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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편 - 鼎山書院(정산서원) -

 
위치 : 예천군 예천읍 생천동
건축 : 1612년(광해군 4) 창건, 1677년(숙종 3) 사액, 1869년(고종 6) 훼철, 1934년 홍수로 대부분의 건물 유실
배향인물 :  이황(李滉), 조목(趙穆)
배향일: 不享

 

▶ 해설

鼎山書院은 醴泉邑 生川洞 書院마을(中書里)에 所在하며, 사액서원으로 지금은 터만 남았다. 宣祖 9년 丙子(1576)에 郡守 柳德粹가 鄕內 儒生들의 建議를 받아들여 開基를 하였으나 完工치 못하고 이듬해인 宣祖 10년 丁丑(1577)에 郡守 安鳳이 完工했다고 鼎山書院記에 적고 있다. 이 때 서원건립에 中核的인 역할을 한 사람은 生員 林熙이다. 그 후 퇴계 이황과 月川 趙穆을 奉享하는 尊道祠를 광해군 4년 壬子(1612)에 세워 서원의 규모를 갖추었으며 肅宗 3년 丁巳(1677)에 사액이 내려졌다. 서원철폐령으로 두 선생의 위패는 묻었고 건물만 남았다가 1934년 甲戌洪水 때 대개 붕괴 또는 流失되었고 御書閣만이 남아 있었는데 이것마저 근년에 倒壞되었고 位土는 1987년 현재까지 남아서 鄕校가 관리하며 林生員의 時祭를 모신다. 규모는 明敎堂, 東․西齋, 永歸亭, 二樂樓와 御書閣, 尊道祠 등 7棟이 있다.
【참고 1】정산서원의 터를 닦은 고을 원 柳德粹(?-1591)는 1575년(선조 8)에 부임, 1577년(선조 10)에 이임한 예천군수이다. 전주 출신, 자는 중정, 본관은 문화, 기자전참봉 문옥의 아들, 생원 덕윤의 동생, 덕용의 형이다. 부모 사후에 유학으로서 1546년(명종 1) 식년 생원시에 2등 23위로 합격하였고, 1560년(명종 15) 별시 문과에 갑과 3위로 탐화 급제하였다. 1567년(선조 즉위년) 11월 7일에는 좌랑으로 재임 중이었고, 예천고을 원일 때인 1577년(선조 10) 봄에 예천읍 생천리의 정산서원 새터를 잡아 터를 닦고, 이 해에 물러났다. 1580년(선조 13) 7월 7일에는 정언으로서 어름 공급의 태만을 검속하기를 왕에게 청하여 윤허를 받았고, 같은 해 7월 13일에는 강화부사 김오가 백성 구제에 힘쓰지 않음을 아뢰었고, 그 이튿날도 김오에 대하여 임금과 논의하였다. 그 후 선산부사를 지냈다. 이재 조우인이 유덕수 예천고을 원이 터를 닦은 정산서원을 세우기 위하여 서애 유성룡에게 편지를 올렸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예천군은 옛날에 문학으로 일컬어졌는데, 전에 온 고을 사람들이 서원의 건립비를 건의하여 공부하고 몸을 닦을 곳을 만들자, 멀고 가까운 곳에서 와서 거처하는 선비가 앞으로 소수서원이나 이상서원(영주)과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애석한 것은 봉안하여 제사드릴 일을 의논하여 거행하지 못한 것으로, 비단 이 서원에 절차에 빠진 것으로, 비단 이 서원에 절차에 빠진 것이 있는 일일 뿐 아니라 와서 공부하는 많은 선비들도 어디를 향하여 사모하면서 의탁하겠습니까? 『예천신문 2002년 12월 5일, 예천고을 원 조목, 장병창 논설위원』
【참고 2】정산서원을 완공한 고을 원 安鳳(1528-?)은 1577년(선조 10) 봄에 부임한 예천군수이다. 서울 사람, 자는 서경, 본관은 충주, 의서십독관 맹손의 아들, 황․곡의 형이다. 편모 슬하에서 유학으로서 1555년(명종 10) 식년 생원시에 2등 11위로 합격하였고, 1561년(명종 16)식년 문과에 을과 1위로 급제하였다. 1577년에 예천군수로 부임하여 전임 군수 유덕수의 계획대로 힘써서 정산서원을 세웠다. 이 밖에도 정산서원 건립에 힘쓴 이들은 임희를 비롯하여 이희․이열도․권우․장세희․태순민 등이고, 터를 물색한 이는 태순민이다. 안봉의 벼슬은 부사에까지 이르렀다. 안봉이 완공한 정산서원은 예천읍 생천리 서원마을에 있었는데, 지금은 그 터만 남아있다. 1576년(선조 9) 군수 유덕수가 군내 유생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터를 닦았으나 완공치 못하고 이듬해 군수 안봉이 완공했다고 <鼎山書院記>에 적고 있다. 그 후 퇴계 이황과 월천 조목을 봉향하는 존도사를 1612년(광해군 4)에 세워 서원의 규모를 갖추었으며 1677년(숙종 3)에 사액이 내려졌다. 서원철폐령(1868)으로 두 선생의 위패는 묻었고 건물만 남았다가 갑술 홍수(1934) 때 대부분 붕괴 또는 유실되었고, 어서각만 남아 있었는데, 이것마저 근년에 도괴되었고, 위토는 현재까지 남아서 향교가 관리한다. 규모는 명교당, 동․서재, 영귀정, 이요루, 어서각, 존도사 등 7동이었고, 조목의 시와 양서 이광윤이 선조 어필을 봉안했었다. 『예천신문 2002년 12월 5일, 예천고을 원 조목, 장병창 논설위원』

