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이황선생 영정

退溪先生年譜
  연보 1
  연보 2
  연보 3
  연보 4
선생의 생애와 학문
  一. 생애편
  1. 태어나신 환경
  2. 어진 천품
  3. 부단한 탐구
  4. 벼슬길
  5. 인재양성,도덕교육
  6. 원숙한 인간상
  7. 조용한 최후
  二. 학문편
  1.선생이 남긴 저술
  2. 선생의 학문적전승
  3. 선생의 학문

 

퇴계 선생의 생애와 학문

 

 

  3. 부단한 탐구

 

  퇴계선생은 우리나라 유학사(儒學史)에 있어서 최고의 경지에 오른 위대한 학자이다. 그는 태어나면서 부터 학자적인 자질을 가졌다고 앞에서 말했거니와 그렇다고 아무런 노력없이 그렇듯 높은 학문의 경지에 이른 것은 아니다. 타고난 자질과 부단한 노력이 어울려 비로소 그렇듯 높은 경지에 이를 수가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퇴계선생이 공부한 내력을 대력 간추려 보자.

  퇴계선생이 공부를 시작한 것은 6세때 부터였다. 아버지가 안계시고 삼촌은 벼슬길에 나가 계시고, 형들은 삼촌을 따라가 공부하게 되어 퇴계선생은 부득이 천자문을 가르칠만한 이웃집 노인에게 가서 기본 글자를 익혔다. 그 때의 퇴계선생의 배우는 태도에 대해서는 앞에서 언급한 바이다.

  그 후 퇴계선생이 어떠한 책을 누구에게 배웠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한 기록이 없다. 연보에 의하면 12세에 삼촌인 송재공에게 ꡔ논어ꡕ를 배웠다고 하였다. 그 기록 아래 다음과 같은 설명문이 붙어 있다.


「젊은이는 가정에 있어서는 효도하고 밖에 나가서는 공손해야 한다」는 구절에 이르러 크게 스스로 경계하여 말하기를 「사람이 자식된 도리는 마땅히 이러해야 한다」고 하였다.

하루는 이(理)자에 대하여 송재에게 묻기를 「모든 일의 올바른 것을 이(理)라고 합니까?」 하였다. 송재가 기뻐하면서 말하기를 「너는 이미 글의 뜻을 이해하는구나」고 하였다.


  이 기록으로 미루어 보면 퇴계선생은 12세에 ꡔ논어ꡕ를 읽었고, 그 뜻을 충분히 해득할만 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연보의 14세조에


글읽기를 좋아하여 비록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가운데서도 반드시 벽을 향해 앉아 조용히 글읽기를 좋아하였다.


고 하였다. 그리고 그 항에 작은 글씨로 설명을 붙이기를


연명(淵明)의 시를 좋아하고 그 사람들을 그리워 하였다.


고 되어 있다. 이 기록으로서 보면 퇴계선생은 13․4세에 이미 학문에 맛을 붙이고 깊이 몰입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시끄럽게 떠드는 가운데서도 아랑곳 없이 혼자 책 읽는데 몰두할 수 있었다면 이미 학문에 얼마나 깊은 취미를 가졌던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연명(淵明)은 동진(東晋) 때의 시인 도잠(陶潛)의 호이다. 그는 천품이 깨끗하고 세속적인 공명에 초연했던 사람이다. 팽택(彭澤)이란 고을의 군수를 했는데 상관에게 정무를 보고하는 등 번거로운 일이 귀찮아서 「쌀 다섯말의 보수 때문에 허리를 굽히기가 싫다」하고 그만 군수의 인끈을 던져버리고 「내 돌아가노라」라는 귀거래사(歸去來辭)를 부르며 고향으로 돌아간 분이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와 국화를 기르며 자연을 벗삼아 깨끗한 일생을 보낸 사람이다. 퇴계선생이 14세에 이미 도연명의 시를 그렇게도 좋아하시고 그 인품을 사모하였다고 하니 이로 미루어 퇴계선생의 정신적 취향과 경계를 짐작할 수 있고 정신적으로 대단히 조숙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학문에 있어서도 경전이나 역사서 뿐 아니라, 시문(詩文)에 대해서도 많은 공부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연보의 18세조에 봄날에 연못을 노래한 시 한 수가 적혀 있다.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이슬 맺힌 여린 풀새 물가에 둘러있고 작은 못 맑디 맑아 모래마저 없노매라. 흘러가는 구름, 지나는 새는 곱게 비춰 어울리는데 이따금 제비차고 가는 발길에 물결일가 두렵네.

             露草夭夭繞水涯 小塘淸活淨無沙

             雲飛鳥過元相管 只?時時燕蹴波


  산꼴짜기 자그마한 연못가에 이슬맺힌 풀들이 둘러 있고, 연못의 물은 한없이 깨끗하여 흘러가는 구름과 날아가는 새들도 그대로 비춰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한 폭 그림과 같은 정경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조화롭고 정겨운 연못에 이따금 제비가 날아와 물결을 차고 감으로써 그 고요함과 조화로움을 깨뜨려 버릴까 염려된다는 내용이다. 한 폭 그림처럼 고요하고 조화로운 이 경계는 바로 18세 때의 퇴계선생의 정신세계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연보의 19세조에 또 다음의 시가 실려 있다.


홀로 숲속 오두막에서 만권책을 읽으며 한결같은 심사로 10년 세월이 흘렀네. 근래에는 이 세상 근원과 마주치는 듯 이 마음 오로지 태허를 보노라.

                獨愛林廬萬卷書 一般心事十年餘

                通來似與源頭會 都把吾心看太虛


  여기 표현된 태허(太虛)라는 말은 송나라 때의 장횡거(張橫渠: 이름 載)라는 학자가 쓴 말로서 우주의 실체를 나타내는 말이다. 퇴계선생은 19세 때에 우주의 근원과 맞닿는듯, 우주의 실체를 바라보는 경계를 맛보았던 것이다. 이러한 경계는 철학적 사색의 깊은 경지에서 얻어지는 체험이다. 이러한 경지가 여간한 공부로서 가능한 것인가? 밤낮을 가림없는 부단한 탐구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연보의 20세조에


주역을 읽고 그 뜻을 탐구하여 거의 잠자고 밥먹는 것도 잊어버릴 지경이었다.


고 되어 있다. 그리고 그 밑에 주석을 붙이기를


이 때부터 항상 몸이 마르는 병을 가지게 되었다.


고 하였다. 퇴계선생은 평생을 건강 때문에 고생을 하셨다. 그것도 따지고 보면 젊을 때 지나치게 공부하다가 얻은 병이었다. 퇴계선생은 병이 날만큼 공부에 열중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공부는 삶을 마치는 그 순간까지 계속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부단한 진리의 탐구! 그것이 퇴계선생이 퇴계선생으로서 성장되게 하였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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