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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편 - 南溪書院(남계서원) -

 

▶ 해설

 

 南溪書堂은 군위읍 대북2리(서원리라고도 함) 산기슭에 있다.『西厓集』의 서애선생 연보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선조 19년 丙戌年(1586, 선생 45세) 3월 남계서당이 완성되었다. 서당은 군위 先塋 (서애의 조부 산소)의 남쪽에 있다. 전에 관찰공(서애의 부친)이 재실을 지으려다 짓지 못하였는데 이 때에 와서 비로소 완성한 것이다. 堂은 霜露堂, 齋는 永慕齋라 하여 재실로 삼고, 동쪽에는 玩心齋, 鳶魚軒을 만들어 공부하는 여러 학생들을 거처하게 하고, 북쪽에는 三靜齋를 만들어 중을 데려다가 거처하여 수호하게 하였다. 상로당 앞에는 愛蓮堂, 연어헌 밖에는 養魚池가 있으며, 서쪽산 기슭 밑에는 招陰臺가 있고, 동쪽 바위에는 咏歸臺가 있다. 영귀대 아래 흐르는 큰 냇물은 歎逝라 하고 연어헌 동쪽의 작은 냇물은 倚笻이라 하고는 합쳐 南溪精舍라는 현판을 달았다. 남계 12詠과 여러 작품이 있다.”

이 기록을 통해 살펴보면 서애의 부친 관찰공이 재실을 지으려다 짓지 못하였다가 선조 19년(1586년, 서애 45세 때) 3월에 완성되었다. 서당의 위치는 군위에 있는 서애 선생 조부 산소의 남쪽에 있다. 또 당시 이 정사의 규모가 매우 컸다. 風流를 즐기고 風致를 아름답게 꾸며 자연을 玩賞할 수 있도록 한 것을 알 수 있겠다. 서애는 영의정으로 있으면서도 여러 번 이곳에 와서 성묘도 하고 講學도 하였다. 1607년 서애 사후에 광해군 丁卯年(1621) 후진들이 이 서당을 重修하여 서애의 위패를 모시고 書院으로 승격시켰다. 그 후 五峯 李好閔의 위패도 함께 모시고 춘추로 제사를 지냈다. 그 후 고종 戊辰年(1868) 9월 대원군이 전국의 未賜額 서원을 철폐할 때에 서당으로 격하된 상태로 후진들의 글 읽는 곳으로 사용했다. 6.25 전쟁으로 불탔으나 1990년 7개 문중의 후손들이 서애의 뜻을 추모하기 위하여 이곳에 남계서당을 복원하였다.(자료: 군위군청 홈페이지 참조)
현재 남계서원은 군위읍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에 있다. 길가에 있어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최근 정비한 탓에 보존 상태가 좋다. 외삼문과 중정당인 尊性堂, 내삼문과 院祠인 景德祠가 있어서 밖에서 보면 높은 기와집 네 채가 한 줄로 서 있는 형세이다. 중정당 양쪽 방에는 守約齋와 知止齋라는 편액이 달려 있다. 원생들의 기숙사로 쓰일 동재와 서재는 없다. 중정당에 서원중건기 등의 편액이 함께 걸려 있다.

 

 

▶ 관련 글

 

南溪書院奉安西厓先生文 (남계서원에 서애선생을 봉안하는 글)
南溪書院奉安西厓先生祭文 (남계서원에 서애선생을 제사하는 글)
南溪祠奉安文 (남계서원 사당에 봉안하는 글)
南溪祠常享文 (남계서원 사당 상향문)
南溪書院 관련 옛 기록 (남계서원 관련 옛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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