모가 되어 자제를 가르치기에 뜻을 둔 이는 마땅히 깊이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1) 육예(六藝): 주대(周代)에 고을에서 백성들을 가르치던 세 가지 요소 즉 육덕(六德), 육행(六行), 육예(六藝)의 하나로서 이 가운데 육예는 예, 악, 사, 어, 서, 수(禮樂射御書數)의 여섯 가지를 말한다. 《周禮》 〈지관(地官)〉 사도(司徒).


2) 자사(子思): 공자의 손자, 이름은 급(伋). 《중용(中庸)》을 지었다.


3) 과재 이씨(果齋李氏): 송나라 학자로서 주자(朱子)의 제자인 이방자(李方子). 자는 공회(公晦)이고, 과재(果齋)는 그 호이다.


4) 노재 허씨(魯齋許氏): 송나라 때의 학자인 허형(許衡). 자는 중평(仲平), 호는 노재(魯齋), 시호는 문정(文正). 《소학》을 중시하여 “내가 믿기를 신명과 같이 하고 공경하기를 부모와 같이 한다.[吾信之如神明 敬之如父母]”고 말한 바 있다.


5) 반맹견(班孟堅): 후한 안릉(安陵) 사람 반고(班固)를 말함. 맹견(孟堅)은 그의 자(字). 9세에 이미 문장에 능했고 자라서는 더욱 박식 관통하였다. 아버지 표(彪)가 짓다가 이루지 못한 《한서(漢書)》를 이어받아 20여 년 동안 생각한 끝에 완성하였다.


6) 북계 진씨(北溪陳氏): 송나라 학자 진순(陳淳)을 말한다. 자는 안경(安卿)이고, 북계(北溪)는 그 호이다.


7) 《안씨가훈(顔氏家訓)》: 책 이름. 수(隋)나라 때 안지추(顔之推)가 20편으로 엮은 책으로서 입신(立身) 치가(治家)의 법을 기술하여 세상 사람들을 훈계한 것이다.


8) 사마온공(司馬溫公): 송나라의 문인 학자인 사마광(司馬光). 자(字)는 군실(君實), 호는 오수(迂叟), 시호는 문정(文正). 죽은 뒤에 태사온국공(太師溫國公)으로 추증(追贈)되었으므로 사마온공으로 불리게 되었다.


9) 오씨(吳氏): 명나라 때 학자인 오눌(吳訥). 자는 민덕(敏德), 호는 사암(思菴), 시호는 문각(文恪). 저서로는 《소학》의 주석서인 《소학집해(小學集解)》가 있다.


10) 주씨(豐城朱氏): 미상.


11) 장자(張子): 송나라 때 학자인 장재(張載). 자는 자후(子厚), 호는 횡거(橫渠).

 

 

第三小學圖

〈小學題辭〉


元亨利貞, 天道之常, 仁義禮智, 人性之綱. 凡此厥初, 無有不善, 藹然四端, 隨感而見. 愛親敬兄, 忠君弟長, 是曰秉彝, 有順無彊. 惟聖性者, 浩浩其天, 不加毫末, 萬善足焉. 衆人蚩蚩, 物欲交蔽, 乃頹其綱, 安此暴棄. 惟聖斯惻, 建學立師, 以培其根, 以達其支. 小學之方, 灑掃應對, 入孝出恭, 動罔或悖. 行有餘力, 誦詩讀書, 詠歌舞蹈, 思罔或逾. 窮理修身, 斯學之大, 明命赫然, 罔有內外. 德崇業廣, 乃復其初, 昔非不足, 今豈有餘. 世遠人亡, 經殘敎弛, 蒙養弗端, 長益浮靡. 鄕無善俗, 世乏良材, 利欲紛拏, 異言喧豗. 幸玆秉彝, 極天罔墜, 爰輯舊聞, 庶覺來裔. 嗟嗟小子, 敬受此書, 匪我言耄, 惟聖之謨.

