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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6심통성정도(第六心統性情圖)

심통성정도설(心統性情圖說)


   임은(林隱) 정씨(程氏)1)가 말하였다.

  이른바 마음이 성정(性情)을 통제(統制)한다는 것은 말하되, 사람이 오행(五行)의 빼어남을 품부(稟賦)하여 태어났는데 그 빼어남에서 오성(五性)2)이 구비(具備)되어 있고 그 움직임에서 칠정(七情)이 나왔다. 무릇 그 성정(性情)을 통회(統會)하는 것은 곧 마음인 까닭에 그 마음이 적연(寂然)하게 움직이지 아니하여 성(性)이 되니 마음의 본체(本體)요, 느껴서 이루고 통하여 정(情)이 되니 마음의 작용이다.

  장자(張子)3)가 말하였다.

  마음이 성정(性情)을 통제한다는 이 말이 마땅하다. 마음이 성(性)을 통제하는 까닭에 인의예지(仁義禮智)가 성(性)이 되고 또 인의

(仁義)의 마음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마음이 정(情)을 통제하는 까닭에 측은(惻隱)과 수오(羞惡)와 사양(辭讓)과 시비(是非)가 정(情)이 되고 또 측은(惻隱)의 마음과 수오(羞惡)와 사양(辭讓)과 시비(是非)의 마음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마음이 성(性)을 통제하지 못하면 곧 미발(未發)의 중(中)을 이룰 수가 없어서 성(性)이 쉽게 천착(穿鑿)되고 마음이 정(情)을 통제하지 못하면 곧 중절(中節)의 화(和)를 이룰 수가 없어서 정(情)이 쉽게 방탕(放蕩)해지니 배우는 자들이 이것을 알아서 반드시 먼저 그 마음을 바로잡아 그 성(性)을 기르고 그 정(情)을 간략(簡略)하게 하면 배우는 도(道)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신(臣)이 삼가 정자(程子)의 호학론(好學론)을 살펴보니 ‘약기정(約其情)’이 ‘정심양성(正心養性)’의 앞에 있었는데 여기에서는 도리어 뒤에다 두었으니 이것은 ‘심통성정(心統性情)’으로 말한 까닭이다. 그러나 그 이치를 궁구(窮究)하여 말한다면 마땅히 정자(程子)의 논리로써 순서를 삼을 것이다. ○ 그림에 온당(穩當)하지 못한 곳이 있어서 조금 고쳐서 정하였다.

    ○ 오른쪽 세 개의 그림에서 위에 있는 한 개의 그림은 임은(林隱) 정씨(程氏)가 그린 것인데 자기가 그것을 해설(解說)한 것이 있다. 그 가운데와 아래에 있는 두 개의 그림은 신이 망녕되게 가만히 성현(聖賢)이 말을 세우고 교훈(敎訓)을 드리운 의미를 유추(類推)하고 근원(根源)을 파고들어 그린 것이다. 그 가운데 그림은 기품(氣稟)의 가운데에 나아가서 본연(本然)의 성(性)이 기품(氣稟)에 뒤섞이지 아니한 것을 지목(指目)해 내어 말한 것이니 자사(子思)가 이른바 천명(天命)의 성(性)이요, 맹자(孟子)가 이른바 성선(性善)의 성(性)이요, 정자(程子)가 이른바 즉리(卽理)의 성(性)이요, 장자(張子)가 이른바 천지(天地)의 성(性)이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그 성(性)을 말한 것이 이미 이와 같은 까닭에 그 발(發)하여 정(情)이 된 것이 또한 모두 그 착한 것을 지목하여 말한 것이니 자사(子思)가 이른바 중절(中節)의 정(情)이요, 맹자(孟子)가 이른바 사단(四端)의 정(情)이요, 정자(程子)가 이른바 하득이불선명지(何得以不善名之)의 정(情)이요, 주자(朱子)가 이른바 종성중류출원무불선(從性中流出元無不善)의 정(情)이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그 아래에 있는 그림은 이(理)와 기(氣)를 합쳐서 말한 것으로 공자(孔子)가 이른바 상근(相近)의 성(性)이요, 정자(程子)가 이른바 성즉기기즉성(性卽氣氣卽性)의 성(性)이요, 장자(張子)가 이른바 기질(氣質)의 성(性)이요, 주자(朱子)가 이른바 수재기중기자기성자성불상협잡(雖在氣中氣自氣性自性不相夾雜)의 성(性)이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그 성(性)을 말한 것이 이미 이와 같은 까닭에 그 발(發)하여 정(情)이 된 것이 또한 이기(理氣)가 서로 요구하며 혹 서로 해롭게 하는 곳으로써 말한 것이다. 사단(四端)의 정(情) 같은 것은 이(理)가 발함에 기(氣)가 이것을 따라가서 스스로 순수(純粹)하고 선(善)하여 악(惡)함이 없고 반드시 이(理)가 발(發)한 것이 이루지 못하고 기(氣)에 가린 연후에 흘러가서 착하지 못함이 된다. 일곱 가지의 정(情) 같은 것은 기(氣)가 발함에 이(理)가 이것을 타서 또한 착하지 아니함이 없으니 만약 기(氣)가 발한 것이 맞지 아니하여 그 이(理)를 없애버리면 곧 방탕(放蕩)하여 악(惡)함이 된다.

    대개 이와 같은 까닭에 정부자(程夫子)의 말씀에 가로되, 성(性)을 논함에 기(氣)를 논하지 않으면 구비(具備)되지 못하고 기(氣)를 논함에 성(性)을 논하지 않으면 분명하지 아니하니 이 두 가지는 곧 옳지 못하다고 하였다. 그러한 즉 맹자(孟子)와 자사(子思)가 다만 이(理)만 지목하여 말한 것은 구비되지 아니한 것이 아니고 그 기(氣)를 아울러서 말하면 곧 성(性)이 본래 선(善)하다는 것을 볼 수 없는 까닭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가운데에 있는 그림의 뜻이다. 요약해서 보면 이기(理氣)를 겸비하고 성정(性情)을 통제하는 것은 마음이고, 성(性)이 발(發)하여 정(情)이 되는 즈음은 곧 한 마음의 기미(幾微)요, 만화(萬化)의 요추(要樞)이며 선악(善惡)이 말미암아 나뉘어지는 곳이다. 배우는 자가 진실로 능히 경(敬)을 가짐에 한결같고 이욕(理欲)에 어둡지 아니하며 더욱 여기에 삼감을 이루고 발(發)하지 아니함에 존양(存養)의 공(功)이 깊고, 이미 발(發)함에 성찰(省察)의 습관이 익숙해져서 진실(眞實)을 축적(蓄積)하고 힘을 오래도록 기울이기를 그치지 아니하면 이른바 정일집중(精一執中)이라는 성인(聖人)의 학문과 존체응용(存體應用)이라는 심법(心法)을 모두 바깥에서 구함을 기다리지 아니하고 여기에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부록(附錄)


    정자(程子)가 말하였다.

    마음은 하나이니 체(體)를 지목하여 말한 것이 있으니 적연부동(寂然不動)이란 것이 이것이고 용(用)을 지목하여 말한 것이 있으니 감이수통천하지고(感而遂通天下之故)란 것이 이것이다. 오직 그 보는 것이 어떠한가를 관찰할 뿐이다.

    주자(朱子)가 말하였다.

  적연(寂然)은 감(感)의 체(體)요 감통(感通)은 적(寂)의 용(用)이니 사람 마음의 미묘(微妙)함이 그 동정(動靜)이 이와 같다.

    사람의 한 몸에 지각(知覺)과 운용(運用)이 마음이 하는 바가 아님이 없으니 곧 마음이란 것은 진실로 몸의 주인으로 동정(動靜)과 어묵(語黙)의 간단(間斷)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 고요히 있는 경우에는 사물이 이르지 아니하고 사려(思慮)가 움트지 아니하여 한가지 성(性)이 혼연(渾然)하고 도의(道義)가 온전히 구비되니 그 이른바 중(中)이란 것이 이것이 곧 마음의 체(體)가 되어서 적연부동(寂然不動)한 것이 된다. 그 움직이는 경우에는 사물(事物)이 교대로 이르고 사려(思慮)가 움트게 되면 곧 칠정(七情)이 갈마들어 움직임에 각각 주장하는 바가 있으니 그 이른바 화(和)라고 하는 것이 이것이 곧 마음의 용(用)이 되어서 감이수통(感而遂通)한 것이 된다. 그러나 성(性)은 고요하지만 능히 움직이지 않을 수 없고 정(情)은 움직이지만 반드시 절도(節度)가 있으니 이것은 곧 마음이 적연감통(寂然感通)하고 주류관철(周流貫徹)하지만 체(體)와 용(用)이 처음부터 서로 떠난 것은 아니란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이러한 마음이 있어도 혹 어질지 못하면 이 마음의 미묘(微妙)함을 드러낼 수가 없고 사람이 비록 어질고자 하나 혹 공경(恭敬)하지 아니하면 인(仁)을 구하는 공(功)을 이룰 수가 없다. 대개 마음은 한 몸을 주장하여 동정(動靜)과 어묵(語黙)의 간단(間斷)이 없다. 그럼으로써 군자가 경(敬)에 있어서 또한 동정(動靜)과 어묵(語黙)이 없어서 그 힘을 쓰지 아니한다.