 

▶ 관련 글

 鼎山院次趙月川先生韻

                萬疊層巒九曲流      만겹 깊은 뫼 아홉 계곡 시냇물
                一區形勝擅東邱      한 구역 멋진 땅 동쪽 언덕 있어라
                髦儒碩士藏修地      총명한 선비들 수양하는 땅이니
                地護神扶萬億秋     지신도 보호하여 영원토록 가리라

與諸友留鼎山書院

                昔聞鼎山山水好      鼎山 山水 좋다는 말 전부터 들었는데
                今來果愜昔所聞      이제 과연 와 보니 듣던 것과 다르잖네
                山分藍翠侵虛幌      산들의 푸른 빛 빈 장막에 들어오고
                水送鏗音報小軒      물이 내는 금옥소리 작은 집에 전해지네
                傍柳傍花偕覓句      옆의 버들과 꽃들 모두 싯구 구하니
                談山談水共傾樽      산수를 말하며 함께 술 잔 기울이리
                煩君莫出松關外      그대 번거로이 松關 밖으로 나지 마시게
                南北東西世故紛      동서남북 어디나 세상은 어지러우니
                數日溪堂共講文      며칠 간 溪堂에서 함께 글을 익히며
                箇中風物爽塵魂      이곳의 風物이 세속 때를 씻기네
                今朝忽出洞門去      오늘 아침 갑자기 골짝 문을 나서니
                回首靑山謝白雲     고개 돌린 청산은 흰 구름과 인사하네

過鼎山書院敬次鶴峰先生韻

                溪面琅璆觸石嗚      옥 같은 시냇물 바위에 부딪치는데
                翠屛如畵對幽扃      그림 같은 비취 병풍 출입문 마주 했네
                何緣一拓梅窓坐      매화꽃 한 가지 어이 꺾어 앉으시고
                滴露硏朱點易經      이슬 방울 떨어뜨려 易經에 점찍도다

小飮鼎山書院留贈諸公

                山擁登臨處      산이 둘러선 곳 올라왔는데
                溪喧笑語時      시냇물 소리는 웃음소린 듯
                來穿松晻翳      소나무 그늘진 곳 흘러나오고
                坐對竹參差      마주한 대나무 들쭉날쭉해
                境僻詩書在      지경 한쪽에 詩書 있으나
                祠荒水石奇      황무한 院祠에 기이한 水石
                淸尊能款客      맑고 높임으로 객을 감동시키니
                不覺日西馳      서산에 해지는 줄 알지 못해라