或問, 子方將語人以大學之道, 而又欲其考乎小學之書, 何也. 朱子曰, 學之大小, 固有不同, 然其爲道則一而已. 是以, 方其幼也, 不習之於小學, 則無以收其放心養其德性而爲大學之基本, 及其長也, 不進之於大學, 則無以察夫義理措諸事業而收小學之成功. 今使幼學之士, 必先有以自盡乎灑掃應對進退之間禮樂射御書數之習, 俟其旣長而後, 進乎明德新民, 以止於至善, 是乃次第之當然, 又何爲不可哉. 曰, 若其年之旣長而不及乎此者, 則如之何. 曰, 是其歲月之已逝, 固不可追, 其工夫之次第條目, 豈遂不可得而復補耶. 吾聞, 敬之一字, 聖學之所以成始而成終者也. 爲小學者, 不由乎此, 固無以涵養本源而謹夫灑掃應對進退之節與夫六藝之敎, 爲大學者, 不由乎此, 亦無以開發聰明進德修業而致夫明德新民之功也. 不幸, 過時而後學者, 誠能用力於此, 以進乎大而不害兼補乎其小, 則其所以進者, 將不患其無本而不能以自達矣.

○ 右, 小學, 古無圖, 臣謹依本書目錄, 爲此圖, 以對大學之圖, 又引朱子大學或問通論大小之說, 以見二者用功之梗槩. 蓋小學大學, 相待而成, 所以一而二, 二而一者也. 故或問得以通論, 而於此兩圖, 可以兼收相備云.


附錄


(小學篇目)內篇, 立敎第一凡十三章. 子思子曰, 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 則天明, 遵聖法, 述此篇, 俾爲師者知所以敎而弟子知所以學.

明倫第二凡百八章. 孟子曰, 設爲庠序學校以敎之, 皆所以明人倫也. 稽聖經, 訂賢傳, 述此篇, 以訓蒙士. 明父子之親三十九章, 明君臣之義二十章, 明夫婦之別九章, 明長幼之序二十章, 明朋友之交十一章, 通論九章.

敬身第三凡四十六章. 孔子曰, 君子無不敬也, 敬身爲大. 身也者, 親之枝也, 敢不敬與. 不能敬其身, 是傷其親, 傷其親, 是傷其本, 傷其本, 枝從而亡. 仰聖模, 景賢範, 述此篇, 以訓蒙士. 明心術之要十二章, 明威儀之則二十一章, 明衣服之制七章, 明飮食之節六章.

稽古第四凡四十七章. 孟子道性善, 言必稱堯舜, 其言曰舜爲法於天下, 可傳於後世, 我猶未免爲鄕人也, 是則可憂也. 憂之如何. 如舜而已矣. 摭往行, 實前言, 俾讀者有所興起. 立敎四章, 明倫三十一章, 敬身九章, 通論三章.

外篇 詩曰, 天生烝民, 有物有則. 民之秉彝, 好是懿德. 孔子曰, 爲此詩者, 其知道乎. 夫有物, 必有則, 民之秉彝也, 故好是懿德. 歷傳記, 接見聞, 述嘉言, 記善行, 以爲小學外篇.

嘉言第五凡九十一章. 廣立敎十四章, 廣明倫四十一章, 廣敬身三十六章.

果齋李氏曰, 先生年五十八, 編次小學, 書成, 以訓蒙士, 使培其根, 以達其支. 內篇, 曰立敎, 曰明倫, 曰敬身, 曰稽古. 外篇二, 取古今嘉言以廣之, 善行以實之. 雖已進乎大學者, 亦得以兼補之於後, 修身大法, 此略備焉. ○ 魯齋許氏曰, 自始皇焚書以後, 聖人經籍不全, 無由考校古人爲學之次第. 班孟堅漢史, 雖說小學大學規模大略, 然亦不見其間節目之詳也. 千有餘年, 學者各以己意爲學, 高者入於空虛, 卑者流於功利, 雖苦心極力, 博識多聞, 要之, 不背於古人, 鮮矣. 近世, 新安朱文公, 以孔門聖賢爲敎爲學之遺意, 參以曲禮少儀弟子職諸篇, 輯爲小學之書. 其綱目有三, 立敎, 明倫, 敬身, 次稽古, 所以載三代聖賢已行之迹, 以實前篇立敎明倫敬身之言. 其外篇, 嘉言善行, 載漢以來賢者所言之嘉言所行之善行, 其綱目, 亦不過立敎明倫敬身也. 衍內篇之言, 以合外篇, 則知外篇者小學之枝流, 約外篇之言, 以合內篇, 則知內篇者小學之本源. 合內外而兩觀之, 則小學之規模節目, 無所不備矣. ○ 又曰, 小學之書, 吾信之如神明, 敬之如父母.


