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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정편 - 衢謠樓(구요루) -

 
소재지 : 경북 의성군 의성읍 비안면 (비안현 객관 동쪽)
건립연대 : 조선초년() 건립
건립자 또는 연고자 : 河 崙, 朴瑞生
건물의 입지 :
건물의 형태 :
지붕 :
건물의 모양 :
누정건물의 정면과 측면의 칸수 : 정면 - 칸, 측면 - 칸
건물 보존 상태 : 양호
문화재 지정 현황 :

 

 河 崙 作, 衢謠樓 記文

親試科第三人右正言知製敎朴君瑞生將往古鄕拜掃先塋告予別且請余曰吾鄕此屋舊爲尙州屬縣去六十餘里縣吏五日一詣州聽命奔走猶恐不及往往有緩急州吏到縣施辱縣吏流毒縣民有不可勝言者矣前朝之季事多倉卒縣之勢日蹙矣至我國朝具知其故諸屬縣與州相阻者皆置縣官一人使自爲治吾鄕例得官然後吏民稍至蘇息歲癸未之春監縣兪君讓到官凡可以起廢者靡不圖之一日集縣之父老而語之曰舘宇所以接對使命宣布德威者也縣旣非前日之此矣舘宇卑狹如此當夏之熱無以安使命父老亦能無愧乎咸曰唯命舘之南有通衢老樹數株夾舅峙乃就其陰搆樓三間役民農隙不日而成坐而四顧則靑山旁圍澗水流前綠陰滿地淸風自至實有登臨之適矣請子幸名之且爲記以光吾縣也余曰拙文安敢爲然余嘗聞堯舜之民比屋可封余聞比屋之名不能無有感於壞矣士生斯世幼而讀聖人書孰不有堯舜君民之志哉卒未有能行之者謂之何哉夫堯舜之道仁義而己矣仁義人心固有之理人皆有是心而心有是理矣但不能盡心焉耳上有盡心之君下有盡心之臣君臣相遇自古爲難正言旣比安世家夙聞比屋之其有堯舜君民之志者爲不淺矣逢辰休嘉射策大庭超昇侍從之例職之以言責君之知非不深矣君之任將有大矣他日以堯舜君民之心行堯舜君民之政使吾東方比屋可封之俗則必自子之縣始矣旣有可封之俗則必有康衢謠矣舘之南有樓樓之南有衢則縣民之謠于是衢者將必源源而不己矣登是樓而聞是謠者其樂爲如何哉敢以衢謠名樓可乎正言拜曰大哉言乎鯫生鳥敢當哉然此意敢不歸語鄕人父兄服膺而勿失之哉矛老矣不能盡心者矣旣以名樓且重有感於壞矣故書以爲記 晋陽 河崙 謹記


친시과 제삼인으로 급제한 우정언 지제교 박서생 군이 고향에 내려가 선 영에 성묘하고자 나에게 작별 인사를 왔다. 또 나에게 청하기를 “나의 고향 비실은 예부터 상주에 속해 있었는데 상 주와의 거리가 육십 리라, 현의 관리가 오일에 한번씩 상주에 가서 명령을 받아오니 분주하면서도 오히려 미치지 못할까 두려워하였으니 왕왕 급한 일 이 생기면 상주의 관리가 직접 현에 와서 현의 관리에게 욕을 보이고 현민 들에게 해독을 끼치기를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전조말기에는 갑작스러운 일들이 많았으므로 현의 형세가 날로 줄어들었습니다. 우리 조정에서는 그 연유를 자상히 알고 본주와의 거리가 동떨어진 속현은 모두 감현관 일명을 두어 자치하게 하니 우리 고을도 이에 따라 관장을 얻게 되었고 그렇게 된 후로는 현의 이속이나 백성이 모두가 숨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계미년 봄에 감현관 유양군이 도임하여 피폐한 것을 다시 일으키려고 계획하지 않은 것 이 없었습니다. 하루는 현의 부유한 노옹들을 모아 놓고 말하기를 ”관사라는 것은 사신을 접대하고 덕성을 선포하려 하는 것인데 현이 이미 전일에 비할 바 아니거늘 관사가 이렇게 낮고 비좁아 뜨거운 여름을 당하여 사신을 편히 모실 수 없으니 부유한 노옹들도 역시 부끄러움이 없겠는가.“ 하니 모두 ”명 령대로 하겠습니다.“ 하였습니다. 관사의 남쪽에 네거리가 있고 고목 몇 그루 가 거리를 끼고 우뚝 솟아 있으므로 그 그늘에 삼문의 누각을 짓는데 농사 의 틈을 내어 짓는데도 멀지 않아 완성되었습니다. 올라 앉아 사방을 둘러보 면 청산이 사방을 둘렀고 시내가 앞을 두르며 녹음이 우거져 맑은 바람이 저절로 불어오니 실로 올라볼만한 경취가 있습니다. 청컨대 그대는 누각의 이름을 짓고 기문을 써서 우리 고을을 빛나게 해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부 족한 글로 어찌 감히 짓는다고 하겠는가? 그러나 아 일찍이 요순의 백성을 집집마다 봉할 만하다고 들었는데, 차실이가 가히 그러하도다! 이제 차실이란 이름을 들으니 감회가 있지 않을 수 없다. 선비가 이 세상 에 태어나서 어려서부터 성인의 글을 읽었으니 누군들 요순 군민들의 뜻을 갖지 않겠지만 마침내 이를 행한 자 없으니 어찌된 일인가? 대저 요순의 도 는 인의일 뿐이요. 인의는 인심의 고유한 이치이다. 사람은 모두 이 마음이 있고 마음엔 모두 이 이치가 있거든 다만 마음을 다하지 못할 따름이다. 위 로 마음을 다하는 임금이 있고 아래로 마음을 다하는 신하가 있으니 서로 만나기는 예부터 어렵다고 한다. 정언은 이미 차실의 세가로서 일찍이 차실 이란 이름을 들었는데 그 이름에 요순의 백성이 되겠다는 뜻 가짐이 결코 얕지 않다고 하겠다. 경축과거에 올라 왕정에서 시종의 반열에 올라 사간원 언책을 맡게 되었 으니 임금께서도 깊이 알아주실 것이요. 임금의 신임도 앞으로 반드시 올 것 이다. 뒷날 요순의 백성이 되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요순의 백성이 될만 한 정사를 행하여 우리 동방으로 하여금 집집마다 봉할만한 풍습이 있게 된 다면 반드시 그대의 고을부터 시작될 것이며 이미 봉할 만한 풍습이 있다면 반드시 강구의 민요가 있을 것이다. 관사의 남쪽에 누각이 있고 누각의 남쪽 에 거리가 있으니 고을 백성이 거리에서 노래하는 일이 장차 반드시 끊임없 을 것이다. 이 누각에 올라 그 노래를 듣는 자는 그 즐거움이 어떠하겠는가? 감히 구요를 누각의 이름으로 함이 옳지 않겠는가? 하니 정언이 절하며 “위 대한 말씀, 소생이 어찌 감히 당하겠습니까? 그러나 이 뜻을 고향의 부유한 노옹들에게 알려 가슴에 간직하고 잊지 않게 하겠습니다.” 하였다. 나는 늙어서 마음을 다하지 못하는 자이나, 이미 누각의 이름을 지었고 거 듭 느끼는 바가 있어 이 글을 써서 기로 삼는 바이다.
진양 하 륜이 삼가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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