謁鼎山書院祠李退溪趙月川

                先生去百載      선생께서 가신 지 백년인데도
                爼豆盛南鄕      제향 올림 남쪽 땅서 성행이로다
                翠壁千尋滑      푸른 벽 천길 높아 어지러우며
                蒼松一道凉      푸른 솔로 모든 길 서늘하도다
                慢褰波影動      늘어진 옷자락 물결에 그림자 움직이며
                甃缺蘚交荒      벽은 무너져 이끼로 황폐해 졌네
                彩板疏箴警      널빤지에 쓴 疏箴의 경계
                珢函溢縹緗      옥 상자 비단 넘치도다
                餘風傳不墜      남긴 풍속 전함이 그치지 않아
                後學竟難忘      後學이 끝내 잊기 어렵기만 해
                山月生朱栱      산의 달은 붉은 두공을 내고
                川雲宿盡梁      내의 구름 오래된 들보에 머물도다
                玉螭纏賜額      임금님께서 사액을 내리셔서
                金獸捧添香      말린 고기로 제사 올리도다
                章甫爭雲集      선비들 구름처럼 모여들고
                溪毛備歲嘗      산골짝 水藻 이미 준비 됐도다
                異時希入室      전부터 당에 들기 원했으나
                今日復窺墻      오늘에야 다시 담장을 엿보도다
                密竹憐如簀      빽빽한 대나무는 이미 울창하고
                孫桐憶中商      움튼 오동나무 이미 생각 안에 있다
                檜壇亭硉兀      檜壇亭은 우뚝하고
                槐市閣飛揚      槐市閣은 나는 듯 하다
                更欲尋春服      다시금 봄 맞으러 찾아 나서니
                沙堤正夕陽      모래 방죽 이미 석양일세
                
    
* 溪毛는 산골짝의 水藻를 나타내는 말이다.

答鼎山書院院長書

來友權君潫, 與之舊也, 相見豈勝蘇到. 因奉尊惠盛書, 仰認尊履家食佳裕, 瞻慰無已.
貴鄕書院定祀事, 卽承垂示, 仍悉此友之詳言, 不暇他議, 先賀盛擧之時興也. 其間論議之異同曲折, 豈瞢識昏陋所可得以知者哉. 此友歷質于兩所而來, 已有定聞, 某不須贅論, 第以謬問幷及, 不敢無報, 略以淺見奉告, 此友渠還, 想亦一經聽焉.
大槪學宮尊崇之事, 一惟先賢道德之爲尙耳, 道德尊隆, 有如退溪先生, 則後學尊奉之義, 豈拘於地界之彼此哉. 且聞貴院當初議祀之日, 先生旣嘗前後往復, 有所論定云, 此先生之於貴鄕, 有大敎焉, 非尤宗仰之親切者乎. 宗祀之定, 旣得大賢, 則其餘數君子或配享, 或別祠以鄕賢, 各惟其義之所安爾, 不知高見及僉議如何.

찾아온 벗 權潫은 저와 알던 사람이었는데, 서로 만나게 되니 그 기쁜 마음을 이루 다 말할 수 없었습니다. 尊丈께서 보내주신 글을 받아서 어르신의 건강이 댁에 계시면서 더욱 아름 답고 편안하시다는 것을 알게 되니, 위로되는 마음 기쁘지 그지 없습니다.
그 곳 서원의 제사하는 일을 정하는 것은 즉시 보내주신 글을 받았고 또 이 친구가 자세히 말해 주니 다른 의논을 할 거리는 없을 것 같습니다. 우선 훌륭한 일을 제때에 일으키시게 된 것을 축하드립니다. 그 사이 의논에 바뀐 것이 있는 이유를, 아는 것 없고 어리석으며 비루한 제가 어찌 알겠습니까. 이 벗이 두 곳에 두루 묻고 왔으니 이미 들은 바가 있을 것 입니다. 제가 덧붙여 말할 것이 없으나 다만 물으심을 받들고서 감히 답하지 않을 수 없으 므로 간략히 천박한 의견이나마 아룁니다. 이 벗이 돌아가면 또한 다시 들으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대개 서원에서 높이는 일은 한결같이 오직 선현의 도덕을 숭상하는 것뿐이니, 도덕의 높음 이 퇴계 선생과 같은 분이 있다면 후학이 높여 받드는 의리상 어찌 이곳저곳이라는 지역에 구애되겠습니까. 또 들으니, 그 서원에서 처음 향사를 의논하던 때에 퇴계 선생께서 이미 몇 번에 걸쳐 서신을 왕복하여 의논을 결정시킨 것이 있다합니다. 이것은 퇴계 선생께서 그 땅에 큰 가르침을 남기신 것이니, 더욱 정확히 받들어 우러러야 하지 않겠습니까. 봉향할 분이 정하여 이미 大賢을 얻었으면 그 나머지 몇 군자들의 경우는 혹 配享하거나 혹 지방의 賢人을 따로 제사하여 각기 오직 의리에 맞는 대로 할 뿐입니다. 어르신의 高見이나 다른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하신지 모르겠습니다.