    아직까지 발동(發動)하지 아니한 앞이 이것이 경(敬)이다. 진실로 이미 존양(存養)의 실체(實體)를 주장하고 이미 발동(發動)한 즈음이 이것이 경(敬)이니 또한 항상 성찰(省察)의 사이를 행하여 그것이 존재하면 사려(思慮)가 움트지 아니하고 지각(知覺)이 어둡지 아니하다. 이것이 곧 고요한 가운데에 움직이는 것이니 복괘(復卦)에서 천지(天地)의 마음을 볼 수 있다는 것이요 그 관찰함에 이르러서는 사물은 어지럽게 얽혀있어도 품절(品節)이 어긋나지 아니하다. 이것은 곧 움직이는 가운데 고요한 것이니 간괘(艮卦)에 그 ‘몸을 얻지 못하면 그 사람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고요한 가운데에 움직임을 주장함이 있기 때문에 고요해도 일찍이 느끼지 못함이 없다. 움직이는 가운데에 고요함을 살핌이 있기 때문에 느껴도 일찍이 고요하지 아니함이 없어서 고요해도 항상 느끼고 느껴도 항상 고요하다. 이것은 마음이 주류관철(周流貫徹)하여 한번 숨쉬는 사이에도 어질지 아니함이 없는 것이다. 그러한 즉 군자(君子)가 중화(中和)를 이루면 천지(天地)가 제자리를 잡고 만물(萬物)이 길러진다는 까닭이 여기에 있을 뿐이다. 대개 몸에 주장을 하여 동정(動靜)과 어묵(語黙)의 간단(間斷)이 없는 것은 마음이니 인(仁)은 곧 마음의 도(道)요 경(敬)은 곧 마음의 정(貞)이다. 이것은 철상철하(徹上徹下)의 도(道)요 성학(聖學)의 근본으로 이것을 통괄(統括)하여 분명히 하면 성정(性情)의 덕(德)과 중화(中和)의 미묘(微妙)함을 가히 한마디 말로써 다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주자(朱子)가 말하였다.

    원형이정(元亨利貞)은 성(性)이요 생장수장(生長收藏)은 정(情)이니 원(元)으로써 태어나고 형(亨)으로써 자라고 이(利)로써 거두고 정(貞)으로써 간직하는 것은 마음이요 인의예지(仁義禮智)는 성(性)이며 측은(惻隱)과 수오(羞惡)와 사양(辭讓)과 시비(是非)는 정(情)이니 인(仁)으로써 사랑하고 의(義)로써 미워하고 예(禮)로써 사양(辭讓)하고 지(智)로써 아는 것은 마음이다. 성(性)은 마음의 이치(理致)요 정(情)은 마음의 용(用)이니 마음은 성정(性情)의 주인이다.

    성(性)은 이것이 아직까지 움직이지 아니한 것이요 정(情)은 이것이 이미 움직인 것이니 마음은 아직까지 움직이지 아니한 것과 이미 움직인 것을 포괄(包括)하는 것이다. 대개 마음이 아직까지 움직이지 아니하면 곧 성(性)이 되고 이미 움직이면 곧 정(情)이 되니 이른바 심통성정(心統性情)이란 것이다. 마음은 물과 같고 성(性)은 물이 고요한 것과 같으며 정(情)은 물이 흐르는 것과 같다.

    성(性)은 이치(理致)로써 말한 것이고 정(情)은 곧 발용(發用)하는 곳이며 마음은 곧 성정(性情)을 관섭(管攝)하는 것이다.

    이자(李子)4)가 말하였다.

    이기(理氣)를 통합(統合)하면 마음이 되고 자연히 허령(虛靈)하고 지각(知覺)하는 미묘(微妙)함이 있으며 고요해도 뭇 이치를 갖추고 있는 것은 성(性)으로 성대(盛大)하게 저축(貯蓄)하고 자세하게 싣고 있으니 이 성(性)은 마음이요 움직여도 만사(萬事)에 응하는 것은 정(情)으로 펴서 베풀고 발하여 쓰게 하니 이 정(情)도 또한 마음이다. 그러므로 심통성정(心統性情)이라고 한다.

    무릇 마음은 진실로 모두 방촌(方寸)을 주장하여 말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체(體)와 그 용(用)은 강자(腔子)에 가득하게 차있고 육합(六合)에 미만(彌滿)해 있으니 서산(西山) 진씨(眞氏)가 이른바 ‘방촌(方寸)에 수렴(收斂)하면 태극(太極)이 몸에 있고 만사(萬事)에 흩어놓으면 그 용(用)이 궁색(窮塞)하지 않다’고 하였으니 마땅히 이와 같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것으로 볼 것이고 다만 한 덩어리 혈육(血肉)의 마음을 마음으로 인식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런 까닭에 주자(朱子)가 황의강(黃義剛)에게 답장한 편지에서는 ‘마음이 이것이 한 덩어리가 아니라는 질문에 말하기를 이것은 마음이 아니다. 곧 마음의 신명(神明)이 오르내리는 집이다’고 하였다.

    사람들은 이기(理氣)를 통합하여 마음이라고 여기니 이(理)가 주인이 되어 기(氣)를 거느리면 곧 마음이 고요하여 생각이 한결같이 되고 이(理)가 주인이 되지 못하고 기(氣)가 이기게 되면 곧 마음이 흔들려 생각이 망녕되게 되니 물레방아가 순환하는데 그 굴러감이 한번 숨쉬는 사이에도 일정한 궤도(軌道)가 없는 것과 같다.

    선사(先師)5)께서 말씀하셨다.

    통(統)에는 겸(兼)하여 포괄(包括)하는 뜻이 있고 관섭(管攝)하는 뜻이 있으나 그 실제는 곧 서로 통하는 것이다. 체(體)와 용(用)으로써 말하면 곧 마음의 본체는 성(性)이요 마음의 묘용(妙用)은 정(情)이니 성정(性情)의 밖에 다시 특별하게 마음은 없으니 이것이 통(統)의 뜻을 겸(兼)이라고 하는 것이다. 주재(主宰)로써 말하면 곧 마음에 주인이 되는 것은 지(知)이니 지(知)는 능히 오묘(奧妙)하고 성정(性情)의 덕(德)은 인(仁)으로써 사랑하고 예(禮)로써 사양하고 의(義)로써 마땅히 하고 지(智)로써 분별하니 마음에 주재(主宰)가 있는 것은 경(敬)이니 경(敬)은 동정(動靜)을 관통(貫通)하고 또한 능히 성(性)을 보존하여 정(情)을 점검(點檢)하니 이것이 통(統)의 뜻을 주인이 된다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知)는 이것이 지혜(智慧)의 덕(德)이니 마음 전일(專一)하게 하는 이름이요 경(敬)은 이것이 예(禮)의 덕(德)이니 마음을 전일(專一)하게 하는 항목(項目)이다. 지(智)와 예(禮)는 이것이 성(性)이고 지(知)와 경(敬)은 이것이 정(情)이니 혹 본체(本體)로써 그 발동(發動)하는 바를 권도(權度)로써 헤아리고 혹 묘용(妙用)으로써 그 가는 바를 주재(主宰)해 제어하니 대개 마음은 이것이 주재(主宰)함이 항상 일정하여 다스림이 한결같고 성(性)은 이것이 발동(發動)하여 나옴이 같지 아니하여 나뉜 것이 다른 것이다. 그 겸(兼)하여 포괄(包括)하는 실상이 있는 까닭에 주재(主宰)의 묘(妙)가 있다고 하는 것이다.

    장자(張子)가 말하였다.

    형체(形體)가 있은 뒤에 기질(氣質)의 성(性)이 있으니 잘 이것을 반대로 하면 곧 천지(天地)의 성(性)을 보존할 수 있다. 그런 까닭에 기질(氣質)의 성(性)은 군자(君子)가 성(性)으로 여기지 아니함이 있다.

    주자(朱子)가 말하였다.

    천지(天地)의 성(性)은 곧 태극본연(太極本然)의 묘(妙)가 있어서 만 갈래 다른 것이 하나의 근본(根本)에 있으며 기질(氣質)의 성(性)은 곧 두 기(氣)가 서로 운행(運行)하여 하나의 근본(根本)에 만 갈래 다른 것이 생겨난다.

