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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편

 

 

豊山柳氏 所志(풍산유씨 소지)

 

명 칭 : 소지
작성연대 : 1687년
작성자 : 私奴 仲堅
수취자 : 官
소장처 :
크     기 :

 

해제

이 문서는 정묘년(1687) 4월 안동 대도호부 내에 사는 私奴 仲堅이 上典의 밭을 침입해 경 작하고 있는 頑惡한 漢權文이라는 자를 잡아서 법에 따라 엄히 다스려달라고 안동 대도호부 에 청원하는 소지이다. 끝에 官의 처분인 뎨김[題音]이 내려져 있다. 소지를 올린 사노 중견 의 사정인 풍산유씨 집안이었던 것 같다.

 

원문

府內接送私奴仲堅
右謹陳所志矣段 矣上典家 彼字畓伏在 豊南一邊 與縣內官屯田 東西挾渠 以渠爲限爲有臥乎所同渠乙亦 當和有縣分面 以此渠爲兩面 大界分明 故雖無知下民 皆知不當入田 而自古人不敢侵耕是如乎 數年前 面居常漢權文稱名人亦 水道遷移 溝路湮廢 是可向入 恃其頑惡 公然入耕是去乙 矣上典以理開論 使不得耕墾爲有如乎 今年又爲開墾爲有臥乎所 其爲頑惡無忌 若此爲甚分叱不喩 同渠乙亦 自古溝道深闊 不如田間備旱潦之溝 故久遠溝痕 宛然尙在是去乙 權文亦 溝邊左右傾仄處乙 公然耕割 宛然作畓爲有臥乎所 尤極驚駭乙仍于 如是狀告爲去乎 自官摘奸後 冒耕是在 權文乙捉入 官前依法重治 以杜愚民奸濫之斃是㫆 使渠着實後 渠復其本然形止 以明界標事 各別行下爲只爲
行下向敎是事
大都護府 處分
丁卯四月 日 所志


推問次狀內人率來 初三 一從水道起耕 乃是流來古規 而彼此若無有害 則不必爭卞亦 無防遮新水道 相考施行向事

 

번역

府內에 살고 있는 私奴 중견
삼가 소지를 진달하는 것은, 저의 상전 집 소유의 彼字畓에 있는 豊南 한 쪽은 縣內의 관둔 전과 함께 동서로 도랑을 끼고 있어 그 도랑으로 한계를 삼았던 바, 그 도랑을 마땅히 화합 해서 縣을 分面하자 이 도랑으로써 兩面을 삼아 큰 경계가 분명해졌습니다. 그러므로 비록 무지한 下民들도 모두 밭에 들어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 자고로 사람들이 감히 침범하 여 경작하지 않았는데, 수년 전 面에 사는 漢權文이라 불리는 사람이 물길[水道]을 옮겨 도 랑길이 막히자 그 頑惡함을 믿고서 공공연히 들어와 경작하거늘, 제 상전이 이치로써 開論 하여 경작․개간하지 말도록 하였습니다. 그런데 금년에 또 개간하였는 바, 그 완악하고 기 탄없음이 이와 같이 심할 뿐만 아니라, 자고로 밭 사이의 가뭄과 홍수에 대비하려는 도랑만 큼 도랑길이 깊이 트여야 하는 것도 없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도랑의 흔적이 완연히 존재했 거늘, 權文이 도랑 주변의 좌우로 기울어진 곳을 공공연히 耕割하여 완연히 畓을 만들었는 바, 더더욱 놀라움으로 말미암아 이 문서와 같이 고하오니, 官에서 摘奸한 후 함부로 경작한 權文을 잡아들여 관청에서 법에 따라 무겁게 다스려서 어리석은 백성들이 奸濫하는 폐단을 막게 하며, 도랑을 착실하게끔 만들어서 다시 도랑이 그 본연의 형태를 회복하여 경계 표시 를 밝게 할 것을 각각 별도로 분부하시도록 명령하옵실 일.
대도호부에서 처분해주십시오.
정묘 4월 일 소지


추문할 때 문서 내의 사람을 처음부터 세 번 데려왔는데, 한결같이 水道를 따라 起耕함은 바로 유래해온 옛 법규라서 피차에 害됨이 없는 듯하니 爭卞이 불필요하고 새로운 水道를 막는 일도 無防하니 相考해서 시행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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