代人請立鼎山書院文


대저 사람이 처음 날 때 네 가지 덕을 타고나고 五常을 갖추며 온갖 善을 구비한다. 그런 까닭에 아이라도 그 부모를 사랑할 줄 알고 자라서는 그 형을 공경할 줄 안다. 이것이 이른 바 良知, 良能이요 本然之性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진실로 가르쳐서 인도하고 배워서 밝게 함이 없으면 또한 가지고 있는 것을 알아 확충하지 못한다. 그런 까닭에 옛 사람이 자 식을 낳으면 그 처음에는 있지 않은 것이 없다가 아이를 키우는 방법 중에 이르지 않은 것 이 없어서 반드시 학문으로 급선무를 삼는다. 家塾에서부터 鄕序로 올라가고, 小學으로부터 大學에 들어가서 그로 하여금 과업을 채운 후에 나아가게 하며 순서에 따라 그치지 않게 하 면 모두 선을 밝혀서 그 처음을 회복하는 바가 된다.
아아! 후대의 학자는 학문이 스승에 부끄러워 구두도 알지 못하고 각기 그 배움을 사사로이 하며 高遠難行의 일에는 힘쓰지 않는다. 그렇다면 반드시 천박하고 비루한 데에 빠지게 되 어 본래 본연지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더라도 그것을 보전하기를 구하는 자가 드물다. 우 리 동방은 문헌이 오래 되어 유학이 부흥하여 높은 재주와 큰 덕을 가진 선비들이 무리를 이루어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반드시 교육하는 것에 그 방법이 있다. 오직 영남지방은 인 재의 寶庫라고 불리며 文敎가 다른 지방에 비하여 더욱 성행하여 향교에 이르기까지 교육의 실제가 부족하며 여러 성에서 설치한 학당이나 서원 같은 것들도 한두 개가 아니다. 基川의 紹修서원, 永陽의 林皐서원, 榮川의 伊山서원, 星山의 鳴鳳서원이 있으며 商山이나 聞韶에 이르기까지 또한 모두 堂과 齋를 지어서 인재를 키우며 후학을 이끌고 있으니 지극하다 말 할 수 있다. 그러나 유독 우리 고장만 없다. 이 어찌 우리 무리 한 두 사람의 불행일 뿐이 랴. 도리어 또한 우리 향당 父老의 부끄러움이다. 이 한 지방 선비의 후손과 준수한 그 흐 름이 여기에서 이루어 행해지며 아이들의 총명함은 대개 이루다 셀 수가 없다 해도, 이미 善을 보고 갈고 닦을 장소가 없다. 또 손잡아 이끌고 가르쳐주는 일은 제 때를 놓치면 文風 이 진작되지 못하고 배우는 무리가 일어나지 않게 되는 것이 이상할 것이 없다.
나는 기운을 잃은 변변치 않은 선비로 늙어서까지 이룬 것 없이 항상 이 생각을 하면서 온 몸으로 아파하였었다. 다행히 이제 二天明府下車가 아직 해가 넘지 않았고 斯文을 부흥시키 는 데에 뜻이 있어서 배움에 뜻이 있는 아이들로 하여금 그 성취하는 이익을 얻게 하려 하 고 있다. 내가 함부로 그 무거운 뜻을 헤아려 한 마디 변변치 않은 말을 늘어놓았다. 메아 리 같이 이에 대한 응답이 있어서 의논이 합하여지고 문득 일을 도타이하는 책임이 나에게 주어졌다. 장차 길지를 찾아보니 내가 평소에 생각하고 있던 것과 꼭 맞아서 일이 장차 이 루어지게 될 것에 감격하였다.
마침내 나아가 그 말을 다 한다. 백성이 마음을 둔 지 이제 몇 년이다. 전에 일찍이 찾았다 가 그 땅을 얻으니 郡門을 거슬러 올라가서 5리쯤 되는 곳이다. 봉우리가 끊겨 올라 냇물이 흘러 도는 곳으로 이름은 鼎蓋라 한다. 바위와 산이 매우 아름답고 경치가 맑고 그윽하며 뒤쪽에는 그늘이 지고 앞쪽에 양지 바르며 뒤쪽은 높고 중간은 평평하여 堂室을 건축한다면 20여간은 될 듯 하다. 陶鑄의 은택을 입어 屋宇를 완성하여 여기에 이어놓는다면 시끄러운 바깥 때문에 정신을 빼앗기는 일 없이 안으로 고요히 수양할 수 있으니 이는 한 지방 배우 는 자들의 다행이 됨이 그 어떠한가. 이제 반드시 땅을 가려 건물을 짓는다면서 이런 곳을 버려둔다면 마땅한 곳이 없으니 감히 이것으로 부탁하였다.
