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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정편 - 敬義齋(경의재) -

 

 소재지 : 경북 군위군 우보면 나호리
건립연대 : 1885년() 건립
건립자 또는 연고자 : 박종남
건물의 입지 : 山頂形
건물의 형태 : 누형 다락집
지붕 : 팔작지붕
건물의 모양 : 四角形
누정건물의 정면과 측면의 칸수 : 정면 - 3칸, 측면 - 1.5칸
건물 보존 상태 : 양호
문화재 지정 현황 :

 

柳道獻 作, 敬義齋記

敬義齋者柳村朴先生所扁之堂今考遺集曰種柳列五以儗栥桑之趣名之曰柳村扁左曰敬扁右曰義云間因頹圮將謀重構閱歲而工告訖仍孫顯鶴顯求瓚祚氏諉其門小鼎鉉甫聯書於不佞而且記爲不侫作而曰先生旣以敬義名扁即其內外來持之工可驗矣君子之學軆用而已軆用該備然後可以語成德矣聖門六藝射御與焉不可以偏廢也有軆而無用非學也出而事君此其道也入而事親亦其道也其幸而遇休明之運値可爲之時卽黼黻王猷卽其事也其不幸而當否屯之日居危疑之際則潔身長逝亦其道也嗚呼先生其遭不幸之會耶其詩曰弓馬初心漸覺非田園深處賦以歸門前學種先生柳依舊人間老布衣此公拂衣歸田之詩也念其時人紀壞王網頹岌岌乎殆哉遂無意於世而日與諸生講究性理之原沉潤圖書之奧尤用力於中庸潜心積慮蔚爲一代之儒宗盖其平生需用不外乎敬義二字而已矧又忠孝之性得之家庭其奮義敵愾慷慨憂憤之義已著於火旺鼎律之役卽公之軆用之學從可知矣舞溪先生以孝聞而多士畏壘焉先生以敬義名齋而爲世守之模範三復遺篇不任景仰之忱玆將畧記首末以塞慈孫之請系而詩曰先民邈矣愧吾非千載嘐嘐誰與歸柳巷淸風吹不歇仰山高處整裳衣
辛丑陽月上澣 後學 前行禁府都事 豊山 柳道獻 謹記


경의재라는 것은 유촌이신 박 선생께서 당호를 삼으신 바의 서당이다. 지 금 유집을 상고하여 보니 가로되, “버드나무 다섯 그루를 벌려 심어 가시와 뽕나무의 취향을 기대하노라”라고 하고는 이름 하기를 ‘유촌’이라 하고, 왼편 당호를 ‘敬’이라 하고, 오른편 당호를 ‘義’라 하였는데, 그 사이에 기울고 무너 짐을 일하여 장차 중수할 것을 도모하여 한해를 거쳐 공사를 마치게 되었다. 칠대손인 현학과 현구와 찬조 씨가 그의 문중 젊은이 정현 씨에게 위탁하여 변변찮은 나에게 연서를 보내고 또한 기문을 부탁하기에 내가 자세를 가다 듬으며 말하기를 “선생께서 이미 경의로서 현판의 이름을 붙였으니 즉 그 내외로 부축하여 가진 공부를 가히 징험하겠구나. 군자의 학문은 체와 용뿐 이다. 체와 용을 모두 갖춘 뒤에라야 가히 덕을 이루었다고 말하리라.” 성문 의 육예에는 활쏘기와 말 타기도 포함되어 있으니 가히 치우쳐서 폐할 수 없는 것이다. 체만 있고 용이 없다면 학문이 아니니, 벼슬길에 나아가서 임 금을 섬기는 것도 이것은 그 도요, 들어와서 어버이를 섬기는 것도 역시 그 도이다. 그 다행스럽게 아름답고 밝은 운을 만나고 가히 할 때를 만나서 곧 왕의 꾀를 돕는 것도 즉 그러한 일이고, 그 불행하게 비색하고 궁곤한 날을 맞이하고 위태로운 때에 산다면 몸을 깨끗하게 하여 길이 가는 것도 역시 그 도인 것이다. 아! 선생께서는 그 불행한 기회를 만났는가 보다. 그의 시에 말하기를 “활 쏘고 말 타는 처음 마음이 전차 잘못임을 깨닫고, 저원의 깊은 곳으로 귀거래의 부를 외우며 돌아가네. 문전에는 오류선생의 버들을 베어서 심고, 옛 인간에 의지하여 포의(평민)로서 늙노라”라고 하셨으니, 이것은 공 께서 옷을 털고 전원으로 돌아간 시이다. 그때를 생각하니 인륜의 기강이 무 너지고 왕정의 삼망이 무너져 높다랗게 위태하였다. 드디어 세사에 뜻이 없 어 날마다 제생들과 더불어 성리의 근원을 강구하고 도서의 오묘한 맛에 젖 어 더욱 중용에 힘을 기울여 마음을 적시어 생각에 쌓아서, 울연하게 일대의 유종이 되셨으니, 대개 그 분의 평생에 수용하신 것은 경의의 두 글자 뿐 이 었다. 하물며 또한 충효의 성품은 가정에서 얻었고, 그 의로움에 흥분되고, 적개심으로 비분강개하고 걱정하고 분하여 하셨던 의리는, 이미 화왕산성과 정진의 역에서 나타났으니, 즉 공의 체와 용의 학문을 이로 인해 가히 알 수 있다. 무계선생께서는 “효로서 소문이 나니, 많은 선비들이 두려워하였고, 선 생은 경의로서 재실의 이름을 하여 대대로 모범을 지켜가니, 세 번이나 반복 하여 유편을 읽으니 삼가 숭앙하는 정성을 맡길 곳이 없구나.”라고 하고는 여기에 간략하게 처음부터 끝까지를 기록하여 자손들의 요청에 가름하였으 며, 잇따라 시를 하여 말하노니, “선왕의 백성이 멀어졌으니 나의 잘못이 부 끄럽구나, 천년을 고요하니 누구와 더불어 돌아갈까? 버드나무마을의 맑은 바람은 불기를 쉬지 않으니, 우러러 산의 높은 곳에 유택만이 가지런하네.”라 하였다. 신축(1901)년 시월 상한에, 후학 전행금부도사인 풍산 유도헌이 삼가 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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