(總論)程子曰, 古之人, 自能食能言而敎之. 是故, 小學之法, 以豫爲先. 蓋人之幼也, 知思未有所主, 則當以格言至論, 日陳於前, 使盈耳充腹. 久自安習, 若固有之, 後雖有讒說搖惑, 不能入也. 若爲之不豫, 及乎稍長, 意慮偏好, 生於內, 衆口辯言, 鑠於外, 欲其純全, 不可得已.

朱子曰, 後生初學, 且看小學書, 那箇是做人底樣子. ○ 又曰, 古人於小學, 存養已熟, 根基已自深厚, 到大學, 只就上點化, 出些精采. ○ 又曰, 古人於小學, 自能言, 便有敎, 一歲有一歲工夫. 到二十來歲, 聖賢資質, 已自有三分了, 大學只出治光采, 而今都蹉過了, 不能更轉去做, 只據而今地頭, 便箚住立定脚跟做去. 如三十歲覺悟, 便從三十歲立定脚跟做去, 便年八九十歲覺悟, 亦當據現在箚住做去.

北溪陳氏曰, 程子說, 主敬工夫, 可以補小學之闕. 蓋主敬, 可以收放心而立大本. 大本旣立然後, 大學工夫, 循序而進, 無往不通. 大抵主敬之功, 貫始終, 一動靜, 合內外, 小學大學, 皆不可無也.

顔氏家訓曰, 敎婦初來, 敎兒嬰孩, 故在謹其始. 此其理也. 若夫子之初生也, 使之不知尊卑長幼之禮, 遂至侮詈父母敺擊兄姊, 父母不知訶禁, 反笑而獎之, 彼旣未辨好惡, 謂禮當然. 及其旣長, 習已成性, 乃怒而禁之, 不可復制. 於是, 父母嫉其子, 子怨其父, 殘忍悖逆, 無所不至. 此蓋父母無深識遠慮, 不能防微杜漸, 溺於小慈, 養成其惡故也.

司馬溫公曰, 女子六歲, 可習女工之小者, 七歲, 誦孝經論語列女傳之類, 略曉大意. 蓋古之賢女, 無不觀圖史以自鑑戒, 如蚕桑績織裁縫飮食之類, 不惟正是其職, 蓋必敎之早習, 使知衣食所來之艱難, 而不敢爲奢靡焉, 若夫纂繡華巧之物, 則不必習也. ○ 吳氏曰, 小學之道, 在於早諭敎, 蓋非惟男子爲然, 而女子亦莫不然也. 故自能言, 卽敎以應對之緩, 七年, 卽敎男女異席而早其別, 八年, 卽敎以出入飮食之讓. 至于十歲, 則使不出閨門, 朝夕聽受姆師之敎, 敎以女德, 敎以女工, 敎以相助祭祀之禮, 凡所聞見, 無一不出于正, 而柔順貞靜之德, 成矣. 迨夫旣笄而嫁, 故能助相君子而宜其家人, 豐城朱氏, 所謂孝不衰於舅姑, 敬不違於夫子, 慈不遺於卑幼, 義不咈於夫之兄弟, 而家道成矣. 世變日下, 習俗日靡, 閨門之內, 至或敎之習俗樂攻歌曲, 以蕩其思, 治纂組事華靡, 以壞其質, 養成驕恣妬悍之性, 以敗人之家殄人之世者, 多矣. 嗚呼, 配匹之際, 生民之始, 萬福之原, 爲人父母, 可不戒哉.

吳氏曰, 先王立敎, 纖悉畢具, 觀敎子弟糞除之禮, 可見矣. 人生是時, 自幼稚, 卽日習事長之方, 安於灑掃使令之役, 故能收其放心, 養其德性, 而驕惰無自生矣. 後世, 此禮不講, 父母溺愛, 縱其驕惰, 凡奉長之禮, 一切委之厮役, 子張子, 所謂不能安灑掃應對, 病根隨所居所接而長, 是也. 近世魯齋許先生, 敎貴游子弟, 必先使習灑掃應對之禮, 以折其驕恣傲慢之氣, 深得古昔敎人之法. 吁, 爲人父母, 有志於敎子弟者, 宜深察焉.


다음▶   

Copyright ⓒ 2004 국제퇴계학회 대구경북지부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