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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백록동규도(第五白鹿洞規圖)

동규(洞規)의 후서(後敍)


   내가 가만히 살펴 보건대 옛 성현이 남들을 가르쳐 학문을 하게 하려는 뜻은 의리를 강설하고 밝히어 그 몸을 닦은 뒤에 미루어 남에게 미치게함이 아닌 것이 없었으며, 한갓 암기나 하고 널리 보아 사장(詞章)이나 지어서 명성이나 추구하고 이록(利祿)이나 취하려고 하였을 따름이 아니다. 지금의 학문을 하는 사람들은 이미 이와는 반대이다. 그러나 성현께서 사람들을 가르치는 방법은 모두 경전에 갖추어져 있다. 뜻 있는 선비들은 실로 마땅히 익히 읽고 깊이 생각하여 묻고 분별하여야 할 것이다. 실로 이치가 당연히 그러함을 알아서 그 몸에 반드시 그러하기를 책임 지운다면 대저 규구(規矩)와 금방(禁防)을 갖춤에 있어서 어찌 남이 만들어주기를 기다린 후에야 그것을 가지고 좇음이 있겠는가? 근세에는 학당에 규약이 있는데 학문을 대우하는 것이 이미 얕아졌고 그 법도됨 또한 필시 고인이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이 학당에서는 더 이상 실시하지 않고 특히 모든 성현께서 사람들을 가르쳐 학문을 하게 한 큰 단서를 취하여 위와 같이 조목별로 열거하여 문미(門楣)의 사이에 걸어둔다. 제군들이 서로 강설하고 밝히어 준수하여 몸으로 책임을 지운다면 깊이 생각하고 말하는데 있어서 경계하며 삼가고 두려워할 것이 반드시 저보다 더 엄함이 있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어쩌다 금하고 막는 것을 벗어난 것이 있으면 저 이른바 규약(規約)이라는 것은 반드시 취해야할 것이며 실로 생략할 수 없을 것이다. 제군들은 그것을 잘 생각할지어다!1)


    위의 백록동규는 주자가 지어서 백록동서원의 학자들에게 들어 보이신 것입니다. 백록동은 남강군 북쪽 광려산 남쪽에 있는데 당나라의 이발(李渤)2)이 이곳에 은거하며 흰 사슴을 기르며 자신의 뜻에 따라 살았던 적이 있으므로 이에 그 동의 이름으로 삼았습니다. 남당 때 서원을 세우고 국상(國庠)3)이라 하였는데, 학도가 항상 수백 명이었습니다. 송나라 태종이 서적을 하사하고 동주(洞主)에게 관직을 내려 총애하고 장려하였습니다. 도중에 잡초가 무성하고 황폐해진 것을 주자가 남강군(南康軍) 지사로 있을 때 중건할 것을 청하여 학도를 모으고 학규를 만들어 도학을 창명하였습니다. 서원의 가르침이 이에 마침내 천하에 성행하게 되었습니다. 신이 이제 학규의 글에 있는 본래의 조목에 의거하여 이 그림을 그려 자세히 살피고 깨닫기에 편하게 하고자합니다. 대체로 당․우(唐․虞)의 가르침은 오품(五品)4)에 있고, 삼대의 학문은 모두 인륜을 밝히는 것이므로 학규의 궁리와 역행(力行)은 모두 오륜에 근본하였습니다. 또한 제왕의 학문은 그 규구와 금방(禁防)이 갖추어야할 것은 무릇 학자들과 다 같을 수는 없지만 떳떳한 윤리에 근거하여 궁리․역행함으로써 대저 심법(心法)과 절요처(切要處)를 구하여 얻고자함은 일찍이 같지 않음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그림을 아울러 바쳐 조석으로 설만(褻慢)할 때의 경계로 갖추었으면 합니다.


    이상의 다섯 그림은 천도에 근본하여 인륜을 밝히고 덕업을 힘쓰게 하는데 그 공이 있다.