    기(氣)는 성명(性命)이라고 말할 수 없고 성명(性命)은 다만 이것을 인하여 정립될 수 있을 뿐이다. 천지(天地)의 성(性)을 논할 적에는 곧 오로지 이(理)를 지목하여 말하고 기질(氣質)의 성(性)을 말할 적에는 곧 이(理)와 기(氣)를 섞어서 말한 것이고 기(氣)로써 성명(性命)을 삼는 것은 아니다.

    서산(西山) 진씨(眞氏)6)가 말하였다.

    성(性)이 능히 기(氣)를 떠나지 못하는 것은 물이 능히 흙을 떠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성(性)이 비록 기(氣)와 섞이지 아니하나 기(氣)에 빠지면 곧 능히 악(惡)해지지 않을 수 없고 물이 비록 흙에 섞이지 아니하나 흙에 빠지면 능히 혼탁(混濁)해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맑은 것은 먼저이고 흐린 것은 뒤이며 선(善)한 것은 먼저이고 악(惡)한 것은 뒤이니 먼저 착한 것은 본연(本然)의 성(性)이요 뒤에 악(惡)한 것은 형체(形體)가 있은 뒤에 둔 것이다. 이른바 착한 것은 강충(降衷)의 처음에 초연(超然)한 것이고 이른바 악(惡)한 것은 이미 형체(形體)가 있은 뒤에 섞여 나온 것이니 그 상대가 되어서 아울러 나온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장자(張子)가 말하였다.

    형체(形體)가 있은 뒤에 기질(氣質)의 성(性)이 있다.

    정자(程子)가 말하였다.

    천하(天下)의 이치는 그것이 발생해 온 것을 찾아가 보면 착하지 아니함이 없는 까닭에 무릇 선악(善惡)을 말함에 모두 선(善)을 먼저하고 악(惡)을 뒤에 하였다. 두 선생의 말씀을 보면 곧 본연(本然)의 성(性)과 기질(氣質)의 성(性)에 있어서 그 선후(先後)와 주빈(主賓)과 순박(純駁)의 분별이 모두 판연(判然)하게 드러났다.

    질문하건대, 맹자(孟子)께서 성선(性善)을 말함으로부터 순자(荀子)7)는 성악(性惡)을 말하였고 양웅(揚雄)8)은 선악혼(善惡混)을 말하였으며 한유(韓愈)9)는 삼품(三品)을 말하였고 횡거(橫渠) 장자(張子)에 이르러서는 나누어 천지(天地)의 성(性)과 기질(氣質)의 성(性)이라고 한 뒤에 제자(諸子)의 논의(論議)가 비로소 정하여졌다. 성선(性善)은 천지(天地)의 성(性)이요 나머지는 곧 이른바 기질(氣質)이란 것이다. 그러나 일찍이 이것을 의심하였다. 장자(張子)가 이른바 기질(氣質)의 성(性)이 형체(形體)가 있은 뒤에 있다고 한다면 곧 천지(天地)의 성(性)은 도리어 생명(生命)을 받지 아니한 이전에 천리(天理)가 유행(流行)한 까닭에 또한 극본궁원(極本窮源)의 성(性)이 되고 또한 만물일원(萬物一原)이 되니 이와 같다면 명(命)이라고 말할 수는 있어도 성(性)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정자(程子)가 또한 ‘인생이정(人生而靜)’ 이상에 학설(學說)을 용인(容認)하지 아니한다는 말이 있고 또한 호학론(好學論)에서 ‘성지본이후언형기생의(性之本而後言形旣生矣)’라고 말하면 곧 의심컨대 천지(天地)의 성(性) 같은 것은 명(命)을 지목하여 말했으니 명(命)은 진실로 착하나 인성(人性)에 있어서 과연 어찌 참여할 수 있겠는가?

    면재(勉齋) 황씨(黃氏)10)가 말하였다.

    장자(張子)와 정자(程子)의 논의(論議)가 이것을 말한 것은 아니다. 대개 그 이치로부터 이것을 말할 때 기질(氣質)에 뒤섞이지 아니하다고 말하면 곧 이것은 천지(天地)가 만물(萬物)의 본연(本然)에게 부여(賦與)한 것으로 기질(氣質)의 가운데에 붙어있는 까닭에 그 말이 잘 되었으니 이것을 반대로 한다면 천지(天地)의 성(性)이 존재할 것이다. 대개 천지(天地)의 성(性)은 일찍이 기질(氣質)의 가운데를 떠난 적이 없다.

    그 천지(天地)로써 말을 한다면 특별히 그 순수(純粹)하고 지선(至善)한 것을 지목한 것이니 곧 천지(天地)가 부여(賦與)한 본연(本然)이다. 가로되, 형체(形體)가 있은 뒤에 기질(氣質)의 성(性)이 있다고 함에 그 선악(善惡)이 같지 아니함이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가로되, 기(氣)에 치우치고 바름이 있으면 곧 받은 바의 이치가 따라서 치우치고 바름이 있으며 기(氣)에 어둡고 밝음이 있으면 곧 받은 바의 이치가 따라서 어둡고 밝음이 있다. 목(木)의 기(氣)가 성하면 곧 금(金)의 기(氣)가 쇠(衰)하는 까닭에 인(仁)은 항상 많으나 의(義)는 항상 적고 금(金)의 기(氣)가 성하면 곧 목(木)의 기(氣)가 쇠(衰)하는 까닭에 의(義)는 항상 많으나 인(仁)은 항상 적다. 이와 같은 것은 기질(氣質)의 성(性)에 선악(善惡)이 있는 것이니 가로되, 이미 기질(氣質)의 성(性)에 선악(善惡)이 있다고 한다면 다시 천지(天地)의 성(性)이 있지 아니하다.

    자사(子思)가 또한 ‘미발지중(未發之中)’이 있다고 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 가로되, 성(性)이 진실로 기질(氣質)의 뒤섞인 바가 되었다. 그러나 그 발하지 아니한 때를 당하여 이 마음이 담연(湛然)하고 물욕(物欲)이 생기지 아니하면 곧 기(氣)가 비록 치우쳐도 이치는 저절로 바르게 되고 기(氣)가 비록 어두워도 이치는 저절로 밝아지며 기(氣)가 비록 파리하고 결핍되어도 이치는 곧 승부(勝負)가 없다. 그 사물에 느껴서 움직임에 미치면 곧 혹 기(氣)가 움직임에 이(理)가 따르고 혹 이(理)가 움직임에 기(氣)가 이것을 끼어서 가지는지라. 이로 말미암아 지선(至善)의 이치가 기(氣)에게 명령을 들어서 선악(善惡)이 이로 말미암아 판연(判然)하게 구분된다.

    이 발동(發動)하지 아니한 앞에 천지(天地)의 성(性)이 순수(純粹)하고 지극히 착해져서 자사(子思)가 이른바 중(中)이라고 하는 것이다. 예기(禮記)에는 ‘사람이 나서 고요한 것은 천지(天地)의 성(性)’이라고 하였고 정자(程子)는 ‘그 근본(根本)이 진실(眞實)되고 고요하면 그 발동(發動)하지 아니해도 오성(五性)이 갖추어지니 곧 이치가 진실로 적막(寂寞)하게 느껴서 고요함이 있고 그 근본(根本)이 움직이면 곧 만가지 변화가 같지 아니함이 있다’고 하니 내가 일찍이 이것으로써 선사(先師)에게 질문을 하니 선사(先師)께서 대답하시기를, 발동(發動)하지 아니한 앞에 기(氣)가 용사(用事)를 하지 아니하여 선(善)은 있고 악(惡)은 없다고 하니 지극(至極)하도다. 이 말씀이여!

    선사(先師)께서 말하였다.

    기질(氣質)의 성(性)은 정히 천지(天地)의 성(性)에 대립(對立)되고 기질(氣質)의 성(性) 아닌 것은 또한 천지(天地)의 성(性) 아닌 것과 같으니 천지(天地)에 근본을 둔 것은 천지(天地)의 성(性)이라고 말하고 기질(氣質)에 변화된 것은 기질(氣質)의 성(性)이라고 말할 수 있다. 천지(天地)의 성(性)은 아직까지 발동(發動)하지 아니한 본체(本體)요, 기질(氣質)의 성(性)은 이미 발한 객용(客用)이다. 아직까지 발동(發動)하지 아니한 앞에는 기(氣)가 용사(用事)를 아니하여 선(善)은 있어도 악(惡)은 없으니 어찌 기질(氣質)과 선악(善惡)의 성(性)이 있겠는가? 이미 발동(發動)하면 곧 기질(氣質)이 용사(用事)를 하여 혹 성(性)을 도와서 선(善)을 하고 혹 성(性)을 가리워서 악(惡)을 하니 이것이 곧 기질(氣質)의 성(性)이다. 잘 이것을 반대로 하는 사람은 그 이(理)가 발한 선(善)을 확충(擴充)하고 능히 그 기(氣)가 가리운 악(惡)을 제어하여 그 본체(本體)의 정(情)을 회복할 수 있으니 본체(本體)의 정(情)이 문득 이것이 천지(天地)의 성(性)일 뿐이다.