내가 이에 城主의 명령을 받들어 평소에 쌓아둔 것을 다하여 장차 분주하게 달려 왕래하는 수고를 꺼리지 않고 반드시 이 소원을 마치기를 도모하였다. 따뜻하고도 시원한 집에 창은 밝고 평상은 고요한 곳이, 얼마 지나지 않아 잡초가 우거진 이 빈 터에 두루 늘어설 것이 다. 그렇게 된다면 높고 높은 儒冠을 쓴 이들이 선을 권하며 서로 갈고 닦는 자들이 반드시 여기에 있을 것이며 너울너울 서로 붙잡아 주고 도와 일어나는 자들이 반드시 여기에서 날 것이다. 자연의 즐거움은 또 그 기상을 도와서 속세의 더러운 때가 옷 끝을 더럽히는 것도 없을 것이다. 商山을 뛰어넘고 聞韶를 앞질러 앞서의 紹修 등 여러 서원과 함께 대오를 이 룰 것이니 우리 향당 부로의 부끄러움을 한꺼번에 씻는 일이 여기에 있지 않겠는가.
다만 건물을 일으키는 일은 비록 날씨가 풀려 얼음이 녹는 때를 기다려서 물어보고 의논해 서 모름지기 다음 겨울에 다시 견고히 얼어붙기 전에 미리 했어야 한다. 또 綱紀를 주장함 은 비록 이 임금의 敎化의 어짊을 우러러 보더라도 끝내 성취하려면 모름지기 여러 사람의 힘의 도움을 많이 힘입어야 한다. 마치 비둘기가 둥지를 짓을 때처럼 말이다. 기술자를 부 리고 일꾼을 먹이는 등의 비용은 斗升이나 尺寸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니 진실로 官만을 오 로지 의지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돈이나 재물을 내어 놓는 일은 장차 우리 향당의 大小人이 아니면 또 누구에게 바라겠는가. 아아! 우리 향당 사람 중에 누가 진실한 마음이 없는 사람인가, 누가 자제가 없는 사람이 있는가. 대저 중요한 일을 이루어서 교육하는 땅으로 만들려고 함은 사람마다 모두가 원하였었다. 다만 그 단초를 연 자가 없었을 뿐이었다. 이 제 城主의 명령이 저와 같고 일이 일어나는 기세가 이와 같다면 모두가 원하는 마음을 미루 어 돕는 힘을 나란히 하는 것은 바로 이 때 해야 할 것이다. 부유하면 비록 많이 하겠으나 오직 인색하게 하려하지 말 것이며, 가난하면 비록 적겠으나 또한 함께 함을 피하지 말지 어다. 오직 그 유무에 따라 그 마음을 다한다면 20년 동안 해 온 비용을 어찌 감당하지 못 하는 걱정이 있겠는가.
堂이 완성되어 처마에 쓰기를 모년모월 모태수가 세우기를 명하였다. 이 일을 도운 마을 사 람은 아무개 아무개다 라며 대소를 나란히 쓰니 이름이 후세에까지 전달될 것이다. 나중에 난 자제들이 각기 저 학문을 닦을 수 있는 이익을 얻음으로 인하여 교화가 영원토록 끝없이 전파될 것이다. 속으로 기뻐하다 보니 말이 번다해지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도다. 요즘 세상 에 浮屠禍福의 주장으로 여러 사람의 마음을 미혹하게 하는 이가 있어서 사람들이 모두 여 기를 붙좇으니, 혹시라도 나중에 재물을 모두 탕진해 버리고 이르지 않는 곳이 없게 되었다 가 끝내 아비를 무시하고 임금을 무시하는 한 오랑캐를 비호하게 될까 두렵다. 그렇다면 자 기 몸에는 조금의 이익도 없을 것이다. 만약 우리 고향 사람 중에 지금 이런 말을 하는 사 람들이나 저것에 상한 사람에 대해서 혹 아끼지 않고 도리어 이런 행동에 대해 비판하기를 아낀다면 그 사람의 賢否를 알 수 있으니 어찌 다만 향당의 의논으로 용납하지 못한 것 뿐 이랴. 도리어 또한 두 임금께서 文敎를 높이신 날을 함께 하였다고 하기 어렵겠다. 옛날에 는 善을 취하기는 끝없이 하고 현자를 세우기를 또한 모든 방법으로 하였다. 만약 이런 일 을 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이 堂에서 배우기를 원하는 자들과 함께 한다면 아전이나 시골 백 성들이 또한 금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썩은 선비가 되고 일을 이미 세상 길에 사용 함이 없다면 장차 다시 무엇을 바랄 것인가. 그러니 여기에 힘쓰지 않겠는가. 대들보 올림 을 축하한 후에는 장차 한 자리의 말석을 빌려서 지팡이를 잡고 길을 찾는 무리와 더불어 서로 구두를 찍고 訓詁하는 사이를 서로 좇아서 끝내 우리 남은 생애에 소리개 날고 물고기 뛰는 조화로운 삶을 살기를 바란다. 당에 오르고 방에 든 선비가 내 정성을 보아서 비루하 다 여겨 저버리지 않는다면 또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년 ○월 ○일 北亭寒士 아무개는 삼가 고한다.