부록(附錄)


    맹자가 말하였다.

  사람에게는 도리가 있는데, 배불리 먹고 옷을 따뜻하게 입으며 편안히 거처하고 가르침이 없다면 금수와 가깝게 된다. 성인께서 이를 근심하시어 설(契)5)을 사도(司徒)6)로 삼아 인륜을 가르치게 하였으니 아버지와 자식간에는 친함이 있고, 임금과 신하 사이에는 의리가 있으며, 남편과 아내 사이에는 분별이 있고 어른과 아이 사이에는 차례가 있으며, 친구 사이에는 믿음이 있는 것이다.7)

   《사서집주》에서는 말하였다.

  사람에게 도가 있다는 것은 모두 떳떳하게 지키는 성품을 가지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가르침이 없으면 방일하고 나태하여져서 이것을 잃게 된다. 그러므로 성인이 관(官)을 설치하여 인륜을 가르치게 하였으니 또한 그 고유한 바를 따라서 이끌어주었을 따름이다.

    주자가 말하였다.

    사람의 큰 인륜은 그 구별이 다섯 가지가 있는데, 예로부터 성현들은 모두 하늘이 그 순서를 정한 것으로 생각하였지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러나 오직 부자․형제만 하늘에 속할 뿐 인(人)에 부합하는 것은 그 가운데 셋이 있다. 그러나 부부라는 것은 하늘에 속하여 말미암은 것으로 잇는 것이다. 군신이라는 것은 하늘에 속하여 믿는 것으로서 온전하게 하는 것이다. 붕우라는 것은 하늘에 속하여 믿음으로써 바루어주는 것이다. 이것은 인도(人道)의 기강이 되는 것으로 사람의 지극함을 세워 하루라도 한쪽으로 치우쳐 폐할 수가 없다. 비록 어쩌다 인(人)과 합치가 되더라도 기실 모두 천리의 자연스러운 것으로 어쩔 수 없이 합치되는 것이 있다. 그러나 세 가지는 사람에게 있어서 혹 그 형체는 갖출 수 있으나 그 생을 보전할 수 없고, 혹은 그 생은 보전할 수 있으나 그 이치는 보존할 수 없어 반드시 군신․부자․형제․부부지간의 사귐이 그 도를 다 하고자 하여야 어그러짐이 없을 것이며, 친구로써 그 잘하는 것을 꾸짖고 그 인을 보필하는 것이 아닌데, 누가 능히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붕우는 인륜에 있어서 그 기세가 가벼운 듯하면서도 매여 있는 것은 매우 중하고, 그 직분은 엉성한 것 같으면서도 닫힌 것은 지극히 가까우며, 그 이름은 성근 것 같아도 그 직능은 매우 크다. 이것이 옛 성인들이 도를 닦고 가르침을 세울 때 이것을 중시하여 감히 나태하지 않았던 까닭이다.8)

    서산 진씨9)가 말하였다.

    인․의․예․지․신의 이치를 옛사람들은 오상(五常)이라 하였다. 군신․부자․부부․형제[昆季]․붕우의 도리를 옛 사람들은 또한 오상이라 하였다. 성(性)의 체(軆)를 가지고 말하면 인․의․예․지․신이요, 성의 용(用)을 가지고 말하면 군신의 의리․부자의 인(仁)․부부의 분별․장유의 차서․붕우의 믿음이라고 하는데, 기실 마찬가지일 따름이다. 천하에 어찌 성(性) 외의 이치가 있겠는가?

   《중용》에서는 말했다.

    이것을 널리 배우고 자세히 물으며, 신중히 생각하고 밝게 분변하며 독실히 행하여야 한다.

   《중용장구》에서는 말하였다.

    이것은 이것을 성실히 하는 조목이다. 배우고 생각하고 분변함은 선을 택함으로써 지(智)가 되니 배워서 아는 것이다. 독실히 행함은 굳게 잡음으로써 인이 되는 것이니 이롭게 여기어 행하는 것이다. 정자가 말하였다. “이 다섯 가지 가운데 하나만 그만 두어도 학문이 아니다.”