    주자(朱子)가 말하였다.

    사단(四端)은 이것이 이(理)가 발한 것이고 칠정(七情)은 이것이 기(氣)가 발한 것이다.

    이자(李子)가 말하였다.

    사단(四端)은 물건에 감응(感應)하여 움직이는 것이니 진실로 칠정(七情)과는 다르다. 다만 사(四)는 곧 이(理)가 발함에 기(氣)가 이것을 따르고 칠(七)은 곧 기(氣)가 발함에 이(理)가 이것을 타는 것이다.

    기고봉(奇高峯)11)은 《이자천명도(李子天命圖)》에서 사단(四端)과 칠정(七情)으로써 이기(理氣)에 나누어 소속시켰는데 이석(離析)이 너무 심하였다. 이 이(理)와 기(氣)가 판연(判然)하게 두 물건이나 칠정(七情)은 이(理)에서 나오지 아니하고 사단(四端)은 기(氣)에 타지 아니하니 말뜻이 능히 병통이 없지 아니하여 편지를 보내옴으로써 분변(分辨)을 하였다. 선생이 여기에 답장을 하였는데 그 대략(大略)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사단(四端)은 정(情)이고 칠정(七情)도 또한 정(情)이다. 고르게 이것이 정(情)인데 어찌하여 사칠(四七)이라는 다른 이름이 있는가? 보내주신 가르침에 이른바 ‘소취이언지(所就而言之)’란 것이 같지 아니하니 이것은 대개 이(理)와 기(氣)가 본래 서로 요구하여 체(體)가 되고 서로 기다려 용(用)이 되니 진실로 이(理)가 없는 기(氣)가 있지 아니하고 또한 기(氣)가 없는 이(理)가 있지 아니하다. 그러나 나아가서 말한 바가 같지 아니하면 곧 또한 구별이 없는 것을 용납(容納)할 수가 없다. 또한 성(性)이란 한 글자로 이것을 논하자면 자사(子思)는 이른바 천명(天命)의 성(性)이라 하였고 맹자(孟子)는 이른바 성선(性善)의 성(性)이라 하였으니 이 두 개의 성(性)이란 글자가 지목해서 말하는 바가 어디에 있는가? 장차 이기(理氣)가 부여(賦與)한 가운데로 나아가서 이 이치의 원두(元頭)와 본연(本然)의 곳을 지목하여 말한 것이 아닌가? 그 지목한 바를 말미암아 보면 이(理)에 있고 기(氣)에 있지 아니한 까닭에 순선무악(純善無惡)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만약 이기(理氣)가 서로 떠나지 않는 까닭으로써 기(氣)를 겸하여 말하려고 한다면 이미 이것이 성(性)의 본연(本然)이 아니다. 대개 자사(子思)와 맹자(孟子)가 도체(道體)의 온전함을 통찰해 봄으로써 말을 세운 것이 이와 같다면 그 하나를 안 것도 아니고 그 둘도 안 것이 아니다. 진실로 기(氣)에 뒤섞인 것으로써 말을 하면 성(性)이 본래 착하다는 것을 볼 수가 없다.

    정자(程子)와 장자(張子) 등 제자(諸子)에 이르러서는 부득이(不得已)하게 기질(氣質)의 성(性)에 대한 논의가 있지만 또한 많은 것을 요구하여 다른 것을 세운 것은 아니다. 지목하여 말한 것이 품부(稟賦)받아 태어난 뒤에 있다면 또한 본연(本然)의 성(性)으로써 이것을 혼칭(混稱)한 것은 아닌 까닭에 내가 망녕되이 정(情)에 사단(四端)과 칠정(七情)이 있는 것이 성(性)에 본성(本性)과 기품(氣禀)이 있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였다.

    측은(惻隱)과 수오(羞惡)와 사양(辭讓)과 시비(是非)는 무엇을 좇아서 발하는가?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성(性)에서 발한다. 희노애구애오욕(喜怒哀懼愛惡欲)은 무엇을 좇아서 발동(發動)하는가? 외물(外物)이 그 형체(形體)를 접촉(接觸)하여 가운데서 움직이고 지경을 인하여 나오나니 이로 말미암아 보건대 두 가지는 비록 모두 이기(理氣)를 벗어나지 아니하나 그 소종래(所從來)를 인하여 각각 그 주장하는 바를 지목해서 말한다면 어떤 것이 이(理)가 되고 어떤 것이 기(氣)가 된다고 말하는 것이 어찌 옳지 아니함이 있겠는가? 근래에 《주자어류(朱子語類)》를 보니 ‘사단(四端)은 이것이 이(理)가 발한 것이고 칠정(七情)은 이것이 기(氣)가 발한 것’이라 하였다. 고인(古人)이 말하지 아니했던가? 감히 스스로를 믿지 말고 그 스승을 믿으라고 말이다.

    고봉(高峯)은 사칠변후설(四七辨後說)에서 말하였다.

    맹자(孟子)가 사단(四端)을 논함에 무릇 사단(四端)이 내게 있는 것을 알아서 다 이것을 확충(擴充)했으니 대개 이 사단(四端)을 두어서 이것을 확충(擴充)하고자 한다면 사단(四端)은 이것이 이(理)가 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진실로 그러하다. 정자(程子)가 칠정(七情)을 논함에 정(情)이 이미 치열하고 더욱 방탕(放蕩)하면 그 성(性)이 없어지는 까닭에 깨달은 사람이 그 정(情)을 간략(簡略)하게 하여 중(中)에 합당(合當)하게 하니 대개 칠정(七情)이 치열하고 더욱 방탕(放蕩)하나 이것을 간략(簡略)하게 하여 중(中)에 합당(合當)하게 하고자 한다면 칠정(七情)은 이것이 기(氣)가 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또한 그렇지 아니한가? 이것으로써 보자면 사단(四端)과 칠정(七情)을 이기(理氣)에 나누어 소속시키는 것은 스스로 마땅히 의심할 것이 없는데 사단(四端)과 칠정(七情)의 명의(名義)는 진실로 각각 그러한 까닭이 있으니 가히 살피지 아니할 수 없다. 그런데 칠정(七情)이 발하여 절도(節度)에 맞는 것은 곧 사단(四端)으로 더불어 처음부터 다른 것이 아니다. 대개 칠정(七情)은 비록 기(氣)에 속하나 이(理)가 본디 저절로 그 가운데에 있고 그것이 발하여 절도(節度)에 맞으면 곧 도리어 천명(天命)의 성(性)이 되니 본연(本然)의 체(體)는 곧 어찌 이것이 기(氣)가 발한 것이어서 사단(四端)과 다르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보내온 편지에 맹자(孟子)의 기쁨과 순(舜)임금의 분노(憤怒)와 공자(孔子)의 슬픔과 즐거움이 이것이 기(氣)가 이(理)를 순종(順從)하여 발동(發動)함에 일호(一毫)의 막힘도 없고 각각 소종래(所從來)가 있다고 말한 것 같은 말은 모두가 미안(未安)함을 깨닫고 한 말이다. 대개 발동(發動)하여 모두 절도(節度)에 맞는 것을 화(和)라고 이르나니 화(和)는 곧 이른바 달도(達道)란 것이다. 만약 과연 보내온 말과 같다면 달도(達道)는 또한 이것을 기(氣)가 발동(發動)한 것이라고 말하겠는가? 이것도 또한 가히 살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자(李子)는 답서(答書)에서 말하였다.

    총론(總論)과 후설(後說)에 있어서 의논(議論)이 지극히 분명(分明)하여 상쾌(爽快)하게 야기(惹起)하여 얽어매고 분분(紛紛)히 당기는 병통이 없고 안목(眼目)이 모두 정당(正當)하여 능히 홀로 밝고 텅 빈 들판을 볼 수 있고 또한 능히 옛날 소견(所見)의 차이(差異)를 호말(毫末)의 미미(微微)함에서 분별할 수 있어서 갑자기 고쳐 새로운 뜻을 따를 수 있으니 이것이 더욱 보통 사람들이 어려워하는 것이니 심히 잘 되었고 심히 잘 되었다. 의논한 바 저의 비루(鄙陋)한 말 가운데에 성현(聖賢)의 희노애락(喜怒哀樂)과 각각의 소종래(所從來)가 있다는 등의 말이 과연 미안(未安)함이 있는 듯합니까? 감히 세 번씩이나 반복하여 생각하지 못하겠나이다.

    선사(先師)가 말하였다.

