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이황선생 영정

退溪先生年譜
  연보 1
  연보 2
  연보 3
  연보 4
선생의 생애와 학문
  一. 생애편
  1. 태어나신 환경
  2. 어진 천품
  3. 부단한 탐구
  4. 벼슬길
  5. 인재양성,도덕교육
  6. 원숙한 인간상
  7. 조용한 최후
  二. 학문편
  1.선생이 남긴 저술
  2. 선생의 학문적전승
  3. 선생의 학문

 

퇴계 선생의 생애와 학문

 

 

一. 생 애 편

  1. 태어나신 환경


  퇴계선생의 성은 이(李), 이름은 황(滉), 자는 경호(景浩)이고, 퇴계(退溪)는 그의 호이다. 1501년 11월 25일 예안현 온계리, 즉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군 도산면 온혜동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이름은 식(埴), 어머니는 순천 박씨였다. 아버지는 불행하게도 퇴계선생이 태어나신 후 7개월만인 이듬해 6월에 4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리하여 퇴계선생은 어머니의 가르침을 받으며 자라게 되었다.

  그럼 여기서 좀 더 자세히 그 가정 내력을 알아 보자. 퇴계선생의 관향(貫鄕)은 진성(眞城)이니 그 시조는 이석(李碩)이다. 그는 청송군 진보현(眞宝縣)의 아전이었다. 그러므로 진성 이씨를 진보 이씨라고도 한다. 퇴계선생은 이석의 6대손이다. 이석의 아들 이자수(李子修)가 고려 공민왕 11년에 비장(裨將)으로서 홍건적(紅巾賊)의 난을 토벌하여 서울을 탈환함으로써 안사공신(安社功臣) 즉 나라를 평안케 한 공신이란 칭호를 받고 송안군(松安君) 즉 청송․안동지역을 지배할 수 있는 벼슬을 받음으로써 아전의 신분에서 벗어났다.

  그 후 왜구의 난을 피하여 진보현에서 안동부 풍산현 말애(磨崖)로 옮겼다가 다시 두루(周村)로 옮겨 살았다. 조부인 이계양(李繼陽)이 예안현 온계리의 경치를 탐하여 이 곳에 정착하게 되고, 퇴계선생이 여기서 태어나게 되었던 것이다.

  퇴계선생의 아버지 이식은 처음 예조정랑(禮曹正郞) 벼슬에 있었던 의성 김씨인 김한철(金漢哲)의 딸에게 장가들어 3남1녀를 두었다. 그러나 3남중 한 아들은 어려서 죽고, 아들 잠(潛)과 하(河) 그리고 딸을 남긴 채 김씨부인은 2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리하여 다시 순천 박씨에게 장가들어 아들 4형제를 낳았으니 첫째는 의(漪), 둘째는 해(瀣), 셋째는 징(澄), 네째가 퇴계선생 황(滉)이다. 그러니 퇴계선생은 7남매 6형제의 막내로 태어나신 것이다.

  일찍 아버지를 잃은 퇴계선생의 형제들은 어머니의 품에서 자랄 수 밖에 없었다. 훌륭한 인물의 배후에는 반드시 훌륭한 어머니가 있다고 하거니와 퇴계선생의 어머니도 그러한 한 분이었다. 퇴계선생이 쓰신 그 어머니의 비문을 중심으로 박씨부인의 행적을 대강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남편이 세상을 떠났을 때 맏아들 잠(潛)만이 겨우 결혼을 하였고 그 나머지는 모두 어린 자식들이었다. 부인은 이 여러 자녀들을 키우기 위하여 농사일과 누에치는 일을 남달리 부지런히 하였다. 그리하여 당시 연이은 가뭄으로 남들은 가산을 유지하지 못하고 사방으로 흩어지는 예가 많았는데도 부인은 그 가산을 유지했으며 아들들을 공부시키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뒷받침을 잘 했다고 한다. 부인은 늘 자녀들을 훈계하기를 「세상 사람들은 모두 아비없는 자식은 교육을 받지 못해 버릇이 없다고 비웃으니 너희들이 남의 백배를 노력하지 아니하면 어찌 이런 비웃음을 면할 수 있겠는가?」고 하면서 자녀들의 공부를 독려했으며, 특히 글공부 뿐만 아니라, 몸가짐과 행동을 바르게 하기를 당부했다고 한다. 나중에 해(瀣)와 황(滉) 두 아들이 대과급제를 하여 벼슬길에 오르게 되었음에도 부인은 크게 기뻐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세상의 시끄러움과 벼슬길의 어려움을 근심했다고 한다. 이와같이 부인은 생각이 깊고 지혜로운 식견을 가졌던 것이다. 그러므로 퇴계선생은 그 어머니의 묘비명에서 「나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분은 우리 어머니시다」고 하였다.

  퇴계선생이 어린 시절에 받은 영향으로는 어머니의 교훈 외에 또 그 가정적인 학문분위기를 지적할 수 있다. 아버지가 비록 일찍 세상을 떠나 직접 그 가르침을 받지는 못했으나 그 학문하는 분위기만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을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아버지 이식은 천성이 학문을 좋아하였고, 많은 책을 두루 읽었다. 그는 당시 시골 선비로서는 드물만큼 많은 책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많은 책을 가지게 된 인연은 그의 첫 부인과 관계가 있다. 첫 부인 김씨의 친정아버지는 앞에서 소개했듯이 예조정랑을 지낸 김한철이었는데 가계가 넉넉하고 학문을 좋아하여 많은 책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불행히 일찍 죽었다. 그의 아내가 사위인 이식이 학문을 좋아하고 독실하게 공부하는 것을 기려 남편이 남긴 책을 모두 사위에게 물려주었던 것이다. 이식은 이 책으로 더욱 깊이 학문에 몰두할 수 있었다.

  이러한 아버지의 호학의 영향외에 또 퇴계선생의 학문적 성장에 영향을 미친 것은 삼촌인 송재(松齋) 이우(李堣)이다. 그는 형인 이식과 함께 공부하여 대과에 급제하여 내직과 외직을 두루 거치면서 많은 치적을 남긴 학자였다. 그는 학문이 깊고 인품이 고매하였으며 형이 죽은 후 많은 조카들을 친자식처럼 돌보며 그 학문을 지도했다. 퇴계선생도 학문의 기초를 삼촌인 송재공에게서 배웠던 것이다.

  이상이 퇴계선생이 학자로서 태어나 자라게 된 그 환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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