   《중용혹문》에서는 말하였다.

    배움을 넓힌 이후라야 사물을 갖추는 이치가 있게되므로 그것을 뒤섞어 의심나는 것을 얻어 질문할 것이 있을 수 있다. 그것에 대하여 자세히 물은 다음이라야 스승과 벗에게 대한 정을 다하게 되므로 반복하여 그 단서를 펴서 생각할 수 있게 된다. 생각함에 삼감이 있으면 정(精)하게 되어 잡됨이 없게 되므로 저절로 터득하여 그 분변을 펼칠 수 있게 된다. 분변함이 밝으면 결단을 내려도 어긋남이 없게 되므로 의혹되는 것이 없이 행동에 드러날 수가 있게 된다. 행함을 독실히 하게 되면 모든 학문과 사변을 통하여 얻은 것이 또한 모두 반드시 실천하게 되어 빈말이 되지 않는다. 이것이 다섯 가지의 순서이다.

    군자는 천하에서 반드시 한 가지 이치도 통하지 않음이 없고자 하고, 한 가지 일도 할 수 없음이 없게 하고자 하기 때문에 배우지 않을 수가 없고 그 배움은 넓지 않을 수가 없다. 그것이 쌓여 관통이 된 연후에야 깊이 맺어짐이 있게 되고 하나로 관통하며, 학문을 넓히는 첫 단계에 이미 맺어짐을 이루는 마음이 있어 짐짓 넓히는 데 종사하여 하나의 경지가 되는 것이 아니다. 학문에 이르러서는 의혹이 없을 수 없으니 묻지 않을 수 없으며, 그 물음이 혹 거칠고 간략하여 살피지 않으면 의문을 다 해결할 수 없으며 묻지 않은 것이나 다를 것이 없게 된다. 그러므로 질문은 살피지 않을 수 없다. 배우고 묻는 것은 외부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만약 오로지 이것만 믿고 마음에 돌이켜 그 사실을 징험하지 않으면 살펴도 정미롭지 못하게 되고 믿어도 독실하지 않게 되며 지켜도 견고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반드시 사색을 정미롭게 한 연후라야 마음이 이치와 함께 익으며 피차가 하나가 된다. 그러나 혹 그 생각을 너무 많이만 하고 오로지 하지 않으면 또한 넘치고 도움이 되지 않으며, 혹 너무 깊게만 하고 멈추지 않으면 또한 지나치게 마음이 괴롭게 상하게 되는데, 이는 모두 생각을 잘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생각은 또한 반드시 삼갈 수 있는 것을 귀하게 여기며, 다만 몸에 되돌려보아야만 그것이 어떤 일이 되고 어떤 사물이 되는지 아는 것이 아닐 따름이다.

    쌍봉 요씨10)가 말하였다.

    배움은 반드시 넓힌 연후라야 천하의 견문을 모아서 사물의 이치를 두루 알게 된다. 물음은 반드시 살핀 연후라야 그 배우는 것의 의심을 바로잡게 된다. 생각은 반드시 삼간 연후라야 학문을 하면서 얻은 것을 면밀히 궁구하여 마음에 스스로 얻음이 있게된다. 변별은 반드시 밝게 한 연후라야 공과 사의 구별이 있게될 것이다. 의리(義利)와 시비(是非), 진망(眞妄)은 터럭 같은 조그만 차이가 나는 비슷한 사이에서는 잘못된 곳에 이르지 않는다. 훌륭한 것을 택하여 여기에 이르면 가히 정미롭다고 이를 수 있다. 이와 같이 독실한 행실을 더하면 날로 쓰는 사이에 그 미세함을 생각하는데서 일에 이르러 드러나게 되는데, 반드시 이(利)를 버리고 의(義)로 나아가며, 옳은 것으로 나아가고 그릇된 것은 버려 터럭만큼의 인욕에서 사사로이 얻는 것이라도 천리의 올바름을 빼앗지 못하도록 해야한다. 그리고 학문과 사변(思辨)에서 얻는 것은 모두 실천을 해나가는데 있다. 잡고 있는 것이 이와 같으면 그것이 실로 어떠하든 이 배움은 이로운 행실을 알아서 성실한 것에 이르는 일을 구할 수 있다.