    선생이 극명쾌(極明快), 진정당(儘正當), 통투(通透), 탈쇄(脫灑), 절삼루(絶滲漏), 무야반(無惹絆)이라고 말하였고 김이정(金而精)12)에게 답장한 편지에서 또한 수연(粹然)하게 한결같이 바른 것에서 나왔다고 했으니 그 사이에 모씨(某氏)가 변정(辨正)한 말의 병통이 되는 곳을 지목해 내니 또한 이치에 맞았다. 대개 중용(中庸)의 희노애락(喜怒哀樂)은 아울러 이것을 기(氣)가 발한 것이라고 말할 수 없는 까닭이고 그 대체(大體)가 같으나 구차하게 연락(然諾)함을 기뻐한 것은 아니다. 뒤에 ꡔ성학십도(聖學十圖)ꡕ를 지음에 중절(中節)의 정(情)과 사단(四端)의 정(情)으로써 아울러 기(氣)에 뒤섞이지 않게 짓고 다만 이(理)의 정(情)만 지목하니 곧 이것은 도리어 고봉(高峯)이 이른바 이(理)에서 발하여 착하지 아니함이 없는 것이 사단(四端)으로 더불어 처음부터 다르지 않음이니 그 정론(定論)이 되는 것을 가히 알 수가 있다.

    또 말하였다.

    성정(性情)이 나뉘어지고 통합(統合)하는 묘처(妙處)는 중도(中圖)와 하도(下圖)에 다 모여있고 스승과 벗들이 토론하고 분변(分辨)하는 취지(趣旨)는 이 도설(圖說)에 마감(磨勘)되어 있으니 대개 중도(中圖)는 성(性)을 말하되 이미 기(氣)에 뒤섞이지 아니한 까닭으로 정(情)을 말함에 모두 그 선(善)을 지목하였고 하도(下圖)는 성(性)을 말하되 이미 기(氣)에 통합(統合)한 까닭으로 정(情)을 말함에 겸(兼)하여 불선(不善)을 지목하였다. 그러나 중도(中圖)는 곧 곧바로 정자(情字)를 썼고 하도(下圖)는 곧 다만 발위(發爲)라고 썼는데 후설(後說)의 말단(末段)에 특별히 다만 이(理)를 지목하여 말함으로써 중점(重點)을 중도(中圖)에 돌리니 진실로 정(情)은 이것이 이미 발한 이(理)요 이(理)는 본면목(本面目)이 되어 기발(氣發)이라고 나누어 말하니 곧 그 발한 바의 기틀이다. 선생이 이(理)를 주장한 뜻이 한번 책을 펴면 문득 요연(暸然)하게 드러나지만 혼륜(渾淪)을 좋아하는 후인(後人)들이 중도(中圖)의 뜻을 살피지 못하고 한갓 하도(下圖)의 분주(分主)와 분개(分開)만 의심하니 오로지 서로 발하는 기틀만 말하고 중점(重點)을 돌리는 뜻을 살피지 아니하여 사칠(四七)을 합하여 기발(氣發)로 돌리면 곧 이(理)는 죽은 물건이 되어 큰 근본은 어긋나게 되며 이기(理氣)를 나누어 각각 근원(根源)을 구하게 되면 기(氣)가 심체(心體)가 되어 큰 근본(根本)이 둘이 된다.

    이자(李子)가 이평숙(李平叔)에게 보낸 답장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깨우쳐 주신 신무단지설(信無端之說)은 심히 좋습니다. 정자(程子)의 본설(本說)에 당시에는 이 말이 있는 줄을 살피지 못했는데 임씨(林氏)의 그림을 원용(援用)하여 임금께 상달(上達)한 지경에 이르러서는 지극히 황송(惶悚)하여 땀을 흘렸으나 지금은 이미 미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 그림에 특수한 발명(發明)이 있어서 이것을 버리기가 아까운 까닭에 다만 그림 아래에다가 바야흐로 가늘게 써서 가로되, 신(臣)이 삼가 안찰(按察)하건대 정자(程子)가 신무단(信無端)이라고 말했으니 이것은 믿음이 있는 단서(端緖)이기 때문에 가만히 의심컨대 정자(程子)의 말을 마땅히 따라야 할 것이다. 그러나 홀로 이것만이 아니다. 그 중도(中圖)와 하도(下圖)에 그림을 스스로 지은 사람도 또한 추가로 고쳐야 할 곳이 하나가 아니고 여러 번 고치는 것도 심히 불가(不可)한 것은 없으니 특별히 경연(經筵)을 드린 뒤에 나와서 자주 번거롭게 고치기를 품신(稟申)하니 실로 깊이 황공(惶恐)하였습니다. 모두가 강학(講學)이 본래 분명하지 못함을 말미암았기 때문에 일에 임하여 엎어지고 어지러운 것을 면하지 못함이 도리어 이와 같으니 깊이 부끄럽고 두려울 뿐입니다.

    김이정(金而精)에게 답장한 편지에서 말하였다.

    무릇 도서(圖書)의 방위(方位)는 모두 왼쪽으로써 양(陽)을 삼고 오른쪽으로써 음(陰)을 삼으니 이것은 북쪽으로부터 주인을 삼아서 보는 사람이 또한 북쪽을 말미암아 주인을 따라 봄에 그림과 사람이 빈주(賓主)의 구분이 없는 까닭에 전후좌우(前後左右)와 동서남북(東西南北)이 마땅히 이와 같다. 앞의 ꡔ심통성정도(心統性情圖)ꡕ가 이것을 본떠서 만든 까닭에 왼쪽에 인(仁)이 있고 오른쪽에 의(義)가 있는 위치가 이와 같이 나뉘어진다. 이것으로써 말한다면 지(智)는 아래에 해당하면서 북쪽에 거(居)하고 예(禮)는 위에 해당하면서 남쪽에 거(居)하는데 지금은 도리어 도치(倒置)가 되어 있으니 진실로 마땅히 고쳐야 할 것이다. 다만 다시 이것을 생각해보니 ꡔ하락선후도(河洛先後圖)ꡕ 등에서는 소장(消長)하고 순환(循環)하는 이치만 주로 밝혔고 ꡔ태극도(太極圖)ꡕ에서는 명물(命物)의 도(道)를 주로 말하고 왼쪽의 양(陽)과 오른쪽의 음(陰)이 서로 운행(運行)함에 있어서 남북(南北)과 상하(上下)의 여하(如何)에 관계가 없으니 이와 같이 방위(方位)를 나누는 것이 옳다고 하겠다. 이 그림에 있어서 윗면은 마음이 고요하여 발하지 아니한 때를 나타내고 아래면은 성(性)이 발하여 정(情)이 되는 차례를 나타내었다. 예(禮)는 형가(亨嘉)의 모임을 발용(發用)하는 것인데 도리어 발하지 아니한 곳에 거(居)하고 지(智)는 기함(機緘)의 묘리(妙理)를 거두어 간직하는 것인데 다만 발용(發用)의 다음에 처(處)하니 도리어 두 가지가 그 마땅함을 잃어버린 것이 없는가? 그런 까닭에 지금 그 위치(位置)와 향배(向背)를 변화시키고자 하여 주인이 된 사람은 북쪽에 있기를 꾀하고 보는 사람은 손님이 되어 남쪽에 있으니 손님으로부터 주인을 향하고 남쪽으로부터 북쪽을 보면 곧 그림의 윗면은 북쪽이 되고 지(智)가 되며 아래면은 남쪽이 되고 예(禮)가 된다. 그림의 왼쪽은 곧 보는 사람의 오른쪽으로 동쪽이 되고 인(仁)이 되며 그림의 오른쪽은 곧 보는 사람의 왼쪽으로 서쪽이 되고 의(義)가 된다. 이것은 인의예지(仁義禮智)가 본래의 위치를 서로 바꾼 것이 아니고 보는 사람의 향배(向背)에 변화가 있음을 말미암은 것이며 네 가지의 위치도 또한 따라서 변할 뿐이다. 그러한즉 위의 지(智)와 아래의 예(禮)는 앞의 것을 그대로 따르고 왼쪽의 인(仁)과 오른쪽의 의(義)는 마땅히 서로 바꾼 것이다. 또한 홀로 인의(仁義)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허령(虛靈)과 지각(知覺)도 또한 마땅히 이것을 의지하여 서로 바뀌고 하도(下圖)가 이것과 다른 것은 하나하나 이것을 견주어 그것에 의지하여 고쳐서 곧 이것을 얻을 수 있었다. 하도(下圖)의 허령지각(虛靈知覺) 넉자와 인지청박(仁智淸駁)의 좌우(左右)가 바뀐 것은 이것을 모방했다.

    또 말하였다.

