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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정편 - 江亭(강정) -

 

소재지 : 경북 영천시 영천읍 신북면
건립연대 : 조선정조년() 건립
건립자 또는 연고자 : 노 수
건물의 입지 : 江海沿邊形
건물의 형태 : 단층의 평집
지붕 : 팔작지붕
건물의 모양 : 四角形
누정건물의 정면과 측면의 칸수 : 정면 - 3칸, 측면 - 2칸
건물 보존 상태 : 양호
문화재 지정 현황 :

 

江亭 重建記

永川治南三十里蒼水村獨斗巖上古有一亭曰江亭世傳爲盧小庵先生播馥之地世久亭廢其後人慨然思欲其重建者而未之遑焉庚辰之冬乃得經營于稷川之羅峴背嶝臨堤剗平爲基閱數三載而功就凉堂燠室書籍之藏什物之架各得其所但不于舊址乎而卜其新者以羅峴爲先生先壟在焉當日省楸時杖屨休息之所且以密邇於今日子孫之居也不以新扁乎而仍以其舊者古可重而創不敢遽爲之也於是秀殷致容二君來責忠鎬爲記竊念先生嘗薰炙於老祖夫子之門而及其倡臨皐書院也夫子美其事以內賜性理羣書一帙爲贈手記券面以致勉學之意於乎是孔李世也豈可以謏陋無文爲辭哉是爲之記 乙酉 重陽節 從仕郞前章陵參奉 眞城 李忠鎬 記


영천에서 남쪽으로 30리를 내달려 창수촌의 “독두바위” 위에 옛날에는 “강정”이라 하는 한 정자가 있었다. 세상에서 전해지기를 소암 노 수 선생께서 교육하신 곳으로 삼지만 세월이 오래 지났고, 정자마저 망가짐에 후손들이 개탄하고 중건하고자 생각했으나 미쳐 겨를을 내지 못했다. 경진년 겨울, 직천(稷川)의 나현(羅峴)에 곧 경영할 수 있었으니, 산을 등지고 못물을 향하여 평평하게 비탈을 깎아 터전을 마련하여 삼년 만에 준공하니, 서늘한 대청과 따뜻한 방, 서적의 갈무리와 십물(什物)의 가설(架設)이 각각 그 옳은 자리를 차지하였다. 다만 구지에 짓지 않고 새로운 곳에 터를 잡은 것은 나현(羅峴)이 선생의 선영(先塋)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선생께서 생전의 성묘하실 때에도 지팡이를 멈추고 머물러 쉬시던 곳이요, 오늘날 자손들이 사는 곳과도 가깝기 때문이기도 하다. 새 편액으로 하지 않고 옛날 그대로 한 것은 옛것이 소중하고 새롭게 함이 감히 갑작스럽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수은 군과, 치용 군이 와서 충호에게 기문(記文)해 줄 것을 요구하니, 가만히 생각해 보건대, 선생은 일찍이 퇴계선생의 문하에서 교화를 받으셨고, 임고서원을 창건함에 이르러서는 부자께서 그 일을 아름답게 여기셔서 임금님이 주신 여러 권의 성리서(性理서 한 질(帙)을 증여(贈與)하시고는 손수 권면(券面)에다 글을 써서 면학(勉學)하라는 아! 이것은 공자와 노자의 세의(世誼)라, 고루하고 글 못함으로서 사양할 수 있겠는가. 이로써 기문(記文)으로 삼노라. 을유 중양절에, 종사랑 전장육참봉 진성 이충호는 기하노라.

 

江亭 重建 上樑文

陟降豈獨杖屨之所因著存不忘乎心毁成雖曰棟宇之常蓋興復有關於數事與時會功自誠來恭惟小庵盧先生光州世家成均上舍論三足堂弟子之列如十哲之班較蘇老泉工夫之年在數歲之後學問由淵源之正得親炙於陶山薖軸宜閒曠之區寓考槃於蒼水同井修藍田之約多士希龍門之榮志行高潔之天姿草溪邑誌闡發文詞膾炙於人口雲門山水光輝衛賢之誠斯至圃老俎豆之所創工告聖之文迺成邑倅琴瑟之材聲罪際國家右文之日遂丘園初服之心値良辰興懷從賓友而答風景會奧義有契與生徒而討詩書風韻流三百年緬想啓後之澤雲仍至十數世繼篤報本之誠徵藏修之所於斗岩見規模之蹟於礎石歲月忽其荏苒感逝水之奔流物事棼然廢興視浮雲之起滅古木餘襄柳昔人之有空悲壞道瀉哀湍何王之構可徵迺傍子孫之居地更起侖奐之高亭亭雖改而仍舊名以爲存故實也地則遷而敞新制亦由用時勢乎梓人畵宮於墻斧鉅之聲交作占者合策於板蓍龜之意旣同將擧脩樑聊陳短頌兒郞偉抛樑東五峯迢遞倚雲中莫言滄海桑田變螻黛胡爲萬古同兒郞偉抛樑西獨斗岩邊草色萋時見仙人來下止身披鶴氅手靑藜兒郞偉抛樑南九龍處處起晴嵐蜿蜓崛起爭形勢一顆意珠相吐含兒郞偉抛樑北採藥山人那可得欲學廷年往從之希苓不見多荊棘兒郞偉抛樑上玉樓高處嚴仙仗遙聞天樂下空中大好人間皆懲創兒郞偉抛樑下池水盈盈流大野黍稷稻梁歲歲登家家羊酒來爲社伏源上樑之後傍風上雨攸除門神戶靈呵噤爰居爰處宜思當日之貽謨不騫不崩咸在來雲之嗣葺 昌山 曺圭喆 謹撰