    공자가 말하였다.

    말에 충성과 믿음이 있고 행실이 독실하고 공경스러우면 비록 오랑캐의 나라라 하더라도 행해질 수 있거니와, 말에 충성과 믿음이 없고 행실이 독실하고 공경스럽지 못하면 주(州)와 리(里)라 하더라도 행하여질 수 있겠는가!11)

    《논어집주》에서는 말하였다.

    ‘독(篤)’은 두텁다는 뜻이다.

    《주역》손(損)괘의 상사(象辭)에서는 말하였다.

    분노를 징계하고 욕심을 막아버린다[懲忿窒慾].

    익(益)괘의 상사에서는 말했다.

    선한 것을 보면 그리로 옮기어 가고, 허물이 있으면 고친다.

    《역전(易傳)》에서는 말하였다.

    몸을 닦는 도 가운데 손해를 끼치는 것은 분노와 욕심 뿐이므로 그 분노를 징계하고 그 욕망을 막아버리는 것이다.

    또 말하였다.

    선한 것을 보고 옮기어 갈 수 있으면 천하의 선한 것을 다할 수 있다. 허물이 있을 때 고칠 수 있으면 허물이 없게 된다. 사람에게 유익한 것이 이보다 큰 것이 없다.

    동중서(董仲舒)12)가 말하였다.

    의리를 바르게 하면서 이익을 도모하지 않고, 그 도를 밝히면서 그 공을 꾀하지 않는다.13)

    정자가 말하였다.

    이것이 동자(董子 ; 동중서)가 제자를 뛰어넘는 까닭이다.

    섭씨14)가 말하였다.

    춘추 이래 온 세상에서 공리를 쫓았지만 동중서의 이 말이 가장 순정하다.

    주자가 말하였다.

    동중서가 세운 것은 매우 높다. 후세의 사람들이 고인(古人)들보다 못한 까닭은 도의와 공리를 관통시키지 않았을 따름이다.15)

    자공이 묻기를 “한 마디로 종신토록 행할 만한 것이 있습니까?”라 하자, 공자가 말씀하셨다. “그것은 아마 서(恕)자일 것이다. 자신이 하고싶지 않은 것을 남에게 베풀려하지 않는 것이다.”16)

    《논어집주》에서는 말했다.

    자기의 마음을 미루어 사물에까지 미친다면 그 베풂은 무궁하다. 그러므로 종신토록 행할 수 있는 것이다.


    윤씨17)가 말하였다.

    배움은 요체를 하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 자공의 물음은 요체를 안다고 이를 만하다. 공자께서는 인을 구하는 방법을 가지고 일러주었다. 이것을 미루어 지극히 한다면 비록 성인의 무아의 경지라 하더라도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종신토록 행함이 또한 마땅하지 않겠는가!

    맹자가 말했다.

    사람을 사랑하여도 친하게 여기지 않거든 그 인을 돌이켜보고, 사람을 다스려도 다스려지지 않거든 그 지를 돌이켜보고, 사람들에게 예의를 행하여도 응답을 하지 않으면 그 경을 돌이켜 보아야 한다. 행하였는데도 얻지 못함이 있거든 모두 자신에게서 돌이켜 찾아야 하니, 자신이 바루어지면 천하가 돌아오는 것이다.18)

   《맹자집주》에서는 말했다.