    중도(中圖)에 고칠 곳이 있다는 말을 지금에 와서 고쳐 자세하게 생각해보니 만약 앞의 말과 같다면 곧 인의허령지각(仁義虛靈知覺)의 여섯 글자는 모두 이것을 고쳐야 하고 하도(下圖)의 넉자도 또한 이것을 고쳐야 하니 특별히 일이 많은 것은 비단 이것만이 아니다. 지(智)가 비록 기함(機緘)의 묘리(妙理)를 거두어 간직해도 또한 인(仁)과 예(禮)와 의(義)의 세 가지로 더불어 다시 서로 발동(發動)하여 사단(四端)이 되니 비록 아래에 거(居)해도 마땅히 성(性)이 발하여 정(情)이 되는 차례에 있어서 또한 어찌 옳지 못함이 있겠는가? 그런 까닭에 지금은 다만 중도(中圖)의 지(智)와 예(禮) 두 글자만 고쳐서 바꾸고 그 나머지는 모두 고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선사(先師)가 말하였다.

    옛날 중도(中圖)를 살펴보면 지(智)가 북쪽 아래에 있고 예(禮)가 남쪽 위에 있어서 원래 도치(倒置)된 순서가 없는데 여기에서 도치(倒置)되었다고 말하니 곧 반드시 이것이 옛 그림의 앞이요 또한 별달리 그림이 있어서 위의 지(智)와 아래의 예(禮)와 왼쪽의 인(仁)과 오른쪽의 의(義)가 있은 까닭일 뿐이다.

    안찰(按察)함에 선생이 중도(中圖)와 하도(下圖)의 두 그림에 있어서 여러 번 개작(改作)한다는 말이 있었다. 조금 있다가 옮겨다니고 일이 많음으로써 과연 그렇게 하지 못했고 또한 그대로 두어도 해로울 바가 없다고 말하여 그대로 두었다. 그러나 개작(改作)하리라고 논한 바는 지극히 깊은 뜻이 있어서 빠뜨릴 수가 없기 때문에 지금 삼가 채록(採錄)하여 부쳐둔다.



1) 임은(林隱) 정씨(程氏)는 정복심(程復心)이다. 원(元) 인종(仁宗) 대에 활약했던 학자로 자(字)는 자현(子見)이고, 임은(林隱)은 호(號)이다. 저서에 《사서장도(四書章圖)》 3권이 있다. 《성학십도》에는 정임은의 저술로서 〈심통성정도〉 상도(上圖) 외에도〈서명도〉․〈심학도〉2도와〈심통성정도설〉․〈심학도설〉 2설이 있다. 그의 〈심학도설〉은 《심경부주》의 첫머리에도 전재되어 있다.


2) 오성(五性)은 인(仁)․의(義)․예(禮)․지(智)․신(信)을 말한다.


3) 장자(張子)는 횡거(橫渠)로 북송(北宋)의 도학자(道學者)인 장재(張載; 1020~1077)를 말한다. 자(字)는 자후(子厚)이며, 봉상(鳳翔) 미현(郿縣)의 횡거진(橫渠鎭) 사람이므로 횡거선생이라 불린다. 가우(嘉祐) 연간에 진사(進士)가 되었으며, 희령(熙寧) 초에 숭문원교서(崇文院校書)에 올랐으나 왕안석(王安石)의 변법(變法)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사퇴하고 귀향하였다. 나중에 미백(郿伯)에 봉해졌고, 공자(孔子) 사당(祠堂)에 종사되었다. 저서로는 《정몽(正蒙)》과 《역설(易說)》, 《경학이굴(經學理窟)》 등이 있으며, 문집으로는 《장자전서(張子全書)》가 있다.


4) 이자(李子)는 퇴계(退溪) 이황(李滉)을 높여서 부르는 존칭(稱號)이다.


5) 선사(先師)는 저자 후산(后山) 허유(許愈)의 스승인 이진상(李震相; 1818~1886)을 말한다. 이진상의 자(字)는 여뢰(汝雷)이고, 호는 한주(寒洲)이다. 한주 문하에서는 허유(許愈, 1833~1904) 외에 면우(俛宇) 곽종석(郭鍾錫; 1846~1919)과 대계(大溪) 이승희(李承熙; 1847~1916)․홍와(弘窩) 이두훈(李斗勳; 1856~1918)․자동(紫東) 이정모(李正模; 1848~1915)․교우(膠宇) 윤주하(尹冑夏; 1846~1906)․물천(勿川) 김진우(金鎭祐; 1845~?)․회당(晦堂) 장석영(張錫英; 1851~1929) 등 걸출한 학자들이 배출되었다.


6) 서산(西山) 진씨(眞氏)는 진덕수(眞德秀: 1178~1235)로 그의 자(字)는 경원(景元)인데 뒤에 희원(希元)으로 고쳤고 세칭(世稱) 서산선생(西山先生)이며 시호(諡號)는 문충(文忠)이다. 그는 송(宋)나라 영종(寧宗)과 효종(孝宗) 연간의 학자이며 저서로는 《서산집(西山集)》 56권이 있다.


7) 순자(荀子)는 순황(荀況; B․C 313?~238)을 말한다. 그는 전국시대(戰國時代) 조(趙)나라 사람으로 학자들이 존칭하여 순경(荀卿)이라고 하였는데 한(漢)나라 선제(宣帝)의 휘(諱)가 순(詢)인 관계로 손경(孫卿)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그는 맹자(孟子)가 성선설(性善說)을 주장한데 반해 성악설(性惡說)을 주장하였다.


8) 양웅(揚雄 : B․C 53~A․D 18)은 후한(後漢) 때의 학자로 자(字)는 자운(子雲)이며 촉군(蜀郡) 성도(成都) 사람이다.


9) 한유(韓愈; 768~824)는 중국 당(唐)대 중기의 대표적인 사상가(思想家)로 그의 자(字)는 퇴지(退之)이며 스스로 창려(昌黎)라고 호(號)를 하였다. 특히 시문(詩文)에 뛰어난 재능을 지녀 수많은 명작(名作)을 남겼으며 철학사(哲學史)에서 주목받는 저술로는 〈원도(原道)〉외에〈원성(原性)〉이 있다.


10) 면재(勉齋) 황씨(黃氏)는 송(宋)나라 영종(寧宗) 시대의 학자인 황간(黃幹, 1152~1221)을 가리키는데 그의 자(字)는 직경(直卿)이며, 면재는 그의 호(號)이다.


11) 기고봉(奇高峯)은 기대승(奇大升)을 말한다. 기대승(1527~1572)은 조선 중기의 문신(文臣)이자 성리학자(性理學者)로 본관(本貫)은 행주(幸州), 자(字)는 명언(明彦), 호(號)는 고봉(高峯) 또는 존재(存齋)로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문인이다. 그는 1549년 사마시(司馬試)에, 1558년 식년문과(式年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한 뒤 승문원부정자(承文院副正字)를 시작으로 각종 벼슬을 역임하였는데, 특히 1572년에는 성균관(成均館) 대사성(大司成), 종계변무주청사(宗系辨誣奏請使)를 역임하였고 대사간(大司諫)과 공조참의(工曹叅議)를 지내다가 병을 얻어 벼슬을 그만두고 귀향하다가 전라도(全羅道) 고부(古阜)에서 생애를 마감하였다. 그는 퇴계와 1559년에서 1566년에 이르는 8년 간의 사칠논변(四七論辨)을 주고 받았는데 이것은 우리나라 유학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논쟁으로 유명하다. 사후에 그는 광주(光州)의 월봉서원(月峯書院)에 제향(祭享)되었고 시호(諡號)는 문헌(文憲)이고 문집으로는 고봉집(高峯集)이 있다.

 

12) 김이정(金而精)은 잠재(潛齋) 김취려(金就礪)의 자(字)인데 그는 경기도(京畿道) 안산(安山) 출신으로 퇴계(退溪)가 준 시(詩)와 편지가 있다.


