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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정편 - 佳山亭 -

 

▶ 沿革

 

가산정(佳山亭)은 남처흥(南處興:1654-1748)의 학덕을 추모하고 종중의 화목을 위하여 후손들이 건립한 정자이다. <佳山亭記>에 의하면, 원래 남처흥(南處興)은 벼슬에서 물러나 낙향해서 후학양성과 독서를 위해 이곳에 정자를 지을려고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남처흥의 10대손인 남태진(南泰鎭)과 남경진(南慶鎭), 그리고 여러 후손(後孫)의 일조(一助)로 비(碑)를 세우고 이어서 정자도 건축(建築)하게 되었다. 남처흥(南處興:1654-1748)은 본관이 영양(英陽)이며, 자는 명언(明彦)이고 호는 가산재(佳山齋)이다. 그는 절충장군행용양위부호군(折衝將軍行龍驤衛副護軍)에 제수되었고, 가선대부(嘉善大夫)지냈다. 저서는『가산재집(佳山齋集)』이 있다.

 

 

佳山亭記

 

佳山亭記安東郡吉安面臥村는 英陽南氏世業之鄕이다 그 案山인 古谷里에 새로 지은 亭子가 있으니 이는 嘉善大夫 南公諱處興 字明顔 號佳山을 爲한 亭子이다 이 亭子는 元來 公이 嘉善大夫折衝將軍行龍驤衛副護軍職에서 退任時에 落鄕해서 安佳自適하며 後裔의 養成과 讀書講學琴書의 趣味를 爲해 計劃하였으나 그 後十代의 歲月이 흘러 오늘에 이르렀는바 晩時之嘆이 없지 않으나 이제 泰鎭慶鎭等 幹役으로 여러 後孫이 崇祖의 精誠으로 公의 基道에 碑를 세우고 이어서 亭子도 建築하였으니 追遠報本의 行이라 할 것이다 孝는 百行의 根源이요 萬喜의 基本이라 傳家의 良風으로서 本是孝心이 敦篤하였던 公은 七代祖의 墳基가 失傳되어 甚히 憂慮하던中 公이 祖上의 現夢으로 찾게 된 바 이는 公의 地極한 孝心에 緣由한 일이다 公은 名山大川의 正氣를 받아 탄생하시어서 幼少時부터 郡鷄一鶴으로 天稟이 非凡하였으며 聰明한 頭惱와 丹滿한 德行으로 名聲이 遠近名地에 寥寥하였다 公은 禮儀法度를 完成하고 義理로 行動하였으며 옛 聖賢의 智慧와 行儀를 마음에 새겨 世人을 嚮導하니 鄕儒들의 來訪으로 門前成市를 이루었으며 學業과 出世에 뜻을 둔 선비들을 薰陶하고 많은 感化를 베풀어 섰다 公은 祖父때에 落鄕하였는바 性品이 强直하고 對人關係에 信義와 寬容과 情誼를 根本으로 삼았으며 그 遺德이 太陽처럼 빛나서 後孫에게 綿綿이 이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으니 將來에 길이 昌盛해 갈 것 이다. 一門의 累代에 걸쳐 宿願이던 이 亭子는 公의 十世孫이며 現佛敎天台宗南益渟(法号大忠)宗正의 願力과 田雲德總務院長을 비롯한 宗團任員들의 積極的인 寄與와 協力으로 丹滿히 成就하였으니 이 布施功德은 길이 빛날 것이다 이로써 公의 德業과 顯名은 다시금 宣揚케 되었으며 公의 一門諸族이 이 亭子에 모여 和睦을 圖謨하고 先組의 遺訓을 되새기며 喪失되어가는 道義心과 崇組精神을 光輝할 것이니 이 어찌 大功業이 아닐 것 이랴
庚午 仲春 述者 謹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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