    얻지 못한다는 것은 자기가 하고자 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을 이른다. 이를테면 친하게 여기지 않음․다스려지지 않음․공경하지 않음 같은 것이다. 자신에게 돌이켜 찾아야 한다는 것은 그 인(仁)을 돌이켜보고, 그 지(智)를 돌이켜 보고, 그 경(敬)을 돌이켜 보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면 스스로 다스림이 더욱 치밀하여 몸이 바르지 못함이 없게 될 것이다. 천하가 돌아온다는 것은 그 효험을 지극히 말씀한 것이다.

    남헌 장씨19)가 말하였다.

  자신의 몸에 되돌이켜 보면 천리가 밝아지고, 그렇게 할 수 없으면 인욕이 방자해진다.

    이자(李子)가 〈김이정에게 보낸 답장〉20)에서 말하였다.

    공이 스스로 그 허물을 의논한 것을 살펴보니 “학술이 거칠고 고루하며, 생각이 조급하고 잡스러워 행동이 전도되고 처사(處事)가 들뜨고 망령되어 사물을 접촉함이 뜨고 소홀하다.”하였는데, 이 다섯 가지 병폐라는 것은 내가 평소에 깊이 근심하여 바로잡으려고 하던 것인데, 이제 그대가 먼저 말을 꺼내게 되었을 따름입니다.

    공 또한 일찍이 주선생의 〈백록동규〉를 들었습니까? 나는 이 다섯 가지 병폐를 다스리고자 함이 이 학규 안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체로 그 가르침은 (인륜을 밝히는 데에) 근본하며21) 널리 배우고 자세히 묻고 신중히 생각하고 밝게 분변하는 것을 이치를 깊이 연구하는 요점으로 삼고, 몸을 닦는 것에서부터 일을 처리하고 사물을 접촉하는 것에 이르기까지를 행실을 독실히 하는 조목으로 삼았습니다. 대저 배우고 묻고 생각하고 분변하여 사물의 이치에 통달하고 참된 지식에 이르면 이치가 밝지 않음이 없어서 학술이 정미한 데까지 이를 수 있을 것입니다. 몸을 닦음에 충신(忠信)과 독경(篤敬)을 주로 하여 분을 징계하고 욕심을 막으며, 선으로 옮겨가고 허물을 고쳐가는 것으로 보충하면 행실이 독실하지 않음이 없어서 심려가 조급하고 잡스러운 데에 이르지 않고 자기 행동이 전도됨에 이르지 않을 것입니다. 일을 처리함에는 정의로 도를 밝히고 사물을 접촉함에는 용서를 행함으로써 자신을 반성한다면 독실한 행동이 또한 사물에 나타나서 들뜨고 망령됨은 근심할 바가 아니고 뜨고 소홀함은 염려할 바가 아닐 것입니다. 내 비록 이와 같음을 안다고는 하나 실행은 미치지 못합니다. 지금부터라도 마땅히 서로 더불어 그것을 힘쓰고자 하니 되겠는지요?


 


1) 《주문공집》권74 〈백록동서원게시(白鹿洞書院揭示)〉에 수록되어 있음.


2) 이발(李渤) : 당나라 낙양 사람으로 자는 준지(濬之). 형인 이섭(李涉)과 함께 백록동에 은거하다가 나중에 강주(江州)자사가 되어 백록동에 대사(臺榭)를 구축하였다. 《신당서》 권118과 《구당서》권171에 그의 전기가 수록되어 있다.


3) 국상(國庠) : 상은 원래 은나라와 주나라 때 설치한 학교. 국상은 당나라 때 국가에서 설치한 학교를 이르는 말.


4) 오품(五品) : 통상적으로 다섯 가지의 인륜 도덕을 뜻하는 오상(五常)을 말하나, 여기서는 부자(父子)․군신(君臣)․부부(夫婦)․장유(長幼)․붕우(朋友)를 말함.


5) 설(契) : 순(舜)의 신하 이름.


6) 사도(司徒) : 벼슬 이름으로 교육을 관장하였음.


7) 《맹자․등문공(滕文公) 상》에 나오는 말.