心統性情圖說



林隱程氏曰所謂心統性情者, 言人稟五行之秀以生, 於其秀而五性, 具焉, 於其動而七情, 出焉. 凡所以統會其性情者則心也故, 其心, 寂然不動爲性, 心之體也. 感而遂通爲情, 心之用也. 張子曰心統性情, 斯言, 當矣. 心統性故, 仁義禮智爲性而又有言仁義之心者. 心統情故, 惻隱羞惡辭讓是非爲情而又有言惻隱之心, 羞惡辭讓是非之心者. 心不統性則無以致其未發之中而性易鑿, 心不統情則無以致其中節之和而情易蕩. 學者知此, 必先正其心, 以養其性而約其情則學之爲道, 得矣.臣謹按程子好學論, 約其情, 在正心養性之前, 此反居後者, 此以心統性情言故也, 然, 究其理而言之, 當以程論, 爲順. ○ 圖有未穩處, 稍有更定)


○ 右三圖, 上一圖, 林隱程氏作, 自有其說矣. 其中下二圖, 臣妄竊推原聖賢立言垂敎之意而作, 其中圖者, 就氣稟中指出本然之性, 不雜乎氣稟而爲言. 子思所謂天命之性, 孟子所謂性善之性, 程子所謂卽理之性, 張子所謂天地之性, 是也. 其言性, 旣如此故, 其發而爲情, 亦皆指其善者而言, 如子思所謂中節之情, 孟子所謂四端之情, 程子所謂何得以不善名之之情, 朱子所謂從性中流出, 元無不善之情, 是也. 其下圖者, 以理與氣, 合而言之, 孔子所謂相近之性, 程子所謂性卽氣氣卽性之性, 張子所謂氣質之性, 朱子所謂雖在氣中, 氣自氣性自性, 不相夾雜之性, 是也. 其言性, 旣如此故, 其發而爲情, 亦以理氣之相須, 或相害處言, 如四端之情, 理發而氣隨之, 自純善無惡, 必理發未遂而揜於氣然後, 流爲不善. 七者之情, 氣發而理乘之, 亦無有不善. 若氣發不中而滅其理則放而爲惡也. 夫如是故, 程夫子之言曰論性不論氣不備, 論氣不論性不明, 二之則不是. 然則孟子, 子思所以只指理言者, 非不備也. 以其並氣而言則無以見性之本善故爾. 此中圖之意也. 要之, 兼理氣統性情者, 心也而性發爲情之際, 乃一心之幾微, 萬化之樞要, 善惡之所由分也. 學者, 誠能一於持敬, 不昧理欲而尤致謹於此, 未發而存養之功深, 已發而省察之習熟, 眞積力久而不已焉則所謂精一執中之聖學, 存體應用之心法, 皆可不待外求而得之於此矣.


附 錄


程子曰心, 一也, 有指體而言者, 寂然不動, 是也. 有指用而言者, 感而遂通天下之故, 是也. 惟觀其所見何如爾.

朱子曰寂然者, 感之體, 感通者, 寂之用, 人心之妙, 其動靜, 如此. ○ 人之一身, 知覺運用, 莫非心之所爲則心者, 固所以主於身而無動靜語黙之間者也. 然, 方其靜也, 事物, 未至, 思慮, 未萌而一性渾然, 道義全具, 其所謂中, 是乃心之所以爲體而寂然不動者也. 及其動也, 事物, 交至, 思慮, 萌焉則七情迭用, 各有攸主, 其所謂和, 是乃心之所以爲用, 感而遂通者也. 然, 性之靜也而不能不動, 情之動也而必有節焉, 是則心之所以寂然感通, 周流貫徹而體用未始相離者也. 然, 人有是心而或不仁則無以著此心之妙, 人雖欲仁而或不敬則無以致求仁之功, 蓋心主乎一身而無動靜語黙之間. 是以, 君子之於敬, 亦無動靜語黙而不用其力焉, 未發之前, 是敬也. 固已主乎存養之實, 已發之際, 是敬也. 又常行於省察之間, 方其存也, 思慮, 未萌而知覺, 不昧, 是則靜中之動, 復之所以見天地之心也. 及其察也, 事物, 紛糾而品節, 不差, 是則動中之靜, 艮之所以不獲其身, 不見其人也. 有以主乎靜中之動, 是以, 寂而未嘗不感, 有以察乎動中之靜, 是以, 感而未嘗不寂, 寂而常感, 感而常寂, 此心之所以周流貫徹, 無一息之不仁也. 然則君子之所以致中和而天地位, 萬物育者, 在此而已. 蓋主於身而無動靜語黙之間者, 心也. 仁則心之道而敬則心之貞也. 此徹上徹下之道, 聖學之本, 統明乎此則性情之德, 中和之妙, 可一言而盡矣. ○ 朱子曰元亨利貞, 性也, 生長收藏, 情也, 以元生, 以亨長, 以利收, 以貞藏者, 心也, 仁義禮智, 性也, 惻隱羞惡辭讓是非, 情也, 以仁愛, 以義惡, 以禮讓, 以智知者, 心也. 性者, 心之理也, 情者, 心之用也, 心者, 性情之主也. ○ 性是未動, 情是已動, 心包得未動已動, 蓋心之未動則爲性, 已動則爲情, 所謂心統性情也. 心如水, 性猶水之靜, 情猶水之流. ○ 性, 以理言, 情乃發用處, 心卽管攝性情者也.

李子曰理氣合而爲心, 自然有虛靈知覺之妙, 靜而具衆理, 性也而盛貯該載, 此性者, 心也, 動而應萬事, 情也而敷施發用, 此情者, 亦心也故, 曰心統性情. ○ 凡言心固皆主方寸而言, 然, 其體其用, 滿腔子而彌六合, 眞西山所謂斂之方寸, 太極在躬, 散之萬事, 其用不窮, 當如此活看, 不可只認一塊血肉之心, 爲心也故, 朱子之答黃義剛, 心, 不是這一塊之問, 曰此非心也, 乃心之神明升降之舍. ○ 人合理氣而爲心, 理爲主而帥氣則心靜而慮一, 理不爲主而爲氣所勝則心擾而思妄, 如翻車之環, 轉無一息之定帖. ○ 先師曰統有兼包義, 有管攝意, 其實則相通, 以體用言則心之本體, 性也, 心之妙用, 情也. 性情之外, 更別無心, 此所以訓統爲兼也. 以主宰言則心之所以爲主宰者, 知也, 知能妙性情之德, 以仁愛, 以禮讓, 以義宜, 以智別, 心之所以有主宰者, 敬也, 敬貫動靜, 又能存性而檢情, 此所以訓統爲主也. 然, 知是智之德, 專一心之名, 敬是禮之德, 專一心之目, 智禮是性, 知敬是情, 或以本體而權度其所發, 或以妙用而宰制其所行, 蓋心是主宰常定底, 理之一者也. 性是發出不同底, 分之殊者也. 以其有兼包之實故, 所以有主宰之妙.

張子曰形而後, 有氣質之性, 善反之則天地之性, 存焉故, 氣質之性, 君子, 有不性者焉,

朱子曰天地之性則太極本然之妙, 萬殊之一本也, 氣質之性則二氣交運而生, 一本之萬殊也. ○ 氣, 不可謂之性命, 但性命, 因此而立耳. ○ 論天地之性則專指理而言, 言氣質之性則以理與氣, 雜而言之, 非以氣爲性命也. ○ 西山眞氏曰性之不能離乎氣, 猶水之不能離乎土, 性雖不雜乎氣而氣汨之則不能不惡, 水雖不雜乎土而土汨之則不能不濁耳. 然, 淸者, 其先而濁者, 其後也. 善者, 其先而惡者, 其後也. 先善者, 本然之性也, 後惡者, 形而後, 有者也. 所謂善者, 超然於降衷之初而所謂惡者, 雜出於旣形之後, 其非相對而並出也, 昭昭矣. 張子曰形而後, 有氣質之性, 程子曰天下之理, 原其所自來, 未有不善故, 凡言善惡, 皆先善而後惡, 觀二先生之言則本然之性與氣質之性, 其先後主賓純駁之辨, 皆判然矣. ○ 問自孟子言性善而荀卿言性惡, 揚雄言善惡混, 韓文公言三品, 及至橫渠張子, 分爲天地之性, 氣質之性然後, 諸子之論, 始定. 性善者, 天地之性也, 餘則所謂氣質者也. 然, 嘗疑之, 張子所謂氣質之性, 形而後, 有則天地之性, 乃未受生以前, 天理之流行者故, 又以爲極本窮源之性, 又以爲萬物一原, 如此則可謂之命而不可謂之性也. 程子, 又有人生而靜以上, 不容說之語, 又於好學論, 言性之本而後, 言形旣生矣則疑若天地之性, 指命而言, 命固善矣, 於人性, 果何預乎. 勉齋黃氏曰張程之論, 非此之謂也. 蓋自其理而言之, 不雜乎氣質而爲言則是天地賦與萬物之本然者而寓乎氣質之中也故, 其言曰善反之則天地之性, 存焉. 蓋謂天地之性, 未嘗離乎氣質之中也. 其以天地爲言, 特指其純粹至善, 乃天地賦予之本然也. 曰形而後, 有氣質之性, 其所以有善惡之不同, 何也. 曰氣有偏正則所受之理, 隨而偏正, 氣有昏明則所受之理, 隨而昏明, 木之氣盛則金之氣衰故, 仁常多而義常少, 金之氣盛則木之氣衰故, 義常多而仁常少, 若此者, 氣質之性, 有善惡也. 曰旣言氣質之性, 有善惡則不復有天地之性矣. 子思子, 又有未發之中, 何也. 曰性固爲氣質所雜矣. 然, 方其未發也, 此心湛然, 物欲未生則氣雖偏而理自正, 氣雖昏而理自明, 氣雖贏乏而理則無勝負, 及其感物而動則或氣動而理隨之, 或理動而氣挾之, 由是, 至善之理, 聽命於氣, 善惡, 由之而判矣. 此未發之前, 天地之性, 純粹至善而子思之所謂中也. 記曰人生而靜, 天之性也, 程子曰其本也, 眞而靜, 其未發也, 五性, 具焉則理固有寂感而靜, 其本也, 動則有萬變之不同焉, 愚嘗以是而質之先師矣. 答曰未發之前, 氣不用事, 所以有善而無惡, 至哉, 此言也. ○ 先師曰氣質之性, 正對天地之性, 氣質之非性, 亦如天地之非性也. 所本乎天地者, 謂之天地之性, 所變於氣質者, 謂之氣質之性, 天地之性, 未發之本體也, 氣質之性, 已發之客用也. 未發之前, 氣不用事, 有善而無惡, 安得有氣質善惡之性乎. 已發則氣質用事, 或助性而爲善, 或掩性而爲惡, 此乃氣質之性也. 善反之者, 擴充其理發之善而克制其氣掩之惡, 以復其本體之正也. 本體之正, 便是天地之性耳.

