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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편 - 이정회 / 李庭檜 -

 

 

 이정회(李庭檜 ; 1542∼1613)

이정회(李庭檜 ; 1542∼1613)의 자는 경직(景直), 호는 송간(松澗), 본관은 진보(眞寶)이다. 아버지는 참봉 희안(希顔)이며, 어머니는 의성김씨(義城金氏)로 증승지 예범(禮範)의 딸이다.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68년(선조 1) 천거에 의하여 수의부위(修義副尉)가 되었다. 1581년 친부시해사건으로 안동부가 안동현으로 강등되자 유운룡(柳雲龍)·안몽열(安夢說)과 협의하여 상소복호(上疏復號)하였다. 1586년 통례원인의(通禮院引儀)가 되고, 이듬해 진사정사(陳謝正使) 배삼익(裵三益)의 보좌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590년 사온서주부(司醞署主簿)를 거쳐 사헌부감찰로 옮겼으며 광국공신(光國功臣)으로 서훈되었다. 이듬해 행성현감으로 나가 학교를 수리하여 학문을 진흥시키고, 군사를 훈련하여 비상시에 대비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집하고 군량미를 모아 여러 곳에서 많은 전공을 세웠다. 이듬해 군자판관(軍資判官)이 되었으며, 1597년 체찰사 유성룡(柳成龍)의 추천으로 의흥현감이 되어 난리수습에 공이 많았다. 뒤에 벼슬을 버리고 향리로 돌아가 옥동서원(玉洞書院)을 세워 스승 이황을 제향하고, 지남서당(芝南書堂)을 지어 후진을 교육하였다. 1609년 선조의 구언에 따라 6조의 소를 올려 시폐의 개정을 건의하였다. 정구(鄭逑)가 지남서당에 들렀다가 학생의 수가 너무 많아서 다 수용하지 못한 것을 보고 물자를 지원하여 송간재(松澗齋)를 지어 학자들을 수용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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