8) 《주문공문집》 권81 〈발황중본붕우설(跋黃仲本朋友說)〉


9) 서산진씨(西山眞氏) : 남송 건녕(建寧) 사람인 진덕수(眞德秀: 1178~1235)를 말함.


10) 쌍봉요씨(雙峯饒氏) : 남송 여간 사람인 요로(饒魯)를 말함. 쌍봉은 그의 호임.


11) 《논어․위령공(衛靈公)》편에 나오는 말.


12) 동중서(董仲舒 : 기원전 179~104): 한나라 광천(廣川) 사람이다. 젊어서부터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을 연구하였으며 경제(景帝) 때 박사가 되었는데, 강독을 하면서 3년 동안이나 뜰을 내다보지 않았다 한다. 무제 때 현량(賢良)으로 천거되어 대책으로 뜻을 펴 강도상(江都相)에 제수되었다. 나중에 언화(言禍)로 죽을 뻔하였으나 오래지 않아 사면되었다. 후에 다시 교서왕상(膠西王相)이 되었으나 죄를 받게 될까 걱정하여 병을 칭하고 집에서 보냈다. 조정에서는 일이 있을 때마다 그에게 사신을 보내어 자문을 구하였다. 평생 동안 강학과 저작 활동을 하였으며 유가를 높이고 백가는 배척하여 이후 2,000년에 이르는 유교를 정통으로 하는 국면을 열게 하였다.


13)《한서》권56〈동중서전〉“夫仁人者, 正其誼不謀其利, 明其道不計其功, 是以仲尼之門, 五尺之童羞稱五伯, 爲其先詐力而後仁誼也.”《삼조명신언행록》卷13, 《주문공집》권53〈유계장에게 답함(答劉季章)〉


14) 섭씨(葉氏) : 섭채(葉采)를 말하는 것 같다. 소무(邵武) 사람으로, 자는 중규(仲圭), 또는 평암(平巖).


15) 《주자어류》 권137 〈전국한당제자(戰國漢唐諸子)〉


16) 《논어․위령공(衛靈公)》편에 나오는 말.


17) 윤씨(尹氏) : 송나라 하남부(河南府) 사람인 윤돈(尹焞: 1071~1142)을 말하는 것 같다. 자는 언명(彦明)이며, 정이(程頤)가 만년에 얻은 제자 중의 하나로 관직에 뜻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화정처사(和靖處士)”라는 호를 내려 주었다.


18) 《맹자․이루(離婁) 상》


19) 남헌장씨(南軒張氏) : 장식(張栻: 1133~1180)을 말함. 송나라 한주(漢州) 면죽(綿竹) 사람. 자는 경부(敬夫) 또는 흠부(欽夫)이며, 남헌은 그의 호.


20) 내집 권29.


21) 두 글자가 빠졌는데 문집에는 “明倫”으로 되어 있다.

 

 


洞 規 後


熹竊觀古昔聖賢所以敎人爲學之意, 莫非講明義理, 以修其身, 然後推以及人, 非徒欲其務記覽爲詞章, 以釣聲名取利祿而已. 今之爲學者, 旣反是矣. 然聖賢所以敎人之法, 具存於經, 有志之士固當熟讀深思而問辨之, 苟知理之當然. 而責其身以必然, 則夫規矩禁防之具, 豈待他人設之, 而後有所持循哉? 近世於學有規, 其待學者爲已淺矣. 而其爲法, 又未必古人之意也. 故今不復施於此堂, 而特取凡聖賢所以敎人爲學之大端, 條列如右, 而揭之楣間, 諸君相與講明遵守, 而責之於身焉. 則夫思慮云爲之際, 其所以戒謹恐懼者, 必有嚴於彼者矣. 其有不然, 而或出於禁防之外, 則彼所謂規者, 必將取之. 固不得而略也. 諸君其念之哉!