朱子曰四端, 是理之發, 七情, 是氣之發.

李子曰四端, 感物而動, 固不異於七情, 但四則理發而氣隨之, 七則氣發而理乘之. ○ 奇高峯, 以李子天命圖四端七情, 分屬理氣, 離析太甚, 是理與氣, 判而爲兩物, 七情, 不出於理, 四端, 不乘於氣, 語意不能無病, 以書來辨, 先生答之, 其略曰四端, 情也. 七情, 亦情也. 均是情也. 何以有四七之異名耶. 來諭所謂所就以言之者, 不同也. 是蓋理之與氣, 本相須以爲體, 相待以爲用, 固未有無理之氣, 亦未有無氣之理, 然, 所就而言之, 不同則亦不容無別. 且以性之一字, 論之, 子思所謂天命之性, 孟子所謂性善之性, 此二性字所指而言者, 何在乎. 將非就理氣賦與之中, 指此理元頭本然處言之乎. 由其所指者, 在理, 不在氣故, 可謂純善無惡. 若以理氣不相離之故而欲兼氣爲說則已不是性之本然. 夫以子思孟子, 洞見道體之全而立言如此者, 非知其一, 不知其二也. 誠以雜氣而言則無以見性之本善也. 至於程張諸子, 不得已有氣質性之論, 亦非求多而立異也. 所指而言者, 在稟生之後則又不得以本然之性, 混稱之也故, 愚妄以爲情之有四端七情, 猶性之有本性氣稟也. 惻隱羞惡辭讓是非, 何從而發乎. 發於仁義禮智之性, 喜怒哀懼愛惡欲, 何從而發乎. 外物, 觸其形而動於中, 緣境而出, 由是觀之, 二者, 雖曰皆不外乎理氣而因其所從來, 各指其所主而言之則謂之某爲理, 某爲氣, 何不可之有. 近看朱子語類云四端, 是理之發, 七情, 是氣之發. 古人不云乎. 不敢自信而信其師. ○ 高峯四七辨後說曰孟子論四端, 以爲凡有四端於我者, 知皆擴而充之. 夫有是四端而欲擴而充之則四端是理之發者, 是固然矣. 程子論七情, 以爲情旣熾而益蕩, 其性, 鑿矣故, 覺者, 約其情, 使合於中. 夫以七情之熾而益蕩而欲其約之以合於中則七情, 是氣之發者, 不亦然乎. 以是而觀之, 四端七情之分屬理氣, 自不須疑而四端七情之名義, 固各有所以然, 不可不察也. 然而七情之發而中節者則與四端, 初不異也. 蓋七情, 雖屬於氣而理固自在其中, 其發而中節者則乃天命之性, 本然之體則豈可謂是氣之發而異於四端耶. 來書謂孟子之喜, 舜之怒, 孔子之哀與樂, 是氣之順理而發, 無一毫有碍, 及各有所從來等語, 皆覺未安. 夫發皆中節, 謂之和而和卽所謂達道也. 若果如來說則達道, 亦可謂是氣之發乎. 此又不可不察也. ○ 李子答書曰總論後說, 議論極明, 快無惹纏紛拏之病, 眼目儘正當, 能獨觀昭曠之原, 亦能辨舊見之差於毫忽之微, 頓改以從新意, 此尤人所難者, 甚善甚善. 所論鄙說中聖賢喜怒哀樂及各有所從來等說, 果似有未安, 敢不三復致思. ○ 先師曰先生謂極明快儘正當通透脫灑絶滲漏無惹絆後, 答金而精書, 亦以爲粹然一出於正, 其間指出某辨語病處, 亦中理, 蓋中庸之喜怒哀樂, 不可並謂之氣發故也. 非喜其大體之同而苟爲然諾也. 後作聖學十圖, 以中節之情, 四端之情, 並作不雜氣, 只指理之情則此乃高峯所謂發於理而無不善, 與四端, 初不異者, 其爲定論, 可知. ○ 又曰性情分合之妙, 總會於中下圖, 師友論辨之旨, 磨勘於此圖說, 蓋中圖言性而旣不雜氣故, 言情而皆指其善, 下圖言性而旣已合氣故, 言情而兼指不善, 然, 中圖則直書情字, 下圖則只書發爲而後說末段, 特以只指理言者, 歸重於中圖, 誠以情是已發之理, 理發者, 爲本面目而分言氣發, 乃其所發之機也. 先生主理之旨, 一開卷, 便暸然而後人之樂渾淪者, 不察中圖之意而徒疑下圖之分主分開者, 專言互發之機而不察歸重之旨, 合四七而歸之氣發則理爲死物而大本, 差矣. 分理氣而各求根源則氣爲心體而大本, 貳矣.

李子答李平叔書曰示諭, 信無端之說, 甚善甚善. 程子本說, 當時未省得有此說, 援用林圖, 至以上達天聰, 極爲惶汗, 今旣無及矣. 然, 其圖, 殊有發明, 去之可惜故, 只於圖下, 方細書曰臣謹按程子云信無端, 此有信之端. 竊恐當從程子說, 然, 非獨此也. 其中下圖所自作者, 亦有追改處非一, 屢改之非有甚不可, 特以出於經進之後, 頻煩稟改, 實深惶恐, 皆由講學素不明, 臨事不免於顚眩, 乃如此, 深用愧慄也. ○ 答金而精書曰凡圖書之方位, 皆以左爲陽, 右爲陰, 是自北爲主而觀者, 亦由北從主而觀之, 圖與人, 無賓主之分故, 前後左右, 東西南北, 當如此, 前心統性情圖, 倣此而作之故, 仁左義右之位置, 如是分之, 以此言之, 智當下而居北, 禮當上而居南, 今乃倒置, 固當改矣. 但更思之, 河洛先後等圖, 主明消長循環之理而已, 太極圖, 主言命物之道, 在左陽右陰之交運而無系於南北上下之如何, 所以如是分方位, 可也. 此圖, 上面是心靜未發之時, 下面是性發爲情之次. 禮者, 發用亨嘉之會而反居未發之地. 智者, 斂藏機緘之妙而顧處發用之次, 無乃兩失其當乎. 故, 今欲變其位置向背, 以圖爲主在北而觀者, 爲賓在南, 自賓而向主, 自南而觀北則圖之上面, 爲北爲智, 下面, 爲南爲禮, 圖之左, 卽觀者之右, 爲東爲仁, 圖之右, 卽觀者之左, 爲西爲義, 此非仁義禮智本位之有互易, 由觀者之向背有變而四者位置, 亦隨變耳. 然則上智下禮, 仍前而仁左義右, 當互換矣. 又不獨仁義爲然, 虛靈知覺, 亦當依此互易而下圖之有異於此者, 一一勘此而依改之, 乃爲得之.下圖虛靈知覺四字, 及仁智淸駁左右之役, 倣此 ○ 又曰中圖改處之說, 今更細思, 若如前說則仁義虛靈知覺六字, 皆改之, 下圖四字, 亦改之, 殊爲多事, 非但此也, 智雖斂藏機緘之妙, 亦與仁禮義三者, 更相發而爲四端, 雖居下而當性發爲情之次, 亦何不可乎. 故, 今只改換中圖智禮兩字. 其他, 皆不改爲佳.

先師曰按舊中圖, 智在北下, 禮居南上, 元無倒置之序而此云倒置則必是舊圖之前, 又別有圖, 上智下禮, 左仁右義故然耳. ○ 按先生於中下二圖, 屢有改作之說而旋以其遷轉多事, 未果. 且謂仍舊無害故, 存之, 然, 其所論改作, 極有深意, 不可泯沒故, 今謹采而附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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