조상의 영혼이 오르내리심이 어찌 평소 왕래하시던 곳에만 국한되리. 자손이 생각하기를 잊지 못하여 마음에 깊이 새김에 달려있거늘! 헐리고 다시 세움이 비록 정자의 흔한 일이라 하나 흥복(興復)은 대개 운수에 달려 있네! 일과 때가 잘 맞아지면 성공은 성의에 달려 있도다! 공경하여 생각건대, 소암 노 수 선생은 광주(光州)의 세가(世家)요, 성균상사(成均上舍), 즉 진사(進士)라. 삼족당의 제자 반열로 논한다면, 공자의 제자 십철(十哲)의 반열과 같고 소 순이 공부를 시작한 나이에 비교한다면 2년 뒤에 시작하였다. 학문은 연원(淵源)의 정통(正統)을 얻어서 도산(陶山)에서 친자(親炙)함을 얻었고, 은거하기에는 한적하고 깊숙한 곳이 좋기에 고반(考槃)을 창수촌에 옮겨 지었다. 동리 사람들과 같이 남전(藍田)의 향약(鄕約)을 본받아 닦았고, 많은 선비들은 한 번 뵙는 것을 용문(龍門)에 오르는 영광이다 여겨 희망하였다. 지행이 고결한 천품은 초계읍지가 선양하였고, 문사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됨에 운문(雲門)의 산수(山水)가 빛을 발하였다. 위현(衛賢)하는 정성은 포은선생을 위하여 서원을 창건함에 이르렀고, 성묘에 고유(告由)하는 글은 군수가 “오동나무를 금슬(琴瑟)의 재료로 삼는 죄를 성토함”을 성취하였다. 국가가 글을 숭상하는 때를 맞이하여도 벼슬을 버리고 전원에 묻혀 살고자 하는 생각을 이루시고, 좋은 시절에 시흥(詩興)이 일면 빈우(賓友)를 따라 풍경(風景)을 화답(和答)하였으며, 학문의 깊은 뜻을 이회(理會)하고 마음에 깨달음이 생기면 생도(生徒)들과 같이 시서를 토론하였다. 풍도와 운치는 삼백년이 흘러도, 후인들을 깨우쳐 준 은택(恩澤)을 아득하게 만들고, 자손들은 십 수 세에 이르러도 보본반시의 정성을 돈독하게 이었네! 장수하시던 곳을 독두암에서 찾아, 집의 규모의 자취를 남은 초석에서 알아 본다. 세월은 빨리 흘러, 흐르는 물이 분류하듯 함을 느끼게 하고, 사물은 어지러이 흥폐(興廢)하여 부운(浮雲)이 기멸(起滅)하듯 함을 본다. 고목은 쇠잔한 버들만 남아 있으니, 옛 사람이 공허하게 슬퍼진 자취요, 허물어진 길에는 흐느끼는 여울이 쏟아져 흐르니 시문을 잘한 이의 집터임을 징험할 수 있네! 이에 자손의 거주지 옆에다 다시 우뚝 높은 정자를 세우니, 정자는 비록 고쳐 세웠으나, 이름은 옛 그대로이니 옛 사실을 보존하기 위함이다. 땅을 옮겨서 새로운 제도로 집을 지으니, 이는 또한 시세를 따르는데 말미암았던가. 목수가 담 안에서 집을 설계함에, 도끼와 톱 소리가 교착하여 일어나고, 점술가는 점쳐보니 톱풀과 거북의 뜻이 이미 같은지라, 장차 긴 들보를 올릴세라. 애오라지 짧은 노래를 읊어 본다. 애들아! 들보를 동쪽으로 던져라! 오봉산이 아득하게 구름 속에 솟았구나! 창해와 상전이 변한다 말하지 말라, 청산(靑山)인들 만고(萬古)에 같겠는가 애들아! 들보를 서쪽으로 던져라! 독두암 주변에는 풀빛이 성하구나! 때로는 선인이 강림하여 계심을 보니 몸에는 학창을 걸치고 손에는 청려장을 짚었네! 애들아! 들보를 남쪽으로 던져라! 구룡산 곳곳에서 맑은 산의 기운이 일어난다! 꿈틀꿈틀 우뚝 솟아 형세를 다투니, 한 개의 구슬 놓고 아홉 용이 서로서로 토함(吐含)하네! 애들아! 들보를 북쪽으로 던져라! 약을 캐는 산인(山人)을 어디서 만나겠나? 토규(菟葵)와 복령(茯苓)은 보이지 않고 가시만 많기도 하다! 애들아! 들보를 위쪽으로 던져라! 옥루(玉樓)의 놓은 곳에 선장(仙仗)이 엄숙하도다. 아득히 하늘의 음악이 하공(下空)까지 들려오니 인간이 모두 다 전과(前過)를 깨쳐 크게 좋구나! 애들아! 들보를 아래로 던져라! 못물이 가득 차서 큰 들에 흐르니 서직(黍稷)과 도량(槄梁)이 해마다 풍년되어 집집마다 양육(羊肉)과 술을 가져와 후토제(后土祭)를 지내도다! 엎드려 원하옵건대, 상량한 뒤로는 옆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위에서 내리는 비를 오직 막아 주시고 문신(門神)과 호령(戶靈)은 불상(不祥)을 금지해 주소서! 자손들은 여기에 거처함에 마땅히 당일(當日)의 훌륭한 가르침을 생각하라! 이지러지지 않고 무너지지 않게 됨은 다 자손들이 대대로 뜻을 잘 이어가고 집을 잘 보수함에 달렸네! 창산 조규절은 삼가 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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