○ 右規, 朱子所作以揭示白鹿洞書院學者. 洞在南康軍北匡廬山之南, 有唐李渤隱于此, 養白鹿以自隨, 因名其洞. 南唐建書院, 號爲國庠, 學徒常數百人. 宋太宗頒書籍, 官洞主以寵勸之. 中間蕪廢, 朱子知南康軍, 請于朝重建, 聚徒設規, 倡明道學. 書院之敎, 遂盛于天下, 臣今謹依規文本目, 作此圖以便觀省. 蓋唐虞之敎在五品, 三代之學, 皆所以明人倫, 故規之窮理力行, 皆本於五倫. 且帝王之學, 其規矩禁防之具, 雖與凡學者有不能盡同者, 然本之彝倫, 而窮理力行, 以求得夫心法切要處, 未嘗不同也. 故並獻是圖, 以備朝夕暬御之箴.

○ 以上五圖, 本於天道, 而功在明人倫懋德業.


附 錄


孟子曰, 人之有道也, 飽食、煖衣、逸居而無敎, 卽1)近於禽獸. 聖人有憂之, 使契爲司徒, 敎以人倫, 父子有親, 君臣有義, 夫婦有別, 長幼有序, 朋友有信. (集註)人之有道, 言其皆有秉彝之性也. 然無敎則放逸怠惰而失之, 故聖人設官而敎以人倫, 亦因其固有者而道之耳.

朱子曰, 人之大倫, 其別有五, 自昔聖賢皆以爲天之所叙, 而非人之所能爲也. 然惟父子․兄弟爲天屬,2) 而以人合者居其三.3) 然夫婦者. 天屬之所由以續者也. 君臣者. 天屬之所賴以全者也. 朋友者, 天屬之所賴以正者也. 是則所以紀綱人道, 建立人極, 不可一日而偏廢. 雖或以人而合, 其實皆天理之自然, 有不得不合者也. 然三者之於人, 或能具其形矣而不能保其生, 或能保其生矣而不能存其理, 必欲君臣父子兄弟夫婦之間交盡其道而無悖焉, 非有朋友以責其善, 輔其仁, 其孰能使之然哉? 故朋友之於人倫, 其勢若輕而所繫爲甚重, 其分若䟽而所關爲至親, 其名若踈4)而所職爲甚大. 此古之聖人脩道立敎所以必重乎此而不敢怠也. ○ 西山眞氏曰, 仁義禮智信之理, 古人謂之五常. 君臣․父子․夫婦․昆季․朋友之道, 古人亦謂之五常. 以性之軆而言則曰仁義禮智信, 以性之用而言則曰君臣之義․父子之仁․夫婦之別․長幼之序․朋友之信, 其實一而已. 天下豈有性外之理哉?

中庸曰, 博學之, 審問之, 愼思之, 明辨之, 篤行之. (章句)此誠之之目也. 學問思辨, 所以擇善而爲知, 學而知也. 篤行, 所以固執而爲仁, 利而行也. 程子曰, 五者, 廢其一, 非學也. ○ (或問)博之然後有以備事物之理, 故能參伍之以得所疑而有所問. 問之審然後有以盡師友之情, 故能反復之以發其端而可思, 思之謹則精而不雜, 故能有所自得而可施其辨. 辨之明則斷而不差, 故能無所疑惑而可以見於行. 行之篤則凡所學問思辨而得之者, 又皆必踐其實而不爲空言矣. 此五者之序也. ○ 君子之於天下, 必欲無一理之不通, 無一事之不能, 故不可以不學而其學不可以不博. 及其積累而貫通然後有以深造乎約, 而一以貫之, 非其博學之初, 已有造約之心而姑從事於博而爲之地也. 至於學而不能無疑, 則不可以不問, 而其問也或粗略而不審, 則其疑不能盡決, 而與不問無以異矣. 故問之不可以不審, 學也問也得於外者也. 若專恃此而不反之心, 以驗其實, 則察之不精, 信之不篤, 而守之不固矣. 故必思索以精之, 然後心與理熟而彼此爲一, 然使其思或太多而不專, 則亦泛濫而無益, 或太深而不止則又過苦, 而有傷皆非思之善者, 故其思又必貴於能謹, 非獨爲反之於身, 知其爲何事何物而已也.

