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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편 - 이원승(李元承) -

 
생몰연대 :1518(중종13) -1572()본관 : 영천(永川)
호 : 청암(靑巖)
별칭 : 초명 학수(鶴壽), 자 운장(雲長)
활동분야 :
주요저서 : 청암유고(靑巖遺稿)

 

墓碣銘 竝序

日李君在明來示其十三代祖靑巖先生行錄曰吾祖事行必多表表而世代遙遠家乘蕩逸今將營墓石敢以銘文見屬余辭不獲乃因其略而敍之按先生諱元承字雲長初諱鶴壽永陽郡大榮其始祖孝節公聾巖先生諱賢輔之孫察訪號碧梧諱文樑之子碧梧娶全義李氏忠義衛承孫女以正德戊寅某月日生公氣皃秀異志尙淸遠孝友根於性克遵愛日家法有不安節足不屨地早遊陶山門下亟蒙莻勉丁未遭內艱哀毁踰制自奉儉約惟享先恤窮是急雅薄榮利丁卯始占司馬自後不復應擧築室臥雲臺嘯咏以自適享年五十五卒壬申某月日也葬靈芝南藪洞考兆下向卯原嗚乎方公之時家世隆赫使志於進取取靑紫猶反手也乃自甘澹泊囂囂然以終是其中必有大過人者今考陶山全書有同在聖泉寺詩曰好客同來如弟兄如君豈合久無名往還小札幾數十幅有曰前來屛書改寫其一十幅其一八幅其一不書以還又曰前謂貴園竹林有堪充扶老之材故敢告今得寄惠藜杖奇詭可翫其他亦莫非輸心敍情之語也噫聖門七十子無事可見者強過其半申根巫馬期因人一見名而已然猶且得列高弟垂名百世況公於陶山每被惓念不啻二子之於聖門將與全書櫃杖並傳於千百歲矣配安東權氏奉事礩女於吾先祖妣妹也嗣男士純禁府都事女柳仲淹號巴山琴櫟都事男勞運同樞應運通德郞善運女尹東聘權尙謙權昌男巴山男學龍慶龍得龍銘曰
呂家文獻朱門旨訣宅心之遠造行之潔巖居雲臥臺高境別擬諸古昔逸民之列
眞城李晩煃謹撰
어느 날 이군 재명이 그 13대종 <청암선생 행록>을 보이면서 말하기를, “우리 선조의 사행에 반드시 드러난 것이 많을 것이나 세대가 멀고 가승이 없어져 이제 장차 묘비를 세우려고 하여 감히 명문을 부탁한다”고 하였다. 내가 어쩔 수 없이 그 간략함을 인하여 서술한다. 상고하건대, 선생은 휘가 원승, 자가 운장으로 처음 휘는 학수이다. 영양군 대영이 그 시조이고 효절공 농암선생 휘 현보의 손자이며 벽오 휘 문량의 아들이다. 벽오가 전의 이씨 충의위 승손의 딸에게 장가들어서 정덕 무인년(중종 13년, 1518)에 났다. 공은 기모가 빼어나고 기이하며 뜻이 맑고 원대하며, 효성과 우애는 천성에 뿌리하여 애일당의 가법을 따라서 부모가 편찮은 일이 있으면 발을 땅에 붙이지 아니하였다. 일찍 도산 문하에 배워서 자주 학문에 힘쓰라는 가르침을 입었다. 정미년(명조 2년, 1574)에 내간상을 당하자 슬퍼함이 법에 지나치며, 자신을 받드는 데는 검약하고 오직 선조의 제사와 곤궁한 이의 구호를 급하게 하였다. 본래 영리에 마음이 적어서 정묘년(명종 22년 1567)에 비로소 사마에 합격하고 뒤에는 과거에 응시하지 아니하였다. 와운대에 집을 짓고 시를 읊조리며 한가로이 세월을 보내다가 향년 55세에 졸하니 임신년(선조 5년 1572) 아무 달 아무 날이다. 영지산 남쪽 수동 고의 묘 밑 묘향의 언덕에 장사지냈다. 아아, 공의 시대는 집이 융성하고 빛났으니, 벼슬에 나아가기를 뜻하였으면 높은 관직을 얻기가 손을 뒤집는 것처럼 하였을 것인데, 스스로 담박함을 좋아하여 산속에서 기쁜 듯이 몸을 마쳤으니, 이는 그 마음속에 반드시 사람에게 크게 지나는 것이 있을 것이다. 이제 <도산전서>를 상고하니 같이 성천사에 있으면서 지은 시에 “좋은 손님 오니 형제와 같은데 그대 같은 이가 어찌 이름이 없겠는가” 라고 하였다. 왕복한 소찰의 거의 수십 폭인데, “전에 온 병풍의 글씨를 고쳐 썼는데 그 하나는 10폭이고 그 하는 8폭이며 그 하나는 쓰지 아니하고 돌려준다.”고 하였고, 또 이르기를 “전에 귀원의 대나무 숲에 노인 지팡이 감이 될 만한 것이 있다고 하기에 감히 고하였는데 이제 보내 준 명아주 지팡이를 받으니 기괴하여 사랑할 만하다.”고 하였으니 모두 마음을 싣고 정을 편 말씀이다. 아아, 성문(공자의 문인) 70자에 볼 만한 일이 없는 것이 거의 그 반이 넘고 신장, 무마기는 다른 사람을 인하여 한 번 이름이 나왔을 뿐인데도 높은 제자의 서열에 들어서 이름을 백세에 드리웠다. 하물며 공은 도산에서 매양 간절히 생각하심을 입었으니, 이자의 성문에게 비할 뿐이 아니라, 장차 <전서>와 궤장으로 더불어 천백 대에 아울러 전할 것이다. 배는 안동 권씨인데 봉사 질의 딸이며 우리 선조비의 동생이다. 사남은 사순인데 금부도사이고 사위는 호가 파산인 유중엄과 도사인 금력이 있다. 금력의 아들 영운은 벼슬이 동중추이고, 응운은 통덕랑이며, 선운이다. 사위는 윤동빙․권상겸․권창남이며, 파산의 아들은 학룡․경룡․득룡이다. 명에 이르길