答鼎山書院士林

嶺海之間, 夐絶逴遠, 不可與際接, 而得之於往來之口, 於貴鄕最熟. 凡吾黨志業不撓, 所以自樹頹波, 與花醴等比, 爲之欽歎, 不端在於願拾前芬也. 乃者, 黌舍靑衿, 以僉尊寵翰, 遠辱竆閭, 眷意勤摯, 有非愚陋所可承受. 然如挹一席之幸, 豈淺淺耶. 至於猥托文字, 實揄揚盛擧之用也. 僉尊旣誤聽, 而敎之, 而區區强而應副, 則殊可愧矣. 第惟前於大覺諸公之敦迫也, 不得逃免. 今不可一切遊避, 玆以强爲搆綴, 遠俟僉尊之進退, 蕪拙不腆, 自負斯文所期, 是懼耳.

산봉우리와 바다의 사이에 아득하니 멀리 떨어져 함께 교제할 수 없었는데, 왕래하는 인편 중에 그곳과 매우 가까운 이를 얻었습니다. 무릇 우리 무리가 뜻을 일삼아 마음을 굽히지 않는 것은 스스로 무너져 가는 儒道를 바로 세워 花醴와 비슷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선인을 흠모하여 선인을 제사하는 것만을 힘써서는 안 됩니다. 이제 서당의 선비들이 모두 글을 높이고 저자의 시끄러움을 멀리하여 뜻을 다해 열심히 공부하니 어리석고 비루한 이에게 받을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한 자리를 얻는 행운을 얻었으니 어찌 가벼이 하겠습니까. 그래서 감히 문자에 의탁하여 진실로 중요한 일을 드러내는 일을 하려합니다. 여러분들께서 이미 잘못을 지적받고 교육을 받았다니 구구히 억지로 하여 부응한다면 부끄러울 뿐입니다. 다만 오직 大覺諸公의 도타움으로 나아가고 도망하지 마십시오. 이제는 다시는 놀러 다니지 말고 이에 공부하는 데에 힘을 써서 멀리 모두가 높이는 곳에 나아가기를 기다릴 것이지 거칠고 졸렬하게 좋지 못함을 향하여 가다가 사문이 바라던 것을 저버리게 될까 이것이 두려울 뿐입니다.

鼎山書院奉安文

                猗歟先生      아름답도다 우리 선생은
                有靈毒毓      빼어난 기운을 타고나서
                不居于亂      어지러운 곳에 거하지 않으시며
                在醜而特      여럿 가운데 있어도 드러나셨다
                胡際九五      오랑캐 사이에 여러 번 있었어도
                任馮自托      마음 가는 대로 하다가
                金紫弊屣      높은 벼슬로 열심을 다하니
                堂堂義服      堂마다 의로운 모습이로다
                不逃其尖      작은 것도 피하지 않고
                勇匪效北      용기 있어 도망감을 본받지 않았다
                態魚斯辨      態魚 같은 좋은 음식 분별하니
                明豈不籍      이 밝음 어찌 선생께 힘입음 아니리
                波奔三百      삼백 리 먼 길에서도 달려와
                段廬人式      이 집에 우리 모범 세우도다
                無格凈友      우리 선비들 깨끗하고
                淸水尙馥      맑은 물은 향기롭구나
                衛神護鬼      神鬼가 보호하시니
                起懦敦薄      나약하고 가벼운 이 일어나 도타이 되네
                鼎祠遺規      鼎山祠 남겨진 모범 있어서
                運値恢廓      두루 갖추어지게 되었도다
                邦人景懷      고장 사람들이 그리워하며
                首擧泂酌      머리 들어 잔을 올리니
                游氣在天      하늘에 계신 혼령께서는
                寧無降格      강림하소서
                右告鄭隅谷溫      隅谷 鄭溫이 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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