饒氏曰, 學必博然後, 有以聚天下之見聞, 而周知事物之理. 問必審然後, 有以訂其所學之疑. 思必謹然後, 有以精硏其學問之所得, 而自得於心. 辨必明然後, 有以別公私. 義利是非眞妄於毫釐疑似之間, 而不至於差謬. 擇善至此, 可謂精矣. 如是而加以篤行, 則日用之間, 由念慮之微, 以達於事, 爲之著, 必能去利而就義, 就是而舍非, 不使一毫人欲之私得以奪乎天理之正, 而凡學問思辨之所得者, 皆有以踐其實矣. 所執如此, 其固爲如何, 此學知利行以求至於誠者之事也.

子曰, 言忠信, 行篤敬, 雖蠻貊之邦行矣, 言不忠信, 行不篤敬, 雖州里行乎哉! (集註)篤厚也.

易損之象曰, 懲忿窒欲. 益之象曰, 見善則遷, 有過則改. (傳)修己之道, 所當損者, 惟忿與慾, 故懲戒其忿怒, 窒塞其意欲也. 又曰, 見善能遷, 則可以盡天下之善. 有過能改, 則無過矣. 益於人者, 無大於是.

董仲舒曰, 正其義不謀其利明其道不計其功. 程子曰此董子所以度越諸子.

葉氏曰, 自春秋以來擧世皆趨功利, 仲舒此言最純正. ○ 朱子曰, 仲舒所立甚高. 後世之所以不如古人者, 以道義功利關不透耳.

子貢問曰, 有一言而可以終身行之者乎? 子曰, 其恕乎! 己所不欲, 勿施於人. (集註)推己及物, 其施不窮, 故可以終身行之. ○ 尹氏曰, 學貴於知要. 子貢之問, 可謂知要矣. 孔子告以求仁之方也. 推而極之, 雖聖人之無我, 不出乎此. 終身行之, 不亦宜乎!

孟子曰, 愛人不親反其仁, 治人不治反其智, 禮人不答反其敬. 行有不得者, 皆反求諸己, 其身正而天下歸之. (集註)不得, 謂不得其所欲, 如不親、不治、不敬是也. 反求諸己, 謂反其仁、反其智、反其敬也. 如此, 則自治益詳, 而身無不正矣. 天下歸之, 極言其效也.

南軒張氏曰, 反身則天理明, 不能則人欲肆.

李子答金而精書曰, 觀公自誦其過曰, 學術麤陋, 心慮躁雜, 行己顚倒, 處事浮妄, 接物泛忽, 此五病者, 正某平昔所深患而欲矯之者. 而今乃爲公之先發耳. 公亦嘗聞朱先生白鹿洞規乎? 某以爲欲治五病, 在此一規. 蓋其爲敎也本於.5) 而以博學審問愼思明辨, 爲窮理之要, 自修身以至於處事接物, 爲篤行之目. 夫學問思辨而物格知至, 則理無不明, 而學術可造於精微矣. 修身主於忠信篤敬, 而補之以懲窒遷改, 則行無不篤, 而心慮不至於躁雜, 行己不至於顚倒矣. 處事以正義明道, 接物以行恕反己, 則篤行又見於事物, 而浮妄非所憂, 泛忽非所慮矣. 某雖知其如此, 而行之不逮, 今當日夕相與勉焉, 可乎?

 


1) 원문에는 “곧 즉”(則)자로 되어 있다.

2) “然”자 다음에 “以今考之則”의 다섯 자가 빠져 있음.

3) “三”자 다음에 “焉是則若有可疑者”가 빠져 있음.

4) “踈”는 “小”로 되어 있다.

5) 두 글자가 빠졌는데 문집에는 “明倫”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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