여가의 문헌이요
주문의 지결이라
마음을 잡음이 원대하고
행실을 지음이 맑다
바위에 살고 구름에 누웠으니
대는 높고 땅은 외지다
옛 사람에 비기면
일민의 짝이다.
진성 이만규 근찬
㰡”퇴계학연구㰡• 경상북도 편

挽詞

無嗣人間恨
遺親地下冤
平生喜疏性
今日吊精魂
歡樂尋無處
難堪哭寢門

挽詞

一生標格過詩才
相好襟懷幾豁開
巖舍秀鄕圍曾占
榜頭魁英名藉甚
功何較豪秋深頻
採菊郊原春早慣
尋梅同人義分如
蘭臭執友心期是
管雷家世誰知吾
輩氣紆餘老不催
我愛馬援能矍鑠
人稱方朔好諧詼
着心花石身將逸
結約烟林鶴不猜
東谷自期終寄樂
北堂堪恨反遺哀
弊幃孀婦能求子
虛室兒孫未及媒
十載騷壇傷永別
千秋華柱慘難廻
絶絃淚落鍾期去
引樞情深范式來
可惜臥雲難再訪
滿山寒月照空臺

附師友詩書 己丑春與李雲長同在聖泉寺作

食罷歸來丈室淸
床頭書冊亂縱橫
良辰易過若風雨
好客同來如弟兄
顧我獨悲多外事
如君豈合久無名
落花啼鳥愁如海
那得春醪萬斛傾
退溪先生
밥 먹고 돌아오니 글방이 깨끗한데
책상머리 책들이 이리 저리 어지럽네.
좋은 시절 지나감이 비바람처럼 쉽고
좋은 손님 같이 오니 형제와 같구나.
내 홀로 바깥 일 많음을 슬퍼하는데
그대 어찌 오래도록 이름 없어 되겠는가.
지는 꽃 우는 새에 봄 시름 바다 같은데
어떻게 많은 봄 술 얻어다가 기울여 볼꼬.
㰡”퇴계학연구㰡• 경상북도 편

戱送李雲長歸三樂亭訪李大用

曠省高堂意轉迷
行尋三樂訪幽栖
短簑遠冒河濱雨
羸馬愁穿洛野泥
松籟和灘窓外落
桃花含露竹邊低
亭中不作陽臺夢
握手應須到曉雞
黃俊良[錦溪]

次李雲長凌雲臺韻

臺名淸絶舊相聞
興味何妨與客分
已喜泉林新得主
更憐形勝舊空群
蕭條野店深藏壑
縹緲溪堂逈接雲
醉裏共攀身外事
莫嫌雙鬢雪繽紛
吳守盈[春塘]

答李雲長

頃者來書龍奴誤入于兒舍適値寯出外而兒婦不知爲某書但受而置諸篋中忘郤不告於寯延至四五日而後乃覺而來示以此奴歸不及答上君必以我爲慢也愧恨愧恨國家前星失耀之餘有此大慶是則可慰神人之望不勝聳賀聳賀前謂貴園竹林有堪充扶老之材故敢告今得寄惠藜杖奇詭可珍幸荷幸荷保命蘇合各略呈烏藥順氣無之惟照諒 退溪先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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